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가 진리의 말씀을 올바로 나누어 자신이 하나님 앞에 부끄럽지 않은 일꾼으로 인정받도록 공부하라(딤후 2:15).
설교자들에게 고함 분류

설교자에게 적합한 “정신”과 “교육”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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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대로믿는사람들 <2025년 07월호>

설교자는 교육을 적합하게 받아야 한다. 회심 당시에는 충분하게 교육받지 못했더라도 수치스러운 일이 아니다. 다른 이들처럼 교육 기회나 혜택을 받지 못한 사람은 많다. 하지만 고의로 고집스럽게 그 상태에 머물고자 한다면 용서받지 못한다. [본 글에서는 지난 호의 “3. 교육의 필요성”에 이어 “4. 지식이 주는 이점”과 “5. 지식의 공급”에 대해 다룬다.]

4.
지식이 주는 이점

설교자가 무엇인가로 “복되신 하나님의 영광스러운 복음”(딤전 1:11)을 효과적으로 선포하는 일에 더 잘 갖춰진다면, 그것은 가장 진지하게 고려할 가치가 있는 대상이다. 스펄전이 말했다. “내가 하나님을 위해 양뿔 나팔이 될 수 있다면 좋은 일이다. 하지만 은 나팔이 될 수 있다면 훨씬 낫다.” 영적인 견지에서 여타의 요소가 동등하다면, 교육받은 설교자가 그렇지 않은 설교자보다 확실히 유리하다. 내용을 전달하는 단어들을 정확하게 사용하고 발음할 뿐만 아니라 문법 지식과 구사력도 더욱 뛰어나서다. 또 넓은 범위의 일반 지식을 가진 터라 그 축적된 지식 모두가 의도한 요점들을 자료를 써서 보여 주고 이해시키는 데 크게 쓸모가 있다. 대학자라고 다 사탄의 편에 선 것은 아니기에 하나님께 감사드린다. 모세는 뛰어난 지성인이었다. 그는 『이집트인들의 모든 지혜를 배워 말과 행위에』 능했다(행 7:22). 하나님 편에 서겠다는 위대한 결심을 한 뒤 이집트의 보화와 낙을 저버리자, 하나님께서 그를 이스라엘의 지도자로 강력하게 사용하셨고, 그에게 영감을 주셔서 성경의 첫 다섯 권을 쓰게 하셨다. 사도 바울도 비슷한 부류에 속한다. 그는 당대에 최고로 출중한 스승이었던 가말리엘 아래서 자랐고 월등한 교육을 받았다. 그러다가 그리스도를 알게 되면서 기쁘게, 남김없이 자신과 자기 소유를 주님께서 원하는 대로 쓰시도록 드렸다. 그 결과 성령의 영감으로, 그의 펜을 통해 신약성경의 상당 부분이 우리에게 전해졌다.

높은 수준의 지식에 높은 수준의 영성이 합쳐져 존경받게 된 인물을 당신의 책장에서 찾을 수 있는지 보라. 그 하나님의 사람들이 지금은 주님과 있더라도 그들의 글은 지상에 남아 있는 하나님의 사람들을 여전히 세워 주어 복이 된다.

요즘의 청중은 전 세대보다 평균적으로 더 교육을 받는다. 농장에서 일하며 시골 학교에 다니는 학생도 도시 학생과 같은 교육 혜택을 받는다. 또한 라디오의 보급이 크게 기여한 덕에 40년 전보다 훨씬 안목을 갖춘 청중이 만들어졌다. 라디오 프로그램 전반에서 좋은 우리말을 명확하게 말하고 똑바로 발음하기 때문이다. 세상에서 제일 위대하고 웅장한 메시지를 전하는 복음 전파자가 기쁜 소식을 전할 때 훌륭하고 강력한 우리말을 명확하게 말하고 똑바로 발음하기를 기대하는 것이 과도한 바람은 아니라 여겨진다.

5.
지식의 공급

하나님께서는 설교자가 교육을 받는 데 무엇이 필요한지 아시고 지금까지 그 필요를 채워 주셨다. 학생 편에서는 주님께서 주시는 것을 잘 이용하고 부지런히 적용해서 자기 것으로 삼으면 된다. 음식이 제공되는 일과 그 음식을 자신을 위해 쓰는 일은 별개다. 풍성한 음식을 두고도 굶어 죽을 수 있는데, 받은 음식을 먹지 못하면 그렇게 된다. 이제 설교자에게 공부하라고 넉넉하게 주신 것들을 살펴보자.

