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가 진리의 말씀을 올바로 나누어 자신이 하나님 앞에 부끄럽지 않은 일꾼으로 인정받도록 공부하라(딤후 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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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영 밖”으로 나아간 윌리엄 캐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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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대로믿는사람들 <2016년 03월호>

『현명한 사람은 듣고 학식을 늘릴 것이요, 명철한 사람은 현명한 조언들을 얻으리니』(잠 1:5). 이 세상에 무언가를 배우지 않아도 되는 사람은 없다. 예수님께서도 사람으로서 "순종"을 배우셔야 했다(히 5:8). 문제는 "무엇을" 배우고 "어떻게" 배울 것인가에 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선지자 이사야를 통해 "선을 행하기를 배우고 공의를 찾으라."고 말씀하셨다(사 1:16,17). 사도 바울은 마지막 날들에 사람들이 『항상 배우나 진리의 지식에는 결코』 이르지 못한다고 말했다(딤후 3:7). 진리가 무엇인가? 진리는 예수 그리스도이시며(요 14:6), 하나님의 말씀이다(요 17:17). 현대인은 교육을 받고 항상 배우지만 구원의 길이신 예수님도, 성경도 모르는 시대에 살고 있다. 로마서 1:22에서는 이런 죄인들을 가리켜 『스스로 현명하다고 말하나 우둔하게 되었고』라고 지적한다. 이것은 교육을 많이 받았다고 하는 자들을 두고 하신 말씀인데, 주님께서는 그런 자들에게 아무 것도 보여 주시지 않는다(눅 10:21).
가방끈이 짧다 해도 성도라면 누구나 배우는 학생이다. 어떤 죄인이 새로운 출생을 경험하면, 그리스도 안에 있는 영적 아기가 된다. 아기는 자라나는 법을 배워야 한다. 특히 그리스도인들에게는 은혜 안에 성장하면서 반드시 배워야 할 "일곱 가지"가 있다.
1. 하나님을 신뢰하는 법을 배우라.
때때로 아무도 신뢰할 수 없고 심지어 자기 자신조차 신뢰할 수 없는 상황에 봉착하는 경우가 있는데, 이런 때를 대비해서라도 하나님을 신뢰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
그리스도인들은 예수님을 믿음으로써 자신의 혼을 하나님께 맡긴 사람들이다. 그렇다면 더 나아가 다른 일들에 대해서도 하나님을 신뢰하고 있는가? 돈은 어떠한가? 자신의 혼이 중요한가, 아니면 돈이 중요한가? 물론 "혼"이다(막 8:36). 주님을 신뢰하여 자기 혼까지 맡겼다면 돈 문제라고 맡기지 못할 이유가 무엇이겠는가?
2. "다리"를 불태우는 법을 배우라.
"과거를 잊어버리라"는 것이다. 사도 바울은 『다만 한 가지 일, 즉 뒤에 있는 것은 잊어버리고 앞에 있는 것들에 손을 뻗쳐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의 고귀한 부르심의 상을 위하여 그 푯대를 향해 쫓아갈 뿐이라.』(빌 3:13,14)고 말했다. "세월은 사람을 기다려 주지 않는다."는 속담이 있다. 어떻게 해도 시간을 돌이킬 수는 없는 것이다. 따라서 과거 일은 과거로 내버려 두라.
어떤 성도들은 이 점을 잘 배우지 못하는데, 무슨 나쁜 일이라도 일어나면 그 일 때문에 계속 속앓이를 하는 것이다. 설령 인생에서 무슨 역경이나 불행, 사고 또는 쓰디쓴 경험을 겪었다손 치더라도, 그것은 과거사일 뿐이다. 이미 지나갔고 끝났으며 돌이킬 수도 없다. 차라리 새 출발을 하는 편이 낫다. 과거에 머물러 있지 말라. 넋 놓고 주저앉아 있으면 시간만 낭비할 뿐이다. 그렇게 해도 아침이면 태양이 떠오르고 밤이면 달이 뜰 것이다. 파도도 들어왔다 다시 빠져나갈 것이다.
3. 하나님의 말씀에 지속적으로 갈급해 하는 법을 배우라.
생명의 빵을 배불리 먹고 그 풍요로움을 누릴 수 있을 때 만끽하라! 성경은 그렇게 하지 못할 때가 온다고 말씀한다. 『내가 그 땅에 기근을 보내리니... 오직 주의 말씀들을 듣지 못하는 기근이니라』(암 8:11). 당신은 얼마나 성경을 사모하는가? 욥의 고백과 비교해 보라. 『내가 그의 입술의 명령에서 돌아서지 아니하였고 내가 그의 입의 말씀들을 내게 필요한 음식보다 더 귀히 여겼도다』(욥 23:12).
