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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거와 재림의 차이를 알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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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대로믿는사람들 <2024년 12월호>
지난 호에서는 「“휴거를 믿지 않는” 이단들」이라는 제목하에 교회의 휴거에 관해서 간략히 논해 보았다. 이번 호에서는 성도들이 쉽게 헷갈려 하는 “휴거와 재림의 차이”에 대해서 말해 보고자 한다.성경에는 “모형들”이 나온다. 주님께서 시내 산에 강림하신 사건 또한 성경의 중요한 모형 가운데 하나인데, 그 전체 말씀은 다음과 같다. 『셋째 날 아침에 천둥과 번개와 짙은 구름이 산 위에 있고 나팔 소리가 심히 크므로 진영에 있는 모든 백성이 떨더라. 모세가 하나님을 만나려고 진영에서 백성을 데리고 나오매 그들이 산기슭에 서니라. 시내 산은 온통 연기로 자욱하니 이는 주께서 불 가운데 그 위에 내려오심이라. 그 연기가 용광로의 연기처럼 솟아오르고 온 산이 크게 진동하더라. 나팔 소리가 길어지고 점점 더 커질 때 모세가 말하니 하나님께서 음성으로 대답하시더라. 주께서 시내 산 정상에 내려오셔서 주께서 모세를 산 정상으로 부르시니 모세가 올라가더라』(출 19:16-20).
하나님께서 시내 산에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나타나신 것은 “셋째 날 아침”이었다. 여기서 모형적으로 배울 수 있는 것은 첫째, 주님께서는 이 땅에 “아침에” 오실 것인데, 이 점이 말라키서에는 “의의 태양”께서 솟아오르시는 것으로 묘사된다. 태양이 떠오르는 때는 “아침”이다. 『보라, 이는 화덕같이 탈 그 날이 오기 때문이니, 교만한 자와 악을 행하는 자는 정녕 다 그루터기가 되리라. 오는 그 날이 그들을 태우리니, 뿌리나 가지도 그들에게 남기지 아니하리라. 만군의 주가 말하노라. 그러나 내 이름을 두려워하는 너희에게는 의의 태양이 그의 날개에 치유를 가지고 솟아오르리니, 그리하면 너희는 나가서 외양간의 송아지들처럼 자라리라. 또 너희는 악인들을 짓밟으리니, 이는 내가 이것을 행하는 날에 그들이 너희 발바닥 밑에 재가 될 것이기 때문이라. 만군의 주가 말하노라』(말 4:1-3). 이것은 구약에서 흔히 “주의 날”로 묘사되는 재림 때로서, 이렇게 『의의 태양』께서 “재림의 아침”에 떠오르시면(시 19:4,5) 의인들은 『태양』이신 주님과 함께 아버지의 왕국에서 해처럼 빛나게 될 것이다(마 13:43).
둘째, 주님께서 시내 산에 강림하신 날이 “셋째 날”이라는 점은, 재림이 A.D. 2000년경에 이루어질 것을 보여 준다. “주님께는 하루가 천 년 같기에”(벧후 3:8),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 시점을 기준으로 본다면, 주님께서 오신 이후 교회 시대 2,000년(“이틀”)이 지나면 그 “셋째 날”(천년왕국)이 시작될 즈음에 주님께서 “재림”하실 것이다. 따라서 출애굽기 19장의 “시내 산 강림 사건”이 보여 주는 바는,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A.D. 2000년경(“셋째 날 아침”)에 지상에 나타나실 때는 그분께서 올리브 산에 도착하시기 전에(슼 14장) “시내 산”에 먼저 오실 것이라는 사실이다. “셋째 날 아침”에 있을 주님의 재림 경로에는 다음과 같이 “시내 산”이 들어 있다. 『주께서 시내에서 오시어 세일에서 일어나시고 파란 산에서 비치시며, 그가 수만 성도들과 함께 오셨으니 그분의 오른손으로부터 그들을 위한 불 같은 율법이 나갔도다』(신 33:2).
“셋째 날 아침”의 관점으로만 보면 출애굽기 19장의 시내 산 강림 사건은 오로지 “재림”만을 모형적으로 보여 주는 것 같다. 하지만 그때 그 시내 산에서는 흥미롭게도 “재림”뿐 아니라 “교회의 휴거”도 모형적으로 계시되었다.
첫째, 시내 산에 강림하신 하나님께서는 모세를 그분께서 계신 산으로 올라오라고 하셨다. 『주께서 시내 산 정상에 내려오셔서 주께서 모세를 산 정상으로 부르시니 모세가 올라가더라』(출 19:20). 교회의 휴거 때에도 “교회의 예표”인 “사도 요한”이 휴거될 때 들었던 『이리 올라오라.』(계 4:1)라는 부르심이 있을 것인즉, 모세를 산 정상으로 “불러서 올라오게” 하신 일은 분명 “교회의 휴거”를 보여 준다.
