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가 진리의 말씀을 올바로 나누어 자신이 하나님 앞에 부끄럽지 않은 일꾼으로 인정받도록 공부하라(딤후 2:15).

야곱을 생각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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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대로믿는사람들 <2005년 01월호>

야곱을 생각하며

『믿음으로 야곱은 죽을 때에 요셉의 두 아들 하나하나에게 축복하였으며, 그의 지팡이 머리에 의지하여 경배드렸느니라.』 (히 11:21)

구약의 믿음의 용사들을 소개하는 히브리서 11장에서 믿음의 예를 들고 있는데 그 가운데 야곱의 믿음도 포함되어 있다. 하지만 이 지면에서는 그의 연약한 모습들을 살펴보고 교훈을 받기 원한다. 이러한 관점에서만 본다면 우리가 성경을 통해서 배우고 느끼는 바에 의해 야곱은 구약 시대의 다른 믿음의 거성들처럼 그렇게 높은 점수를 받을 만한 인물은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는 그를 사랑하셨고 그의 기도에 응답해 주셨음을 알 수 있다.
야곱은 태어날 때부터 말썽을 일으켰다. 그는 어머니의 태에서 나올 때 에서의 발꿈치를 붙잡고 늘어져 그의 이름이 야곱이라고 불렸으며, 그들이 태중에 있을 때에도 서로 싸웠고 그의 모친 리브카는 주님으로부터 『형이 아우를 섬기리라.』(창 25:23)는 예언을 듣게 된다. 하나님께서는 전지전능하셔서 각 사람의 미래를 아시므로 야곱이 장차 어떻게 될지를 다 아시고 그렇게 예언하셨던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또 야곱이 죽은 지 오랜 세월이 지난 후에도 말라키 선지자에게 야곱은 사랑하였고 에서는 미워하였다고 말씀하셨다(말 1: 2,3). 아마 야곱은 어머니의 뱃속에서부터 장자권을 원했던 것 같다. 그때 당시 그 민족들은 장자권을 무척 귀하게 여기고 있었음이 분명하다. 아직 아기에 불과한 야곱이 그것을 알았는지는 잘 알 수 없지만 그의 영적 상태를 하나님은 알고 계셨을 것이다. 태어날 때부터 먼저 나오려고 애쓰던 야곱은 결국 붉은 죽 한 그릇으로 그 귀한 장자권을 간단히 형 에서로부터 사 버렸다. 성경에 의하면 형 에서는 장자권을 경시하였다고 말씀하고 있다(창 25: 34). 그래서 그는 순간의 배고픔을 면하기 위해 아무런 생각 없이 장자권을 무시하고 팔아 버렸던 것이다.
사람이 아무리 착하고, 선을 행하며, 죄도 짓지 않고 온전하게 산다 할지라도 하나님을 모르고 하나님을 경시하고 산다면 결코 그 사람은 하나님으로부터 사랑받지 못한다. 하지만 하나님을 두려워하고 영적인 일에 관심이 있는 사람은 하나님께서 그에게 관심을 보이시고 사랑하신다. 결과적으로 야곱은 영적 축복에 대해서 소중하게 생각했기 때문에 하나님으로부터 사랑을 받았다.
야곱의 부정적인 진면목은 형 에서로부터 장자권을 취한 것과 일생 가운데 행한 여러 가지 비굴하기까지 한 모습들에서 찾아볼 수 있을 것 같다. 하나님으로부터 사랑을 받았던 사람들 중에는 어느 누구도 완벽한 사람들은 없었다. 은사주의자들이 떠벌리는 것처럼 만사형통한 삶을 살았던 것만도 아니다. 그들도 우리와 똑같은 사람의 몸을 입고 있는 고로 때로는 실족하기도 하고 불의를 행하기도 했다.
야곱 역시 하나님을 의지하고 살았지만 때로는 너무나 육신적이라 자기 꾀를 의지하고 머리를 써서 행했던 인물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님의 자비가 상황에 따라서 적절하게 베풀어졌고 하나님과의 교제를 지속할 수 있었다.

야곱은 어머니 리브카의 사주를 받아 형 에서의 옷을 입고 몸에 털을 붙여서 온몸을 변장을 하고 사냥한 고기가 아닌 염소를 잡아 요리를 해서 아버지에게 나아갔다. 그리고 형 에서의 흉내를 내며 『나의 사냥한 고기를 잡수시고, 아버지의 혼이 나를 축복하소서.』(창 27:19)라고 뻔뻔스럽게 거짓말을 해서 아버지 이삭으로부터 축복을 받아냈다. 나중에 사실이 들통나게 되자 야곱은 형 에서를 피해 자신을 사랑해서 그 일들을 꾸몄던 어머니와 이별을 하고 파단아람으로 피신을 가야 하는 신세가 되었다. 그는 혼자서 외로이 외삼촌 집을 향해 가던 중 "루스"라는 땅에서 밤에 잠을 자는데 예수 그리스도의 예표인 사다리에 관한 꿈을 꾸게 되고 주님으로부터 언약의 말씀을 받게 되며 주님을 두려워하여 그가 베개로 베고 잤던 그 돌로 기둥을 세우고 거기에 기름을 붓고 그곳을 벧엘이라 불렀다.

