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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서 7:1-6 “옛 남편”은 누구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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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대로믿는사람들 <1995년 06월호>
로마서 7장은 율법과 그리스도인의 죽음과의 관계를 다루고 있는 장으로, 그리스도인과 그리스도인의 죽음과의 관계를 다루고 있는 로마서 6장과 그리스도인의 죽음과 미래적 삶의 관계를 다루고 있는 로마서 8장과 더불어 그리스도인의 현재적 삶을 가장 잘 설명하고 있는 장으로 유명하다. 특히 로마서 7장은 거듭난 그리스도인이 성장해 나가는 데 있어 필연적으로 거치게 되는 과정의 하나로 이 장을 잘 깨닫는 것은 승리의 삶의 근간이 된다.대부분의 그리스도인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피의 속죄를 믿고 거듭난 후 선하고 도덕적인 삶을 살며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기 위해 무엇인가를 하려고 한다. 그러나 그때마다 다가오는 실제적인 체험은 로마서 7장의 체험인 것이다. 『내가 행하는 것을 내가 알지 못하노니, 이는 내가 원하는 것은 행하지 아니하고 오히려 내가 미워하는 것을 행하고 있음이라』(7:15). 거듭나기 전에는 하나님의 말씀에 관심도 없었고 알지도 못했으나 거듭난 영적 아이는 하나님의 말씀을 사모하고 배우고 그것을 실천하려고 한다. 그러나 그때마다 『내가 원하는 선은 행하지 않고 원치 않는 악을 행하는도다』(7:19). 『내가 선을 행하고자 할 때 악이 나와 함께 있다는 것이라』(7:21). 『내 지체들 속에 있는 또 하나의 법이 내 생각의 법과 싸워 나를 내 지체들 속에 있는 죄의 법에게로 사로잡아 오는 것을 보는도다』(7:23)라는 고백을 할 수밖에 없다.
이 문제에 대한 해결책으로 제시된 것이 로마서 6,7,8장이요, 그 중에서도 로마서 7:1-6까지는 우리가 어떻게 율법에서 구제될 수 있는가를 남편과 아내의 예를 들어 잘 제시해 주고 있다. 문제는 이 부분의 해석이 제각각이어서 정확한 교리를 배울 수 없고 따라서 영적인 적용 역시 효과적이 될 수 없다는 데 있다.
먼저 일반적으로 알려져 있는 해석 몇 가지를 제시한 후 성경적 교리를 제시해 보도록 하겠다.
1. 로마서 7:1-6 「여기에 나타난 바울의 비유 속에서 여인은 신자, 옛 남편은 율법, 새 남편은 그리스도를 가리킨다」(오픈성경).
2. 「첫 남편은 율법이고 두번째 남편은 그리스도이시다. 또 당신은 바로 그 여인이다... 당신이 해방되기 위해서 유일하게 바랄 수 있는 것은 바로 첫 남편이 죽는 것이다. 그러나 율법의 일점일획도 천지가 없어지기 전에는 없어지지 않는다(마5:18)... 1-3절까지는 마땅히 남편이 죽어야 한다고 우리에게 말한다. 그러나 사실상 죽은 쪽은 율법이 아니고 여인인 내가 죽은 것이다...」(정상적인 그리스도인의 생활, 워치만니).
3. 워치만니의 후계자 윗트니스리는 그의 회복역 성경과 라이프 스타디 강해에서 로마서 7:1-3에서 남편이 죽어야 율법에서 벗어날 수 있으므로 율법이 남편이 될 수 없고 옛 사람이 남편이라고 해석한다.
한국교회의 설교를 들어보면 대개 1, 2번의 해석을 하고 있는 것 같다. 그러나 율법이 옛 남편이라는 이 두 해석은 성경 자체를 모순되게 한다. 7:1-3에서 남편이 죽어야 한다고 했는데 성경의 다른 구절들에 따르면 율법은 죽지 않는다.
결국 워치만니는 편법으로 옛 남편이 안 죽으니까 여자가 죽으면 문제가 해결된다고 했고, 이에 만족하지 못한 그의 후계자 윗트니스리는 옛 남편이 우리의 옛 사람임을 잘 지적했다. 그는 또한 로마서 6:6,8 등을 근거 구절로 제시했다. 문제는 이 옛 사람이 무엇인가에 대한 구체적인 설명이 없기 때문에 막연하고 추상적인 주석이 되고 만다는 것이다.
이 옛 사람은 과연 무엇인가를 성경적으로 밝혀낼 때 비로소 우리는 이 부분에 대한 정확한 교리를 깨달을 수 있다. 다음의 몇 가지 성경적 사실들을 통해 우리는 로마서 7:1-6에 대한 조명을 얻을 수 있다.
