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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를 신뢰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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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대로믿는사람들 <2018년 04월호>
다음의 구절들은 "두 가지 신뢰"에 대한 양극단을 보여 준다.『주가 이같이 말하노라. 사람을 신뢰하는 사람과 육신을 그의 무기로 삼는 사람과 그의 마음이 주로부터 떠나는 사람은 저주를 받으리라. 그는 사막에 히스 나무같이 되어 좋은 일이 오는 때를 보지 못하고 광야와 소금 땅과 사람이 살지 않는 바싹 마른 곳들에 거하리라. 주를 신뢰하고 주께서 그의 소망인 사람은 복이 있도다. 그는 물가에 심겨진 나무가 강가에 그 뿌리를 뻗침과 같아서 더위가 오는 때를 보지 못하고 그 잎이 푸르러 가뭄의 해에도 염려하지 않고 열매를 맺는 것도 그치지 아니할 것임이라』(렘 17:5-8). 이것은 우상 숭배에 빠져 하나님의 선민답게 살지 못한 남왕국 유다가 결국 이방의 대적들에 의해 유린당하고 굴종하게 될 것을 예언한 앞선 구절들(렘 17:1-4)에 이어지는 문맥으로서, 특별히 "복과 저주의 원칙"을 "신뢰의 대상"과 결부시켜 말씀하고 있다."신뢰"는 "어떤 대상을 굳게 믿고 의지하는 것"을 뜻한다. 영어로는 "trust"라고 하는데, "편안함"을 의미하는 독일어 "trost"에서 비롯되었다. 즉 어떤 대상에게 믿음을 갖고 의지할 때, 비로소 마음이 편안해지는 인간의 심리가 반영된 단어인 것이다. 인간은 본능적으로 어떤 대상을 신뢰하며 살아갈 수밖에 없는데, 이는 신뢰할 대상이 없는 사람은 한순간도 마음의 평안을 누릴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가 누군가를 신뢰할 때 반드시 유념해야 할 사실이 있는데, 곧 신뢰의 대상이 바르게 설정되어 있어야 한다는 점이다. 생각해 보라! 사기꾼이 아무리 신뢰감을 주는 언행으로 자신을 그럴듯하게 포장한들 그가 사기꾼이라는 사실 자체가 변하겠는가? 그의 거짓말이 신뢰감을 주는 논리와 증거들로 뒷받침된다 해도 그의 거짓말은 진실이 될 수 없다. 따라서 어떤 누군가를 신뢰한다고 할 때, 과연 그 대상이 신뢰할 만한 존재인가를 꼭 점검해 보아야 하는데, 그에 대한 분명한 기준을 예레미야 17:5-8에서 제시하고 있는 것이다.
1.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다른 사람을 곧잘 신뢰하곤 하는데, 특히 의사나 변호사 같은 전문 직업인을 향한 신뢰는 가히 절대적이다. 거듭나지 않은 자연인들은 성경을 모르기에 "올바른 인간관"을 가질 수 없고, 또한 올바른 인간관이 부재하기 때문에 마치 그런 부류의 사람들이 자기들의 인생에 한 줄기 빛이 되어 줄 특별한 존재들인 것처럼 착각하면서 자신과 별반 다를 게 없는 그런 죄인들에게 대단한 점수를 부여하고 있는 것이다. 또 한편으로는 자기 스스로를 신뢰하며 살아가는 사람들도 있다. 그런 자들은 자신 안에 내재된 "가능성"으로 무한한 발전을 이룰 수 있다는 착각에 빠져 있다. "그 무엇을 믿기 전에 자기 자신을 먼저 믿어라!"라는 구호를 외치면서 자신의 "육신"을 무기로 삼고 있는 것인데, 그런 육신으로부터 무언가 선하고 좋은 것을 이끌어 내려고 하는 것이다. 하지만 성경은 "인간의 육신 안에는 결코 선한 것이 거하지 않는다."라고 단언한다(롬 7:18).
