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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옥에서 풀려난 베드로가 주는 교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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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대로믿는사람들 <2016년 06월호>
『그가 베드로를 잡아서 감옥에 가두고 네 명씩 네 조의 병사들을 붙여 교대로 지키게 하니 이스터가 지나면 그를 백성들 앞에 끌어낼 의도였더라』(행 12:4)."이스터"(Easter)라는 단어는 성경 전체에서 이 구절에서만 볼 수 있는데, 이는 풍요의 여신 "이슈타르"(Ishtar)를 위한 고대 바빌론 의식에서 유래했다. 때로는 "아스타르테"(Astarte)라 불리기도 한다.
이런 이유로 근본주의자들과 보수주의자들은 『이스터』라는 표현이 <킹제임스성경>의 오류라고 말한다. 새로 나온 변개된 성경들은 모두 "유월절"로 고쳐 놓았다. 그러나 여기에는 두 가지 문제가 있다. 첫째로, 사도행전 12장 본문은 이미 유월절이 지나간 상황이란 점이다. 『그 때는 무교절 기간이더라』(행 12:3). 이 『무교절 기간』(the days of unleavened bread)은 유월절을 의미할 수도 있는 단수로서의 "무교절"이 아니다(눅 22:1,7). 둘째로, 본문은 유대인의 절기가 아니라 에돔인인 헤롯왕이 지켰던 "이스터"를 말하고 있다. 유대인들을 다스리는 에돔인으로서 헤롯은 유대인의 절기들을 지켰을 뿐만 아니라, 자신의 출신 지역과 로마가 지켰던 이교도들의 축일들을 지켰던 것이다. 따라서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킹제임스성경>이 옳으며, "선하고 경건하며 헌신된" 배교한 학자들의 연합은 "마귀와 한패거리가 된 것이다"(빌리 선데이의 표현, 1927년). 사도행전 12장에서 헤롯은 요한의 형제 야고보를 죽였고, 그것이 그리스도를 거부하는 유대인들을 기쁘게 한 것을 알고는 베드로까지 사로잡았으며 이스터를 지키고 나면 그를 사형에 처하려고 했던 것이다.
우리는 감옥에 갇혔던 베드로에게서 소중한 교훈들을 얻을 수 있다. 첫째로, 『마귀의 뜻대로』 사로잡힌 사람들이 있다는 것이다(딤후 2:26). 만약 마귀가 어떤 사람에게 역사하려고 한다면 하나님께 허락을 받으면 된다(욥 1,2장). 예수님께서도 베드로에게 말씀하셨다. 『시몬아, 시몬아, 보라, 사탄이 너희를 밀처럼 키질하려고 찾았느니라』(눅 22:31).
마귀는 사람의 몸이 이질적인 것을 거부하는 경향이 있다는 사실을 이용하는데, "있는 그대로의 상태"에 있는 사람, 곧 "자연인"에게는 성령님께서 이질적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사람은 배우지 않아도 죄를 잘도 짓는다. 사람은 태어날 때부터 마귀에게 사로잡힌 채로 태어나는 것이다(엡 2:1-3).
둘째로, 사도행전 12:5을 보면 베드로는 감옥에 갇혀 있다. 모든 인간은 지금도 감옥에 갇혀 있으니, 곧 죄 있는 육신의 몸에 갇혀 있는 것이다. 그래서 사람들이 마약 복용이나 초월명상으로 "탈옥"을 시도하는 것이다. 바울 또한 이 진리를 깨닫고 『오, 나는 비참한 사람이로다! 누가 이 사망의 몸에서 나를 구해 낼 것인가?』라고 말했다(롬 7:24). 필자는 지금까지 많은 회중들에게 설교를 해 왔는데, 40,50대 되는 사람들 중에서 속으로는 그 안에서 "지옥"이 끓어오르고 있어 그것을 억누르느라 평생을 허비한 사람들을 볼 수 있었다. 그들은 헨리 데이비스 소로가 말했듯이, "대부분의 사람들은 조용한 절망 가운데 살고 있다."는 말에 걸맞은 사람들이었다. 슬픈 사실은 구원받은 사람들 중에서도 그런 식으로 사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이다. 그들은 자신의 인생을 망쳐 버리고 스스로 『종의 멍에』를 메고 있다(갈 5:1).
