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가 진리의 말씀을 올바로 나누어 자신이 하나님 앞에 부끄럽지 않은 일꾼으로 인정받도록 공부하라(딤후 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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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조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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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대로믿는사람들 <2007년 00월호>

시대의 세태와 연관하여 어떤 부류의 오만함과 그 일에 대하여 풍자적으로 꼬집어 비꼬아서 조롱하여 지적하는 것을 영어 표현으로는 “sarcasm” 또는 “scorn” (KJV)이라고 한다. 한문 문화권에 속한 우리는 그 표현을 “조소”(嘲笑)(한글킹제임스성경)라고 한다.
성경을 보면 인간이 하나님을 조롱하는 장면이 많이 나온다(왕하 18장, 시 42,79, 115편, 마 27장). 피조물이 창조주를 조롱하는 것은 하나님을 마음에 두기를 싫어하는 멸망하는 짐승 같은 자들의 행태들이다. 인간은 그 어떠한 이유에서든지 하나님을 조롱할 근거나 권한이 없다. 그러나 역으로 결코 두고 볼 수 없는 인간의 거짓과 위선을 향한 “하나님의 조소”(嘲笑)도 나온다는 사실이다. 신구약 성경에는 하나님께서 인간의 어리석음과 교만과 불순종하는 이들에게 강하게 조롱하시며 질타하시면서 조소(嘲笑)하시는 것을 볼 수 있다. 하나님 앞에서 조소를 당하면 그 후에 반드시 심판이 따르며 결국 무사하지 않다는 것을 우리는 성경에서 수없이 보아 왔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인간을 비웃으시며 조롱하실 때는 어떠한 행위 때문일까? 성경대로 믿고 실행하는 그리스도인은 하나님의 조소에 대해서 자유로워야한다. 이에 필자는 잠시 성경에서 몇 부류의 사람들에게 강력하게 조소하시는 부분을 소개하고자 한다. 그리스도인이라고 하면서 혹 자신이 이 부류에 속하게 되면 그것은 그리스도인의 명예를 더럽히는 일이요, 수치일 것이다. 이 글이 독자의 믿음생활을 다시 한번 재점검하는 계기가 되었으면 한다.
하나님의 조소(嘲笑)의 대상 첫 번째는 “하나님을 거부하는 이 땅에 있는 모든 무신론자들”에게 향한다.
『이는 네가 네 사악함을 의지하고 말하기를 “나를 보는 자가 없다.” 하였음이라. 네 지혜와 네 지식이 너를 패역케 하였으니 네가 네 마음속에 말하기를 “나뿐이라. 나 외에 다른 이가 없도다.” 하였음이라. 그러므로 악이 네게 임하여도 너는 그것이 어디서 일어나는지 모를 것이며, 재앙이 네게 닥칠 것이나 너는 그것을 제거하지 못하겠고, 또 파멸이 네게 갑자기 임하여도 너는 그것을 알지 못하리라. 너는 네 젊은 시절부터 애썼던 네 마법들과 무수한 마술들을 가지고서, 네가 그렇게 유익을 얻을 수 있고, 네가 그렇게 이길 수 있다면 이제 저항해 보라. 너는 너의 많은 계획 가운데서 피곤하게 되었도다. 이제 점성가들과 별을 보는 자들과 매달 징조를 예언하는 자들을 일으켜서 네게 일어날 일들로부터 너를 구원하게 하라. 보라, 그들은 그루터기같이 되리니 불이 그들을 사르리라. 그들은 불꽃의 위력에서 자신들을 구해 낼 수 없으리니 덥게 하는 숯불도 없고 그 앞에 앉을 불도 없으리라. 너와 함께 수고했던 자들이 네게 이같이 되리니 곧 네가 젊을 때부터 너와 장사하던 자들이라. 그들은 각기 자기의 처소로 방황하리니 아무도 너를 구해 주지 못할 것이라』(사 47:10-15).
