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자들에게 고함 분류
설교자가 사랑해야 할 대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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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대로믿는사람들 <2024년 07월호>
1. 설교자는 주 예수를 사랑해야 한다.1) 그리스도를 사랑하기에 섬겨야 한다.
사도 바울은 다음과 같이 기록했다. 『그리스도의 사랑이 우리를 강권하시느니라. 이는 한 사람이 모든 사람을 위하여 죽으면 모든 사람이 죽은 것이라고 우리가 판단하기 때문이라. 그가 모든 사람을 위하여 죽으신 것은 산 자들이 이제부터는 더 이상 자신들을 위하여 살지 않고 자기들을 위하여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신 그분을 위하여 살게 하려는 것이라』(고후 5:14,15). 설교하는 일에 책임감이 필요하지만 그것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그리스도를 사랑해서 전하는 설교만이 가치가 있으므로 그리스도께 마음을 다 드려야 한다.
성경에는 “그리스도의 사랑”이라는 표현이 세 번 나온다. 에베소서 3:19은 그 사랑의 정도가 계속 커지며 그만큼의 분량을 우리가 반드시 알아야 한다고 말씀한다. 따라서 그것은 최고의 연구 주제가 되어야 마땅하다. 고린도후서 5:14,15은 그 사랑이 주님을 섬기는 필수 동기로 묘사된다. 로마서 8:35-39은 보이는 것이든 보이지 않는 것이든 어떤 힘으로도 우리를 그 사랑에서 떼어 놓지 못한다고 말씀한다. 인생의 우여곡절 가운데 성도를 지탱하는 힘이 바로 그 사랑인 것이다.
2) 그리스도께서 모범을 보이셨다.
하나님의 아들께서 선포하셨다. 『그러나 내가 아버지를 사랑하는 것과 아버지께서 내게 명령하신 대로 내가 행하는 것을, 세상으로 알게 하려는 것이라』(요 14:31). 주님께서는 몸을 입으시기 훨씬 전에 다윗의 입을 통해서도 이렇게 말씀하셨다. 『주께서는 희생제와 예물을 바라지 않으시고... 그때 내가 말씀드리기를 “보소서, 내가 왔나이다. 나에 관하여 기록한 것이 두루마리책에 있나이다. 오 나의 하나님이여, 내가 주의 뜻 행하기를 기뻐하오니 정녕, 주의 법이 나의 마음속에 있나이다.”라고 하였나이다』(시 40:6-8, cf. 히 10:5-10).
그리스도께서는 아버지를 사랑하셨기에 아버지의 뜻과 말씀에 기꺼이 복종하셔서 이 땅에 내려오셨다. 그 사랑이 겟세마네까지 이끌자 거기서 “내 뜻대로 하지 마옵시고 아버지의 뜻대로 하옵소서.”라고 기도하셨다(눅 22:42). 또 그 사랑이 갑바다로 인도했을 때는 치는 자들에게 등을, 머리카락을 뽑는 자들에게 뺨을 맡기셨다(사 50:6). 이어서 골고다로 끌려가시자 하나님께서 우리 모두의 죄악을 주님 자신께 지우시도록 내어드렸다(사 53:6). 그리고 우리 죄에 쏟아지는 거룩하신 하나님의 심판을 홀로 십자가에서 전부 받으셨고, 영원한 구속을 확정하시고자 죽으셨다. 주님께서는 우리에게 한 본을 남겨 놓으셨으며, 다른 모든 것에서와 마찬가지로 강권하는 사랑에 있어서도 최고의 귀감이 되신다(벧전 2:21).
3) 제자들에게 위임하셨다.
강권하는 그리스도의 사랑은 주님께서 부활하신 후 베드로에게 명령하실 때도 강조되었다. 주님은 갈릴리 호숫가에서, 기이하게 잡힌 물고기 더미 곁에서 베드로에게 물으셨다. 『요나의 아들 시몬아, 네가 이 사람들보다 나를 더 사랑하느냐?』 베드로의 대답에 주목해 보라. 『주여, 그러하옵니다. 주께서는 내가 주를 사랑하는 줄 아시나이다.』 주님께서는 주님을 사랑한다는 베드로의 고백에 따라 『내 어린양들을 먹이라.』라고 대답하셨고, 그 과정이 두 번 더 반복되었다. 언제나 그리스도를 사랑함을 섬김의 원동력으로 삼아야 한다는 사실을 반드시 인식시키시려는 듯이 말이다(요 21:1-19).