1) 성경
설교자는 배움을 향상하는 데 자료가 부족할 일이 없다. 성경이 맨 먼저이고 제일 중요하다. 사실 성경을 공부하는 것 그 자체가 훌륭한 방법이다. 성경 없이는 누구도 교육을 완성하지 못한다. 성경은 문학으로만 봐도 어느 것에도 뒤지지 않는다. 맥라건이 말했다. “성경에는 건설적이고 좋은 작문 형식이 전부 실려 있다. 역사, 예언, 시, 비유, 상징적인 표현, 현명한 해석, 문자 그대로의 서술, 원칙, 본보기, 잠언, 논설, 서신, 설교, 기도 등, 요약하자면 논리적인 형태의 글이 모두 나온다.” 성경은 그 자체로 도서관이고, 당연히 설교자가 늘 곁에 둬야 하는 동반자이자, 무엇이든 물으면 그 안에 답을 다 가진 존재이다. 세상에는 조금이라도 성경과 견줄 만한 책이 없다. 성경은 세상에 나온 책을 하나같이 아예 무의미하게 만들어 버린다. 설교자는 스스로를 성경에 흠뻑 적셔야 한다. 그러려면 읽고 또 읽는 수밖에 없다. 그러면 성경이 설교자의 본질로 자리 잡아서 생각, 말, 행동에 영향을 미치고 통제한다. 설교자는 성경의 사람이어야 하고 성경의 내용을 꿰뚫어야 한다. 성경을 자유자재로 인용할 줄 알아서 그 아름다운 표현을 자기 것으로 삼아야 한다.

2) 장서
현 시대의 그리스도인은 다윗처럼 말할 수 있어야 한다. 『내게 떨어진 경계는 쾌적한 곳이니 정녕, 나는 훌륭한 유업을 가졌나이다』(시 16:6). 그리스도와 성도들을 섬기는 일에 걸출한 능력과 방대한 성경 지식을 쏟은 연구가들에게 우리가 얼마나 막대한 빚을 졌는지 아는가? 그들이 지금 우리가 가진 소중한 진리의 유산을 책의 형태로 남겼는데, 우리가 거기서 낱낱이 유익을 취한다면 잘하는 일이다. 다음 구절에서 그들의 희생적인 노고에 대해 참되게 말씀하신다. 『일은 다른 사람들이 하였고 너희는 그들의 수고에 참여하였느니라』(요 4:38).

책을 경시하지 말라. 그러면 하나님께서 주신 것을 경시하는 셈이 된다. 교사가 사역을 말로 하든 글로 하든, 그는 교회가 세움을 입도록 하나님께서 주신 선물이다. 성경을 건전하게 가르치는 교사들이 쓴 책을 읽지 않는 어리석은 자는 같은 맥락에서 그들의 강연을 들으러 갈 리도 없다! 세움을 입으라는 특별한 목적으로 자기에게 그런 자료와 기회를 주신 하나님께 그 같은 모습으로 이의를 제기하는 것이다. 에베소서 4:11-16을 읽어 보라. 『그가 어떤 사람들은 사도로, 어떤 사람들은 선지자로, 어떤 사람들은 복음 전도자로, 어떤 사람들은 목사와 교사로 주셨으니 이는 성도들을 온전케 하며 섬기는 일을 하게 하고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게 하여 우리 모두가 믿음의 하나 됨과 하나님의 아들을 아는 지식의 하나 됨에 도달하게 하고 온전한 사람이 되어 그리스도의 충만하심의 장성한 분량에까지 이르게 하려 하심이라. 그리하여 우리가 이제부터는 더 이상 어린아이가 아니요, 사람들의 속임수와 교활한 술책으로 그들이 속이려고 숨어서 기다리는 온갖 교리의 풍조에 밀려 이리저리 다니지 아니하고 오직 사랑 안에서 진리를 말하며 우리가 모든 일에 성장하여 그에게 이르리니 그는 머리시며 곧 그리스도시니라. 그로부터 온몸이 각 부분의 분량 안에서의 효과적인 역사를 따라 각 마디를 통하여 공급을 받아 알맞게 결합되고 체격이 형성되어 몸을 성장시키며 사랑 안에서 몸 자체를 세워 나가느니라.』

사역에서 말로 전달하는 방식과 글로 전달하는 방식의 유일한 차이는 후자가 많은 유익을 주는 데 더욱 유리하다는 점이다. 책을 펴내고자 글쓰기에 매진하다 보면 자신이 의미한 바에 조금도 오해의 소지가 없도록 표현에 훨씬 주의를 기울인다. 그렇게 집필된 양서는 부지런히 찾는 사람의 발에 보물과 같은 지식을 쏟아 놓을 기회만을 기다린다. 잠언 2:1-12과 3:13-26을 읽어 보라. 독서에서 성경이 늘 우선해야 마땅하고 그 무엇에게도 밀려나서는 안 되지만, 이런 책들도 아주 가치가 높은 부가물이자 영적으로 유익이 크다.

