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가 진리의 말씀을 올바로 나누어 자신이 하나님 앞에 부끄럽지 않은 일꾼으로 인정받도록 공부하라(딤후 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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죄를 이기는 승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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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대로믿는사람들 <2023년 09월호>

피터 S. 럭크만 / 김진석 옮김

성경은 청년에게 젊음의 정욕을 피하라고 명령한다(딤후 2:22). 성경은 인간의 본성이 악하며(눅 11:13), 기회가 생기기만 하면 육신적인 일들에 중독되기 쉽다고 말씀한다(갈 5:19). 이와 같은 사람이 직면하는 기본적인 유혹은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생의 자랑』(요일 2:16), 즉 세 가지로 정해져 있는데, 이러한 유혹은 누구에게나 찾아온다(고전 10:13). 그럼에도 이 시대는 그 어떤 다른 세대가 겪었던 것보다 더 강력한 유혹들에 직면하고 있다. 내가 청년, 장년으로서 살아온 세대에도 죄의 유혹들이 피가 끓는 청년들을 향해 마수를 뻗어 왔지만 노년이 된 지금 이 시대의 단상을 보고 있으면 할 말을 잃고 만다. 휴거가 임박한 이 마지막 날들에는 위의 세 가지 유혹이 백 배나 더 강화되었고, 보기에도 즐거운(창 3:6) 육신의 정욕이 “TV”를 통해 천 배나 더 강력하게 변했다. 당신은 현대 과학 기술이 이전 시대에 비해 세상을 발전시켰다고 생각하는가? 정녕 과학 기술의 발달이 인간 사회를 더 이롭게 했고 인간성을 한층 더 고양시켰다고 생각하는가?

미국 젊은이들 중에는 사춘기와 청소년기에 TV의 그 무서운 영향력에 그의 인격과 삶이 망가지지 않은 사람이 없다. TV는 애초에 정욕을 불러일으키려고 발명된 것이다(롬 7:7). 그것은 인간의 사고를 단순하게 만들고, 인간 자신의 욕구에 몰두하게 한다. 굳이 홈쇼핑 채널을 보지 않는다 해도, TV에 나오는 다양한 그림들로 광고를 송출해서 있지도 않은 “필요”를 만들어 낼 수 있고, 그렇게 해서 업자들이 물건을 팔아먹을 수 있다(딤전 6:10). TV를 보면 하루 24시간 내내 육신이 뭔가를 “필요”로 하는 것처럼 느끼게 된다. 그러한 “필요”가 충족되지 않으면 마치 인간 자신이 부당한 처지에 있고 무시당한다는 생각에 이르게 된다. 인간은 배고프지 않은데 음식을 많이 먹거나(민 11장에 따르면 분명한 “죄”다), 필요하지 않은 물건을 사거나(삼상 15:15), 자신의 욕망에 따라 죄를 짓는 등(창 3장의 “이브”) 자신의 모든 욕망을 합리화하는 데 능숙한 존재이다. 구원받은 사람의 육신도 구원받지 못한 사람의 육신과 다르지 않다. 거듭난 그리스도인들도 아담의 타락한 본성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롬 6:6).


그리스도인 청년들이 직면하는 문제는 간단하다. 즉 사방에서 여자들이 미니스커트, 몸에 착 달라붙는 바지, 옷인지 누더기인지 분간이 안 되는 티셔츠와 블라우스를 입고 다니고 있는 것이다(기독교 학교를 다니면서 분리된 삶을 살고 있다 해도 집에 TV가 있다면 아무 소용이 없다). 또한 정부와 뉴스 미디어가 낙태와 포르노는 물론, 불법적으로 낳은 아기들과 창녀들과 포주들, 마약쟁이들과 동성연애자들과 강도들을 옹호하는데 대관절 이 세상 어디에 안전한 곳이 있단 말인가?

미국의 그리스도인 청년들은 주변에서 난잡한 옷차림을 보고 음담패설을 듣는 것도 모자라, 심지어 벌거벗다시피 한 스트리퍼가 춤추는 것을 다른 곳도 아닌 자신의 거실에서 볼 수 있다. 바로 “TV”를 통해서 말이다. 그들은 TV에서 송출되는 수많은 채널들에서 매일 매 시간마다 “혼전 성교”와 “성인 간의 동의”라는 용어로 포장한 음행을 그림과 영상으로 볼 수 있다.

