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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선지서 특강 - 호세아 (5) : 이틀 후에 회복되는 이스라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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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대로믿는사람들 <2026년 06월호>
하나님께서는 죄를 범한 이스라엘에 관해 다음과 같이 말씀하신다. 『내가 가서 내 자리로 돌아가, 그들이 그들의 범죄를 인정하고 나의 얼굴을 구할 때까지 있으리니, 그들이 고난 중에 있을 때 나를 먼저 찾으리라』(호 5:15). 사실 이스라엘 백성은 그들이 멸망하고 포로로 사로잡혀 간 이후에 자신의 범죄를 인정하고 주님의 얼굴을 구하면서 주님을 온전히 찾은 적이 없었다. 에스라와 느헤미야 시대에 유대인들이 돌아왔을 때도 주님을 찾지 않았다. 초림 당시에도 마찬가지였다. 1948년 이스라엘이 약속의 땅으로 돌아와 국가를 세웠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그들의 불순종과 반역은 오늘날까지도 지속되고 있다. 그런 모습은 “야곱의 고난의 때”라 불리는 “대환란”까지 계속될 것이다. 그렇다면 언제 그들은 자기들의 죄를 인정하고 주님께로 돌아와 주님을 찾게 되는 것인가? “이틀 후”이다. 『오라, 우리가 주께로 돌아가자. 이는 그가 찢으셨으나 우리를 낫게 하실 것이요, 그가 치셨으나 우리를 싸매어 주실 것임이라. 이틀 후에 그가 우리를 살리시며, 셋째 날에 그가 우리를 일으키시리니, 우리가 그의 목전에서 살리라』(호 6:1,2).이스라엘 백성이 주님을 찾고 주님께로 돌아오면, 치유될 수 없었고 나을 수도 없었던 상처가(호 5:13) 깨끗이 치유된다. 사자에 의해 찢겨진(호 5:14) 이스라엘이 치유되는 것이다. 이 치유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흘리신 보혈을 통한, 단순한 개별적인 영적 치유나 구원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이것은 “이스라엘”이라고 하는 “하나님께서 선택하신 백성들”의 민족적인 치유이자 민족적인 회복을 의미한다. 왜냐하면 성경은 『우리를 낫게 하실 것이요... 우리를 싸매어 주실 것임이라... 우리를 살리시며... 우리를 일으키시리니, 우리가... 살리라.』(호 6:1,2)라고 말씀하기 때문이다. 물론 이러한 민족적인 치유와 회복이 가능할 수 있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그들을 위해 받으신 고난이 있었기 때문이다. 『실로 그가 우리의 질고를 지고 우리의 슬픔을 지었는데도 우리는 그가 형벌을 받아 하나님께 맞으며 고난당한 줄로 생각하였도다. 그러나 그는 우리의 허물로 인하여 상처를 입었고, 그는 우리의 죄악으로 인하여 상하였도다. 우리의 화평을 위한 징계가 그에게 내려졌고, 그가 맞은 채찍으로 우리가 치유되었도다. 우리는 모두 양같이 길을 잃어 각자 자기의 길로 돌이켰으나 주께서는 우리 모두의 죄악을 그에게 지우셨도다』(사 53:4-6).
왕으로 통치하실 메시아께서는 영광을 받으시기에 앞서서 먼저 고난을 받으셔야 했다. 왜냐하면 인간의 뿌리 깊은 문제인 죄와 죽음의 문제를 해결하셔야 했기 때문이다. 결국 이러한 그리스도의 고난과 대속적인 죽음으로 인해 유대인들뿐 아니라 이방인들까지 영원한 생명과 구원을 얻을 수 있는 길이 열리게 되었다. 그러나 “호세아 6:1,2”은 이런 내용과는 거리가 있다. 이것은 십자가 사건을 말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교회 시대에 죄인들이 구원받는 것과도 거리가 멀다. 이것은 이스라엘이 민족적으로 치유되어 회복되고 구원받는 것을 말씀하는 내용으로, “대환란 끝”에 이스라엘이 주님께로 돌이키면 회복되는 것이다.