장서란 당연히 설교자의 소유로 서가에 꽂힌 권수를 뜻하지 않고, 직접 읽어서 정말 자기 것으로 만든 책만 해당한다. 그런 의미에서 양서가 빼곡한 책장 상당수가 실상은 주인의 소유물이 되지 못한 채 꽂혀만 있다! 좋은 책은 신경을 많이 써서 구입해야 하며, 책을 선정할 때 경험이 많은 그리스도인에게 조언을 구해야 한다. 들인 비용은 말할 것도 없고 쓸모 있는 공간까지 차지해 버리는 무익한 책 다량보다 양서 몇 권을 갖는 편이 월등히 낫다. 나중에 여러 쪽을 할애해서 설교자의 책꽂이에 적합한 권장 도서 목록을 제시하려고 한다.
설교자는 역사, 시, 고전을 포함해 세속 문학 중 손꼽히는 책도 제법 폭넓게 읽어야 한다. 그리하여 시야를 넓히고 어휘를 늘리며 훌륭한 우리말에 익숙해지면 자기 생각을 더 잘 표현하게 된다. 독서에 활용하면 좋았을 것을, 24시간 중 쓸데없이 낭비하는 시간이 얼마나 많은지 따져 본다면 깜짝 놀랄 것이다. 어디를 가든 늘 책 한 권을 지녀서 틈틈이 읽는 것이 좋다.

3) 통신 강좌
통신 강좌가 아주 많이 개설돼 있고, 특정하게 필요한 부분을 채워 줄 만한 기라성 같은 과목들이 설교자 앞에 펼쳐져 있다. 우리말, 대중 앞에서 말하기, 신문방송학 등의 과정이 설교자가 복음을 전하거나 성경을 가르치기에 더욱 적합하도록 도울 것이며, 이것은 설교자에게 작은 문제가 아니다.

4) 글쓰기
설교자에게 가능한 한 글을 많이 써 보라고 조언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글쓰기는 생각을 명료하게, 또 표현을 쉽게 만드는 데 상당한 보탬이 된다. 부수적으로는 문법 오류 수정에도 큰 역할을 한다. 글쓰기에 기울이는 바로 그 노력이 생각을 훈련하는 탁월한 방법이 된다. 이는 글쓰기가 필자 자신이 의도한 바를 명확하면서도 간명하게 말하도록 몰아붙이기 때문이다. 설교자가 말하고자 하는 내용을 써 본다면 흙탕 같은 생각과 애매한 표현을 피할 텐데, 안타깝게도 피하지 못하고 만다!

5) 비평
설교자는 주제, 표현, 발음, 문법, 몸짓, 버릇 등 자기가 메시지를 전할 때 효과를 해치는 요인에 관해 비평해 주기를 다른 사람에게 청해야 하고, 그런 평가를 반겨야 한다. 나중에 이 문제에 대해 충분히 다루겠다. 제프 D. 데이는 이 부분을 두고서 “설교하기에 참으로 노력을 기울인다는 말은 끈질기게, 주의를 기울여, 기도하면서 설교를 준비한다는 뜻으로, 여기에는 세부 내용, 교리, 설교학적인 순서, 힘찬 우리말, 정확한 문법, 바르고 또렷한 발음, 마음을 끄는 전달, 조절된 발성, 적절한 몸짓이 포함된다.”라고 했다. 이 모두가 힘든 일인 것처럼 보이고 실제로 대부분이 그렇지만, 충분히 그럴 가치가 있으니, 그 이유는 그것을 “회계할 날”이 다가오기 때문이다!(골 3:24)

우리가 그렇게 되기를! 말하자면 “위로부터 오는 지혜”(약 1:5-7; 3:17)를 위해 기도할 뿐만 아니라, 그 지혜를 활용하는 능력을 기르는 일과 관련된 기회를 전부 사용해서, 우리가 『그리스도를 대신한 대사들』(고후 5:20)로서 더 알맞게 구비되고, 아울러 복되신 주인께 『잘하였도다. 착하고 신실한 종아.』(마 25:21)라는 칭찬을 듣기를 바라는 것이다.
필자는 책의 첫머리에서 지금까지 설교자의 자격이라는 주제로 상당한 지면을 사용했다. 설교자와 그의 설교를 떼서 생각할 수 없다는 아주 합당한 이유에서이다. 『네 자신과 교리에 주의』(딤전 4:16)하라고 사도 바울을 통해 주신 하나님의 명령을 언제나 기억하기 바란다. B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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