역대기하 16장에는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고 사람을 신뢰했던 아사 왕이 나온다. 한때 그는 오직 주님만을 의지함으로써 에디오피아 백만 대군을 격파하여 국난을 극복한 전력이 있었다(대하 14:9-15). 그러나 이후 또다시 국가적 위기가 닥쳤을 때 시리아의 벤하닷 왕을 의지하는 우를 범했던 것이다(대하 16:1-6). 그는 자신이 의지할 신뢰의 기반을 하나님에서 인간으로 옮겼다. 북왕국 이스라엘의 바아사 왕이 쳐들어오자,『주여, 많은 수로든지 힘이 없는 자들로든지, 주께서 도와주시는 데는 아무것도 아니니이다. 오 주 우리 하나님이여, 우리를 도우소서. 이는 우리가 주를 의지하며 주의 이름으로 이 무리를 대적하러 감이니이다. 오 주여, 주는 우리의 하나님이시니 사람이 주를 이기지 못하게 하소서.』(대하 14:11)라고 기도했던 지난날의 간구는 까맣게 잊은 채 동맹국의 왕을 신뢰하고 말았다. 이때 선견자 하나니가 향후 시리아는 남왕국 유다의 통제에서 벗어날 것이고, 유다는 전쟁들에 휘말릴 것이라고 경고했다.『왕이 시리아 왕을 의지하고 주 왕의 하나님을 의지하지 아니하였으므로 시리아 왕의 군대가 왕의 손에서 벗어났나이다. 에디오피아인들과 루빔인들은 심히 많은 병거와 기병을 가진 대군대가 아니었나이까? 그래도 왕이 주를 의지하였기에 그분께서 그들을 왕의 손에 넘겨주셨나이다. 이는 주의 눈은 온 땅을 두루 살피시어 자신을 향하여 마음이 온전한 자들을 위하여 자신이 강함을 보이심이니이다. 왕이 이 일을 어리석게 행하셨나이다. 그러므로 이제부터 왕에게 전쟁들이 있으리이다』(대하 16:7-9).
선견자 하나니가 말한 것처럼 하나님께서는 그분을 향해 마음이 온전한 자들을 돕는 분이시다. 신명기 6:5에서는『너는 네 마음을 다하고 네 혼을 다하고 네 힘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할지니라.』라고 말씀한다. 이것은 신약에서도 "첫째 계명"인데(막 12:30), 하나님께서는 사람의 마음을 살피시는 분이기에 다른 어떤 요소보다도 그분을 향해 마음을 온전히 드리는 일이 최우선으로 강조되는 것이다. 그런데 주님께 마음을 드리기는커녕 그 마음이 주님으로부터 떠나 버린 저주받을 자들이 수두룩한 것이 오늘날의 현실이다. 이유가 무엇인가? 아사 왕처럼 사람을 신뢰하고 육신의 능력을 의지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분의 자녀들에게 사람을 신뢰하지 말라고 성경 곳곳에서 말씀하신다. 특히 시편 146:3에서는 사람을 신뢰하는 것이 인간에게 아무런 도움도 되지 않는다고 말씀한다.