그후 그는 외삼촌 라반의 집에 도착하여 라반의 두 딸들을 아내로 맞이하게 되는데 그들을 위하여 칠 년씩 각각 십사 년을 봉사하게 된다. 그 과정을 보면 자신이 아버지 이삭을 속였던 것처럼 자신도 외삼촌 라반에게 속임을 당한다. 그는 이십 년 동안 외삼촌과 있으면서 가축들을 돌보았다. 그는 낮에는 갈증으로, 밤에는 서리로 지쳤으며 눈붙일 겨를도 없이 지냈는데, 14년은 외삼촌의 두 딸을 위하여, 6년은 외삼촌의 양떼를 위하여 봉사했으나 품삯을 열 번이나 속임을 당했다. 어느 날 하나님께서 그에게 나타나 『네 조상들의 땅 네 친족에게로 돌아가라, 내가 너와 함께 있으리라.』(창 31:3)는 말씀을 듣고 외삼촌 몰래 가족들과 그의 모든 소유를 거느리고 고향을 향해서 떠난다. 그는 몰래 떠나 버린 자신을 부랴부랴 뒤쫓아온 외삼촌과 약간의 다툼을 끝으로 서로 간에 언약을 세우고 헤어진 후, 이제는 앞으로 만나게 될 형 에서로 인해서 고민하게 된다. 그러나 그는 인간적인 꾀를 써서 위기를 모면하려고 자기와 함께한 사람들과 양떼들과 소떼들과 낙타들을 두 무리로 나누고 말하기를 『만일 에서가 와서 한쪽 일행을 치면, 남은 다른 일행은 피하리라.』(창 32: 8)는 생각으로 두 무리로 나누고 주님께 지켜 주시기를 간구한다. 거기에다 에서의 마음을 사기 위해 그에게 줄 선물도 준비하는 것을 잊지 않는다.
그의 작전대로 선물은 먼저 가게 하고 그는 두 아내와 두 여종과 열한 아들을 데리고 얍복 여울을 건너와서 가족들을 먼저 보낸다. 그런 후 야곱은 홀로 남아 주의 천사와 싸우게 되는데 그 결과 그의 넓적다리가 위골되는 부상을 입게 되고 다리를 절게 되었다. 그러나 그는 천사를 끝까지 붙들고 늘어져 축복을 받아내고 이스라엘이라는 새로운 이름을 얻는다.
그는 다시 형 에서를 향해 가는 도중 여종과 그들의 자식들은 맨 앞에 두고, 레아와 그녀의 자식들은 그 뒤에, 자신이 가장 사랑하는 라헬과 요셉을 맨 뒤에 두는 작전을 써서 다시 한번 그의 잔꾀를 의지한다.
얼마 후 형을 발견한 야곱은 그에게 갈 때까지 땅에 일곱 번 절을 한 후 형을 만나 『형님의 얼굴을 뵈오니 마치 내가 하나님의 얼굴을 본 것 같사오며』(창 33:10)라고 아부를 하고 선물 보따리를 꺼내 놓지만 의외로 형은 관대하게 나오고 그들은 화해를 하게 된다.
야곱의 행동들을 여기까지만 보더라도 때로는 주님을 의지하고 믿음을 보이지만 때로는 자신의 지혜와 꾀를 의지하는 면들을 보게 된다. 물론 사람들을 판단할 때 양면성이 있음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야곱의 치밀하고 적극적인 면들을 보면서 철저히 준비하는 모습은 본받을 필요가 있다. 우리도 때로는 어떤 일을 시도하는 과정에서 불안하고 염려가 될 때 우리의 지혜를 동원하고 머리를 써서 행하려고 하는 것을 보면서 야곱과 같은 처지에 있음을 인정하게 된다. 필자 역시도 그런 면에서 자유롭지 못한 것이 사실이다. 토론토 사역을 위하여 출국을 준비하는 과정에서도 여러 가지 염려로 힘들기도 했고 근심이 되기도 했지만 주님께서 순조롭게 인도해 주셨다. 이 모든 것이 주님께서 앞서 행하신 결과이다.

이번에 다시 입국하는 과정에서도 마찬가지로 여러 가지 염려가 있었으나 결과적으로는 아무런 문제 없이 입국했다. 모든 서류가 합법적으로 제출이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사람의 생각으로는 염려가 되었던 것이다. 물론 기도했기 때문에 믿음도 있었지만 야곱처럼 염려로 인해서 긴장하기는 마찬가지였다. 사람이 믿음과 실행에 있어서 일치한다는 것이 쉽지 않음을 다시 한번 깨달았다.
하나님께서는 앞서 가셔서 모든 것을 준비해 두시고 기도하기를 원하시지만 사람들은 기도하고 믿는다고 하면서도 야곱처럼 염려 때문에 자신의 머리와 꾀를 의지하려는 경향이 있다. 이것 역시 주님께 부끄러운 일이다. 토론토에 교회설립을 위하여 지난 6개월을 계획하고 준비했던 일들을 하루의 오차도 없이 이루어 주셔서 6개월 만에 귀국할 수 있었고, 이번에도 재입국기간으로 한 달을 계획했었는데 하루의 오차도 없이 이루어 주셔서 또 다른 간증을 할 수 있게 하셨다. 토론토에 있는 지체들에게 한 달 후에 다시 오겠다던 약속을 지킬 수 있도록 11월 9일 날 출국해서 12월 9일 날 정확하게 입국할 수 있었다는 것은 참으로 놀라운 하나님의 자비하심이 아닐 수 없다. 필자는 기간에 대해서 특별히 의도하지는 않았지만 하나님께서는 이처럼 놀랍도록 인도해 주셨다.

하늘과 땅을 지으신 주님의 생각은 우리의 생각과 다르기 때문에 사람이 그의 길들을 계획할지라도 그의 걸음을 인도하시는 분은 전능하신 주님이라는 사실에 감사할 뿐이다. 『네 마음을 다하여 주를 신뢰하고, 네 자신의 명철을 의지하지 말라.』(잠 3:5)는 말씀은 참으로 은 그림들에 있는 금 사과들과 같다(잠 25:11).
『사람을 두려워하면 덫에 걸리나. 주를 신뢰하는 자는 누구나 안전하리라』(잠 29:25). B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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