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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경 쇠약에 걸리지 않으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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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대로믿는사람들 <2021년 09월호>
『그러나 자신은 광야로 하룻길을 갔으니, 그가 향나무 아래로 가서 앉아, 죽기를 구하여 말하기를 “이것으로 족하오니, 오 주여, 이제 내 생명을 취하소서. 내가 내 조상들보다 낫지 못하나이다.” 하더라』(왕상 19:4).엘리야는 칼멜 산에서 450명의 바알의 선지자들의 목을 벤 위대한 선지자였다. 그런데 이제 좀 쉬려고 했을 때 사악한 여자 하나가 그에게 전갈을 보냈고, 이 일로 엘리야는 겁을 먹고 달아났다. 엘리야가 제대로 사고하지 못한 것이다. 어떻게 450명의 거짓 선지자들과 대결했던 그가 여자가 보낸 편지 하나에 벌벌 떨 수 있단 말인가! 이러한 모습은 우리가 종종 비이성적으로 사고할 수 있다는 것과 가장 위대한 성도들도 이런 부분에서는 예외가 될 수 없음을 보여 준다. “모세”도 그런 적이 있었다. 『만일 그렇게 하지 않으시려거든 간구하오니 주께서 기록하신 주의 책에서 나를 지워 버리소서』(출 32:32). “요나”도 그러했다. 『내가 죽는다 할지라도 성내는 것이 잘한 일이옵니다』(욘 4:9). 두 사람 모두 빨리 죽어서 그들이 직면한 문제에서 벗어나고 싶어 했다. “엘리야” 역시 『이것으로 족하오니, 오 주여, 이제 내 생명을 취하소서. 내가 내 조상들보다 낫지 못하나이다.』(왕상 19:4)라고 말했다. 요즘 말로 하면 그들 모두 “스트레스”를 너무 많이 받은 것이다. “바울”도 생전에 이와 동일한 모습을 보여 준 적이 있다. 『이는 내게 사는 것이 그리스도니 죽는 것도 유익함이라... 내가 떠나서 그리스도와 함께 있을 욕망을 갖는 그것이 훨씬 좋으나』(빌 1:21,23). 하지만 바울은 다시 『육신에 남아 있는 것이 너희를 위하여 더욱 필요하리라.』(빌 1:24)라고 말했다.
엘리야가 그렇게 된 데는 몇 가지 이유가 있었다. 너무 엄청난 대결을 치르느라 지나치게 긴장했고, 또 그런 일이 있고 난 뒤에는 으레 자기 연민에 빠지기 쉽기 때문이다. 그런 상태다 보니 스스로가 비참하게 느껴지고 불합리한 생각에 빠져 버린 것이다. 이렇듯 우리 역시 신경 쇠약 혹은 우울증에 걸리지 않으려면, 선지자 엘리야의 모습을 통해 몇 가지 교훈들을 배워야 한다.
▣ 하나님께서 주신 복을 기억하라 ▣
우선 엘리야는 하나님의 복을 가늠하지 못하는 상태에 빠졌다. 조금 전에 자기가 거둔 위대한 승리를 잊어버린 것이다. 비록 엘리야가 이스라엘 민족 전체를 하나님께로 돌이켰지만, 바로 이 순간만큼은 그런 생각이 나지 않은 것이다.
한번은 자칭 그리스도인이라고 하는 어떤 여인이 “자신이 자살하려는 이유”에 대해 글을 쓰고 있었다. 그런데 그렇게 자기 인생에서 잘못된 점들을 써 내려가던 중 “주신 복을 세어 보아라!”라는 찬송가 가사가 생각나서 그동안 자신이 받은 복에 대해 하나씩 써 보았다. 그러자 그녀는 더 이상 유서를 쓸 수가 없었다. 자기가 쓴 복들을 읽어 본 후 그녀는 이렇게 말했다. “내가 받은 복이 이렇게 많은 줄 몰랐는걸! 그렇다면 죽을 수 없지. 그래, 살자! 살아야 한다고!” 어떤 사람은 자신이 받은 것에 대해 감사하지 않고 그저 “문제들”에 대해서만 골똘히 생각한다. 미국의 정신 의학자 “칼 메닝거”는 “만일 신경 쇠약에 걸릴 것 같으면, 길 건너 정말 큰 문제를 겪고 있는 사람을 찾아가서 그 사람을 도와주라.”라고 말한 적이 있다. 즉 길 건너 빈민가에서 하루하루를 근근이 살아가는 사람들이 지닌 “진짜 문제들”을 보라는 것이다.
