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적 교회 분류
지역 교회에 대한 강의를 시작하며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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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대로믿는사람들 <2025년 03월호>
본 「지역 교회」 코너는 피터 S. 럭크만 목사의 책 <지역 교회>(The Local Church)의 핵심 내용을 편집하여 정리한 것이다.펜사콜라성경신학원(PBI)에서 지난 25년 동안 강의된 모든 과목 중에서 가장 많은 졸업생들이 다시 듣고 싶어 하는 것은 “지역 교회”라는 과목이다. 그들이 교정을 떠나고 나서 이 과목에 대해 내놓은 평은 한결같이 이런 식이었다. “와, 저는 그냥 목사님께서 스스로 경험하신 일을 말씀하시는 줄만 알았는데, 제가 경험하게 될 일을 말씀하신 것이었어요!” “이거 참, 저는 목사님께서 수업 때 말씀하셨던 것을 거의 다 겪었네요.” “정말로 목사님께서는 무슨 일이 일어날지를 이야기해 주려고 애쓰셨는데, 저희들이 믿질 않았네요.” “목사님께서 말씀하신 것들이 제게 닥치리라는 생각은 못 했었는데, 그 모든 일들을 다 맞닥뜨렸던 것 같아요.” “와, 목사님께서는 그 수업 때 저희들에게 항상 진실만을 말씀하신 것이었어요!”
펜사콜라성경신학원이 1년 과정으로 운영하는 “지역 교회”는, 젊은이들에게 사역에서 떠나라는 이야기를 해 주려는 목적으로 설계된 과목이다. 스스로의 부르심에 대한 확신이 없다면 말이다. 이 수업에서 학생들에게 제공되는 자료의 출처는 교회에서 온전히 믿음으로만 수행된 12년간의 전임 복음 사역이다. “복음전도협회”도, 급여도, “부가적인 혜택”도 없이 12년간 전임으로 목회했던 일, 그것도 세 개의 다른 지역 교회를 “밑바닥부터” 세워 가면서 했던 일로부터 온 것이다. 그 후 19년간 지역 교회에서 목회를 하며 신학교에서 강의했던 일도 여기에 첨가할 수 있을 것이다. 그 기간에 나는 매 여름마다 거리에서 설교했으며(1950년에 시작했고, 50개가 넘는 도시들에서 설교했다), 구제 선교 사역으로 20여 개의 집회를 열었고, 40군데의 감옥에서도 집회를 열었다. 학생들에게 주어졌던 자료는 이러한 사역으로부터 나온 것이었다.
“표준적인” 근본주의나 침례교 신학교 출신 학생들과는 다르게, 우리 학생들에게는 그들의 뒤를 받쳐 줄 “친교회”가 없었다. 그들을 지원해 줄 “총회”도 없었다. 장로회나 협의회도 부재했다. “학자금 대출” 제도도, “근로 장학금”도, 교단의 지원도 없었으며, 심지어는 부모님으로부터 어떤 식으로든 도움을 받는 학생조차 드물었다. 카톨릭 교회가 대적하고, 스프링필드의 성서침례대학(BBC)과 밥존스대학교(BJU)의 졸업생 다수가 대적하고, 남침례교총회(SBC)가 대적하고, 전미교회협의회(NCCC)의 자유주의자들이 대적했음에도(뉴스 미디어와 정부까지 가세했는데도) 그들은 바깥세상으로 나가 아무것도 없는 데서 40개의 지역 교회를 세웠으며, 죽어 버린 20개의 교회에 부흥을 가져왔고, 또 동역자로 일하면서도 외부에서 열에서 열댓 개의 목회를 맡았다. 여기에 더해 45명은 해외 선교 현장에 뛰어들었으며, 이들 가운데는 사역을 위한 준비 기간이 “2년” 이하였던 경우도 많았다.
밥존스대학교의 (밥 존스 시니어가 “설교자 소년들”이라고 불렀던) “선교 협회”는 한 사람의 감독하에 있게 되었었는데(1947-1959), 그는 일평생 목회라고는 해 본 적이 없었다. 그는 1,200명의 젊은이들을 맡아 그들의 선생이 되어야 했지만, 전담 복음 전파자가 되어 본 적도 없었고, 구제 사역 책임자로 일해 본 적도 없었다. 선교사가 되어 본 적도 없었고, 교회의 부목사로 일해 본 적도 없었다. 지역 교회에 관한 한 그에게서 얼마나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었겠는가!
그가 이런 계통의 일에 대해 어떤 경험을 가지고 있었다손 치더라도, 역시나 마찬가지로 우리에게 무언가 대단한 것을 가르쳐 줄 수는 없었을 것이다. 밥존스대학에는 다음의 네 가지 사항에 있어서 성경적 진리를 절대적인 진리로 가르칠 수 있는 선생이 존재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1. 믿는 사람의 구원의 영원한 보장
2. 물침례를 주는 방식
3. “그 책”(THE BOOK) 의 절대적이고도 최종적인 권위 (“THE BOOK”은 성경“책”을 의미하는 영어식 표현이다.)
4. 천년왕국
밥존스대학교는 “초교파적”이다. 내가 그 학교에 다니던 시절(1949-1953)에는 주요한 성경 교사들이 전부 “무천년주의”를 따르는 “장로교인”이었다. 내가 박사 학위를 받던 때에 그들은 침례교로 일대 “전향”을 거쳤다(자세한 이야기는 접어 두겠다). 그럼에도 여전히 밥존스대학교는 앞서 말한 네 가지 사항에 대해서 어떤 입장도 그들의 “신조”에 밝히지 않았다. 그뿐 아니라 휴거, 이스라엘의 회복, 지역 교회의 자치권 등에 대해서도 자신들의 입장을 표명하지 않았다. 밥존스대학교의 “근본주의”는 프랭크 노리스(Frank Norris), 뷰챔 빅(Beauchamp Vick), 존 롤링스(John Rawlings)를 따랐던 텍사스주의 침례교도들의 근본주의와 달랐던 것이다.
