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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를 부른 종교 재판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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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대로믿는사람들 <2012년 03월호>
순교를 두려워하지 않은 믿음의 용사 윌리엄 가디너(William Gardiner)윌리엄 가디너는 영국 브리스톨 태생으로, 상인 패기트(Paget) 밑에서 장사를 배운 청년이었다. 그의 주인은 그가 스물여섯 살이 되자 거래중매인으로 일하라고 포르투갈의 리스본(Lisbon)으로 보냈다. 가디너는 그곳에서 열성파 프로테스탄트들과 사적인 교제를 나눴고, 로마카톨릭교도들의 비위를 건드리지 않으려고 세심한 주의를 기울였다.
그러던 중 포르투갈 왕자와 스페인 공주의 혼인 서약이 있는 날이 되었다. 식이 거행되는 성당은 각계각층의 사람들로 문전성시를 이루었고, 가디너 역시 성당에 발을 들여놓은 적은 없어도 호기심에 식을 엿보았다.
결혼식을 처음부터 찬찬히 지켜보던 가디너는 눈 앞에 벌어지는 미신적인 행위들로 충격에 휩싸였다. 그날 본 그릇된 경배의 잔상들이 그의 가슴을 후려치듯이 오갔다. 손만 뻗으면 참된 복음을 쉽사리 접할 수 있는 이때에 나라 전체가 우상 숭배에 빠진 것을 보고서 비참한 맘을 금할 길이 없었다.
가디너는 도중에 죽는 한이 있어도 포르투갈에 신앙 개혁을 일으키리라는 야심에 찬 포부를 품었다. 그 원대한 목적을 이루기 위해 모든 세상일을 정리하고 빚을 갚았다. 또 장부를 정리하고 물품을 다른 사업자에게로 넘겼다. 그리고 다음 일요일, 신약성경을 들고 다시 그 성당에 찾아가 제단 가까이에 자리잡고 앉았다.
왕과 왕비가 모습을 나타내었고, 추기경이 미사를 집전하기 시작했다. 전체 의식 중 바로 이 부분에서 회중은 제병(祭屛, 성찬용 빵)을 숭배하는데, 가디너는 더 이상 견딜 수 없어 추기경에게로 펄쩍 뛰어올라 성체를 낚아채 발로 뭉개 버렸다.
깜짝 놀란 회중 틈에서 누군가가 단검을 빼들고 나와 가디너의 어깨를 찔렀다. 국왕이 그만두라고 외치지 않았더라면 한 번 더 휘둘러 그를 아예 끝장내 버렸을 것이다.
가디너는 왕 앞으로 끌려갔다. 왕은 그의 출신지를 물었다.
“저는 본시 영국 태생이며 프로테스탄트이고 생계로 물건을 팔고 있습니다. 제가 한 일은 하늘이 무너진다 해도 결코 폐하의 옥체를 경멸해서 그런 것이 아닙니다. 단지 이곳에서 벌어지는 어처구니없는 미신들과 우상 숭배를 보고서 의분을 참지 못했던 것입니다.”
그가 돌발적인 행위를 한 건 필시 다른 누군가에게 자극을 받았기 때문이란 생각에 왕은 그를 선동한 장본인을 캐물었다. 이에 가디너는 대답했다.
“제 양심 외에는 그 누구도 아닙니다. 저는 살아 있는 어떤 사람을 위해서도 제가 한 것 같은 위험천만한 일을 하지 않습니다. 그 일과 다른 모든 섬김들은 다 하나님을 향한 저의 의무일 뿐입니다.”
가디너는 감옥에 보내졌다. 그리고 리스본의 모든 영국인을 잡아들이라는 명령이 떨어졌다. 도주한 몇을 제외하고는 많은 무고한 사람들이 그 문제에 관해 사소한 것이라도 알고 있는지 고백을 받아내기 위해 종교 재판소에서 고문을 당했다. 가디너와 같은 집에 거주하던 사람은 사건의 실마리를 풀 무언가를 실토케 하려고 야만스럽기 짝 없게 다뤄졌다.
가디너 자신은 살을 도려내는 듯한 고문을 당했다. 매번 고문이 진행되는 가운데서도 스스로의 행위를 자랑스러워했다.
그리고 사형이 선고되었고 교수대 가까이에 큰 불이 붙여졌다. 그는 도르레로 끌어올려져 교수대 쪽으로 당겨진 후 불 가까이, 그러나 그것과 닿지 않을 정도의 간격을 두고서 밑으로 내려졌다. 그는 불태워져 죽었지만, 차라리 조금씩 구워져 죽었다고 하는 편이 나을 것이다. 그는 자신에게 다가온 고난을 이를 악물고서 견뎌 내었고, 자신의 혼을 기쁨으로 주님께 의탁했다.
가디너를 불살랐던 불길에서 나온 불티들이 항구 쪽으로 날아가 왕의 전함 한 척을 불태우고, 또 여타 상당한 피해를 주었다는 사실에 우리는 눈길을 돌리지 않을 수 없다. 주님은 그의 순교를 처음부터 끝까지 지켜보셨다. 이것은 결코 우연이 아닌 듯하다.
이번 사건으로 체포된 영국인들은 가디너가 죽자 곧바로 석방되었다. 그러나 그와 같은 집에 거주한 사람은 자유를 얻기까지 2년 더 감옥에 갇혀 있었다.
종교 재판에 대한 요약
전 세계적으로 종교 재판에 의해 죽임을 당한 수많은 사람들에 관해 믿을 만한 기록들을 발견할 수 없는 것이 현 실정이다. 그러나 로마카톨릭이 권력을 쥔 곳은 그 어디나 그 법정도 함께 서 있었다. 지하 감옥에서 고문당하고 거기에 감금되어 마음이 무너져 내린 수많은 사람들, 그리고 완전히 무력해져 스스로도 어찌할 수 없게 돼 버리든지 희생자들의 죽음을 보고서 서둘러 무덤으로 달려가 버린, 자신들의 생명이 생명 같지 않았던 수백만의 사람들이 얼마나 되는지는 이루 다 기록할 수 없지만, 그것은 ??포로로 삼는 자는 그도 포로가 될 것이요, 칼로 죽이는 자는 그도 칼에 죽게 될 것이라.??(계 13:10)고 분명히 말씀하신 하나님 앞에 기록되어 있을 것이다.
교황 체계의 자손뻘인 종교 재판소, 그것의 부모뻘 되는 로마카톨릭의 힘을 느끼려면, 우리는 그 시대에 시선을 돌려야 한다. 13세기에는 죽음을 방불케 하는 교황 체계의 통치가 극에 달했다. 그것은 모든 왕국들로부터 독립해 있었고, 전후 어떤 인간 왕권도 결코 휘두른 적이 없던 영향력으로 통치했음은 물론, 그것이 인간의 몸과 혼에 대해 주권을 행사할 수 있음이 인정되었고, 지상에서 의도된 모든 일에 있어 그것의 권력은 선이든 악이든 가히 측량을 불허했다. 로마카톨릭은 문학, 평화, 자유 그리고 자칭 ‘기독교’를 유럽 끝까지 전파했을진 모르나 그것의 본질은 적대적이었으니, 그것의 승리의 잔이 가득 차오를수록 그 악랄함 또한 그만큼 더 넘쳐나는 게 드러날 뿐이었다.
로마, 그것은 인간의 이성에 수치를, 인간의 미덕에는 공포와 고통을 안겨 주려는 듯, 그것의 웅대함이 절정에 이르렀던 시기에 그 괴상망측하고 무시무시한 종교 재판소들로 득실거렸던 것이다! BB