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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혼.몸 - 사람의 삼중성(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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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대로믿는사람들 <1993년 05월호>
성경은 사람이 삼중적 구조로 이루어져 있다고 명백히 밝히고 있다. 그러므로 성경을 믿는 사람이라면 이분법(Dichotomy)은 비성경적인 구분이며, 올바른 구분 방법이 삼분법(Trichotomy)이라는 사실을 확신할 수 있다.몸
사람의 몸은 흙으로 만들어졌으므로 반드시 흙으로 되돌아 간다(창3:19). 육체는 아담으로부터 ‘썩어질 씨’(벧전1:23)를 유전받았으며, 모든 육체는 풀과 같다(벧전1:24). 사람이 죽으면 육체는 땅 속에 묻혀 구더기가 파먹고, 수 많은 미생물들이 시체를 분해시켜 버린다. 우리의 육신은 개수가 불가능하다. 아무리 가꾸고, 꾸미고, 잘 먹이고, 입힌다 해도 그것이 죽으면 구더기가 파먹게 되는 흙에 불과하다. 그리고 아무것도 가지고 가지 못한다. 『우리가 세상에 아무것도 가지고 온 것이 없으며, 아무것도 가지고 갈 수 없는 것이 분명하니』(딤전6:7).
우리의 육신은 정욕을 갖고 있으며, 사탄과 죄는 이 정욕을 통해 우리의 육신을 노략질한다. 아담의 타락 이후로 혼은 육체에 결탁되어 육신과 죄의 노예가 되어 있다. 그러므로 성경은 이를 『육의 죄들의 몸』이라 표현하고 있다(골2:11). 사람이 이 ‘죄의 몸’에서 해방될 수 있는 것은 하나님의 성령에 의하여 영이 거듭나고, 육에 밀착되어 버린 혼이 구원받는 것이다(벧전1:9). 이것은 육에 밀착된 혼을 몸으로부터 분리시키는 것이다.
이와 병행하여 반드시 되어져야 할 첫번째 단계는 로마서 6:3-5을 깨닫고 “아는 것”이다. 『그리스도 예수 안으로 침례받은 우리가 그의 죽으심 안으로 침례받은 것을 알지 못하느냐? 그러므로 우리가 그와 함께 받은 침례에 의하여 죽음 안으로 장사되었으니, 이는 아버지의 영광으로 인하여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심과 같이 우리도 또한 생명의 새로움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함이니라. 만일 우리가 그의 죽으심과 같은 죽음에 함께 연합하였다면 그의 부활하심과 같은 부활에도 그러하리라』(롬6:3-5).
두번째 단계로 우리는 우리 자신을 죄에 대하여는 죽은 자요,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대하여는 산 자로 여겨야 한다. 『이와 같이 너희도 너희 자신을 죄에 대하여는 죽은 자요, 예수 그리스도 우리 주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대하여는 산 자로 여기라』(롬6:11).
세번째 단계로 우리 자신을 하나님께 드려야 한다. 『그러므로 너희는 죄가 너희 죽을 몸 안에서 군림하지 못하게 하여 죄의 정욕 가운데 죄에게 순종하지 말고 또 너희 지체를 불의의 병기로 죄에게 내어 주지 말고 다만 너희 자신을 죽은 자 가운데서 산 자처럼 하나님께 드리며 너희 지체를 의의 병기로 하나님께 드리라』(롬6:12,13).
이것은 우리가 거듭난 후 혼을 통해 육신이 영의 지배를 받기 위한 필수적인 법칙이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는 육신에 속하여 영의 일을 버리고, 범죄하거나 타락해 버린다. 성경은 이렇게 말씀하신다 『육신의 생각은 사망이나』(롬8:6), 『육신을 따르는 사람들은 육신의 일들을 생각하나』(롬8:5), 『육신의 생각은 하나님과 원수가 되나니 그것은 하나님의 법에 복종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실로 할 수도 없음이라』(롬8:7), 『육신 안에 있는 자들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느니라』(롬8:8).
그러나, 『성령을 따르는 사람들은 성령의 일들을 생각하느니라』(롬8:5) 『성령의 생각은 생명과 평강이니라』(롬8:6) 『만일 그리스도께서 너희 안에 계시면 몸은 죄로 인하여 죽은 것이나 성령은 의로 인한 생명이니라. 예수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분의 성령이 너희 안에 거하시면,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분이 너희 안에 거하시는 그 분의 성령으로 인하여 너희 죽을 몸도 살리시리라』(롬8:10,11).
