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적 교회 분류
신약 지역교회의 특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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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대로믿는사람들 <1992년 06월호>
교회사는 성경의 관점에서 볼 때 우선 지역 회중들의 역사를 다루고 그 다음 조직된 교파들을 다루어야 한다. “교회”는 헬라어로 ‘εκκλησια’(에클레시아)인데 불러낸 모임(called out assembly)이라는 뜻이다. 교회는 때로 그리스도의 영적인 몸인 살아 있는 유기체(Living organism)를 뜻하지만(골1:18, 엡1:22, 딤전3:15), 모임(행2), 예배(행4), 기도(행4), 구제(행11), 성경을 가르치는 것과 전파(행13), 선교 사역(행16) 그리고 이방인들에게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할 목적으로 세상 제도에서 “불러낸” 성도들의 지역모임으로 더 많이 쓰이며 신약에 80회 이상 나온다.신약에서 지역교회는 자치적(self-governing)으로 운영되는데(행6), 감독(장로, 목자)과 집사를 직접 선출하고(딤전3:1-12), 장로(감독, 목자)는 교회의 가시적인 머리이며(히13:17, 딤전5:17), 가난한 성도들을 지원하고(롬15:25-26, 고전16:1-3), 개종자들에게 침례를 베풀고(행16:33), 복음 전도자들과 선교사들을 파송했다(행13:1-4; 16:1-4). 신약 지역교회는 성경이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믿었던 침례받은 성도들로 구성되었다(살전2:13, 행8:37). 그들의 “공산주의”는 자발적이었고(행4:32) 국가와 전적으로 분리된 것이었다. 그들은 모두 자본주의자였고 사유재산의 소유를 믿었기 때문에(행5:4) 지폐와 세금, 수입 분배, 원조 물자 소송, 도시 주택 정비와 복지 계획 등으로 “인류”에게 에덴동산을 회복시키려는 정치인들의 사회주의적인 시도들에 결코 “관련하지” 않았다. 다만 그들 교회의 가난한 성도들을 돌보았을 뿐이다(행11:29, 롬15:25-26). “가난한 성도들”(고전16:1-5)은 당시의 인종 혼합을 주장하는 리버티노(행6:9)나 원로원의 시이저 정치가들이 아니었다. 즉 신약 지역교회는 전미기독교회협의회(NCCC)나 세계기독교협의회(WCC)의 활동과 이념, 행사 및 계획과 전혀 닮지 않았다. 이 “가치없는” 세상은 결코 신약 지역교회와는 “은혜의 친구”가 아니다. 어떤 지역교회도 그들의 「왕」이 오시지 않은 채(행3:19) “천국을 오게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실수를 범하지 않았다.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 사도행전의 교회가 지역 모임의 원형으로서 이들은 이 세상의 제도에서 불러냄을 받아 예수 그리스도의 가르침(행1:1-8)과 사도들에 의해 기록된 말씀을 따라 하나님을 경배하고 섬겼다는 것이다. 누구든지 이 “불러낸 모임”의 역사를 연구하려면 성경의 전파, 성경의 가르침, 과학과 철학에 대한 교회의 입장(골2:8, 딤전6:20), 또 재림에 대한 그리스도인들의 태도, 로마 카톨릭에 대한 교회의 입장과, ‘무엇보다도 「최종 권위」에 대한 그들의 태도에 관계된 가능한한 모든 자료를 활용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교회의 창조자(엡1:22,23)가 말씀하신 것(행20:28)과 교회의 머리(골1:18)가 함께 하신 것(행3-28)을 무시하고 교회사를 쓴다는 것은 영적인 광기이다.
제롬(Jerome), 어거스틴(Augustine), 샤프(Schaff), 필린저(Pöllinger), 유세비우스(Jusebius), 콘스탄틴(Constantine)과 수없이 많은 자들이 바로 그런 짓을 했기 때문에 우리는 그들의 “교회사”가 사기, 착복, 이단론, 공갈, 고문, 전쟁, 살인의 지루한 사설에 한정되는 것을 놀랍게 생각하지 않는다. 신약에서 이런 일들은 항상 교회 안팎의 원수들과 관계있는데, 그들은 「반(Anti)」 교회사에 타협한다. 『너희가 그 열매를 보고 그들을 알게 되리라』는 우리 주님의 말씀을 기준으로 삼을때, 로마 카톨릭, 성공회, 개혁교회, 루터교 같은 조직된 종교들은 확실히 그들의 뿌리와 가지를 썩은 기초 위에 내리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신약 지역교회의 특성은 다음과 같았다. (참고:성경대로믿는사람들, pp.6-7, 1992, 5)
1. 그들은 외경을 한 마디도 담지 않은 구약을 사용하였다.