당시의 교훈을 마음에 깊이 새긴 베드로는 그의 서신서에 이렇게 기록했다. 『너희가 그[예수 그리스도]를 보지 못하였으나 사랑하며, 지금도 그를 보지 못하나 믿고 있으며, 또 말할 수 없이 영광으로 가득 찬 기쁨으로 즐거워하나니』(벧전 1:8). 요한도 성령님의 인도하심으로 다음과 같이 기록했다. 『우리가 그분을 사랑하는 것은 그분께서 먼저 우리를 사랑하셨음이라』(요일 4:19). 사도 바울은 그 복된 사실로 인해 기뻐했다. 『우리에게 주신 성령에 의하여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 마음속에 부어졌기 때문이라』(롬 5:5). 그리스도에 관해 설교하는 일에는 그분을 사랑함이 더없이 중요하기 때문에 설교자는 다음과 같이 기도하는 것이 마땅하다.
주님 더욱 사랑하기를, 주님 더욱 사랑하기를
무릎 꿇고 드리는 기도를 들으소서.
마음 다해 간구하오니
주님 더욱 사랑하기를, 주님 더욱 사랑하기를!
2. 설교자는 혼을 사랑해야 한다.
1) 청중은 사랑하지 않으면서 설교하기만 즐길 수 있다.
변호사는 의뢰인을 사랑하지 않고도 자기 능력을 얼마든지 개발할 수 있다. 의사는 환자를 사랑하지 않아도 승승장구할 수 있다. 사업가는 고객 사랑 없이도 번영의 정상에 오를 수 있다. 하지만 설교자는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을 듣는, 구원받지 못한 혼을 깊이 사랑하지 않고는 그리스도의 참된 일꾼이 될 수 없다.
달변으로 좌중을 흔들어 놓는 일은 흥분되는 경험이겠으나, 거기에 혼을 사랑함이 결여되어 있다면 쉽게 덫이 된다. 한 설교자가 보나르 박사에게 “저는 설교하기를 정말 좋아합니다.”라고 하자 박사가 되물었다. “설교를 듣는 청중은요?” 설교하는 일이 설교자에게 주는 일종의 명성은 육신에게 매력적이다. 이 때문에 세상의 관심과 이목을 사랑하고 칭찬 듣기와 인기 끌기를 좋아하던 수많은 설교자들이 망가졌다. 교만으로 높아져서 마귀의 정죄함에 빠진 것이다(딤전 3:6). 한 잡지에서 고른 다음의 이야기는 설교자 모두가 취약하고 감지하기 어려운 유혹의 위협을 잘 보여 준다. 제목은 “어느 일꾼이 꾼 꿈”이다.
「나는 몹시 힘든 일을 오랫동안 해 왔다. 그간 많은 이들이 그리스도를 찾았고 또 그분을 만났다. 나는 일을 하며 기뻤다. 형제들은 한마음이었고 내 설교와 권면으로 청중이 분명히 변하고 있었으며 교회는 붐볐다. 그날도 일로 녹초가 된 채 안락의자에 앉아 있다가 과로로 지쳐서 즉시 반 건망증 비슷한 상태에 빠져 버렸다. 갑자기 한 낯선 이가 노크도 내 허락도 없이 방으로 들어왔다. 계량 도구, 화학 물질, 기구를 들고 있던 터라 그의 모습은 이상했다. 그가 내게 다가오더니 손을 내밀며 “열정은 어떠세요?”라고 물었다. 내 건강에 관해 물으리라고 예상했는데, 그것을 묻다니 기분이 좋아졌다. 내 열정에는 꽤 흡족했기 때문이다. 결과 값을 알고 나면 그도 미소를 지으리라 의심치 않았다.