이 구절이야말로 인간의 마음속에 하나님 두기를 싫어하는 이 땅의 모든 무신론자들에게 향하는 강력한 하나님의 조소이다. 세상에서 가장 불쌍하고 가련한 존재가 바로 무신론자들이다. 10절에서 『...네가 네 마음속에 말하기를 “나뿐이라. 나 외에 다른 이가 없도다.”』 이는 교만한 자의 대표적 표현인데, 독자는 ‘천상천하 유아독존’(天上天下 唯我獨尊)이라는 말을 들어보았을 것이다. 얼마나 교만한 생각인가? 하나님을 대적하는 지극히 인본주의적인 말이다. 불교에서는 석가모니가 태어났을 때 처음으로 한 말이라고 한다. 우주 가운데 자기보다 더 존귀한 이는 없다는 교만한 말인 것이다. 석가가 태어나기 전(B.C. 563년) 이사야는 이미 150년 전에 무신론을 경고하고 있다.
하나님께서는 그런 무신론자들을 어떻게 보시는가? 멸망하는 짐승과 같다고 하셨다(시 49:20). 오히려 하나님께서는 『나는 주요, 아무도 다른 이가 없나니 나 외에 다른 하나님이 없느니라...』고 말씀하신다(사 45:5). 『내가 땅을 만들었고, 그 위에 사람을 창조하였느니라. 내가 내 손으로 하늘들을 펼쳤으며, 내가 그 모든 군상들에게도 명하였』다고 말씀하시고 있다(사 45:12).
열왕기상 18장에서 엘리야와 바알 선지자들과의 대결에서 바알의 이름을 부르며 날뛰는 그들에게 엘리야는 무엇이라고 조소하는가? 『큰 소리로 부르짖으라. 그는 신[god]이니라. 그가 말을 하고 있거나, 뒤로 물러나 있거나, 길을 떠났거나, 아니면 혹 잠들어서 깨워야 하리라』(왕상 18:27).
우상 숭배 국가에 내란, 전쟁, 기근, 자연재해, 각종 원인 모를 질병들이 끊이지 않는 이유를 아는가? 그들이 하나님을 멀리하고 마음에 두기를 싫어하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는 자신을 거부하는 자들에 대해서 단호하시다. 『...만일 너희가 그분을 버리면 그분께서도 너희를 버리시리라』(대하 15:2). 추상(秋霜) 같은 하나님의 진노를 당하지 않으려면 『너희 마음이 완악하여 의에서 멀리 떠난 자들아, 내게 경청하라.』(사 46:12)는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해야 할 것이다. 이 땅에 있는 모든 진화론자, 공산주의자, 무신론자, 다른 종교 신봉자들은 산들을 짓고 바람을 창조하며 인간에게 자기 생각이 무엇인가를 선포하시는 분, 바로 만군의 하나님을 만날 준비를 해야 한다(암 4:12,13). 그리스도인이 기억해야 할 것은 보이는 우상뿐만 아니라 보이지 않는 자신의 의, 고집과 완고함, 탐심, 이기심 또한 우상이라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이 세상 그 어떤 것이든 예수 그리스도보다 우선시된다면 동일하게 하나님의 조소의 대상이 될 것이다.
하나님의 조소(嘲笑)의 대상 두 번째는 “헛되이 경배하는 배교한 기독교계의 헛된 종교행위”를 향한다.
『벧엘로 와서 범죄하며 길갈에서 죄를 더하고 매일 아침 너희 희생제물을 가져오며 삼 년 후에 너희 십일조를 가져오고 누룩과 함께 감사의 희생제물을 드리며 자원하는 제물을 선포하고 공표하라. 오 너희 이스라엘 자손들아, 이것이 너희가 좋아하는 것임이라. 주 하나님이 말하노라』(암 4:4,5).