2. 그들의 신약성경은 대부분은 소아시아에서 기록되었다. 이집트 알렉산드리아의 반경 80km 내에서 쓰여진 “원본”은 하나도 없다.
3. 그들의 활동 중심지는 시리아 안티옥이었지 로마가 아니었다. 이 지역에서 루터 성경과 킹 제임스 성경을 만든 비잔틴 표준원문이 형성되었다(로마에서 쓴 유일한 신약 서신서들은 감옥에서 기록되었다).
4. 그들은 기도와 말씀사역에 전념했는데(행6:4), 말씀사역에는 가르치는 것(행13:1-4)과 복음을 땅끝까지 전파하는 선교의 노력도 포함되어 있음을 뜻한다(행16:1-6).
5. 그들은 유아세례를 준 적이 없고, 이방인 개종자들에게 어떤 형태로든지 구원이나 중생의 수단으로 물침례를 권면하지 않았다(행15). 그들이 믿었던 구원의 교리는 ‘믿음으로 인하여 은혜로 받는 것’으로서(행15:11), 이것 외에 어떤 요소도 첨가하지 않았다. 아무도 유대인의 명절인 오순절(신약이 쓰여지기 전) 설교 이후 거듭남과 구원을 위해 물침례를 받아야 한다는 실수를 범한 적이 없다. 그리고 신약의 어떤 그리스도인도 물침례가 성령을 받거나 거듭나는 수단이라고 다시 설교한 적이 없다(행2:38을 행10:43; 15:11과 비교해 보라. 벧전 3:21를 참고 하라).
6. 참된 교회는 어떤 인종을 돕는(혹은 방해하는) 따위의 정부 주관 행사나 계획에 결코 “연관되지” 않았다. 그들은 복지 입안이나 환경계획에 관계되는 법을 통과시키기 위해 어떤 시위나 정치운동을 벌여서 “땅에 평화를” 가져오게 하는 시도를 한 적이 없다. 그들은 이 세상에 속하지 않았던 것이다(요17:16).
7. 마지막으로 어떤 신약의 그리스도인도 교회 지도자를 “아버지(father)”로 부르지 않았고 단 하나의 신약교회 직분도 “제사장(Priest)”으로 부른 적이 없다. 로마 카톨릭의 그런 직분은 레이저 광선으로 찾는다 해도 교회에는 나타나지 않는 말이다. 성경대로 믿는 성도라면 “참된 믿음”(갈1:8-10, 고전15:1-5, 행20:1-28, 엡3:1-6, 딤전4:1-6)이 어떻게 「다른」 나라에 들어 가게 되는지를 알 것이다. 그것은 물이 성령이라고 생각하고 유아세례를 주었던 자들에 의해서도 아니었으며 마리아를 숭배하며 우상에게 입맞추는 “제사장들”에 의해서도 아니었다. “참된 믿음”이 한 나라에 들어 가게 되는 것은 구스(행9)나 사마리아(행17)나 로마(행28)에서와 같이 예수 그리스도의 피의 구속이(고후5:14-21) 어떤 다른 행위와 상관없이(행15:1-5) 천국에 가는 길임을 전파한 성경대로 믿는 증인의 입을 통해서였다. 이 “구원 계획”은 오리겐과 유세비우스가 태어나기 백년 전에 “교황”이 등장하기 삼백년 전에 “복받은 시몬 베드로”를 포함해서 (행15:7) 사도들과 “장로들”이 확립하였던 것이다. 그러므로 라투렛(Latourette)과 샤프(Schaff)같은 교회사가들은 복음전도와 가르침이 「성경적 신앙」의 전파임을 이해하지 못한다. 이것이 일차적으로 교회사가들이 결코 복음전도자가 아닌 이유이다. (계속) BB