밥존스대학교에서 나는 지역 교회에 대해서 그 어떤 것도 배우지 못했다. 내가 지역 교회에 대해 배웠던 것은 재학 당시나 “졸업 후에” 이 나라 미국의 위아래로 쏘다니며 작은 교회들에서 문자 그대로 수백 번에 걸친 모임을 개최하면서였다. 나는 이 “지역 교회”라는 과목에 대해 지역 교회들, 즉 “현장”에서 배웠던 것이다. 배이 미네트의 “맨땅”에서 성경침례교회를 시작했는데, 그 교회는 “벧엘침례교회”라는 이름으로 아직도 운영되고 있다. 파나마 시티에서는 한 철물점에서 센트럴침례교회를 시작했으며, 그 처음 이름은 “테라스파크침례교회”였다. 휴 파일 목사가 내려와서 공항을 매수하여 현재의 교회를 짓기까지 그 교회의 사역은 테네시템플의 졸업생이 다른 이들과 함께 맡았었다. 나는 이곳 펜사콜라의 “맨땅”에서 40명쯤 되는 회원들과 성경침례교회를 시작했고, 교회는 여전히 운영되는 중이다. 주일학교 인원은 650명쯤 되며, 전 세계의 사람들에게 영향을 주는 국제적인 사역이 세 가지나 있다.
지금은 나를 떠나 버린 이전 부목사는 7마일 떨어진 곳에 교회를 세웠다. 그의 이전 사역지를 “복음화”하겠답시고 말이다.
이전에 회원으로 있었던 어떤 사람은 펜사콜라기독교대학(PCC)의 땅으로부터 400야드 떨어진 곳에 교회를 세웠다. 그는 그 지역의 잃어버린 자들에 대해 진정 “부담”을 느끼고 있었던 것이다!
더 뛰어난 윤리 의식을 갖춘 사람도 있는데, 그는 펜사콜라기독교대학으로부터 3마일 떨어진 곳에 교회를 세우고는 리 로버슨(Lee Roberson) 미국의 침례교 복음 전도자이자 목사이며, 테네시 템플의 설립자이기도 하다.
을 데려와서 “사역을 필요로 하는 지역 사회에 대한, 그리고 잃어버린 혼들에 대한 부담을 하나님께서 이 젊은이의 마음에 주신 것으로 인해 하나님께 감사를 드렸다.”라는 창립 메시지를 설교하게 했다.
같은 위치에서 반 마일 안에는 또 다른 독립침례교회가 있었다. (당시 기준으로 펜사콜라의 인구수는 60,000명이었건만) 이 “사역을 필요로 하는 지역 사회”에는 20개의 독립침례교회들과 20개의 제도권 교회들이 있었다. 지금은 50개의 독립침례교회들이 있고, 20개쯤 되는 제도권 교회들이 있다. 펜사콜라는 달라스-포트워스 지역과 매우 닮았는데, 이는 그곳에선 그 누구도 “사람들을 낚으러” 가지 않기 때문이다. 목사들은 그저 “서로의 어항에서 물고기를 빼내어 바꾸기만” 할 뿐이다.
예를 들어, 오하이오의 톨레도를 보도록 하자. (뷰챔 빅의 손자이기도 한) 내 친구 하나는 목회 사역으로 부름을 받았다. 그러나 그는 자기 이전의 목사보다 그곳에 빨리 도착하지 못했다. 이전의 그 목사가 자기가 떠났던 그 지역에 다시 이사를 왔던 것인데, 그는 “바로 그 지역”으로 이사 왔다. 그리고는 자신의 아내와 아내의 친구들을 자기의 이전 사역지를 “복음화”하는 데 이용했고, 그가 남겨두고 떠났던 양들 가운데 절반을 훔쳐가 버렸다. 이 일은 “임신 축하 파티,” “결혼 전 축하 파티,” 정감 있는 작은 “야외 요리 파티,” 그리고 “친교회” 등을 통해서 이뤄졌다. 목사라면 누구나 분명 그 작전이 어떻게 수행되었는지를 알 것이다. 그것은 로스앤젤레스에 위치한 로버트 슐러의 수정교회(Crystal Cathedral)에 버금갈 정도로 영적이라고 하겠다. 우리는 이것을 “우리의 친구들이 다정한 교회를 더욱 다정하게 만들 수 있도록 열리는 다정한 친구들의 다정하고도 가족적인 친교회”라고 부른다. 성경적으로 보면 타락이 활짝 피어난 모습일 뿐이지만 말이다.
나는 (한때 이곳 펜사콜라의 신학생이었던 내 이전 부목사를 포함하여) 학생 모두에게 절대로 다른 사람의 사역지로부터 50마일 이내에는 교회를 세우지 말라고 가르친다. 만일 그가 성경대로 믿는 침례교도라면 반드시 그렇게 해야 한다고 가르친다. 50은 최소한의 수에 불과하다. 200마일이라고 하는 게 더 낫다. 나는 이전 부목사에게 내가 설교자에게 줄 수 있는 최상의 추천장을 줬다. 그러나 그가 (앞서 말한 리 로버슨처럼 신실하게도) “기도와 금식을 통해서” 결정한 내용인즉 7마일 이상 떨어진 곳에서는 사역을 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혹자는 그가 “위성 교회”를 세운 것이라고 말할지 모르겠으나, 나는 “위성 교회”라는 것이 현대에나 와서 등장한 표현이라고 생각한다. BB [다음 호에 계속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