셋째로, 우리가 배울 수 있는 교훈은 사람이 죽는 것은 정해져 있다는 것이다. 헤롯은 베드로를 죽이기로 결심했고 적절한 때를 기다리고 있었다. 성경은 『한 번 죽는 것은 사람들에게 정해진 것이고』라고 말씀한다(히 9:27).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다시 오시지 않는다면, 이 글을 읽고 있는 모든 사람도 죽게 될 것이다. 그래서 중요한 것은 단지 죽는다는 사실 자체가 아니라 "어떻게 죽을 것이냐"에 있다. 그리스도인은 소망을 가지고 죽음을 맞이할 수 있다. 즉 부활의 소망이 있는 것이다. 다시 말해 『다른 사람들과 같이 슬퍼하지』 않아도 되는 것이다(살전 4:13). 처형되기 전날 밤, 베드로는 안절부절못한 채 공포에 사로잡혀 있지 않았다. 그는 곤히 잠들어 있었다. "선한 양심을 가진 사람은 폭풍우 속에서도 잠을 청할 수 있는 법이다." 사도 바울 역시 본향으로 가서 구주를 만날 준비가 되어 있었다(딤후 4:6, 빌 1:23). 그래서 죽음을 『유익』한 것이라고 말할 수 있었던 것이다(빌 1:21).
그다음 교훈은 사도행전 12:6에서 배울 수 있다. 『베드로는... 자고 있었고』, 즉 인류는 영적으로 잠들어 있으며 영적으로 묶여 있는 것이다. 마가복음 11장에서도 나귀가 묶여 있었는데, 주님께서 그것이 필요하다고 하시며 제자들에게 그것을 풀어 오라고 명령하신 것을 볼 수 있다(막 11:2,3). 예수님께서 나사로를 무덤에서 부르셔서 그가 나오게 되었을 때에도, 주님께서는 사람들에게 『풀어 주어 다니게 하라.』고 말씀하셨다(요 11:44). 두 경우 모두 구원의 모습을 보여 준다.
이 사건으로부터 배울 수 있는 또 다른 교훈은, 사람들은 하나님께서 주시는 빛이 필요하다는 사실이다. 『주의 천사가 그에게 나타나니 감옥 안에 빛이 비치더라』(행 12:7). 인간이 하나님께서 주시는 빛이 필요한 이유는 『이 세상의 신』이 그들을 소경으로 만들었기 때문이다(고후 4:4). 마귀는 이 목적을 이루기 위해 죄인들에게 가짜 빛을 주기도 한다. 그래서 자기 자신을 『빛의 천사』로 가장하는 것이다(고후 11:14). 그러나 그는 『세상으로 들어오는 모든 사람에게 비치는 참 빛』은 아니다(요 1:9). 성경은 『율법과 증거에게라. 만일 그들이 이 말씀에 따라 말하지 아니하면 이는 그들 안에 빛이 없기 때문이라.』고 말씀한다(사 8:20). 하나님께서는 바로 그분의 말씀을 통해서 구원받지 않은 죄인들에게 빛을 주신다(시 119:130,105).
또한 "구원은 즉각적"이라는 진리를 본문으로부터 배울 수 있다. 『"급히 일어나라."고 하니 쇠사슬들이 손에서 벗겨지더라』(행 12:7). 베드로는 즉시 풀려났다. 누구든지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믿으면 그 즉시 구원받게 된다. 길고 지루한 과정이 없는 것이다. 그리스도인의 인격을 함양하는 데에는 평생이 걸리지만 구원은 즉각적이다. 사람이 스스로를 구원하려면 얼마나 선해야 하는지 아는가? 하나님께서 기뻐하신 유일한 사람, 곧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만큼 선해야 하는 것이다(마 3:17; 12:18; 17:5). 당신의 의를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하나님의 의』와 비교하면 어떻게 되겠는가?(롬 10:3,4) 그것은 마치 피와 온갖 오물이 묻은 병원 쓰레기나 자동차 정비소에서 쓰다 버린 기름때로 검게 변한 걸레들을 단 하나의 흠도 찾을 수 없는 실크 양복에 비교하는 것과 같다(사 64:6).
『띠를 두르고 네 신을 매라』(행 12:8). 또한 그리스도인은 구원받은 이후에 적절한 "의복"을 착용해야 한다는 점도 배우게 된다. 에베소서 4:24, 요한계시록 19:8, 에베소서 6:14,15을 찾아보라. 이것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를 따라가는 그리스도인이 갖추어야 할 복장이다. 『네 겉옷을 걸치고 나를 따르라』(행 12:8). 소경 바디매오가 구원받았을 때, 그는 낡은 옷을 던져 버리고 예수 그리스도를 따랐다(막 10:50-52). 예수님은 마태에게 『나를 따라오라.』고 명령하셨고, 그는 세무소에서의 일자리를 버리고 주님을 따라 새로운 일을 하게 되었다(마 9:9).