1. 아담이 타락했을 때 그의 영은 죄와 허물로 죽었고(엡2:1-3), 그의 몸은 죄의 몸(롬6:6), 즉 육신의 죄들의 몸(골2:11)이 되어 버렸으며 혼은 몸에 달라 붙어버렸다. 이로써 아담은 육신 안에 있는 자(롬8:8,9)가 되어버린 것이다. 그 결과 죄들의 정욕이 율법을 통하여 우리의 지체 속에서 역사하여 사망에 이르는 열매를 맺었다(롬7:5). 이것이 바로 바울이 로마서 7:1-6에서 말하는 옛 남편과 여인의 관계를 설명해 주는 것이다.
자유의지를 갖고 있는 여인, 즉 혼이 하나님 대신 사탄의 말을 따랐을 때 그 여인은 몸과 결합하여 하나가 되어버렸다. 그래서 바울은 혼인의 비유를 든 것이다. 이제는 인간의 몸은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좋았더라고 하셨던 그러한 몸(body)이 아니라 죄의 몸, 즉 육체(flesh)가 되어버린 것이다. 뿐만 아니라 인간의 혼은 육체와 붙어 하나가 되어버렸다.
구약성경에서 배고픈 혼, 피곤한 혼, 목마른 혼 등의 표현이 나올 수 있는 것은 사람의 혼이 몸에 붙어버려 하나가 되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구약에서는 사람이 손으로 부정한 것을 만지면 몸에 붙어 있는 혼까지 더러워지고 그래서 혼이 속죄를 해야만 하는 것이다.
사람의 혼에 대해서 많은 사람들이 갖고 있는 생각만큼 비성경적인 것도 없을 것이다. 헬라 철학자들은 혼이 땅콩 모양의 작은 것으로 사람의 내면 깊숙한 어느 곳에 자리잡고 있다고 생각했는가 하면, 이 사상을 은연중 받아들인 기독교 대학들도 혼이란 몸 깊숙한 곳 어딘가에 들러붙어 있다가 죽을 때 떨어져 나오는 것이라고 가르친다. 아예 혼의 실체는 제쳐놓고 혼의 세 가지 기능(지성, 감성, 의지)만을 말하는 사람도 있고 현대 심리학자들은 그것이 무엇인지도 모르면서 에고(ego), 자아(self) 등의 용어를 제멋대로 사용하고 있는 실정이다.
그렇다면 성경은 혼에 대해 무엇이라고 말씀하는가? 성경에 따르면 혼은 목소리를 갖고 있고 옷을 입을 수 있다(계 6장). 혼은 입을 갖고 있으며, 혀도 갖고 있다(눅 16장). 혼은 또한 보좌에 앉을 수도 있다(계 20장). 따라서 혼은 몸통, 머리, 다리를 전부 갖춘 몸과 동일한 형태를 갖추고 있는 것으로, 육안으로는 보이지 않는다. 축구공 속의 고무튜브가 축구공과 똑같은 모양을 하고 있듯이 사람의 혼도 몸과 동일한 형태를 갖고 있는 것이다.
아담이 타락한 후 혼과 몸이 붙어 하나가 되어버렸고, 구약성경 여러 곳에서 혼이 마치 몸인 것처럼 쓰이고 있는 이유 때문에(창12:13; 19:20; 46 :18, 레7:18,20; 22:6,11 등) 여호와의 증인의 창시자 러더포드와 럿셀은 혼과 몸이 같은 것으로 착각했으며, 결국 이들은 혼도 무덤으로 내려가 소멸된다는 이단 교리를 만들어낸 것이다. 칼빈 역시 철학자들의 사상에 물들어(골2:8) 성경적 교리인 영, 혼, 육의 삼분법 대신 영혼과 육체라는 이분법을 택하고 말았다.
2. 한 인간이 죄인임을 깨닫고 그리스도를 구주로 영접하는 순간 성령께서 들어오셔서 죽은 영을 살려내시는 동시에(요3:6) 보이지 않는 칼로(히4:2) 혼을 몸으로부터 베어내어 분리시키는 영적 수술을 단행하신다. 바로 이것이 손으로 하지 않은 그리스도의 할례이며(골2:11), (대부분의 주석가들은 그리스도의 할례를 십자가 사건으로 본다.) 마음의 할례(롬2:29)인 것이다(신약구원의 예표인 아브라함은 손으로 하는 할례를 해야 했으며 따라서 구약성도의 경우는 거듭남도 영적 할례도 없는 것이다).