곧 물리량이 필요하겠다고 판단한 나는 가슴에 손을 얹어 열정을 꺼내 그 낯선 이에게 보이며 검사하게 했다. 건네받은 그는 저울에 올려놓고 꼼꼼하게 무게를 쟀다. “100파운드군!”이라는 소리가 들렸다. 나는 만족에 겨워서 흘러나오려는 감탄사를 간신히 참았다. 하지만 그가 무게를 기록하며 보인 진지한 표정에서 최종 결과가 나오지 않았으며 조사를 계속하고자 함을 곧바로 알아챘다. 그는 덩어리를 원자 수준으로 부숴서 도가니에 넣은 다음 도가니를 불에 넣었다. 덩어리가 녹자 꺼내서 식혔더니 여러 층을 이룬 상태로 굳어 있었다. 망치로 층을 분리한 뒤 각각을 검사하고 무게도 재면서 과정 전부를 상세하게 기록했다. 검사가 끝나자 그는 슬픔과 동정이 섞인 표정으로 내게 결과지를 보이며 “하나님께서 당신을 구해 주시길!”이라는 말만 남기고 방을 떠났다. 결과지에는 이렇게 쓰여 있었다.
영광의 면류관 후보인 주니어스의 열정 분석표
무게 : 100파운드
분석 결과 아래와 같이 판명됨.
편견 ‧ ‧ ‧ ‧ ‧ ‧ ‧ ‧ ‧ ‧ ‧ ‧ ‧ ‧ ‧ ‧ 10퍼센트
개인적 야망 ‧ ‧ ‧ ‧ ‧ ‧ ‧ ‧ ‧ ‧ ‧ ‧ 23퍼센트 나무
칭찬을 사랑함 ‧ ‧ ‧ ‧ ‧ ‧ ‧ ‧ ‧ ‧ ‧ 19퍼센트 짚
교단을 자부함 ‧ ‧ ‧ ‧ ‧ ‧ ‧ ‧ ‧ ‧ ‧ 15퍼센트 그루터기
은사를 자부함 ‧ ‧ ‧ ‧ ‧ ‧ ‧ ‧ ‧ ‧ ‧ 14퍼센트
권위를 사랑함 ‧ ‧ ‧ ‧ ‧ ‧ ‧ ‧ ‧ ‧ ‧ 12퍼센트
하나님을 향한 사랑 ‧ ‧ ‧ ‧ ‧ ‧ ‧ ‧ ‧ 4퍼센트 순수한
사람을 향한 사랑 ‧ ‧ ‧ ‧ ‧ ‧ ‧ ‧ ‧ ‧ 3퍼센트 열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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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퍼센트
낯선 이가 보인 특이한 태도에, 또 그가 떠나면서 지은 낯빛과 남긴 말에 마음이 괴로웠다. 무엇보다 결과지의 수치를 보자마자 마음이 납덩이처럼 가라앉고 말았다. 나는 속으로 기록이 정확한지에 의문을 내놓느라 바빴다. 그러다 복도에 잠시 멈춰 있던 그의 한숨 소리를 듣고는 깜짝 놀라서 정직한 자세로 바꿨다. 나는 “주님 저를 구해 주세요!”라고 외친 뒤, 손에 든 결과지를 보면서 무릎을 꿇었다. 그러자 그 종이가 거울로 변하더니 내 마음이 그곳에 반사되었다. 기록대로였다! 나는 실체를 보았고, 느꼈고, 자백했고, 개탄했다. 눈물을 쏟으며 나 자신에게서 나를 구해 주시기를 하나님께 간청했다. 그러다 비통에 잠긴 큰 울음소리에 꿈에서 깨어났다.
전에는 지옥에서 구해 주시기를 기도했는데, 이번에는 헤아릴 수 없이 더 열렬하게, 또 참담한 심정으로 나 스스로에게서 구해 주시기를 기도드렸다. 판단하고, 자백하고, 수치스러운 일에서 돌이키자 비로소 쉼이 찾아왔고 주님께서 회복시켜 주시는 은혜를 누렸다. 순례자의 고된 삶이 끝나면 하늘에 계신 화학자의 발 앞에 무릎을 꿇고 이 계시를 보여 주심에 찬양을 돌리리라.」
그리스도의 심판석에서 우리 열정이 분석될 때까지 기다리지 말자. 『만일 우리가 우리 자신을 판단한다면 판단받지 않으리라』(고전 11:31, cf. 고전 3:10-15, 롬 14:10). 성경의 경고는 이렇다. 『각 사람은 자신의 일을 살피라』(갈 6:4).