당신이 주님을 따른다면 주님께서 당신을 돌봐 주실 것이다. 필자가 개인 구령과 복음 전파를 할 수 있도록 도와준 글렌 슝크(Glen Schunk)라는 친구가 있었는데, 그는 로마카톨릭교도였다가 구원을 받은 이후 제2차 세계대전에 참전하여 부대를 지휘하면서 부대원들을 그리스도께로 이겨온 사람이었다. 어느 날 그와 그의 부대원들이 정찰 임무를 마치고 돌아오는 길이었다. 그런데 눈이 많이 와서 돌아가는 길을 제대로 찾지 못하고 있었다. 그러다가 한 번도 보지 못한 갈림길에 다다르게 되었는데, 어느 편으로 가야 할지를 몰랐다. 그래서 그는 무릎을 꿇고 하나님께 어떤 길로 가야 할지 보여 주시라고 기도했다. 주님께서는 글렌에게 왼쪽으로 가라는 강한 "인상"을 주셨고 그는 그렇게 했다. 주님께서 그리스도인들에게 자주 그런 인상을 주시는 것은 아니지만, 그날 글렌은 하나님께서 자신에게 "왼쪽"으로 가라고 말씀하시는 것을 확실히 느꼈다. 다음 날 그의 부대가 적군에 대한 공격을 감행했을 때 그 "오른쪽" 길을 가게 되었다. 그런데 길에서 약 50m쯤 들어갔더니 독일군의 기관총 진지가 자리 잡고 있었던 것이다. 그것도 세 대의 기관총이 길을 향해 겨누고 있었으니, 만일 글렌이 주님을 따르지 않았다면 그와 그의 부대원들은 모두 죽고 말았을 것이다.
마지막으로 구원받지 않은 사람은 그리스도께 나아오기 전까지는 제정신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러자 베드로가 정신이 나서』(행 12:11). 방탕한 아들은 회개하여 돌이키기로 결정했을 때, 그제야 드디어 제정신이 들었다(눅 15:17). 그전에는 정욕, 탐욕, 욕심 등으로 제정신이 아니었던 것이다. 바울은 우리가 구원받았을 때 주님께서 『두려워하는 영이 아니라 능력과 사랑과 건전한 생각의 영』을 주셨다고 말한다(딤후 1:7). 또한 죄인은 그리스도께 나아오면 구원의 보장을 받게 된다. 『이제 내가 확실히 알았노니 주께서 그의 천사를 보내시어... 나를 구해 내셨도다』(행 12:11). 구원받은 사람은 하늘나라에 갈 것을 "소망"하거나 그렇게 "생각"하는 정도가 아니라, 하늘나라에 갈 것을 확실히 알고 있다(요일 5:13, 딤후 1:12). 사도행전 12장에서 베드로가 구출된 것은 상징적으로 부활을 보여 준다(히 11:19). 봄에는 "부활"의 증거를 곳곳에서 볼 수 있는데, 하나님께서 겨울 내내 죽은 것처럼 보였던 나무들을 다시 살려 주시는 것과 같은 것이다.
필자는 독자들이 이러한 진리를 깨닫기를 바란다.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 그리스도인 독자들이여, 당신이 죽는다고 해도 무덤은 당신을 붙들어 둘 수 없다. 옛말에 "죽음은 선한 사람을 붙들어 둘 수 없다!"라고 했다. 구원받아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주신 전가된 의를 소유하고 있다면 당신은 반드시 부활하게 될 것이다.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자들이 먼저 일어나고』(살전 4:16). 구원받았을 때 부활에 대한 보증을 이미 받은 것이다. 성경은 이렇게 말씀한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옛 것들은 지나갔으니, 보라, 모든 것이 새롭게 되었도다』(고후 5:17). 『그러므로 우리가 죽음 안으로 침례를 받아 그와 함께 장사되었으니 이는 아버지의 영광으로 인하여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들로부터 일으켜지심과 같이 우리도 또한 생명의 새로움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함이니라』(롬 6:4).
성도들이여, 구원받기 전과 구원받은 후의 나의 삶은 비교 자체가 불가능하다. 구원받기 전에는 맥주병이나 붙들고 있었고 하루에 "시가"를 대여섯 개비씩 폈었다. 낮에는 디스크자키로 살았고 밤에는 무도장 밴드 드러머로 일했으며 기회가 있을 때마다 죄를 짓는 지저분한 삶을 살았었다. 그러나 구원받고 난 이후에는 하나님께서 내게 가족을 주셨고 온전한 정신으로 만드셔서 설교자로 불러 쓰셨다. 또한 정원을 가꾸고, 사냥하고, 낚시하고, 하키도 하게 하셨다. 필자가 구원받기 전에 알았던 친구들은 술에 취해 살던 내가 여름성경학교에 아이들을 초청하며 즐거워하는 모습을 보게 되었다. 정말이지 나는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겨진 것이다(요 5:24, 요일 3:14). 그렇다면 당신은 어떤가?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겨져 생명의 새로움 가운데 살고 있는가? BB