지금으로부터 꽤 오래전인 1990년대 초에 미국의 한 조사 기관에서 발표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사람들이 TV에서 보는 드라마에 나오는 성행위 중 75퍼센트가 음행이거나 간음이라고 한다. 나머지 25퍼센트만이 합법적인 부부 사이의 성관계를 다룬다는 것이다. 아무리 기독교 학교를 다닌다고 해도 그들이 TV를 통해 받는 “교육”을 전혀 통제할 수가 없다. 청년들이 자신의 가정에서 늘 그러한 영상들에 노출되어 있기 때문이다. 당신은 내가 계속 TV 이야기만 한다고 해서 지루하고 고리타분하게 여겼는가? 본 글은 “TV”가 그 핵심이다. 당신의 손에 들려 있는 스마트폰(smart-phone)은 절대로 똑똑하지도(smart), 그렇다고 당신을 똑똑하게 해 주지도 않는다. 그저 작고 가벼워져서 휴대가 가능한 “TV”일 뿐이다. 전에는 피곤한 날에 TV 앞에 몸을 이끌고 가야 채널을 틀 수 있었다면, 지금은 당신이 앉고 눕는 그 어디에서도 TV를 볼 수 있게 되었다. 즉 “스마트폰”을 통해서 언제 어디서든 죄를 짓는 데 매우 용이해진 것이다.

나는 이런 부분에서 심각한 문제를 가진 청년들을 수십 명 이상 상담해 주었다. 청년들이 구원받았다고 해서 반드시 죄짓는 것을 멈추거나 죄짓기를 원하지 않는 것이 아니다. 구원받았다고 해서 죄를 계획하지 않는다거나, 죄에 대해 생각하지 않는다거나, 죄짓고자 하는 계획을 실행하지 않는다거나, 죄를 짓고 싶은 욕망이 없어지는 것이 아니다. 손에 쥔 스마트폰으로 언제 어디서든 죄에 쉽게 노출될 수 있는 이 마지막 시대에는 다른 시대들에서는 필요하지 않았던 매우 철저한 조치를 취해야만 청년들의 도덕성을 지켜줄 수 있다. 나는 사역을 시작한 이래로 지난 40년 이상 미국 전역을 순회하며 4,000여 명의 청년들의 문제를 살펴보면서 한 가지 결론을 내렸다. 즉 다음의 기본적인 조치들을 취하지 않는다면 이 시대의 청년들을 결코 정결하게 지킬 수 없다는 것이다.

1. 야외에서 가능한 한 많은 시간을 보내라.

당신은 대부분의 죄를 방이나 차에서 짓는다는 사실을 아는가? 죄악된 악한 생각들의 대부분도 바로 실내나 차와 같이 외부와 단절되고 폐쇄된 공간에서 잉태되고 부화한다. 인간은 혼자 있을 때 죄에 가장 취약하다. 이브가 죄를 지은 것도 그녀 혼자 있을 때였다. 마귀는 혼자 있는 그리스도인에게 접근하여서 유혹하는 것이다. 우리의 힘만으로는 그런 간교한 마귀의 계략을 이길 수 없다. 이와 연관해서 생각해 볼 수 있는 또 다른 유형은, 마음이 맞는 사람들끼리, 예컨대 죄를 짓기로 마음을 정한 사람들끼리 “한 공간 안에서” 하나가 되어 버리면 둘이 있든, 셋이 있든, 그 이상으로 함께 있든 상관이 없다. 그들은 “친목 도모”를 위해 모였다고 하면서 술을 마시고 마약을 투약하며 자신의 재물뿐만 아니라 정신까지 내걸고서 도박을 한다. 심지어 여럿이 모여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변태적인 섹스를 하기까지 한다. 반면 하나님께서 그분의 말씀으로 지으신 나무와 숲, 들과 산과 호수가 펼쳐져 있는 야외로 나가면 더러운 생각이 좀처럼 내면에 떠오르지 않는다. 야외에서 체육 활동을 하는 것도 더러운 생각을 멀리하는 데 도움이 된다.

