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가 진리의 말씀을 올바로 나누어 자신이 하나님 앞에 부끄럽지 않은 일꾼으로 인정받도록 공부하라(딤후 2:15).
설교자들에게 고함 분류

설교자의 자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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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대로믿는사람들 <2024년 05월호>

알프레드 깁스(1890-1967)는 그의 책 <설교자와 그의 설교, The Preacher and His Preaching>로 목사들과 신학생들에게 잘 알려져 있다. 알프레드 깁스는 1890년 영국 버밍햄에서 태어나, 남아프리카 요하네스버그에서 자랐고, 쌍둥이 형인 에드윈에게서 복음을 듣고 구원받았다. 제1차 세계대전 중에는 군목으로 복무하면서 훈련소에 있는 군인들에게 설교했다. 1919년에는 미국 일리노이주 시카고에 있는 무디성경학교에서 공부를 시작했고, 그곳에서 곧 구제 선교에도 참여했다. 본 학회지는 이 알프레드 깁스의 <설교자와 그의 설교>를 격월로 연재하고자 한다.

가책을 느끼는 죄인이 자신에게 무엇이 필요한가를 깨닫고, 그리스도께서 대신 희생하셨다는 사실로 인해 안식으로 인도받으며, 그분을 구세주로 믿고 주님으로 고백하는 일은 다름 아닌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또 하나님의 영을 통해 이루어진다고 성경에서 분명히 가르치고 있다.

언제나 그렇지는 않지만 그 일은 보통 그리스도인이 자신의 입을 열어 복음을 전파하는 방식으로 일어난다. 복음을 선포하는 사람을 “전파자”(preacher), 곧 “설교자”라 부르고(롬 10:14) 복음을 제시하는 일을 “복음을 전한다”고 한다(고전 1:17, 고후 10:14).
설교자와 그의 설교는 나뉠 수 없다. 아주 실제적으로 사람은 자신이 전하는 메시지이고, 설교자는 그의 설교이며, 설교 이면에 있는 설교자가 설교의 무게를 결정한다. 어디서나 그렇듯 양보다 질을 선호하기 때문이다.

그 점을 염두에 두고 사도 바울은 디모데에게 다음과 같이 기록했다. 『네 자신과 교리에 주의하고 이 일들을 계속하라. 이것을 행함으로써 네 자신과 네 말을 듣는 사람들을 구원하리라』(딤전 4:16). 필자는 바로 이 구절에서 아이디어를 얻어 본서의 제목을 <설교자와 그의 설교>라고 붙였다. 에머슨이 이런 말을 했다. “당신 자체가 어찌나 크게 말하는지 당신이 뭐라고 말하는지는 세상이 듣지 못한다!” 스토니 브룩 학교에는 “경력에 앞서 인격”이라는 훌륭한 좌우명이 있다. 설교를 “인품을 거쳐 나오는 진리”라고 말한 헨리 워드 비처가 설교를 가장 잘 정의했다고 나는 생각한다.

사도 바울은 자신이 그리스도께로 인도한 데살로니가 성도들에게 다음의 말씀을 기록했다. 『우리가 너희 믿는 자들에게 얼마나 경건하고 의롭고 흠 없이 행동하였는가는 너희가 증인이며 또 하나님께서도 그러하시니라』(살전 2:10). 바리새인들이 『네가 누구냐?』라고 주님께 묻자, 주님은 이렇게 대답하셨다. 『내가 처음부터 너희에게 말해 온 대로니라』(요 8:25). 다시 말해서 주님은 “내가 말했던 것이 나다.”라고 표명하신 것이다. 주님께서는 자신의 교리의 산 실증이셨다. 올리브산에서 설교하시기에 앞서 나사렛에서 무명의 30년을 보내시는 동안 그 설교를 삶으로 보여 주셨다. 즉 입술로 자세히 설명하신 바를 삶에서 직접 보이신 것이다.

이런 관점에서 우리 스스로에게 물어 보자. 설교자가 필수로 갖춰야 할 자격이 무엇일까? 이제 우리는 설교하기나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기를 바라는 사람에게 어떤 선행조건이 필요한지 고려해 보는 시간을 갖고자 한다.

1. 거듭나야 한다(요 3:3-7).

1) 자기기만의 가능성

설교자가 거듭나야 한다는 점은 누구에게나 자명해 보임에도, 실제로는 문자 그대로 수백 명의 설교자가 하나님의 영의 거듭나게 하시는 능력을 경험한 적이 없다. 그리스도 안에서 본인의 믿음을 통해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받는다는 것이 무슨 뜻인지를 모른다. 당시에 가장 종교적이고 도덕적이며 신실했던 한 사람에게 다름 아닌 하나님의 아들께서 다음처럼 엄숙하게 선언하셨다. 『진실로 진실로 내가 너에게 말하노니, 사람이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를 볼 수 없느니라』(요 3:3).

이 거듭나지 않은 목회자들에게 있어서 설교하기란 그저 직업이나 생계 수단일 뿐이다. 그들은 목회를 의료, 법률, 회계, 교직, 사업, 육군, 해군, 공직과 같은 한 직종으로 여긴다. 신학 교육을 받았고 목사로 임명됐으며 사역에 발을 들였고 “목사”라는 직함을 가졌지만, 그들은 그러는 내내 거듭나지 못했다. 결국 허물과 죄들 가운데 죽은, 구원받지 않은 죄인으로서 어둠과 암흑 속에서 영원을 보내는 종착지로 향하는 중인 것이다. 이 얼마나 끔찍스러운 비극인가! 많은 경우 그들은 지적이고 도덕적이며 종교적 성향이 강하고 교양 있고 말솜씨가 능란하며 성격까지 매력적이다. 그러나 영적 현실에 관해서는 완전히 까막눈인 데다 하나님의 구원 방법에 대해서 지독스럽게 무지하다.

