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가 진리의 말씀을 올바로 나누어 자신이 하나님 앞에 부끄럽지 않은 일꾼으로 인정받도록 공부하라(딤후 2:15).
신학생 칼럼 분류

종교답지 않은 것의 “종교 흥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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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대로믿는사람들 <2024년 08월호>

한 일간지에 “종교 흥행”이라는 제목으로 요즘 종교의 변화를 논평하는 글이 올라왔다. 요지는 해마다 소위 “부처님 오신 날”에 연등 행사가 있는데 올해는 그동안과 다르게, 머리를 “스님”처럼 깎고 승복을 입은 개그맨이 쇼를 벌였다. 그 개그맨은 머리에 헤드셋을 쓰고 몸을 흔들면서 나이트클럽 디제이처럼 “디제잉”을 했으며, 대형 스피커에서는 EDM이라는 전자음에 불경을 리믹스한 “부처핸섬”이 흘러나왔다. 단상 아래의 청년들은 전자음에 취해 손을 들고 펄쩍펄쩍 뛰며 환호했다. 그동안의 불교계 연등 행사와 다르게 파격을 보인 것은 지난해에 그 개그맨이 연등 행사 사회를 보면서 선보인 디제이 퍼포먼스 동영상이 조회수 1,000만 회 이상을 기록한 데 그 이유가 있었다. 조계종은 이에 착안하여 그에게 “뉴진”이라는 법명을 지어 주고 올해의 행사에서 그를 본격적으로 활용한 것이다.

논평을 쓴 이는 그러한 파격의 이면에는 지속적인 신도 감소에 따른 종교계의 고심이 담겨 있다고 했다. 20년 전에는 500명이던 남녀 승려 입문자가 계속 줄어 지난해는 80명으로 줄어들었고, 어떤 절은 따로 출가자 모집 광고까지 낼 정도로 신도 수가 지속적으로 감소했다는 것인데, 이러한 추세는 천주교와 개신교도 별반 다르지 않다. 2017년을 기점으로 국내에서 종교를 갖지 않은 이의 수가 종교인 수를 앞질렀다는 통계가 있으며, 글의 결론은 종교도 자구책 차원에서 세상의 변화를 수용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었다.

과연 종교는 세상의 변화를 수용할 수밖에 없는 것인가? 성경은 종교를 무엇이라고 말씀하는가? “종교”라는 말은 사도행전에서 처음 나타난다. 『그들이 처음부터 나를 안 이상 그들이 증거하고자 하면 내가 우리 종교의 가장 엄격한 파에 속하는 바리새인으로 살아왔다고 할 것이니이다』(행 26:5). 사도 바울은 아그립파왕 앞에서 자신은 과거에 유대 종교의 가장 엄격한 바리새파로 살아왔던 사람으로, 당시에 나사렛 사람 예수의 이름을 대적하여 대제사장으로부터 권한을 부여받아 많은 성도들을 감옥에 가두었으며 그들을 사형에 처하는 데 찬성하였고 형벌을 가하고 강제로 모독하는 말을 하게 했고 그들에 대한 분노로 그들을 외국 성읍들에서까지 박해하였다고 자신을 소개했다(행 26:9-11).

바울은 유대인이다. 유대인은 하나님께서 특별한 목적을 위해 세우신 민족이다. 즉 하나님 한 분만이 유일한 신이라는 것을 깨닫게 하고, 성경을 기록하고 보존하며 전파하도록 세워졌으며, 이 세상을 구해 낼 구세주를 보내기 위해, 또 세상을 도덕적 타락으로부터 구하기 위해 세우신 민족이다. 하나님께서는 이 목적을 위해 이스라엘에게 계명과 율법을 주시고 약속의 땅에서 복과 저주를 받을 조건을 말씀하셨다. 즉 하나님의 음성에 열심히 경청하고 그분의 모든 계명들을 지켜 행하면, 땅의 모든 민족들보다 높게 세워지고 그 땅에서 복을 받을 것이지만, 만일 그렇지 않으면 저주를 받아 원수들에게 패하여 땅의 모든 왕국들로 옮겨지게 되고, 항상 압제와 유린을 당할 것이라고 경고하셨다. 그럼에도 그들은 자신들을 선택하여 사랑하신 하나님을 거역했고 다른 신을 섬겼으며 계명을 지키지 않았다. 심지어는 메시아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못박았으며, 그 메시아의 부활을 증거하는 사도들 또한 박해했다.