2. 성경을 암송하는 데 최대한 시간을 써라.

죄를 이기는 가장 주효한 방법을 하나만 들라고 한다면 그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마음에 간직”하는 것이다.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광야에서 사탄에게 시험을 받으실 때 세 번이나 『기록되었으되』, 『기록되었으되』, 『기록되었으되』라고 하심으로써 성경을 인용하여 마귀를 이기셨다(마 4:4,7,10). 당신도 유혹을 받을 때 이길 수 있는 말씀이 성경 어느 책 몇 장 몇 절에 있는지 알고 인용할 수 있다면 쉽게 죄의 유혹을 이길 수 있다. 『청년이 무엇으로 자기 길을 정결케 하리이까? 주의 말씀을 따라 조심할 것이니이다. 내가 전심으로 주를 찾았으니 오 나로 주의 계명에서 벗어나지 않게 하소서. 주의 말씀을 내 마음에 간직하였으니 이는 내가 주께 범죄치 아니하려 함이니이다』(시 119:9-11). 당신은 구소련 공산 치하의 감옥에서 제대로 된 성경도 없이 모진 핍박을 견뎌 낸 루마니아의 리차드 움브란트(Richard Wurmbrand)와 불가리아의 하랄란 포포프(Haralan Popov) 목사의 회고를 기억하는가? 그 두 사람이 그렇게 방대한 양의 말씀을 암송하고 있지 않았다면 그 고통스러운 시간들을 어떻게 이겨낼 수 있었겠는가?

3. 뉴스 미디어에 쓰는 시간을 최소화하라.

내가 뉴스 미디어라고 말하는 것은 잡지, 신문, TV 등이다. 이제는 사람들이 이전보다 더 우둔하고 어리석어서 “글”을 볼 만한 이해력이나 집중력을 발휘할 수 없다. 수많은 영상 매체들과 채널들이 휴대 가능하고 언제 어디서나 접속 가능한 “작은 TV”들을 통해 사람들의 이목을 한곳에 집중시키고 있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러한 것들을 보고 읽는 데 시간을 쓰면서 하나님의 계시를 등한시한다. 그러한 매체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대체하기 위해 고안된 인간의 말인데, 이 점은 뉴스 미디어의 용어들을 연구해 보면 금방 알 수 있다. 예를 들어 그것은 “카톨릭, 통합, 빈민가, 수용, 에큐메니컬, 대주교, 전적 신뢰, 역동적, 의미심장한, 가치, 수녀, 교황, 환상적, 관련, 나눔, 추기경” 등과 같은 성경에 나오지 않는 용어들을 사용한다. 이 세상의 신(고후 4:4)인 사탄은 자기를 따르는 자기 사람들(요일 4:5)을 위해 만든 자신만의 용어들을 가지고 있다. 그리스도인이 그런 데 자주 노출된다면 그는 하나님의 말씀을 소홀히 대하는 사람으로 전락하고 만다.

4. 불 같은 시련이 다가오면 즉시 피할 수 있는 대피로를 찾으라(고전 10:13).

죄의 유혹을 받을 때 그것을 할지 말지 머릿속에서 절대로 논쟁하지 말라. 왜냐하면 죄는 논쟁할 때부터 시작되기 때문이다. 실제로 죄짓는 그 행동을 하지 않았다 해도, 죄는 그것을 맞닥뜨렸을 때부터 그 유혹이 시작된다. 신실한 그리스도인으로서 죄악된 세상을 살아가다 보면 인생길이 꽤나 고단하다는 것을 알게 되는데, 그리스도인은 시련이 닥칠 때 죄를 짓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를 연단시키려는 불 같은 시련에 관하여 너희에게 어떤 이상한 일이 일어나는 것처럼 이상하게 여기지 말고 도리어 너희가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여하는 자들이 되는 것이니 즐거워하라. 이는 그의 영광이 나타나실 때에 너희도 큰 기쁨으로 즐거워하게 하려 함이니라』(벧전 4:12,13). 그리스도인에게는 불같은 시련을 당할 때 그것을 피할 수 있는 “화재 대피용 비상계단”이 필요한데, 그것을 공급해 주시는 분은 하나님이시다. 『사람에게 흔히 닥치는 시험 외에는 너희가 당한 것이 없나니 하나님께서는 신실하셔서 너희가 감당할 수 있는 것 이상으로 시험을 당하지 않게 하시고 시험을 당하면 피할 길도 마련하셔서 너희로 능히 감당케 하시느니라』(고전 10:13). 문제는 시련을 겪는 그리스도인 자신에게 있다. 불같은 시련으로 인해 죄에 굴복하려 한다면(의도했든 의도하지 않았든) 주님의 불같은 진노가 있다는 점도 기억해야 하는 것이다(시 69:24).

