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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썩지 않을 면류관>을 읽고 얻은 인생의 교훈들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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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대로믿는사람들 <2026년 02월호>
필자는 이 책을 읽으면서 한 사람의 인생이 일으키는 영향력에 대해 깊이 생각해 보았다. 꼭 자서전으로 기록되지 않아도, 한 사람의 인생에서 벌어지는 수많은 일들, 곧 그가 했던 말과 행동, 그리고 그가 했던 사역은 주변에 있는 사람들에게 크고 작은 영향을 끼친다. 우리 자신도 지금껏 무수한 영향들을 받으며 살아왔고, 반대로 우리 역시 타인에게 그러하다. 하지만 정작 내 삶이 누군가에게 영향을 끼치리라고 생각하며 사는 사람은 그렇게 많지 않다. 필자는 럭크만의 인생을 돌아보며, 그와 같이 선한 영향을 남기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우리가 구원받은 성도로서 해야 하는 일들은 가능한 한 선한 영향을 많이 끼치는 것이다. 이것을 성경의 표현으로는 “그리스도의 향기를 풍기는 것,” 혹은 “본을 보이는 것”이라고 할 수 있는데, 그 일들은 하나님에 대한 순종과 열정으로 이루어지게 된다. 럭크만은 바로 그러한 순종과 열정의 사람이었다. 이제 우리는 마지막 두 가지 교훈을 남겨 두고 있는데, 총 일곱 가지의 교훈이 먼저 우리에게 “선한 영향”을 끼치고, 우리 또한 사람들에게 선한 영향을 끼치는 순종과 열정의 사람으로 빚어지는 시간이 되기를 바란다.<썩지 않을 면류관>을 읽고 얻은 여섯 번째 교훈은, “구령의 열매는 눈물의 기도에서 시작된다”는 것이다. 1980년에 럭크만은 독일을 방문했고, 히틀러가 태어난 곳에 가서 전도지를 나눠 주다가 뉘른베르크의 나치당 전당대회장에 있는 연설가의 단상으로 올라갔다. 그는 히틀러가 섰던 그곳에 서서 눈앞에 펼쳐진 텅 빈 광장을 바라보았다. 히틀러는 사실 럭크만과 비슷한 면모들이 많았다. 그 역시나 “연설가”였고, “화가”였으며, “보병”이었고, 무엇보다 “구원받지 못한 죄인”이었다. 그리고 그 사실은 럭크만의 마음을 깊이 뒤흔들었다. 럭크만은 히틀러가 어린 소년이었을 때 사탄이 그를 붙잡았다고 하면서, “내가 방금까지 있었던 브래노에서 누군가가 그에게 복음 전도지를 줬다면 어땠을까?”라고 생각했다고 했다. 럭크만이 방금 전 그 자리에서 집으로 가던 학생들에게 전도지를 주었듯이 말이다.
럭크만은 비엔나의 장미정원을 거닐었는데, 당시 거의 울 것 같았다고 했다. 수많은 구원받지 못한 죄인들이 걸어 다니고 있었고, 그들을 바라보는 그의 마음은 지옥으로 달려가는 독일인들에 대한 연민으로 가득 찼던 것이다. 하지만 그가 다시 미국으로 돌아가고 나면, 그곳에 복음을 전해 줄 사람이 없었다. 럭크만은 비행기를 타고 집으로 돌아와 30분간 무릎을 꿇고 독일을 위해 울부짖었다. 하나님께서 원하신다면 교회와 학교를 동료에게 넘겨 주고 지금이라도 가겠다고 말씀드렸는데, 그때 나이가 59세였다. 하나님께서는 “안 돼.”라고 말씀하셨고, 그는 애타게 울부짖었다. “누군가를 보내 주세요! 누군가를 보내 주세요! 누구라도 보내 주세요! 그들이 지옥으로 가고 있습니다. 여기 지상에서도 지옥을 경험한 사람들입니다. 저 세상에서도 지옥으로 가게 될 겁니다! 뭐라도 해 주세요! 누군가를 보내 주세요!”(p.323) 럭크만은 자기가 직접 갈 수는 없었지만, 그 흘린 눈물에 대한 응답을 분명히 받았다. 간절히 바랐던 “누군가,” 곧 “게토, 길 리, 트로스클레어, 포트, 신드램, 애트웬거, 볼라드, 쉐라우즈, 볼릭” 등이 독일과 오스트리아에 선교를 떠났기 때문이다. 그들을 통해 성경이 보급되고 복음이 전파되기 시작했다. 드디어 구원의 역사가 일어난 것이다. 그가 눈물로 기도하지 않았다면, 그리고 그 “눈물의 힘”으로 성경을 가르치고, 복음을 전하며, 설교하는 가운데 “누군가”를 키워 내지 않았다면 가능했을까? 『눈물로 씨를 뿌리는 자들은 기쁨으로 거두리로다』(시 126:5).