그러므로, 『그러므로 형제들아, 우리가 빚진 자들이나 육신에 져서 육신을 따라 살 것이 아니니라. 너희가 육신을 따라 살면 죽을 것이나 성령을 통하여 몸의 행실을 죽이면 살리라』(롬8:12,13).
혼
사람이 죽으면 혼과 영은 육체를 벗어나고 육체는 무덤에 묻힌다. 여기서 혼은 “몸의 형태”(bodily shape)를 가지고 있다. 많은 고대 희랍 철학자들은 혼을 땅콩이나 골프공과 같은 모양으로 사람의 뇌나 가슴 어딘가에 들어 있는 것으로 여겼다. 현재 그렇게 생각하는 그리스도인도 상당히 많이 있다. 그러나 혼은 보고, 느끼며, 말하고, 들으며, 목말라 하고, 생각하며, 옷을 입는다.
계시록 6:9-11에는 『어린 양이 다섯째 봉인을 여실 때 내가 보니, 제단 아래에는 하나님의 말씀과 그들이 가진 증거 때문에 죽임 당한 자들의 혼들이 있는데, 그들이 큰 음성으로 울부짖으며 말하기를 “거룩하시고 참되신 주여, 땅에 살고 있는 그들을 심판하시어 우리의 피를 갚아 주실 날이 얼마나 남았나이까?” 하더라. 그러자 그들 각자에게 흰 긴 옷을 주시면서, 그들의 동료 종과 형제도 그들처럼 죽임을 당하여 그 수가 가득 채워질 때까지 잠시만 더 쉬라고 말씀하시더라』고 되어 있다.
구절들을 잘 살펴보면 『혼들』이 『큰 음성으로 울부짖으며』라고 말을 한다. 또 그들에게 주어진 것은 『흰 옷』이었다. 즉, 이 혼들이 그 흰 옷을 입는다는 것이다. 이 『흰 옷』은 무엇인가? 계시록 19:8에서 『성도들의 의』라고 말한다. 이것은 우리가 행위로 구원받고, 그 결과로 “흰 옷”을 입는다는 말이 아니다. 그리스도인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써이미 의롭게 되었다. 이 『흰 옷』은 그리스도인들의 구원받은 후 성도들의 행실과 관련이 있다(참조/계16:15).
누가복음 16:22-31에서 주님께서 언급하신 “부자와 나사로”의 이야기를 통해 이것을 더욱 구체적으로 살펴 보기로 하자. 『그러다가 그 거지가 죽었는데 천사들이 그를 아브라함의 품으로 옮겼고 그 부자도 죽어서 장사되었더라. 부자가 지옥에서 고통받는 중에 눈을 들어 저 멀리 아브라함을 보았더니 나사로가 그의 품에 있는지라. 그가 소리질러 말하기를 ‘아버지 아브라함이여, 저를 불쌍히 여기셔서 나사로를 보내시어 그가 자기 손가락 끝에 물을 적셔 내 혀를 식히게 하소서. 내가 지금 이 불꽃 가운데서 고통을 받고 있나이다.’라고 하니 아브라함이 말하기를 ‘아이야, 너는 네 생전에 좋은 것을 받았고 나사로는 나쁜 것을 받았음을 기억하라. 그러나 이제 그는 위로를 받고 너는 고통을 받느니라. 이 모든 것 외에도 우리와 너희 사이에는 커다란 구렁이 놓여 있어서 여기에서 너희에게로 건너가고자 하여도 갈 수 없고 거기에서 우리에게로 건너오고자 하여도 올 수 없느니라.’고 하더라. 그가 말하기를 ‘그러면 아버지여, 내가 당신께 간구하노니 당신께서 나사로를 내 아버지 집에 보내어 주소서. 나에게 다섯 형제가 있으니 그가 그들에게 증거하여 그들로 이 고통의 장소에 오지 않게 하소서.’라고 하니 아브라함이 그에게 말하기를 ‘그들에게는 모세와 선지자들이 있으니 그들에게 듣게 하라.’고 하시더라. 그러자 그가 말하기를 ‘아니옵니다. 아버지 아브라함이여, 만일 죽은 자 가운데 있던 자가 그들에게 가면 그들이 회개하리이다.’라고 하니 아브라함이 그에게 말하기를 ‘만일 그들이 모세와 선지자의 말을 듣지 않는다면 비록 누가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난다 해도 그들을 설득할 수 없을 것이라.’고 하시니라』(눅16:22-31).