바로 그 “회복 시점”에 대해 선지자 “호세아”는 『이틀 후... 셋째 날』이라고 말하는데, 그때 “이스라엘”이 민족적으로 “살아나게”(부활하게) 된다. 여기에서 주의할 점은, 『셋째 날에... 살리라.』라는 말씀이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가리키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이다. 왜냐하면 본문에서 “살아나는 주체”는 “그리스도”가 아니고, “우리,” 곧 “이스라엘”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왜 “이틀 후”일까? 구약 시대에도 그들은 줄곧 하나님을 거부해 왔지만, 이스라엘 백성의 “최종적이고 총체적인 민족적 거부”는 바로 “십자가 사건”이었기 때문이다. 또한 “십자가 사건 이전”에는 하나님께서 그들을 “심판하여” 찢고 치셨을지라도, “뿌리째 말라 버린 무화과나무”가 될 만큼 완전히 저주하시지는 않았다. 언제든지 곧바로 치유되고 회복될 수 있는 여지를 남겨 두셨던 것이다. 하지만 “십자가 사건 이후”에는 그러한 여지마저 완전히 제거해 버리셨으니, 결국 이스라엘은 “뿌리째 말라 버린 무화과나무”처럼 “회생 불능 상태”에 이르게 되었다. 이러한 모습이 “에스겔 37장”에서는 “마른 뼈들”로 묘사된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뿌리째 말라 버려 아무런 소망도 없어 보이는 “무화과나무”에서 다시 푸른 잎이 나오게 하신다. 소망이 사라진 “마른 뼈들”이 『심히 큰 군대』(겔 37:10)를 이루며 살아나게 하시는 것이다. 그렇게 살아나는 시점이 바로 “이틀 후,” 즉 이스라엘 백성이 그들의 “메시아”를 십자가에 못 박은 때로부터 “이틀 후”이다.
한편 이 “이틀 후”는 『주께는 하루가 천 년 같고 천 년이 하루 같은 이 한 가지를 잊지 말라.』(벧후 3:8)라는 말씀에 따라 “2천 년 후”를 가리킨다. 곧 “십자가 사건”으로부터 “2천 년이 지난 후,” 말하자면 “셋째 날”인 “3,000년대”(천년왕국)에 “이스라엘 민족”이 회복되는 것이다. 또한 이것은 “엿새 후”인 “일곱째 날”(“아담” 이래로 “일곱 번째 천 년”)과도 밀접한 연관이 있는데, 이런 사실이 “재림의 영광”을 미리 보여 준 “변형산 사건”에 고스란히 반영되어 있다. 『엿새 후[일곱째 날]에 예수께서 베드로와 야고보와 야고보의 형제 요한을 데리고 따로 떨어져 있는 높은 산으로 올라가시어』(마 17:1). 다시 말해 인류 역사가 시작된 이래로 6천 년이 끝난 이후인 “일곱 번째 천 년”(천년왕국)에 “이스라엘 민족”은 영광스럽게 회복될 것이다.
특히 선지자 “호세아”는 이스라엘의 “회복 시점”과 관련하여 “아침”을 언급한다. 『만일 우리가 계속 주를 알고자 하면 그때 우리가 알게 되리라. 그의 나오심은 아침처럼 마련되어 있으며 그는 우리에게 비처럼 오시리니, 땅에 내리는 늦은 비와 이른 비처럼 오시리라』(호 6:3). 이 “아침”은 『의의 태양』(말 4:2)이 솟아오르는 “재림의 아침”이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아침 경점”에 재림하실 것이다. 『그러므로 깨어 있으라. 그 집주인이 언제 올는지, 저녁일는지, 밤중일는지, 닭이 울 때일는지, 아니면 아침일는지 너희가 모르기 때문이라』(막 13:35). 성경에서 “교회 시대”는 “밤”으로 묘사되고, “밤”(“열두 시간,” 요 11:9)은 “네 개의 경점,” 곧 『저녁』(18-21시, 제1경), 『밤중』(21-24시, 제2경), 『닭이 울 때』(0-3시, 제3경), 『아침』(3-6시, 제4경)으로 나뉘는데,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아침 경점”인 “제4경”에 재림하신다.