둘째, 당시 시내 산에는 “구름”이 나타났다(『짙은 구름이 산 위에 있고』 - 출 19:16), 이 점은 교회의 휴거 때 나타나게 될 구름을 보여 준다. 『그리고 나서 살아남아 있는 우리도 공중에서 주와 만나기 위하여 그들과 함께 구름 속으로 끌려 올라가리니, 그리하여 우리가 영원히 주와 함께 있으리라』(살전 4:17).
셋째, “구름” 외에도 시내 산에서는 심히 큰 “나팔 소리”가 들렸다(『나팔 소리가 심히 크므로』 - 출 19:16). 이 역시 교회의 휴거와 관련된 구절들을 참고하면 교회가 휴거될 때 들려올 “나팔 소리”의 모형임을 알 수가 있다. 『주께서 호령과 천사장의 음성과 하나님의 나팔 소리와 함께 하늘로부터 친히 내려오시리니』(살전 4:16). 『보라, 내가 너희에게 한 가지 신비를 말하노니 우리가 다 잠잘 것이 아니요 오히려 우리가 모두 변화될 것이니 마지막 나팔 소리에 눈깜짝하는 순간에 그러하리라. 나팔 소리가 나면 죽은 자들이 썩지 아니하는 몸으로 일으켜지며 우리도 변화되리라』(고전 15:51,52).
이처럼 시내 산 강림 사건은 교회의 휴거를 분명하게 “모형적으로” 보여 준다. 하지만 사건의 전체 장면은 두렵고 떨리는 “지상 재림” 장면임을 부인할 수가 없다. 즉 “셋째 날 아침의 천둥과 번개와 짙은 구름”이라든지 “시내 산을 뒤덮은 연기가 불타는 용광로의 연기처럼 솟아오르고 온 산이 크게 진동했던 일”은 분명 재림의 두려운 모습을 보여 준 것이라 할 수 있다. 『내가 보았더니, 보라, 북쪽에서 회오리바람과 큰 구름과 불덩어리가 나오는데 그 주위에 광채가 있으며 그 가운데 불 한가운데서 나온 것은 황갈색 같더라』(겔 1:4). 『그 날은 진노의 날이요, 고난과 고통의 날이며, 황폐와 황량의 날이요, 어두움과 침침함의 날이며, 구름과 짙은 흑암의 날이요, 방벽 친 성읍들과 높은 망대들을 향한 나팔과 경고의 날이라』(슾 1:15,16).
자, 그렇다면 휴거와 재림은 같은 사건인 것일까? “시내 산 강림”이라는 한 가지 사건에서 휴거와 재림을 동시에 읽을 수 있으니 혹자는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다. 많은 성도들이 성경을 진지하게 공부하지 않은 탓에 휴거와 재림을 혼동하고 있다. 아직까지 경험해 보지 못한 두 위대한 사건들은 “이것이 저것 같고 저것이 이것 같은,” 막연하게 엄청난 일로만 여겨질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성경의 모형적인 가르침은 “교회가 대환란 전에 휴거되어야” 함을 보여 주기에, 대환란 끝에 있을 “지상 재림”과 “교회의 휴거”가 같은 사건이 아님을 깨닫게 한다. 일례로 요셉은 예수 그리스도의 모형이었다. “요셉”은 “형제들”에게 버림받은 후 “이방 여인”인 아스낫과 결혼했는데, 그가 “이방인”을 “신부”로 얻은 때는 “대기근”이 닥치기 전이었다. 이를 모형으로서 해석한다면, 초림 때 “형제들”(유대인들)에게 거부당하셨던 “요셉”(예수 그리스도)은 그 뒤 “이방 여인”(교회)을 그와 한 몸 된 신부로 맞아들였고(교회 시대), 그 뒤 “대기근”(대환란)이 닥치게 된다. 요셉과 관련된 모형론은 “교회 시대” 이후에 “대환란”이 닥침을 계시하고 있다. 그런데 예수 그리스도의 또 다른 모형인 “모세” 역시 그의 “형제들”에게 거부당한 후에 “이방인 신부”(십포라)를 맞아들였으니, 이 또한 “대환란”을 예표하는 “이집트의 열 재앙”이 닥치기 전의 일이었다. 이처럼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방인 신부”(교회)를 얻고 나서 “대환란”이 닥친다는 교리는 구약에서 모형적으로 강력히 뒷받침되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교회의 휴거”는 언제 일어나는 것일까? 대환란 전일까, 대환란을 모두 거치고 나서일까? 이 점은 교회의 휴거를 모형적으로 보여 주는 “에녹의 휴거”를 보면 알 수가 있다. 『에녹은 육십오 년을 살고 므두셀라를 낳았고 에녹은 므두셀라를 낳은 후 삼백 년을 하나님과 동행하며 아들들과 딸들을 낳았으며, 에녹의 모든 날들이 삼백육십오 년이었으며, 에녹은 하나님과 동행하다가 없어졌더라. 이는 하나님께서 그를 데려가셨음이라』(창 5:21-24). 에녹은 “대홍수”가 닥치기 전에 휴거되었다. 노아의 대홍수는 “대환란”의 모형이며, 노아와 그의 가족은 대환란을 통과하는 “환란 성도들”의 모형이다. “교회”처럼 “믿음으로 행하던”(히 11:5,6) 에녹은 대홍수가 닥치기 “전에” 휴거되었으니, “에녹의 휴거”가 “대환란 전에 있을 교회의 휴거”를 보여 주는 것이다.