언젠가 필자는 럭크만이 그랬듯 “거의 울 것 같은” 상태에 놓였던 적이 있다. 부천 지역에 약속이 있었고, 그 약속 시간이 되기까지 30분 남짓 시간이 남아 차에 있는 성경과 전도지를 들고 거리에서 복음을 전하기 시작했다. 날이 추웠는데, 날씨보다도 더 차갑게 느껴지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사람들의 “냉소”였다. 차에서 내려 가장 먼저 만난 이는 박스를 줍는 할머니였다. 마침 박스를 싣고 가다가 몇 개를 바닥에 떨어뜨려 줍고 계시기에 줍는 것을 도와드렸더니 웃으며 고마워하셨다. 그런데 복음 전도지를 건네며 복음을 전하려고 하자, 표정이 싸늘하게 변하더니 큰소리를 치기 시작했다. “내 안에도 하나님 있고, 자네 안에도 하나님 있어! 각자 하나님을 잘 믿으면 돼!” 필자는 차분하게 복음을 전하려고 했지만 손사래를 치며 같은 말을 반복하기에, 하는 수 없이 자리를 옮겨야 했다. 다음에는 고물상 일을 하는 할아버지를 만났다. 전도지를 건네자, 그는 이미 교회를 다니고 있다며 받기를 거부했다. 그래서 교회에 다니라고 드리는 것이 아니라, 구원받으라고 드리는 것이라고 하니, 앞선 할머니가 그랬듯이 표정이 싸늘하게 변하면서 벌컥 화를 내기 시작했다. “교회 다닌다고 말했잖아! 자네 무슨 이단인가?” 상황이 이래서 자리를 벗어나, 차가운 바람을 맞으며 다음 대상을 찾아 걸어가고 있었는데 마음이 굉장히 무거웠다. 그들의 반응으로 상처를 입거나 화가 난 것이 아니었다. 그들의 완고함으로 인해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들과 그곳에 거주하는 수많은 사람들이 이대로 살다가 지옥에 갈 것이라는 사실에 필자는 거의 울 것 같은 상태에서 하나님께 기도드렸다. “하나님, 이 사람들은 지옥에 갑니다. 어떻게 해야 하죠? 하나님, 이 사람들은 지옥에 갑니다. 어떻게 해야 하죠?” 약속 시간이 거의 다 되어 모임 장소로 이동하고 있을 때, 필자 쪽으로 3명의 초등학생이 자전거를 타고 오는 것이 보였다. 첫 번째 아이에게 전도지를 주고, 두 번째 아이에게도 전도지를 주었는데, 관심을 보여서 복음을 전하기 시작했다. 잠시 후에 도착한 세 번째 아이는 필자가 하는 이야기를 듣더니 갑자기 큰 소리로 비웃기 시작했다. 이를테면 이런 것이었다. “예수”라는 단어가 들리면, “예수? 푸하하하하하!!!!” “지옥”이라는 단어가 들리면, “지옥? 크크크크 푸하하하!!!” 그 아이는 있는 힘껏 크게 비웃어댔다. 하지만 그런 강력한 방해에도 불구하고, 두 번째 아이는 진지하게 필자의 말에 경청했다. 차분하게 복음을 전한 뒤, “예수 그리스도를 너의 구세주로 믿겠다고 하면 구원받을 수 있는데, 너 구원받고 싶니?”라고 물어보니, 구원받고 싶다고 했다. 그래서 그 자리에서 한 혼이 예수님을 구세주로 영접했다.
하나님께서는 모든 사람이 구원받기를 원하시고, 그리스도인들도 같은 바람을 가지고 있다. 그 일을 위해 가장 먼저 해야 하는 일은 “눈물로” 기도하는 것이다. 나와 별반 다를 바 없는 죄인들이 지옥에 간다는 사실을 직시하고 기도해야 하는 것이다. 그리고 럭크만이 그랬듯이, 복음을 전할 수 있는 “누군가”를 위해 기도해야 한다. 무엇보다 나 자신부터 “그 누군가”가 되어 복음을 전해야 한다. 그렇게 하면 하나님께서는 그분의 병에 눈물을 담으시는 가운데 적든 많든 구령의 열매를 맺게 하시는데, 결국 당신이 흘린 눈물 한 방울 한 방울이 일종의 “양분”이 되어 “누군가”가 구원받는 값진 열매를 맺게 되는 것이다. 이 나라에는, 더 나아가 독일을 비롯한 전 세계에는 여전히 복음을 들어 보지 못한 사람들이 많다. 그들은 분명 지옥에 갈 것이다. 당신은 그들을 위해 눈물을 흘리고 있는가?