휴거가 가까워 올수록 제대로 된 성경 공부와 설교를 듣기 힘들게 된다. 오늘날 유럽은 하나님의 말씀이 부재한 이교도들의 대륙이 되었는데, 그 자리를 모슬렘들, 카톨릭교도들, 무신론자들, 동성연애자들 등이 채워 버렸다. 필자는 예전에 "<킹제임스성경>을 믿는 교회가 어디에 있는지"에 관한 질문이 담긴 편지들을 수도 없이 받았다. "럭크만 목사님, 여기 근처에 <킹제임스성경>을 믿는 교회가 어디에 있는지 아십니까? 제가 지금 다니고 있는 교회의 목사는 OO학교 출신인데, <킹제임스성경>을 자기 맘대로 고칩니다. <킹제임스성경>을 믿는 교회를 어디서 찾을 수 있을까요?" 현재 <킹제임스성경>을 있는 그대로 믿고 가르치며 설교하는 교회에 다니고 있다면 복을 받은 것이다. 그 복을 풍성하게 누리는 법을 배우라!
4. 마음에서 쓴 뿌리를 제거하는 법을 배우라.
특히 남편들이 이 부분에 약한데, 바울은 남편들에게 아내들을 향해 쓴 뿌리를 품지 말라는 식의 권면을 했다(골 3:19). 여자들도 쓴 뿌리를 처리하는 것이 쉽지 않다. 남편이 일하지 않고 게으름 피우면 속이 상할 수밖에 없다. 바람을 피운 남편 때문에 가정이 풍비박산되었다면 아내가 감내해야 할 아픔은 말할 필요도 없다. 여자들이 이런 일을 용서하고 잊어버리는 것은 분명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자녀라면 주님의 명령대로 해야 한다. 『너희는 서로 친절하고 다정다감하며 서로 용서하되 하나님께서 그리스도를 위하여 너희를 용서하신 것같이 하라』(엡 4:32). 용서하고 잊어버리라! 화해하고 함께 나아가라!
쓴 뿌리는 전염성이 강하다. 『또 쓴 뿌리가 나와서 너희를 괴롭게 하거나 혹 그것 때문에 많은 사람이 더럽혀지지 않도록 하며』(히 12:15). 내 경험상 교회에서 일어나는 문제는 모두 "좌절된 야망" 때문에 발생한다. 즉 자기 마음이 상했다고 용서하지 않는 것인데, 그러면서 계속 수군거리고 투덜대며 사람들을 끌어모으는 것이다.
5. 조롱, 반대, 낙담을 이기는 법을 배우라.
개인적으로 "조롱"은 그다지 큰 문제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소싯적에 이런 말을 들은 적이 있다. "몽둥이와 돌들은 뼈를 부러뜨릴 수는 있어도, 욕은 아무리 해도 나를 해치지 못한다."
그러나 견디기 어려운 "반대"도 있다. 일전에 꽤 이름난 한 근본주의 목사가 소년원에서 내가 복음 전도 집회 여는 것을 막은 적이 있었다. 약 140명의 아이들은 "내가 그곳에서 설교할 수 있게 해줄 것"을 하루에 세 번이나 요구했다고 한다. 이 "선하고 경건한"(?) 근본주의 목사는 설교자가 나라는 사실을 알고, 자기 교회에 다니던 그 소년원 관리자에게 언질을 주어 설교하지 못하게 한 것이다. "럭크만이 아이들에게 설교하게 해서는 안 돼요! 그는 결혼을 한 번 이상 했단 말이오!" 결국 집회는 무산되었고 아이들은 영적으로 아무것도 얻지 못했다. 이처럼 실제적인 타격을 입었지만, 나는 그냥 무시했고 주님의 일을 계속해 나갔다. 그것에 대해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다면, 속상해 할 필요가 없고 다른 뭔가를 하는 편이 더 낫다.
"낙담"할 일이 생기면 책망이나 훈계를 무시하지 않고 낙담을 이겨 내는 법을 배우라. 그 낙담으로 마귀가 당신이 하는 일을 중단시키려 하는 것인지, 아니면 하나님께서 당신에게 뭔가를 가르쳐 주시거나 시련을 통해 당신의 인격에서 무언가를 바로잡아 주시려는 것인지 분별해야 한다. 후자라면 주님께서 당신에게 가르쳐 주시고자 하는 바를 배우라. 배우는 것으로 그치지 말고 적용하여 자신의 것으로 만들라. 그리고 전진하라! 시련을 당할 때 가장 힘든 부분은, 사탄이 당신을 망치려고 벌인 일인지, 하나님께서 당신에게 무언가를 경고하시거나 당신이 옳은 일을 행하는가 그렇지 않은가를 보시기 위함인지 분별하는 것이다. 주님의 징계를 가볍게 여기지 말고, 동시에 너무 낙담하여(히 12:5) 가던 길에서 발걸음을 멈추지도 말라.