그 결과 혼은 육신의 죄들의 몸을 벗어버리게 되고 성령 안에 있게 되는 것이다(롬8:9). 성령의 칼로 인해 옛 남편인 몸이 죽었고(롬6:2,6,7,8; 8: 10, 갈2:20, 골2;11) 따라서 로마서 7:1 -6의 여인은 내주하시는 그리스도께로(롬8:10, 골1:27) 합법적으로 재혼을 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이제는 그리스도와 합함으로써 한 영이 되어 새로운 결혼이 성립되었다고 할 수 있다(고전6:17).
이와 같이 거듭남과 영적 할례는 동시에 일어난다. 이로써 옛 것은 지나갔고 새로운 피조물이 탄생하게 되는 것이다(고후5:17). 『너희가 그 행위와 함께 옛 사람을 벗어버리고 그를 창조하신 분의 형상을 따라 지식 안에서 새롭게 된 새 사람을 입었으니』(골3:9,10). 구원받지 못한 사람이 죽은 영을 갖고 있는 살아 있는 몸이라고 한다면 거듭난 사람은 죽은 몸 안에 살아 있는 영을 지닌 사람인 것이다. 그래서 그 유명한 갈라디아서 2: 20의 고백이 성립되는 것이다. 이 구절은 그리스도인의 승리의 삶을 보여주는 핵심구절이다. 나의 옛 사람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박혀 있고 이제 내가 육신으로 사는 삶은 하나님의 아들을 믿음으로 사는 삶인 것이다.
이때 육신으로(in the flesh)라는 말은 로마서 8:8에서 말하는 육신 안에 있는 것과는 다르다. 로마서 8:8은 혼이 몸과 붙어 있는 상황을 말하며, 갈라디아서 2:20의 경우는 영적 수술로 혼은 몸으로부터 분리되어 있다. 그러나 위치적으로 볼 때 여전히 육신 안에 그리스도와 하나된 내가 담겨 있는 것이다(고린도후서 4:7에서는 질그릇 안에 보물을 갖고 있다고 말하고 있다). 다시 말해 그리스도인은 산 영과 산 혼이 사망의 몸(롬7:24)인 썩어가는 겉사람 안에서 살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육신을 따라 행하지 않고 성령을 따라 행하는 사람들이다(롬8:4,10).
영적 할례는 하나님의 역사이다(골로새서 2:12에서 역사라는 단어는 영어로 “operation”이며 이 단어는 오늘날 외과 의사들이 “수술”이라는 용어로 쓴다. 하나님의 말씀이 얼마만큼 정확한가를 입증하는 구절이다. 오늘날 인간들은 레이저 광선으로 피흘리지 않고 수술을 하고 있다. 하물며 하나님께서 그 분의 양날 선 칼로 그러한 수술을 못하시겠는가?).
영적 할례는 그리스도 자신이 말씀의 칼로 당신을 당신의 몸에서 분리시켜 당신의 영을 성령에 의해 그 분 안으로 집어넣는 것을 말한다(고전12:13, 엡4:4,5). 성경에는 실제적인 할례와 영적인 할례가 있는 것처럼 실제적인 침례와(행8:38) 영적 침례가 있다. 이 성령 침례는 (성령 침례를 방언해야 받은 것으로 아는 사람들이 너무도 많은 것은 통탄할 일이다.) 골로새서 2:12 말씀대로 하나님의 역사로 이루어진다. 모든 구원받은 사람들은 영적 할례와 영적 침례를 받은 것이다.
이제 우리가 이와 같은 진리를 분명히 깨닫고 우리 자신을 죄에게는 죽은 자요 예수 그리스도 우리 주로 말미암아 하나님께로는 산 자로 여기라는(롬6:11) 주님의 말씀과 우리의 지체를 불의의 병기로 죄에게 내어주지 말고 우리 자신을 죽은 자들로부터 살아난 자처럼 하나님께 드리며 우리 지체를 의의 병기로 하나님께 드리라(롬6:12)는 말씀을 우리 생활에서 계속해서 적용한다면 그리스도인은 죄를 짓지 않고 살 수 있다.
물론 실패해서 죄를 지었다면 자백을 통해 하나님과의 관계를 개선한 후(요일1:9) 다시 믿음의 삶을 살아가야 한다(갈2:20). 『이제는 우리가 붙잡혔던 것에서 죽었으므로 율법에서부터 구제되었으니, 우리가 영의 새로움으로 섬길 것이요 법문의 낡은 것(율법)으로 섬기지 아니할 것이라.』 육신에 져서 육신을 따라 사는 자가(롬8:12) 아직도 있다면 속히 이 진리를 통해 자유함을 얻기 바란다(요8:32). BB