▣ 현재 당면한 문제를 객관적으로 바라보라 ▣
다음으로 엘리야는 자기 문제를 확대 해석했다. 그가 직면한 문제는 무엇이었는가? 여자 하나가 그를 죽이겠다고 협박한 것밖에는 없었다. 바알의 선지자 450명을 죽인 엘리야가 그런 협박에 놀라거나 무서워해서야 되겠는가! 이제 막 사역을 시작하려는 설교자에게 모친이 이렇게 권면했다. “인생을 헤쳐 나가는 데 있어서, 옛날 방식 그대로 성경 말씀에 따라 구원받은 것 다음으로 중요한 것은 다름 아닌 ‘유머 감각’이다!” 왜 그런가? 보잘것없는 자기 자신과 자기 일을 너무 대단하게 생각하지 말고 웃어넘겨야 할 때가 있기 때문이다.
나는 평생토록 단 한 번도 걸어 본 적이 없는 사람 하나를 알고 있다. 그는 자기 힘으로 물건 하나를 들어 본 적도 없다. 나는 그를 두 번 만났는데, 그의 모친이 늘 그와 함께하면서 신실하게 돌봤고, 또 그가 몸을 일으키는 것을 도와주었다. 그는 팔다리가 모두 없었기 때문이다. 그런 사람을 보고서도 여전히 자기가 겪는 문제가 대단히 심각한 일이라고 생각되는가? 물론 그 사람은 구원받은 사람이었다. 하지만 그 역시 얼마나 자주 목숨을 끊고 싶어 했을지를 생각해 보라.
▣ 하나님의 섭리를 의심하지 말라 ▣
그리고 엘리야는 하나님의 섭리를 의심하고 있었다. 하나님께서는 현재 그가 직면하고 있는 문제가 그에게 일어나는 것을 허락하셨고, 엘리야는 그 일로 자기 연민에 빠졌다. 결국 그는 미친 여자로부터 달아나는 가운데 주님께서 그의 생명을 거둬 가 주시길 바랐고, 주님께서 그를 데려가시지 않는 것이 잘못된 처사라고 생각했다. 물론 엘리야는 나중에 휴거된다(왕하 2:1-11). 만약 하나님께서 엘리야의 생명을 그때 거둬 가셨다면, 그는 이제 곧 있을 “휴거”를 놓치고 말았을 것이다.
어떤 때는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이 옳은 것처럼 보이다가도, 어떤 때는 그렇지 않게 보일 때도 있다. 하나님께 드리는 기도 역시 응답이 안 되는 것처럼 보일 때가 있다. 나도 바로 내 코앞에서 문이 닫히는 것을 경험한 적이 있다. 적어도 세 번 정도는 ‘나는 이제 사역을 못 하겠구나.’라고 생각한 적이 있다. 그러나 그때마다 결과는 늘 반대였다. 이렇듯 우리는 하나님께서 행하시는 방식, 곧 그분의 “섭리”를 종종 의심한다. 물론 그럴 때마다 어떤 약속들을 붙들어야 하는지 머리로는 잘 알고 있다. 『그러나 이 모든 일에서 우리를 사랑하시는 그분으로 말미암아 우리가 이기는 자들보다 더 나으니라』(롬 8:37).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들, 곧 그분의 목적에 따라 부르심을 받은 자들에게는 모든 일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롬 8:28). 『그러므로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약한 것들과 모욕과 궁핍과 박해와 곤경을 기뻐하노니 이는 내가 약할 때 곧 내가 강하기 때문이라』(고후 12:10). 우리는 이러한 구절들을 잘 알고 있고, 또 그런 약속들이 정말 귀한 말씀들이지만, 단지 그 말씀들을 알고 있다는 사실만으로는 당장 문제를 극복하는 데 도움이 되지 않는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우리 해군이 배 여러 척을 몰고 정찰을 나갔는데 일본군이 어뢰를 쏘아 댔다. 선두로 가던 배의 뱃머리에 선 군인들은 어뢰가 쏜살같이 배를 향해 다가오는 것을 보았다. 그런데 마침 거세게 일어난 파도 때문에 배가 약 1.8m 높이로 붕 떴고 어뢰는 그 밑으로 지나갔다. 그 상황을 지켜본 몇몇 구원받은 군인들은 “주님을 찬양하라! 하나님을 송축하라! 하나님께 영광을!”이라고 외쳤다. 하지만 뒤따라오던 배에 그 어뢰가 적중되고 말았다. 물론 선두에 있던 배에 하나님께서 자비를 베풀어 주신 것은 실로 감사한 일이었다. 하지만 그 뒤를 따라오던 배는 어떻게 된 것인가? 다시 말해 하나님께서는 그분의 섭리 속에서 어떤 사람들은 돌보시고 어떤 사람들은 수장되게 하신 것이다.