이 이야기는 여호와의 증인들이나 무지한 그리스도인들이 주장하는 것처럼 결코 “비유”가 아니다. 다른 비유들을 말씀하실 때와 달리 주님께서는 이 묘사를 “비유”라고 말씀하시지 않으셨다. 만약 비유라 한다면, ‘아브라함’과 ‘나사로’와 같은 실제적이고 구체적인 인물들의 이름 등이 거명되지 않는다. 이것은 그리스도께서 그 분의 초자연적인 눈으로 우리가 볼 수 없는 지하세계, 곧 음부에서 일어난 실제적인 사건을 묘사해 주신 것이다. 그러므로 이 예화는 나사로와 부자가 죽어 몸은 땅에 묻히고, 혼이 육신으로부터 분리되어진 상태를 우리에게 분명히 보여 주는 사건이다.
고대 철학자들은 인간의 혼은 “땅콩”이나 “골프공”과 같이 자그마한 그 ‘무엇’으로서 인간이 죽으면 그 혼은 입이나 머리 뒤쪽 편으로 빠져 나간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성경은 그 혼이 어떠한 것인가를 명백히 제시해 준다. 인간의 혼은 “몸의 형태”(bodily shape)를 가지고 있으며, 인간이 죽으면 흙으로 만든 몸은 땅 속에 묻혀 부패하지만, 혼은 그 몸의 형태 그대로를 유지한 채로 존재한다는 것이다. 위에서 제시한 구절을 더욱 깊이 관찰해 본다면 이는 쉽게 증명된다.
1.부자는 볼 수 있는 눈을 가지고 있다(23절).
2.부자는 나사로를 인지할 수 있는 기억력을 가지고 있다(23-24절).
3.부자는 소리지르며 말할 수 있는 음성과 입을 가지고 있다(24-31절).
4.부자는 나사로가 손가락을 갖고 있다고 말한다(24절).
5.부자는 고통을 느낄 수 있는 촉각을 가지고 있다(23,24,25,28절).
6.부자는 물을 느낄 수 있는 혀를 가지고 있다(24절).
7.부자는 그의 조상 아브라함과 의사소통을 한다.
8.부자는 감정을 가지고 있다(간구, 호소, 지상 형제에 대한 염려 등).
9.부자는 아브라함을 알아 볼 수 있는 직관력을 가지고 있다(23-24절).
자, 위 구절들만 살펴보아도 ‘혼의 형체’가 지상에서 입었던 그 육체와 일치함을 알 수 있지 않은가! 혼이 세상에서 영적인 세계로 옮겨 갈 때에 성경은, 고대 희랍 철학자들이 상상력을 동원하여 말하던 바, 곧 “저 세상에 갈 때 혼은 일시적으로 잠드는 상태에 있다”든지 “혼은 망각의 강인 레테의 강을 건널 때 모든 것을 망각한다”든지 하는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음을 보여 준다. 이와 같이 인간은 죽음으로 말미암아 자신의 “물질적인” 육신만 벗어 버릴 뿐 자신의 인격이나 형체는 없어지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영
『여호와께서 땅의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그의 코의 구멍으로 생명의 호흡을 불어 넣으시니 사람이 살아있는 혼이 된지라』(창1:27). 하나님께서 인간을 창조하실 때 흙의 형체에서 생명의 호흡인 영을 불어 넣으셨다. 그리하여 인간은 흙도 어떤 영도 아닌 새로운 존재인 살아있는 혼(a living Soul)이 되었다. 여기서 하나님께서 불어 넣으신 것은 “생명의 호흡”이었다. 요한복음과 로마서는 이를 다시 잘 설명해 준다. 『성령으로 난 것은 영이니라』(요3:6). 『성령은 의로 인한 생명이니라』(롬8:10).
