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학논단 분류
목사들이 수련회에서 한 장난질
컨텐츠 정보
- 3,260 조회
- 목록
본문
성경대로믿는사람들 <2012년 07월호>
예수전도단(YWAM) 설립자인 로렌 커닝햄(Loren Cunningham) 목사는 한 인터뷰에서 “한국 교회에 리더는 충분히 있지만 비전이 없는 것이 가장 큰 문제”라고 지적한 적이 있었다. 그러나 이것은 기형적으로 성장해 버린 한국 교회들의 현실을 잘 모르면서 내뱉은 말일 뿐이다. 비전이 없다는 현실은 말할 것도 없고, 성경대로 믿는 리더, 성경대로 믿는 목사를 찾아볼 수 없는 것이 이 나라 교회들의 현주소이다.5만여 개의 교회, 860만여 명의 교인 수를 자랑하고 있지만, 이러한 수치는 “성경적 부흥”이나 “영적 대각성”과 아무런 관련이 없다. 그러한 숫자들은 성경대로 믿는 사람들에게 어떤 의미도 부여해 주지 못한다. 다만 쭉정이들의 숫자가 얼마나 많은지, 그리고 배교가 이 땅에 얼마나 만연해 있는가를 보여 줄 뿐이다. 과연 그들 가운데 구원받은 사람은 몇 명이나 되겠으며, 성경대로 믿는 사람은 몇 명이나 되겠는가? 또 예수 그리스도께서 공중으로 다시 오실 때 휴거될 수 있는 사람은 몇 명이나 되겠는가? 그 숫자는 생각보다 미미할 것이다.
30여만 명의 목사들, 연간 계속해서 배출되고 있는 1만 5천여 명의 목사들, 소위 교계에서 “유명”하다고 하는 대형교회의 목사들, 과연 이들 가운데 성경대로 믿고 실행하는 리더는 몇 명이나 되겠는가? 곽선희 목사, 길자연 목사, 김동호 목사, 김삼환 목사, 김장환 목사, 오정현 목사, 이동원 목사, 전병욱 목사, 조용기 목사, 홍정길 목사 등 소위 무언가 되는 것같이 보이는 그런 목사들 가운데, 어느 누구도 성경대로 믿는 믿음과는 아무 상관이 없고 구원받은 성도들에게 영적 각성이나 도전, 죄에 대한 찔림, 진정한 회개, 성경적인 헌신과 섬김, 실천적인 주의 명령이나 교훈들을 더해 준 것이 아무것도 없다(갈 2:6 참조).
이유가 무엇인가? 이는 그들이 “살아 있는 자들”이 아니기 때문이다(계 3:1). 살아 있다는 이름도 있고 유명세나 평판도 있지만 실제 살아 있는 것이 아니고 모두가 죽어 있다. 그들은 마음이 부패해 있고(딤후 3:8), 진리를 상실했으며(딤전 6:5), 믿음에 관한 한 버림받은 자들이고(딤후 3:8), 파선한 자들이다(딤전 1:19). 그들의 손에 들려 있는 성경은 썩어 버렸고, 강단의 설교는 죽었으며, 그들의 실행은 변질되어 버렸다. 마치 단 몇 개의 세포에 의지한 채 숨을 쉬는, 죽어 가는 허파와 같다.
죽어 있는 자들은 결코 주님을 위해서 어떤 일도 할 수 없다. 그렇기에 하나님께서는 잠자는 자들을 향하여 “죽은 자들로부터 일어나서 예수 그리스도의 빛을 받으라.”고 명령하시는 것이다(엡 5:14). 하지만 그들은 여전히 깨어나지도, 빛을 받지도 못했으면서, 자기들의 유명세나 목사라고 하는 직함만 믿고 주님을 위해 무언가를 하겠다고 나서고 있는 것이다.
지난 6월 18,19일에 있었던 한국목회자협의회(이하 한목협) 전국 수련회가 그 단적인 예라 할 수 있겠다. 15개 교단 소속의 350여 명의 목회자들이 한자리에 모였는데, 그들은 나름대로 자성의 시간도 가지고 한국 교회의 현실을 개탄하며 회개도 하면서 무언가 새로운 결의를 다졌다. 그러나 죽어 있는 목회자들에게서 무엇을 기대할 수 있겠는가?