하나님의 말씀을 오해하는 자들은 하나님께서 누룩 있는 희생제물을 좋아하신다고 오해할 수 있으나 결코 하나님께서 누룩 있는 희생제물이나 범죄하고 죄를 더하는 것을 좋아하신다는 말씀이 아니다. 이스라엘은 하나님께 순종하기보다는 오히려 죄를 더 즐겼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목동이요, 뽕나무 열매 거두는 아모스를 택하여 이스라엘의 파수꾼으로 세우셨다(암 7:14). 하나님의 조소(嘲笑)는 언제나 하나님의 사람을 통해서 역설적 진리를 선포하고 질타한다. 지금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방법으로 아모스를 통해서 그들을 조롱하시며 질타하시고 계시다.
이 나라 교인들은 이 땅에 기독교가 들어온 이래 세계 유래 없는 양적 성장(?)에 고무되어 자신들이 얼마나 하나님의 일을 잘하고 있다고 떠벌리고 있는가? 그러나 실상은 전혀 하나님께서 원하시지 않는 종교 행위일 뿐이다. 하나님께 진정으로 참된 경배를 드리고 싶은가? 그렇다면 성경은 이렇게 말씀하고 있다. 『그러나 참된 경배자들이 아버지께 영과 진리로 경배드릴 때가 오나니 바로 지금이라. 이는 아버지께서 자기에게 경배드리는 그런 자들을 찾으심이니라. 하나님은 한 영이시니 그분께 경배드리는 자들은 영과 진리로 경배드려야만 하리라.”고 하시니라』(요 4:23,24). 로마카톨릭을 답습한 관상예배, 록 콘서트를 닮은 CCM 공연 예배, 헐리우드식 영화예배, 이제는 집에서도 인터넷을 통해서 예배를 드릴 수 있다고 하는 인터넷예배 등 이러한 것들도 예배인가? 거기다 헌금은 카드결제로? 지금 한국 교계는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과녁에서 한참 빗나가고 있다. 한국식 기독교는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하나님을 모독하고 있는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구속받은 성도들 없이, 바른 성경 없이는 영과 진리로 경배드리지 못한다. 하나님의 의가 없는 경배는 하나님의 조소의 대상이 됨을 알아야 한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위선과 약탈과 방탕과 불법으로 가득 찬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에게 저주하시며 그들을 질타하시는 것을 보라. 『그러므로 너희가 너희 조상들의 분량을 채우라. 너희 뱀들아, 독사들의 세대야, 어떻게 너희가 지옥의 저주에서 피할 수 있겠느냐?』(마 23:32,33) 아모스 4:4,5의 하나님의 조소는 제도화된 한국 교회에서 자신들의 배를 위해 사역하는 사역자들, 그리고 세계 유일의 한국식 기독교에 젖어 있는 구원받지 못한 교인들에게 역설적으로 질타하는 말씀임을 알아야 한다.
하나님의 조소(嘲笑)의 대상 세 번째는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을 기다리지 않는 자들”에게 향한다.
『어찌하여 이방이 분노하며, 백성들이 헛된 일을 꾀하는가? 땅의 왕들이 나서고 치리자들이 서로 의논하여 주와 그의 기름부음 받은 이를 대적하여 말하기를 “우리가 그들의 결박을 끊고 그들의 멍에를 벗어 버리자.” 하는도다. 하늘들에 앉으신 분이 웃으실 것이요, 주께서 그들을 조롱하시리로다』(시 2:1-4).
주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과 천년통치를 거부하는 이 땅의 모든 무천년주의, 후천년주의자들과 성경 변개자들, 그리고 거짓 교사들에게 향하는 하나님의 조소이다.