2. 그렇다면 우리는 누구를 신뢰하며 살아가야 하는 것인가? 시편 118:8에서는『사람에게 신뢰를 두기보다 주를 신뢰하는 것이 나으며』라고 말씀한다. 인간을 향한 모든 신뢰는 반드시 치욕과 수치로 끝나게 되어 있다. 이에 반해 주 하나님을 신뢰하는 사람들은 원수에게서 구출되고, 기도의 응답을 받으며, 온전하고 바른 길로 행하여 기쁨과 즐거움을 누리게 된다. 이런 이유로 성경에서는 주를 신뢰하라고 거듭 권고하고 있는데, 이것이야말로 주님의 보호하심 속에서 이 험난한 세상을 안전하게 살아갈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인 것이다.『사람을 두려워하면 덫에 걸리나, 주를 신뢰하는 자는 누구나 안전하리라』(잠 29:25). 여기서 대조되고 있는바 "사람을 두려워하는 사람"과 "주를 신뢰하는 사람"은 각각 예레미야 17장의 "사막에 있는 히스 나무"와 "물가에 심겨진 나무"에 비견될 수 있다. "사막의 히스 나무"를 둘러싼 환경, 곧 광야와 소금 땅과 사람이 살지 않는 바싹 마른 곳에서의 삶은 사실상 죽음과 다를 바 없는 인생이지만, 주를 신뢰하는 사람에게는 그런 극한의 환경이 아무런 문제도 되지 않는다. 왜냐하면 그는 "물가에 심겨진 나무"처럼 계절을 따라 열매를 맺고, 또한 잎사귀도 마르지 않아 무엇을 하든지 번성할 것이기 때문이다(시 1:3). 주님을 신뢰하는 사람은 가뭄이나 더위가 올지라도 그것들로 인한 고통을 걱정할 필요가 없다. 자신을 지탱해 주시는 생수의 근원이신 하나님께서 언제나 그와 함께하시기 때문이다.
오늘날에는 하나님을 믿는다고 그럴싸하게 고백하는 사람들이 무수히 많다. 그러나 그런 자들은 자신을 둘러싼 환경이 평탄하고 삶의 문제가 없을 때에만 믿음이 있는 척한다. 인생에 큰 역경과 고난이 닥칠 때는 주 하나님을 향한 전적인 신뢰로 믿음을 굳건히 유지하는 모습을 그런 자들에게서 기대하기 어렵다. 생활이 순탄한 상황에서 하나님을 신뢰한다는 말을 누군들 못하겠는가? 막상 인생의 풍파와 난관이 닥치게 되면, 언제 그랬느냐는 듯이 하나님을 향한 신뢰가 한순간에 무너지고 사람이나 세상에 의존하려고 하는 것이 인간의 본성이다. 사실 이것은 두 마음을 품은 위선적인 태도에서 기인된 것인데, 주님께서는『두 마음을 품은 사람은 그의 모든 길에 안정이 없느니라.』(약 1:8)라고 경고하신다. 결코 하나님을 향한 신뢰가 "일시적인 것"으로 그쳐서는 안 된다. 주님께서는 자신을 신뢰하는 자녀들이 귀중한 소망을 갖도록 하시는데, 그 소망을 저버린 채 현실의 고통과 고난에 좌절하여 주님을 신뢰하지 못하는 것은 실로 어리석은 일이다. 주변의 세파에 흔들리지 않고 매 순간 주님의 도우심을 바라며 소망 가운데 살아가는 것, 이것이야말로 주님을 전적으로 신뢰하는 성숙한 성도의 자세라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구원받은 성도는 하나님께서 그분 자신에 관해 기록하신 성경 말씀을 믿고, 그 말씀에 계시된 대로 주 하나님을 신뢰하는 사람이다. 주님께서는 자신을 말씀으로 계시하시기에, 말씀을 아는 것이 곧 주님을 아는 것이다. 그래서 말씀에 대한 견고한 신뢰는, 보이지 않으시는 하나님을 신뢰한다는 확실한 표식이자 증거라 할 수 있다. 따라서 하나님을 향한 신뢰를 보다 더 견고히 하기 위해서는 그분의 말씀을 날마다 가까이 해야 한다.『너의 신뢰가 주께 있게 하려고 오늘 내가 너에게 이것[하나님의 말씀]을 알게 하였으니, 바로 너에게라』(잠 22:19). 하나님을 신뢰하는 성도는 날마다 성경을 상고하고 깊이 있게 공부함으로써 주님을 향한 신뢰를 더욱 확고히 하여 소망 가운데 살아가는 사람이다.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그리스도의 종으로 살고 싶다면, 이러한 경건의 훈련을 끊임없이 반복함으로써, 다른 무엇이 아닌 오직 주님만을 신뢰하며 신실하게 주님을 섬기는 성도가 되어야 할 것이다. BB