2) 그리스도께서 혼을 향해 품으신 열정을 숙고하라.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서 사신 하나님의 종으로서의 인생은 혼을 사랑함이 무슨 의미인지를 잘 보여 준다. 주님의 사역을 간단하게 기록한 사복음서 전반에서 주님의 동정이 자애로우심으로, 세심하게 배려하심으로, 다정하심으로, 사랑하심으로 명확하게 나타난다. 여러 차례 “가엾게 여기시다”가 나오는데 모두 표시해 두면 유익하다. 주님께서는 직접 찾아서 구원하고자 하셨던 잃어버린 죄인들을 향해서 사랑의 마음을 보이셨다(눅 19:10).
주님께서는 어둠 속에 있던 눈먼 자들(마 20:34)과, 불결함 속에 있던 문둥병자들(막 1:40), 병약함 속에 있던 자들(마 14:14), 형편이 어려웠던 배고픈 자들(마 15:32), 고독함 속에 있던 외로운 자들(막 6:34), 슬픔 속에 있던 유가족들(눅 7:13)을 동정하셨다. 동정은 “다른 사람의 마음의 고통을 느끼는 것”이다. 사랑은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치르는 희생으로 늘 측정된다.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사랑하셔서 교회를 위하여 자신을 주신 것같이 하라』(엡 5:25). 혼을 정말로 사랑하는 설교자는 예수 그리스도께로 죄인들을 이겨오는 일에 자신을 아낌없이 전폭적으로 드린다.
고린도전서 13장에 사랑의 탁월함을 주제로 한 바울의 시가 나오며 거기서 알게 되는 점은 다음과 같다. 즉 사랑은 말하는 것 이상이다(1절). 가진 것 이상이다(2절). 줄 수 있는 것 이상이다(3절). 사랑이 없이는 다른 은사 전부가 쓸모없는 상태보다 더 못하게 된다. 정말이지 영적으로 위협을 가하는 존재로 변질되는 것이다. 하지만 이 사랑을 부드럽고 달콤하며 느글느글한 감상과 혼동해서는 안 된다. 사랑은 꾸짖고 징계하고 경고한다. 고린도 성도들을 향한 바울의 사랑이 서신을 그렇게 쓰도록 이끌었다. 신실하게 그들의 결점을 드러내고 모순된 부분을 엄하게 힐책하다 보니 다음처럼 말할 정도였다. 『내가 너희를 더 많이 사랑할수록 나는 사랑을 덜 받지만』(고후 12:15).
3) 혼의 가치를 제대로 평가해야 한다.
우리는 항상 사람을 혼을 가진 몸이 아니라 몸을 가진 혼으로 봐야 한다. 그리스도의 말씀이 우리 마음을 사로잡아야 한다. 『사람이 온 세상을 얻고도 자신의 혼을 잃는다면 무슨 유익이 있겠느냐?』(막 8:36) 그 무엇보다 이 말씀을 막대한 혼의 가치와 함께 마음에 깊이 새겨야 한다. 누군가가 말했다. “세상에서 가장 대단한 존재는 사람이다. 하지만 사람에게서 혼을 빼면 조금도 대단하지 않다.” 대속을 이루시고자 그리스도께서 보혈을 흘려 지불하신 값으로 혼의 가치를 매겨야 한다. 은행 잔고의 규모, 세상에서 얻은 지위, 혈연, 교육 수준, 차림새, 피부색, 인종, 언어로가 아니라, 그리스도께서 죽으신 대상으로 사람의 가치를 바라봐야 한다. 사도 바울은 이스라엘이 영적으로 눈멀고 완고하다는 사실을 깊이 생각하며 이렇게 외쳤다. 『육신에 따른 내 형제들, 내 동족을 위해서라면 차라리 내 자신이 그리스도로부터 저주받기를 바랐겠노라』(롬 9:3). 하나님께서 설교하고 가르치는 일에 사도 바울을 그토록 강력하게 들어쓰심이 당연하지 않은가? 이스라엘의 위대한 지도자 모세도 악한 자기 민족을 위해 중보하면서 대단한 경지에 올라섰다. 『지금이라도 주께서 그들의 죄를 용서하시기를 원하나이다. 만일 그렇게 하지 않으시려거든 간구하오니 주께서 기록하신 주의 책에서 나를 지워 버리소서』(출 32:32). 이 두 사례면 사역다운 사역을 위해 혼을 사랑함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마음으로 깨닫기에 충분하다. BB