『한편 그 배는 이제 바다 한가운데 있었는데, 바람이 거슬러 불므로 파도에 시달리고 있더라. 밤 제사경에 예수께서 바다 위를 걸어서 그들에게 다가오시니』(마 14:24,25). 여기에서 바람과 파도에 시달리고 있는 제자들은 “대환란 기간”에 적그리스도에게 박해와 고통을 당하는 “유대인들”을 예표하고, 배가 떠 있는 “바다”는 “둘째 하늘”과 “셋째 하늘” 사이의 경계인 “거대한 물 층,” 즉 “깊음”을 상징한다. 말하자면 예수 그리스도께서 재림하실 때 이 “물 층”을 통과하여 내려오셔서, 고통 중에 있는 “이스라엘 백성”에게로 다가오시는 것이다. 바로 그 시점이 “네 번째 경점”으로, 『의의 태양』이 떠오르는 “아침 경점”이다. 『그러나 내 이름을 두려워하는 너희에게는 의의 태양이 그의 날개에 치유를 가지고 솟아오르리니, 그리하면 너희는 나가서 외양간의 송아지들처럼 자라리라』(말 4:2). 『의의 태양이... 치유를 가지고』 “솟아오를” 것인데, 이 “치유”는 앞서 언급한 “호세아 6:1”에서 보았듯이, “이스라엘 백성”이 낫게 되고, 싸매어지며, 상처가 치유되고, 다시 살아나는 “민족적인 회복”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이처럼 “이스라엘 민족”이 회복될 무렵, 하나님께서는 “대환란 기간”에 “두 증인”(계 11:3)인 “모세”와 “엘리야”를 보내실 것이다. 『너희는 내가 온 이스라엘을 위하여 호렙에서 규례들과 명령들로 그에게 명했던 내 종 모세의 율법을 기억하라. 보라, 내가 주의 크고 무서운 날이 오기 전에 선지자 엘리야를 너희에게 보내리니, 그가 아비들의 마음을 자식들에게로, 자식들의 마음을 그들의 아비들에게로 돌이켜, 내가 와서 땅을 저주로 치지 않게 하리라』(말 4:4-6). “이스라엘”이 멸망한 원인은 『지식의 부족』(호 4:6) 때문이었다. 따라서 “이스라엘 민족”이 회복될 무렵에는 “부족했던 지식”이 다시 채워질 것인데, 이와 연관된 사역을 “대환란 기간”에 “모세”와 “엘리야”가 수행할 것이다. 『내가 나의 두 증인에게 권세를 주리니, 그러면 그들이 굵은 베옷을 입고 일천이백육십 일을 예언하리라.”고 하더라』(계 11:3). 다시 말해 “모세”와 “엘리야”가 “셋째 하늘”의 영광스러운 “새 예루살렘”에 있는 “성경 학교”에서 2,500-3,000년 동안 공부한 내용을 유대인들에게 계시해 주고자 돌아오는 것이다.
또한 그 “회복의 날”에 “북왕국 이스라엘”과 “남왕국 유다”는 더 이상 둘이 아니라, 하나의 “통일 왕국”이 될 것이다. 『그때 유다 자손과 이스라엘 자손이 함께 모여 자기들에게 한 우두머리를 세우고 그 땅에서 올라오리니, 이는 이스르엘의 날이 클 것임이라.” 하시더라』(호 1:11). “북왕국 이스라엘”과 “남왕국 유다”는 서로 분열되어 있었으나, 두 왕국 모두 “배교했고”(호 6:4; 8:14; 10:10,11), 두 왕국 모두 “심판을 받아 멸망했다”(호 5:5,12). 따라서 두 왕국 모두 “회복될” 것인데, 곧 “하나”로 회복되는 것이다. 『너 인자야, 또 너는 막대기 하나를 취하여 그 위에 “유다와 그의 동반자 이스라엘의 자손을 위하여.”라고 쓰고 그 다음에 또 다른 막대기를 취하여 그 위에 “요셉, 즉 에프라임의 막대기와 그의 동반자 이스라엘의 온 집을 위하여.”라고 써서 그들을 서로 결합하여 한 막대기가 되게 하라. 그들이 네 손에서 하나가 되리라... 이스라엘의 산들 위에 있는 땅에서 그들을 한 민족으로 만들 것이니 한 왕이 그들 모두에게 왕이 될 것이요, 그들이 다시는 두 민족이 되지 아니할 것이며 그들이 결코 다시는 두 왕국으로 나뉘지 아니하리라』(겔 37:16,17,22). 이들이 “하나의 민족,” “하나의 왕국”으로 회복될 때, “천년왕국”에서 그들을 다스릴 “왕”이자, 인도할 “목자”는 다름 아닌 “다윗”이다. 『내 종 다윗이 그들 위에 왕이 될 것이며 그들 모두에게는 한 목자가 있으리라. 그들은 또한 나의 명령대로 행하고 나의 규례들을 준수하며 그것들을 행하리라』(겔 37:24).
소선지서 “호세아”는 전반적으로 대선지서 “이사야”와 닮은 점이 많이 있다. “호세아”와 “이사야”는 같은 시대에 부름을 받아 사역했기에, “두 선지자”가 선포한 예언의 핵심 메시지는 서로 밀접한 연관성을 보여 준다. 『오 이스라엘아, 주 너의 하나님께로 돌아오라. 이는 네가 네 죄악으로 인하여 쓰러졌음이라... 내가 그들의 타락을 치유할 것이요 내가 그들을 마음껏 사랑하리니, 이는 내 분노가 그로부터 돌이켜졌음이니라』(호 14:1,4). “책망”으로 시작했지만, “회복”으로 끝나는 책, 그것이 바로 “호세아”라는 사실을 잊지 않기를 바란다! BB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