우선 그들은 한국 교회가 “세속적인 영성”을 벗어나 고난 받는 사회의 현실에 직접 뛰어들 수 있는 “사회 참여적 영성”을 가져야 한다고 촉구했다. 이 죽어 있는 자들은, 우상을 숭배하는 매우 미신적인 아테네의 철학자들처럼 무언가 “새로운” 용어를 만들어 내길 좋아한다(행 17:16-21).
도대체 이 성경에도 없는 “사회 참여적 영성”이란 무엇을 말하는 것인가? 이것은 미국의 근본주의자 제리 팔웰(Jerry Falwell)을 걸려 넘어지게 했던 “도덕적 다수”(Moral Majority) 또는 이 나라 유명한 목사들을 파선하게 만든 “기독교사회책임”이라고 하는 “기독교 NGO 단체”(서경석 목사, 김진홍 목사, 옥한흠 목사-오정현 목사, 김준곤 목사-박성민 목사, 이동원 목사 등은 이와 같은 운동에 직간접적으로 관여했다.)와 맥락을 같이한다. 더 깊이 들어가 보면, 스스로의 노력에 의해 이 땅에 유토피아를 세우려는 자들의 인본주의 사상이나 후천년주의 신학과 맞닿아 있다. 그들 모두는 “긍정적인 사고방식”으로 무장한 채, 이 사라져 가는 세상을 인간의 힘으로 보존하고 바꿀 수 있다고 믿는 자들이다.
그러나 살아 있는 유기체는 죄와 지옥에 대해 설교하고, 복음과 진리를 선포하며, 하나님께서 진리를 거스르는 자들의 공격과 계략을 분쇄해 주시도록 기도하는 것 외에 당대의 사회적, 정치적 이슈에 결코 개입해서는 안 된다. 하늘나라의 시민권을 가진 자들로서 복된 소망이신 주 예수 그리스도의 소망을 기다리는 자들에게 그런 이슈들이 왜 중요하겠는가! 그리스도 안에서 그런 이슈들에 개입하고 무언가를 바라는 누군가가 있다면 그는 가장 비참한 인생을 사는 사람이라 할 수 있다(고전 15:19).
이러한 “사회 참여적 영성”에 관하여 전병금 목사(한목협 대표회장)는 “오늘날 교회들이 외적인 고통의 문제를 철저히 잊어 버렸다.”고 지적하면서, “사회봉사 수준에 머무르지 말고 사회 구조적인 문제까지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역설했다. 그러면서 그는 “온전한 영성은, 사회 참여적 영성을 포함하며 국가적, 민족적, 세계적인 문제 등에 사회참여의 목소리를 내는 것”이라고 촉구했다.
그러나 어떤 인간도 (설령 그가 성경대로 믿는 사람이라 할지라도) 국가적, 민족적, 세계적인 문제들을 온전하게 해결할 수 있을 만큼 그렇게 대단한 존재가 아님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전 목사는 레닌이나 마르크스, 트로츠키가 그랬듯이 “인간”에 대하여 지나친 신뢰를 갖고 있었다. 말하자면 이것은 인간에 관해 하나님께서 하신 말씀들(사 55:7-8; 40:15,17; 64:6, 눅 11:13, 막 7:21, 엡 2:1-4, 갈 1:4)을 정면으로 거부하는 태도와 다름없는 것이었다. 말씀을 대적하는 “영성”이라면, 결코 성령께서 하시는 역사가 아니다. 오히려 그것은 악한 영의 인도를 따르고 있는 것이다.