100년 전에 사역했던 스코틀랜드의 위대한 설교자 토머스 찰머스 박사는 10년을 설교한 뒤에야 구원을 받았다고 고백했다. 영국 콘월의 광부 출신 빌리 브레이와 동시대인인 하슬람이라는 설교자는 설교를 하다가 자기 설교단에서 구원을 받았다! 근자에 어느 젊은 목사가 한 복음 집회장에 붙은 문구를 보고 목사 협회에 항의를 해 왔는데, 분에 찬 젊은이는 그런 이단적인 선전에 이의를 제기한다며 그 문구를 인용했다. “행함이 없어도 불경건한 자를 의롭다 하시는 그분을 믿는 사람에게는 그의 믿음이 의로 여겨지느니라.” 그러면서 “불경스러운 가르침”을 광고하는 자들에 대해 공식적으로 조치해 달라고 협회에 호소했다. 그때 참된 그리스도인인 나이 지긋한 목사가 일어나더니 그의 주장은 집회 주최 측이 아니라 성경을 상대로 한 불만이라고 알려 줬다. 젊은 목사는 너무나 당황했는데, 문구가 성경 구절 그대로였기 때문이다. 다음은 머레이 맥체인의 말이다. “세상에서 가장 슬픈 광경은 죽은 설교자가 죽은 죄인들에게 살아 계신 하나님의 살아 있는 말씀을 설교하는 모습이다.”

2) 가까스로 고백만 하는 자들에 관한 묘사

그리스도께서는 당시 유대 지도자들을 『소경이 되어 소경을 인도하는 자들』에 빗대셨다(마 15:14). 시편 50:16에서는 이렇게 말씀하신다. 『그러나 악인에게는 하나님이 말하노라. 네가 내 규례들을 선포하기 위하여 또 내 언약을 네 입에 두기 위하여 네가 무엇을 행해야 하느냐?』 베드로도 당대 거짓 선지자들을 “물 없는 샘”(벧후 2:17)이라고 기록했다. 그런 샘이 나타나서 몹시도 지치고 목이 타는 여행자에게 손짓하지만 정작 갈증을 풀어 줄 어떤 것도 주지 않는다. 하나님께서는 말씀하신다. 『그러나 자연인은 하나님의 영의 일들을 받아들이지 아니하나니 이는 그 일들이 그 사람에게는 어리석게 여겨지기 때문이요, 또 알 수도 없나니 이는 그 일들이 영적으로만이 분별되기 때문이니라』(고전 2:14).

3) 설교자 스스로가 가져야 하는 구원의 확신

하나님의 말씀을 다른 이에게 전하기 원한다면 본인부터 새로운 출생을 확실히 경험해야 한다. 진심으로 다음처럼 간증해야 한다. 『보라, 하나님은 나의 구원이시니 내가 의뢰하고 두려워하지 않으리라. 이는 주 여호와는 나의 힘이시요, 내 노래시며, 그가 또한 나의 구원이 되심이라』(사 12:2). 사도 바울은 이렇게 말했다. 『내가 믿었으므로 말하였노라』(고후 4:13). 이 말씀에 “우리도 믿었으므로 말한다.”라고 자신 있게 덧붙일 수 있어야 한다. 사도 바울은 함께 복음을 전한 동료들에 대해 『그들의 이름이 생명의 책에 있느니라.』(빌 4:3)라고 썼다(cf. 눅 10:20, 계 20:15). 글에 유익을 더하고자 잘 알려진 찬송가 가사를 아래와 같이 바꿔 보았다.

성경 교사와 설교자여, 이 말씀에 주의를 기울이라.
주이신 예수님께서 엄숙하게 말씀하신 바니
이 말씀이 헛되지 않게 하라.


“너희는 거듭나야만 한다!”

하나님의 말씀에서 얻은 강한 확신을 마음에 가진 설교자라야 “그 사랑하시는 이 안에서 받아들여졌고”(엡 1:6)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구속을 통하여 그의 은혜로 값없이 의롭게 되었기에”(롬 3:24) “하나님과 화해하라”(고후 5:20)고 자신 있게 힘주어 호소할 수 있는 것이다.


사도 바울의 마지막은 다음과 같이 묘사된다. 『하나님의 나라를 전파하고 주 예수 그리스도에 관한 일들을 가르치되 모든 담대함으로 하였으니 아무도 그를 금하는 사람이 없었더라』(행 28:31). 설교자가 자기 구원에 관해 가진 확신과 자신감은 청중에게 전달되고 현실에서 나타나기 마련이다. 『그런 연유로 내가 이러한 고난을 당해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노니, 이는 내가 믿은 분을 알고, 내가 위탁한 것을 그 날을 대비하여 그분께서 능히 지키실 줄을 확신함이라』(딤후 1:12). 이 사실을 겸손하면서도 담대하게 말하는 설교자는 그가 구주 안에서 가진 확신과 구원받은 경험으로 청중에게 감명을 주게 된다. B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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