그들은 도대체 어디서부터 잘못되었기에 한갓 “유대 종교”로 전락하여 주인 없는 떠돌이 개처럼 되었는가? 『그러므로 주께서 말씀하시기를 “이 백성이 입으로는 나를 가까이하며 그들의 입술로는 나를 존경하나 그들의 마음은 내게서 멀리 떠났으며 나를 향한 그들의 두려움도 사람들의 법규로 가르친 것이라』(사 29:13). 그렇다. 그들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처음 오시기 전 이미 오래전부터 마음으로부터 주 하나님을 떠나 자신들의 생각과 사람의 전통으로 하나님을 섬기고자 했던 것이다. 그들은 자신들이 하나님의 백성이라고 떠들고 다니며 하나님의 백성으로 행세했지만 그들의 섬김은 이미 형식화, 의식화되어 있었다. 그래서 정작 하나님께서 보내신 메시아까지 명백한 증거에도 불구하고 십자가에 못박아 버릴 정도로 회복 불능의 상태였던 것이다.

이제 야고보서에서 “종교”는 어떤가? 『하나님 곧 아버지 앞에서 순수하고 더렵혀지지 않은 종교 행위는 이것이니, 즉 고난 중에 있는 고아들과 과부들을 돌아보는 것과 자신을 세상으로부터 흠 없이 지키는 것이라』(약 1:27). 종교는 인간의 행위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 야고보서에 따르면 종교는 첫째, 고난 중에 있는 고아들과 과부들을 돌아보는 것이며, 둘째, 자신을 세상으로부터 흠 없이 지키는 것이다. 즉 “진정한 종교”는 자신을 세상과 격리시키는 것이다. 이렇게 볼 때 요즘 세상에는 진정한 종교가 실종된 상태이다. 왜냐하면 종교를 표방하는 자들이 온갖 세상일에 관여하고 세상일에 욕심을 내기 때문이다. 겉으로는 종교적으로 보일지 모르지만 그들의 종교는 실로 헛된 것이다. 참된 종교는 창조주 하나님을 숭앙하게 하며, 죄인들에게 성경에 계시된 구원의 길을 제시하고, 세상과 세상 제도로부터 철저히 분리되어 있다.

오늘날 종교들의 신도 수가 왜 감소했는가? 여러 가지 원인이 있겠지만 가장 주요한 이유는 종교가 과학을 뛰어넘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들은 굳이 종교를 의지하지 않아도 과학의 힘으로 모든 것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하게 된 것이다. 여기에 자신의 역할을 하지 못하는 종교들의 무능력이 단단히 한몫했다. 종교라면 세상과 구별이 되는 무언가가 있어야 하는데 전혀 그렇지 못한 것이다. 특히 배교한 교회들은 정치인보다 더 정치인 같은 목사들과 개그맨보다 더 웃기는 목사들, 교회를 아들에게 세습하는 목사들, 트로트로 찬양을 한다는 목사들, 여성 신도와 신앙 상담을 위해 무인텔에서 만나는 목사들, 직분에 따라 가격을 달리하여 직분을 팔아먹는 교회들, 교회당 건축을 위해 돈을 갹출하는 교회들, 성경을 공부하기보다는 매년 돈 들여서 성지순례를 떠나는 신도와 목사들, 나이트클럽인지 찬양 집회인지 구별 안 되는 찬양 예배, 랩이 들어간 CCM 등, 온통 세상과 하나 된 모습이다. 이러니 굳이 교회에 발을 들여놓을 이유가 사라진 것이다.

불교계가 자신의 흥행을 위해 개그맨을 써먹고 있는 모습은 구원 없는 가짜 종교로서의 실체를 여실히 보여 준다. 불교나 기독교나 세상을 이용해 먹지 않고서는 종교로서 살아남을 수 없는 시대가 된 것이다. 세상을 이용한 그들의 “흥행”은 여기까지다. 그들은 곧 간판을 내려야 한다. 그들의 종교로는 혼을 구원할 수도 없고 지옥에 있는 혼들에게 생수 한 병도 공급할 수 없다. 종교들이 흥행을 위해 세상을 따라가지만 그들의 영화는 흥행도 보지 못하고 강제 종료될 것이다. 왜냐하면 이제 곧 『만왕의 왕, 또 만주의 주』(계 19:16)이신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시기 때문이다! 그분께서 창조하신 우주 만물의 법과 질서를 파괴하여 그분의 흔적을 지워버리고 자신의 방식대로 자기 멋대로 자신들의 왕국을 만들어 잘살아보겠다는 가증한 자들이 심판받을 때가 오는 것이다. 당신은 성경대로 믿는 교회의 성도인가? 그렇다 해도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고, 주 예수 그리스도를 마음을 다하여 사랑하지 않고, 바른 말씀을 사랑하지도 않고, 기도하지도 않고, 성경을 공부하지도 않고, 복음을 전파하지도 않고, 그리스도의 몸 된 지체들을 사랑하지도 않는다면, 당신 또한 한순간에 “세상을 사랑하는 종교인”으로 전락할 수 있다. B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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