“외적인 고통의 문제”에 관한 한 구원받은 성도들이 해결해야 할 부분은 단 한 가지도 없다. 『피조물이 간절한 기대를 가지고 하나님의 아들들이 나타날 것을 기다리고 있으니 피조물이 허무한 데 굴복하는 것은 자의가 아니요, 오직 소망 가운데 그것들을 굴복케 하시는 그분 때문이며 피조물 자체도 그 썩어짐의 속박으로부터 해방되어 하나님의 자녀의 영광스러운 자유에 이를 것이기 때문이라. 모든 창조물이 이제까지 함께 신음하며 고통받는 것을 우리가 아노니 그들뿐만 아니라 성령의 첫열매들을 가진 우리까지도 속으로 신음하며 양자 되는 것, 곧 우리 몸의 구속을 기다리고 있느니라』(롬 8:19-23). 이 구절에서 고통의 문제에 관하여 성도들에게 ‘무엇을 해야 한다’는 어떤 명령도 주어지지 않는다. “기다리는 것” 외에는 해야 할 일이 아무것도 없는 것이다(롬 8:19,23,25). 오직 몸이 구속되는 날을 기다려야만 하는 것인데, 그것은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재림하시는 때이다. 말하자면 오늘날 정치, 사회, 경제적으로 겪고 있는 모든 외적인 고통의 문제들은 주님께서 다시 오실 때에야 비로소 완전히 해결될 수 있는 것이다.
그런데 사실 교회들이 “철저하게” 잊어버린 보다 더 심각한 문제는 “외적인 고통의 문제”가 아니었다. 곧 죄인들이 죽음 이후에 받게 될 심판과 지옥의 고통에 관한 문제였다. 그래서 오늘날 배교한 교회들은 복음을 전하지 않는다.
예수님께서 다시 오셔서 외적인 고통의 문제를 해결하실 때까지 모든 구원받은 성도들이 전념해야 할 한 가지는, 복음을 전파함으로써 죄인들을 지옥의 형벌에서 구원하는 일이다. 말하자면 “혼의 고통”의 문제를 다루어야 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 배교한 시대의 죽어 버린 목회자들과 교인들은 죄와 심판, 지옥에 관하여 듣고 싶어하지도, 말하고 싶어하지도 않는다. 그래서 그들은 성경에서 아예 지옥이란 단어를 제거해 버리거나 설교 강단에 올려놓지도 않는 것이다.
이런 식으로 그들은 마땅히 유념해야 할 “혼의 고통의 문제”는 외면한 채, 하나님께서 명령하지도 않으신 “외적인 고통의 문제 해결”에만 애써 매달리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그들의 주된 관심사는 영의 거듭남이나 혼의 구원, 몸의 구속에 있지 않고, 인종차별, 억압받는 소수, 공정한 부의 분배, 탈북자 문제, 통일 문제, 정상 회담, 정치 및 사회 참여, 기독교 문화 확산 등에 있다. 이유가 무엇인가? 이는 그들 스스로가 세상으로부터 인정받는 사람이 되고 싶기 때문이다. 소위 유명한 목사가 되어서 세상 사람들의 존경을 한 몸에 받는 “스타”가 되고 싶은 것이다. 하지만 그들은 대환란 때 “온 인류의 스타”로 군림하게 될 적그리스도의 길을 예비하고 있을 뿐이다.
참석한 목사들 가운데 하나인 이정익 목사(신촌성결교회)는 “(성직자는) 스타가 아니라, 목회자로 돌아가 세상으로부터 재신임을 얻어야 한다.”고 강조한 바 있다. 그러나 아이러니컬하게도 한목협의 목회자들은 세상으로부터 재신임을 얻음으로써 오히려 목회자의 길을 버리고 “스타”가 되는 길을 모색하고 있는 것이다.
『너희 가운데 현명한 사람이 없다는 것이 사실이냐? 자기 형제들 사이에 판단할 수 있는 사람이 정말 한 사람도 없느냐?』(고전 6:5) 실제로 한목협 안에는 어떤 영적인 문제들을 분별할 수 있는 사람이 단 한 사람도 없었던 것이다. 이날 참석한 350명 가운데 단 한 명도 그들의 모순적인 행동과 주장들을 올바르게 분별하여 문제로 지적해 내지 못했다.
무엇이 문제인가? 그들은 주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빛을 받지 못한 죽은 목사들이었던 것이다. 성경은 바로 그런 죽은 시체들로부터 깨어날 것을 명령하고 있는 것이다. 『잠자는 자여 깨어라. 그리고 죽은 자들로부터 일어나라』(엡 5:14). BB