그리고 로마서 8:1에서는 성령이 우리 속에 들어 오시면 우리의 영이 살아나고 생명력을 지니게 된다고 말한다. 아담에게 들어간 하나님의 호흡이 인간을 영적인 존재로 만들고, 『살아있는 혼』이 되게 했다. 그러나 아담의 타락 이후 인간이 하나님의 형상을 잃게 됨으로 말미암아 그 영은 “죽은 영”이 되었고, “혼”은 몸에 밀착되어 육신에 속하여 육체의 지배를 받게 되었다. 이 혼은 거듭나기 전까지 몸으로부터 느슨해 질 수 조차 없다. 거듭나지 못한 모든 사람은 “죽은 영”을 가지고 있다. 주의해야 할 것은 그리스도인들 중에 사람이 죽으면 그 몸이 부패하여 사라지듯이 “영이 죽었다”는 의미를 “영의 부재”로 잘못 오인하고 있는 사람이 많다는 사실이다. 거듭나지 못한 사람은 영이 죽어서 없어진 것이 아니라 “죽은 영”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전도서 12:7에서 『흙(사람의 몸)은 원래의 땅으로 돌아가고, 그 영(사람의 영)은 그것(영)을 주신 하나님께로 돌아갈 것이다』라고 말하고 있으며, 전도서 3:21에서는 『인간의 영은 위로 올라가고, 짐승의 영은 땅으로 내려 가는 것을 누가 알리요』라고 분명히 말해 주고 있다. 아담의 타락이후 모든 사람의 영은 창세기 2:7에서 아담에게 불어 넣으신 그 생명의 호흡(영)이 생명이 없는 그러한 “죽은 영”으로 남아 있고, 죽은 후에는 그것을 주신 하나님께로 돌아간다. 그러므로 거듭나지 못한 사람도 영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그들의 영은 “죽은 영”이다. 물론 그들의 혼은 구원받지 못했으므로 누가복음 16장에서 잘 알 수 있듯이 지옥에서 고통을 당하게 된다. 반면에 거듭난 그리스도인들은 그들의 영이 성령에 의해 살리심을 입었고(요3:6), 그 영은 주님과 합하여 한 영이 되었으며(고전6:17), 주님께서 부활승천하실 때에 우리를 『함께 일으키사 예수 안에서 하늘에 함께 앉히셨다』(엡2:6). 지금 우리의 영은 동시에 두 곳을 점유하고 있는 것이다. 에베소서 2:6에 나오는 하늘은 실제적인 처소로서의 하늘이다. 바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앉아 계신 곳인 것이다. 그와 더불어 우리의 혼은 믿음의 결과 구원을 받게 되고(벧전1:9), 죽은 후에 그 혼은 하늘로 올라가 우리의 몸이 부활할 때까지 있다가 우리 몸이 부활하는 그 날에 다시 합하여 질 것이다.
자, 그러면 영은 무엇과 같은가? 요한복음 3:8에서 주님께서는 『바람이 임의로 불어서 네가 그 소리를 들어도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 알지 못하듯이 성령으로 난 사람은 모두 그와 같으니라』고 말씀하셨다. 여기서 영은 “바람”으로 표현된다.
에스겔 37:9, 14을 계속해서 살펴보자. 『그때에 주께서 내게 말씀하시기를 바람에게 예언하라. 인자야 예언하여 바람에게 말하라. 주 하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시니라. 오, 생기야, 네 바람으로부터 와서 이 살륙당한 자들 위에 생기를 넣어주어 그들로 살아나게 하라 하셨다고 하라... 내가 내 영을 너희 안에 두리니 그리하면 너희가 살리라』(겔37:9,14).
에스겔은 하나님께서 말씀하신대로 네 바람으로 와서 살륙 당한 자들을 위해 호흡을 불어 넣으라고 말했다. 그런데 14절에는 『내 영을 그들 속에 두리니』라고 표현되고 있다. 자, 여기서도 영은 “바람”으로 묘사되고 있음을 분명히 알 수 있다. 그러므로 “영”은 바람과 같은 것이다.
성경에는 4가지 종류의 “영”이 있다. 하나님의 영인 성령, 마귀의 영, 사람의 영, 그리고 동물의 영이다. 사람의 영은 사람으로 하여금 하나님에 대한 의식을 갖게 해 주거나, 하나님과 함께 교제할 수 있는 능력을 준다. 하나님께 예배드리는 자는 항상 “영과 진리로” 예배드려야 한다(요4:24).
사람은 성령으로 날 때 죽은 영이 살아나서 그 영으로 하나님께 예배드리거나 하나님과 교제할 수 있게 되지만, 거듭나지 못했다면 그 사람의 영은 죽어 있으므로 하나님과 교제할 수가 없다. 거듭나지 못한 사람은 “허물과 죄로 죽었고”(엡2:1), “불순종의 자녀”이며(엡2:2), “진노의 자녀”였고(엡2:3), “의도 없는 자”이며(롬3:10), “선도 없고”(롬3:12), “더러운 옷을 입고 있는 자”로서 “타국인이요 약속의 언약으로부터는 생소한 사람이었으며 소망도 없고 세상에서 하나님도 없는” 그런 자이다(엡2:12). 그러므로 사람은 반드시 거듭나야 한다(요3:7). BB