시편 136편은 매 구절에서 『그의 자비가 영원히 지속됨이라.』라는 말씀이 반복된다. 이스라엘 자손을 이집트 땅에서 데리고 나오신 것도 자비였고, 홍해를 건너게 하신 것도 자비였다. 한편 파라오를 수장시키신 것도 자비였고(15절), 카나안 땅에 들어가 이방 민족들을 죽이신 것도 자비였다고 말씀하시는 것을 보았는가?(17-20절) 왜 파라오를 죽이신 일이 자비였는 줄 아는가? 이는 파라오를 죽이셔야만 유대인들이 살 수 있었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누군가에게 임한 복이 어떤 이에게는 저주가 된 것이다. 종종 우리는 직업을 잃기도 하고 자녀들이 아프기도 한다. 심지어 자녀들이 죽을 때도 있다. 어떤 경우에는 “암 진단”을 받기도 한다. 또는 청구서와 빚에 시달리기도 한다. 우리의 인생에는 그런 일이 종종 일어나는 것이다. 그런 상황에서 “하나님의 약속”을 붙들지 못하면, 결국 하나님의 섭리를 의심하게 된다.
▣ 홀로 가만히 있지 말고, 주님을 위해 뭔가를 하라 ▣
또한 엘리야는 혼자 있고 싶어 했다. 물론 혼자 있는 것이 나쁜 것은 아니다. 우리가 하나님과 교제를 하기 위해 혼자 있는 것은 좋은 것이고, 또 그래야만 한다. 그러나 어떤 문제로부터 달아나기 위해 혼자 있는 것은 좋지 않다! 나에게도 이런 경향이 있다. 마음이 힘들고 괴로울 때는 주위에 누군가가 있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 엘리야도 혼자 밖으로 나가 향나무 아래 누워 있었는데, 그가 다시 일어났을 때는 천사가 와서 그를 지켜보고 있었다. 그러나 엘리야는 혼자 있고 싶었다. 흔히들 힘든 문제로 혼자 있고 싶어질 때, 바로 그때가 위험한 순간임을 유념해야 한다!
당시 엘리야는 하나님을 위해 무언가를 “활동적으로” 하고 있지 않았다. 우리가 “비활동적”인 상태가 되면 얼마 지나지 않아 무언가가 썩기 시작한다. 그러는 가운데 자기 자신에 대해서만 생각하게 된다. 만일 당신이 지금 이처럼 어려운 상황에 직면해 있다면, 우울해하거나 자기 연민에 빠지는 대신 차라리 “물고기를 낚으러 가라!” 혼들을 주님께 이겨오도록 노력하라는 말이다. “프랭크 노리스” 목사는 구령하러 가는 것이야말로 역경을 이기는 좋은 방법이라고 했다. 그는 “자기 연민을 던져 버리고 밖으로 나가 그리스도를 위해 혼들을 이겨오라.”라고 말했다. 그렇게 하면 햇살이 자신의 마음속에 다시 비치는 것을 깨닫게 된다. 자신의 상태가 다시 밝아지는 것을 느끼게 되는 것이다.