5. “로마서 6:11”을 생활에 적용하는 법을 배우라.

『이와 같이 너희도 너희 자신을 정녕 죄에게는 죽은 자요, 예수 그리스도 우리 주로 말미암아 하나님께는 산 자로 여기라』(롬 6:11). 이 구절은 육신을 이기는 데 있어서 가장 중요한 말씀이라고 할 수 있다. 왜냐하면 그리스도인의 육신은 죽은 것이며, 죽은 사람은 뭔가를 “필요”로 하지도 않고 어떤 것을 “원하지도” 않고 그런 욕구를 충족시킬 필요도 없음을 보여 주기 때문이다. 『이는 죽은 자가 죄로부터 자유롭게 되었기 때문이라』(롬 6:7). 하나님께서 우리가 죽었다고 말씀하시면, 우리도 그것이 진리임을 믿고 그대로 “여겨야” 한다. 이것이 육신을 이기는 비결이다.

죄를 이기기 위해서는 반드시 노력이 필요하지만 그만한 가치가 있는 노력이다. 마지막으로 말하건대, TV의 “그림들”을 당신의 눈앞에서 치워 버리라! 『그 땅 거민을 너희 앞에서 다 몰아내고 그들의 모든 그림들을 파괴하고 모든 부어 만든 형상들을 다 파괴하며 산당들을 다 뽑아 낼 것이며』(민 33:52). “그림들”을 눈앞에서 치워야 할 이유는 몸의 빛이 바로 “눈”이기 때문이다. 사람은 뭔가를 눈으로 봐야만, 그 다음에 그것의 이미지를 마음에 그릴 수 있고, 마음에 이미지를 그릴 수 있어야 그것에 대해 생각할 수 있고, 그것을 생각할 수 있어야 그것을 행동으로 옮길 수 있다. 당신은 “현 시대에 나무나 돌을 깎아 만들고, 쇠를 부어 만든 우상이 어디 있습니까?”라고 물을지도 모른다. 돌을 깎아 만든 형상들은 브라질 리우의 예수상이나 절간의 부처상들만 있는 것이 아니다. 당신의 손에 들려 있는 “스마트폰”과 “컴퓨터”에 들어가는 반도체들이 모두 돌(광물)을 깎아 만든 것들이다. 철로 만든 우상은 없을까? 수많은 남성들이 “자동차”에 열광한다. 여성들은 콘크리트와 그 안에 “철근”이 들어간 집들에 주목하며 누가 좋은 집에 살고 집값이 얼마나 올랐는지에 관심을 갖는다. 이 모든 것들이 하나의 존재, 곧 “돈”으로 귀결되며, 이 돈을 쥐고 흔드는 것이 바로 이 세상 정사들과 권세들의 통치자인 “마귀”이다.

현명한 자에게는 조언의 말씀만으로도 충분하다(잠 13:1). 우리가 비록 라오디케아인들의 교회 시대를 살고 있다 해도, 죄를 이기는 승리를 경험할 수 있고 그렇게 할 수 있는 방법도 있다. 나는 이 글을 읽는 바로 당신이 그 방법을 찾았기를 바라며, 더 나아가 그대로 실행하고 그 승리를 경험하기를 바란다. 『이는 하나님께로부터 태어난 자는 누구든지 세상을 이기기 때문이라. 세상을 이기는 승리는 이것이니, 곧 우리의 믿음이라.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믿는 자 외에 세상을 이기는 자가 누구냐?』(요일 5:4,5) B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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