<썩지 않을 면류관>을 읽고 얻은 일곱 번째 교훈은, “결국 주님을 위해 사는 삶만이 인생의 종착점에서 봤을 때 가치가 있다”는 것이다. 책 284페이지에는 인상 깊은 사진들이 등장한다. 첫 번째 사진은 1960년 브렌트침례교회의 첫 성경공부반 교실 사진이고, 두 번째는 럭크만이 42명의 졸업반 학생들과 함께 찍은 사진이다. 사진은 흑백으로 정지되어 있지만, 그 사진을 보는 내 머릿속에는 한 가지 동영상이 재생되기 시작했다. 그것은 아무도 없던 텅 빈 곳에 예수 그리스도께서 먼저 서 계셨고, 그 다음에 예수님께서 한 사람, 한 사람씩을 데려오시는 장면이었다. 먼저는 럭크만을 불러서 그 자리에 세우셨고, 그를 중심으로 성경을 배우고자 하는 사람들을 한 사람씩 불러서 세우셨으며, 그렇게 모여서 <킹제임스성경>을 믿고 신뢰하는 40명이 넘는 사람들이 세워진 것이다. 필자는 몇 분 동안 이 머릿속 “영상”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하나님께서 사역을 시작하시고 한 사람씩 불러내시지 않았다면, 사역은 결코 진전될 수가 없었을 것이다. 그리고 만일 하나님께서 부르신 한 사람, 곧 “럭크만”이 주님의 부르심을 받고 응답하지 않았다면, 그런 값진 역사는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알다시피 자서전이란 먼 미래를 내다보고 쓰는 “예언사”가 아니라, 이미 시간이 꽤 지난 뒤 과거를 돌아보며 인생의 끝자락에서 쓰는 “과거사”이다. 만일 럭크만이 자신만을 위해 살았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그랬더라면 그가 쓰는 자서전은 볼 가치가 전혀 없게 되었을 것이다. 지금껏 꽤나 많은 사람들이 자서전을 썼지만, 그중에는 하나님이나 “하나님의 책”을 위해 살아 본 사람이 거의 없다. 그들 나름대로 흔적을 남기려고 했지만, 하나님의 관점에서 의미 있는 흔적은 단 하나도 남기지 못한 것이다. 럭크만의 자서전 마지막 부분에는 그와 비슷한 인생을 살았고, 그처럼 노인이 된 애드먼드 다난트라는 성도와의 이야기가 나온다. 그는 옛 시절에 조직폭력배였지만 회심한 뒤 30년간 목회를 했다. 럭크만은 미시건으로 차를 몰던 중이었는데, “우연히” 그도 함께 가고 있었다. 당시에는 눈이 내려서 여기저기 녹지 않은 눈이 있었고, 두 사람은 회상에 잠긴 채 3km의 밤길을 같이 달렸다. 그러다가 침묵이 차 안을 휘감았고, 1.5km 정도를 더 주행하는 동안 포장도로 위의 녹은 눈을 훑고 지나가는 타이어 소리 외에는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갑자기 두 사람은 서로의 얼굴 쪽으로 고개를 돌리고는 동시에 같은 말을 했다. “형제, 자네도 알겠지만 자네와 난...” 그러다 두 사람은 웃음을 터뜨렸다. 두 사람은 서로에게 신호를 주거나 단 한 번의 상의도 하지 않고 동시에, 완전히 똑같이 말하려 하고 있었다. “형제, 자네도 알겠지만 자네와 난 최상의 삶을 살았어”(p.372). 어떤 사람에게 “최상의 삶”을 살았다고 할 수 있는 것은, 그동안 “고급 의류들”을 입어 왔고, “넓은 저택”에서 살아왔으며, 사람들의 “칭송과 명예”를 누리고, “세계 여행”을 다니며, 자녀를 “우수한 대학”에 보낸 것을 말하는 것이 결코 아니다. 나를 위해 죽으신 주님을 위해 “내 있는 힘을 다해 산 것,” 그것만이 삶의 종착점에서 돌아볼 때 최상이라고 결론지을 수 있는 생인 것이다. 당신은 주님을 위해 살아 본 경험이 있는가? 그렇다면 지금은 어떠한가? 우리 또한 언젠가 럭크만이 그랬듯이, 인생의 종착점에서 우리의 인생을 돌아보게 될 것이다. 그날 돌아봤을 때, 내가 지금껏 살아온 삶과 지금 살아가고 있는 이 삶이 과연 하나님 앞에 “가치 있는” 삶이라고 말할 수 있겠는가?
글을 마치면서 한 가지 강조하고 싶은 점은, 내가 책의 저자와 백퍼센트 동일한 삶을 살 수는 없다는 것이다. 럭크만과 우리는 모든 것이 다르다. 태어난 곳과 시대, 살아온 환경 같은 배경은 물론이고, 체격과 지적 능력, 성향처럼 타고난 조건도 다르다. 심지어 사용하는 언어와 재능, 구원받은 시기와 주변 친구들까지도 결코 같을 수 없다. 그러나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우리 또한 삶의 종착점에 이르렀을 때, 럭크만이 삶에 아무런 후회도 미련도 없이 “우리는 최상의 삶을 살았어.”라고 고백했던 것처럼 우리도 그렇게 말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 일은 그가 종착점에 이르기까지 남긴 “일곱 가지 교훈들”을 우리의 삶에 적용시켜 나갈 때 가능하다. 이 교훈을 얻은 우리 모두가 각자의 인생 종착점에 다다랐을 때, “나는 최상의 삶을 살았지. 주여, 내 잔이 넘치나이다!”라고 고백하며, 하나님께 무한한 감사와 찬송과 영광을 돌려드리는, 참으로 “행복한” 성도가 되기를 바란다. BB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