6. 악을 미워하는 법을 배우라.
요즘에는 아무도 "무언가를 미워하라"고 가르치지 않는다. 그저 "사랑" 타령만 한다. 그러나 미움이 없는 사랑은 뒤틀린 감정에 불과하다. 정원을 사랑한다면 잡초를 미워해야 한다. 주님을 사랑한다면 응당 악을 미워해야 한다. 악을 미워하지 않으면 그 사랑은 비뚤어진 것이다. 『주를 두려워하는 것은 악을 미워하는 것이라. 나는 교만과 오만, 악한 행실, 완고한 입을 미워하느니라』(잠 8:13). 이 구절과 더불어 시편 97:10; 119:104, 아모스 5:15, 로마서 12:9도 꼭 읽어 보라. 그리스도인은 뭔가를 미워해야 하는데, "악"을 미워해야 하는 것이다. 우리는 흉측한 괴물 같은 죄를 미워해야 하지만 어쩔 수 없이 보게 되는 경우가 있다. 그러나 너무 자주 보다 보면 그것에 익숙해지고 참아 주며 동정하다가 결국에는 그것을 수용하고 만다.
죄는 우리 주변의 가족이나, 친구, 동네 사람, 심지어 이 나라를 망쳐 놓았다. 죄가 끼친 영향력은 실로 막대하다. 그런데도 왜 죄를 미워하지 않는 것인가? 죄를 지어 인생을 망치고 난 뒤에나 죄를 미워할 것인가! 대부분 심어서는 안 될 것들을 심어 놓고 그 뿌린 것을 거둬야 할 때에는 "흉년"이기를 바란다. 분명 수확의 시기는 어김없이 찾아온다. 밥 존스 시니어는 "젊은 시절의 방탕함은 노년에 지불해야 할 어음으로 돌아온다."고 말했다. 죄를 사랑하지 말고 미워하라! 맹독을 품은 뱀처럼 미워하라! 이는 꼭 죄짓는 사람을 미워하라는 뜻은 아니다. 그러나 성경이 말씀하는 만큼 죄를 미워하면 정욕을 통제하지 못한 채 노골적으로 죄짓는 자들과 어울려 다니지는 않을 것이다(고후 6:17, 잠 13:20). 죄인들이 "함께 가자! 같이 하자!"고 하거든, "싫다!"라고 똑 부러지게 말하라. 『내 아들아, 죄인들이 너를 유혹할지라도 동조하지 말라』(잠 1:10).
7. 혼들을 이겨오는 법을 배우라.
구령의 "기술"을 터득하라. 어떻게 하면 죄인의 관심을 유도하고 구원의 필요를 느끼게 할 수 있는지, 그리고 죄의 해결책을 제시하고 예수님을 영접하게 하는 방법, 구원받은 이후 구원의 확신을 갖게 하고 기도와 말씀으로 성장하도록 하는 방법을 배우고 익혀라. 당신은 죄인에게 무엇을 말하고 또 어떻게 구령을 시작해야 하는지 알고 있는가? 잘 모른다면, 구령하는 법을 배우기 위해 시간과 노력을 들이지 않았기 때문이며, 또 배웠다 해도 배운 것을 실행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주님께서는 "정말 아니다 싶을 정도의 사람"도 위대한 구령자로 들어 쓰셨다. 일례로 테네시 주의 "엉클 버드" 로빈슨은 술주정뱅이의 아들로 자라나 교육도 못 받았다. 혀가 짧아 말도 더듬었다. 그러나 그는 320만 km를 다니며 3만 3천 번 설교했고 10만 명의 혼들을 예수님께로 이겨왔다. 주님께서 그런 사람도 사용하셨다면 당신을 들어 쓰시지 못할 이유가 없다.
그리스도인이라면 누구나 배우고 성장해야 한다. 이상의 것들을 온전히 배운다면 그는 선한 일에 지속적으로 열매를 맺게 될 것이다. 『또한 우리에게 속한 사람들도 필요한 것들을 위해서 선한 일에 진력하는 법을 배우게 하라. 이는 그들로 열매 없는 자가 되지 않게 하려 함이라』(딛 3:14). B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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