하나님께서는 이미 사무엘하 7:13,16, 시편 89:34-37, 누가복음 1:32,33에서 이 땅 위에 실제적으로 있을 예수 그리스도의 천년왕국(통치)을 선포하시며 다윗에게 약속하셨다. 시편 2편 말씀은 예수 그리스도의 전천년 재림을 거부하여 그리스도 없는 지상왕국을 건설하려는 이 땅의 모든 이방왕국들, 무후천년주의 신학자들에게 우리 하나님께서 심히 불쾌하여 그들에게 화내시며 조롱하시는 것이다. 말로는 주님을 섬기며, 주님의 재림을 기다린다고 하면서 실제 생활은 전혀 주님을 기다리는 삶이 아닌자들! 역시 하나님의 조소를 받아 마땅하다.
하나님으로부터 등을 돌린 배교에 대해서는 처방이 없다. 오직 심판만이 있을 뿐이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철장으로 깨뜨릴 것이며, 토기장이의 질그릇같이 산산이 부수리라.』고 하셨다(시 2:9). 『그러므로... 이제 현명해지라. 너희 땅의 재판관들아, 교훈을 받을지어다. 두려움으로 주를 섬기고 떨림으로 즐거워하라. 그 아들에게 입맞추라. 그렇지 않으면 그가 노하실 것이요, 그가 조금만 격분하셔도 너희가 그 길에서 망하리라. 그를 신뢰하는 모든 사람은 복이 있도다』(시 2:10-12).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그의 성도들과 다시 내려오시면 이스라엘은 민족적으로 회복될 것이며 그들은 제사장들의 왕국이 되며 거룩한 민족이 될 것이다(출 19:5,6). 명심하라! 이스라엘의 민족적인 회복을 믿지 않고 주님의 재림을 기다리지 않는 자들은 『그들이 얼굴을 땅에 대고 네게[이스라엘] 절하며 네 발의 먼지를 핥을 것이요, 그러면 너는 내가 주인 것을 알게』 될 것이다. 그러나 󰡔나를 기다리는 자들은 수치를 당하지 않을 것󰡕이다(사 49:23).
하나님의 조소(嘲笑)의 대상 네 번째는 “세상을 따르는 육신적인 그리스도인”에게 향한다.
『누가 너를 구별시켰느냐? 네가 가지고 있는 것 중에 받지 않은 것이 무엇이냐? 이제 네가 받았다면 어찌하여 받지 않은 것처럼 자랑하느냐? 이제 너희는 배부르고, 부유해졌으며 우리 없이도 왕들처럼 통치하였으니 내가 하나님께 바라는 것은 너희가 통치하게 되는 것이라. 우리 또한 너희와 더불어 통치하리로다. 하나님께서 우리 사도들을 죽이기로 정해 놓은 자같이 맨 마지막에 두신 것으로 내가 생각하노니 우리로 세상과 천사들과 사람들에게 구경거리가 되게 하셨음이라. 우리는 그리스도를 위하여 어리석은 자들이지만 너희는 그리스도 안에서 현명하도다. 우리는 약하지만 너희는 강하고 너희는 존귀하나 우리는 비천하도다. 지금 이 시간까지도 우리는 주리고 목마르며 헐벗고 매맞으며 정처가 없고 우리 손으로 일함으로써 수고하며 욕을 먹으면 축복하고 박해를 받아도 참으며 비방을 받으나 권면하고, 세상의 쓰레기같이 되며 지금까지 만물의 찌꺼기가 되었도다. 내가 이런 것을 쓰는 것은 너희를 부끄럽게 하려는 것이 아니요, 다만 나의 사랑하는 아들들같이 너희를 훈계하려는 것이라』(고전 4:7-14).