누워 잠들었다가 다시 일어난 엘리야에게 천사가 뭐라고 말했는지 아는가? 천사는 일어나서 음식을 먹으라고 했다. 정말로 좋은 조언이었다. 이것이야말로 “효과적인 대체 의학”이다. 따뜻하게 식사한 후 충분히 푹 쉬고 다시 나가서 걸으라! 호출기, 핸드폰, 전화, TV, 라디오 등 모든 전원을 끄라. 지금 당신에게 필요한 것은 어딘가로 멀리 가서 자리 잡고 가만히 눕는 것이다. 엘리야는 일어나서 밖으로 나가 무려 225km 이상을 걸었다. 이제 당신도 일어나서 밖으로 나가 걸으라. 도시보다는 시골로 가라. 숲속으로 가서 천천히 산책을 즐기라. 그러면 놀라운 일을 경험하게 되는데, 전에는 듣지 못했던 소리를 듣게 되는 것이다. 다시 말해 “숲이 부르는 소리”라든지 나뭇잎이 떨어지는 소리, 물이 졸졸 흐르는 소리를 들어 보라. 어떤 안정제보다도 좋은 약이 될 것이다. 궁수가 활을 쓰지 않을 때 시위를 느슨하게 해 놓지 않으면 정작 화살을 쏴야 할 때 쏘지 못하게 된다. 당신을 힘들게 하는 커다란 시련을 만나 고생했다면, 이제 휴식 시간을 충분히 가지라. 쉬어야 하는 것이다!
▣ 하나님께 가서 구하라 ▣
마지막으로 당시에 선지자 엘리야가 하지 않은 일이 있었다. 즉 하나님께 계시를 구하지 않은 것이다. 하나님께 나아가서 “왜 이런 일이 벌어졌습니까?”라고 말씀을 드리면서 필요한 것들을 구하지 않았다. 『너희 중에 누가 지혜가 부족하면, 모든 사람에게 아낌없이 주시고 꾸짖지 아니하시는 하나님께 구하라. 그러면 그분께서 주실 것이라』(약 1:5). 문제에 봉착하거든 하나님께 나아가라. 물론 하나님께서 무조건 우리가 원하는 대로 응답하시지는 않는다. 하지만 분명 무언가를 하실 것이다. 나라면 어떤 어려움에 직면했을 때 제일 먼저 하나님을 찾아갈 것이다. 나는 모든 일에 있어서 하나님께 묻는다. 그렇게 하지 않고는 어떤 일도 하지 않는다. 어떤 상황, 어떤 나라, 어떤 곳에 사는 어떤 누군가가 겪는 어떤 문제라 할지라도 성경 어딘가에는 반드시 그 문제에 대한 해답이 있기 마련이다. 따라서 그 답을 찾기 위해 성경을 부지런히 읽고 공부해야 한다.
성도들 가운데 일부는 정말로 가슴 아픈 일, 커다란 문제, 실로 어려운 상황에 직면해 있다. 그런 상황을 이해 못 하는 바는 아니지만, 그렇다고 슬퍼하거나 우울해한다고 해서 상황이 더 나아지는 것은 아니다. 혹자는 “나는 행복하지 않아요.”라고 말할지 모른다. 그렇다면 하나님께 행복할 방법을 보여 달라고 간구하라. 밥 존스 시니어는 이렇게 말했다. “행복 자체를 추구한다고 해서 행복을 찾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당신의 인생을 향한 하나님의 목적에 부합한 길을 가라. 그렇게 하다 보면 행복을 만나게 되는 것이다.” 정말 옳은 말이다!
하나님께 진지하게 기도하라. 하나님께 무언가 보여 달라고 말씀을 드리라. 주님을 찾아가서 문을 두드리라. “주님, 제가 이 문제에 대해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어떻게 처리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저를 도와주십시오. 제게 지혜를 주시지 않으면 저는 도저히 감당할 수 없습니다. 이 문제가 제게 너무 과중합니다. 미쳐 버릴 것 같습니다. 하지만 저는 미치길 원하지 않습니다. 저는 주님을 올바르게 섬기고 싶습니다. 저를 도와주십시오!” 당신 스스로 문제를 해결할 방법을 찾으려 하지 말라! 『나를 부르라. 그리하면 내가 네게 응답하겠고 네가 알지 못하는 크고 능력 있는 일들을 네게 보이리라』(렘 33:3). BB