여기서 우리가 깨달아야 할 것은, “구약의 모형들”은 “신약의 교리”를 뒷받침해 준다는 것이며, 그 모형들이 성경을 올바로 나누어(딤후 2:15) 가르치는 “세대주의”를 지지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지금까지 살펴본 모형들만 모아 보아도 “초림 - 교회 시대 - 교회의 휴거 - 대환란”이라는 세대주의적 구도를 읽게 한다. 여기에 “요셉”(예수 그리스도)이 “대기근”(대환란)을 계기로 그의 “형제들”(유대인)에게 모습을 나타내어 받아들여졌다는(지상 재림) 점을 더한다면, “초림 - 교회 시대 - 교회의 휴거 - 대환란 - 재림”이라는 완벽한 구도가 완성되는 것이다.
보다시피 “휴거”와 “재림”은 엄연히 시간차가 있는 서로 다른 사건들이다. 어디 시간차뿐이겠는가? 이 두 사건의 차이점은 다양하다.
“휴거” 때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자신과 한 몸 된(엡 5:25-32) “신부를 데리러”(요 14:3) 오실 것이고, 신부인 교회는 신랑을 만나기 위해 공중의 “구름 속으로” 끌려올라갈 것이다(살전 4:17). 반면 “재림”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대환란을 끝내시고 세상을 심판하시기 위해 “그분의 모든 성도들과 함께 오시는”(살전 3:13) 사건으로, 아담의 칠 대 손 에녹도 이와 관련하여 『보라, 주께서 수만 성도들과 함께 오시나니 이는 모든 사람을 심판하시고 그들 가운데 있는 경건치 않은 모든 자가 경건치 않게 행한 모든 경건치 아니한 행위와 경건치 아니한 죄인들이 주를 거슬러 말한 모든 거친 말에 대하여 정죄하시려는 것이라.』(유 1:14,15)라고 예언했다.
“휴거” 때는 공중으로 오시기 때문에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시는 “지상 경로”가 없지만, “재림” 때는 지상에 내려오시기 때문에 주님께서 오시는 “지상 경로”가 있다. 그 여정은 시내 산에서 시작하여 파란과 세일을 거쳐 왕의 대로를 지나가며, 이후 요단 강 동편에 도착하면 침례인 요한에게 침례를 받으셨던 곳을 건넌 뒤 길갈을 가로질러 예루살렘 동문 앞에 위치한 “올리브 산”에서 끝나게 것이다(신 33:2, 슼 14:4).
“휴거”는 신랑께서 자신의 “신부”만 몰래 데려가기 위해 “도둑같이” 오시는 사건이지만, “재림”은 어린양의 혼인식을 마치신 “신랑”께서 자신의 몸에 밴 그 혼인식장의 향기를 풍기시면서(시 45:8), 방금 전에 혼인한 “신부”를 “군대”로서 대동하고 지상에 함께 “공개적으로” 내려오실 사건이다. 『연기 기둥과도 같이, 몰약과 유향과 상인들의 모든 향료로 향내를 내며, 광야에서 오는 이가 누구인가?[신랑]... 사랑하는 자에게 기대어 광야에서 올라오는 이 여인은 누구인가?[신부]... 너희는 술렘 여인[신부]에게서 무엇을 보려느냐? 그것은 마치 두 군대를 합친 것 같도다』(솔 3:6; 8:5; 6:13).
다른 것은 다른 것이지 같은 것이 아니다. “휴거”와 “재림”은 분명 다른 사건이며, 무지가 혼란을 야기했을 뿐이다. 모르겠다면 공부하라! 성경은 그것을 올바로 나누어 “세대주의적”으로 공부하라고(딤후 2:15) 주어진 “하나님의 책”이다. BB