이 구절은 지극히 세상적이며 육신적인 그리스도인에게 향하는 사도 바울의 가장 강한 쓴소리일 것이다. 성령님께서는 사도 바울을 통해서 옛 육신적 성품으로 주님을 섬기고 있는 자들에게 빈정거리시며 조소하고 계신다. 고린도 교회는 육신적인 교회의 표상이었다. 하나님의 말씀의 기초 원리들을 무시하고 방언을 오해했으며, 우상에게 바친 제물을 어떻게 처리해야 할지 몰랐고, 근친상간을 묵인했으며, 하나님께서 세우신 영적 권위를 무시했었다. 이와 같은 육신적인 성향으로 주님을 섬기려는 사람들이 어디 A.D. 60년의 고린도 교회뿐이겠는가? 마지막 라오디케아인들의 교회 시대에 사는 모든 세상 지향적인 그리스도인에게 향하는 하나님의 강력한 질타이기도 한 것이다. 성경대로 믿는 그리스도인이 이와 같은 빈정거림과 조소의 대상이 된다면 그것은 그리스도인으로서 수치이다. 그리스도인이 기억해야 할 것은 죄인으로 태어나 거듭났더라도 여전히 육신적인 성품은 그대로 존재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끊임없이 하나님의 말씀으로 양육을 받아 성장하고 성숙하여 자기 중심적인 삶에서 하나님의 뜻을 실현하는 삶으로 변모되어야 한다. 그리스도인의 가치가 무엇인가?
먼저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물로 자신을 드려야 한다. 그리고 이 세상과 일치하지 말고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써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자신의 생애를 통해서 입증해야 한다(롬 12:1,2). 그것이 진리를 실행하는 그리스도인의 가치인 것이다. 필자는 성경대로 믿는 지역 교회에서 사역하면서 이와 같이 많은 사람들이 그리스도인의 가치를 실현하지 못하고 고린도전서 4장에 나오는 하나님의 조소의 대상이 되는 이유를 생각해 보았다. 무엇 때문에 그리스도인이 육신적인 성품에서 영적인 그리스도인으로 변모하지 못하는 것일까? 아마도 해답은 디모데후서 3:1-5에서 찾을 수 있을 것이다. 『또 이것을 알라. 마지막 날들에 아주 어려운 때가 오리라. 사람들이 자기를 사랑하고 돈을 사랑하며, 자긍하고 교만하며, 하나님을 모독하고 부모에게 불순종하며, 감사하지 아니하고 거룩하지 아니하며 무정하고, 화해하지 아니하며, 모함하고 절제하지 못하며, 사납고, 선한 것을 좋아하지 아니하며 배반하고 분별이 없으며, 자만하고 쾌락을 사랑하는 것이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보다 더하며 경건의 모양은 있으나 경건의 능력은 부인하리니, 이런 자들에게서 돌아서라』(딤후 3:1-5).
그리스도인일지라도 예수 그리스도를 첫 번째로 사랑하지 않고 자신을 더 사랑할 수 있다. 이 땅 위에는 사도 바울이 당하는 고난과 역경 등이 자신에게 미치는 것을 싫어하는 그리스도인이 있다. 헌신해서 자신의 생애를 주님께 드리지 못하는 그리스도인이 있다.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로 구원받은 기쁨과 감격은 잠시 잠깐뿐 지옥의 형벌에서 구원받은 것에 대해 감사하지 못하고 오히려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보다 쾌락을 사랑하는 것을 더 즐겨 행하는 그리스도인이 있다. 명백한 하나님의 조소의 대상임을 알아야 한다.
하나님께서는 자비로우시고 사랑이 풍성한 분이시다. 죄에서 돌이키는 자에게 있어서는 그 죄까지도 기억하지 않으시는 분이시다. 그러나 하나님의 오래 참으심과 사랑을 무시하며 자신의 뜻대로 살고자 하는 인간에게는 전혀 가치를 두지 않으신다(사 1:18-20).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로 구원받은 그리스도인은 늘 자신의 섬김을 점검해야 한다. 하나님의 그 어떤 조소에서도 예외이어야 한다. 우리의 섬김은 형식이 아닌 늘 진지한 마음 자세에서 비롯되어야 할 것이다. 이 글을 읽는 독자들은 하나님의 조소(嘲笑)에서 제외되기를 바란다. B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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