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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통의 보수신학”으로 위장한 조용기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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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대로믿는사람들 <2012년 11월호>
여의도 순복음교회 조용기 원로목사가 지난 9월 25일 주요 일간지들에 “저의 신앙관을 공개합니다”라는 성명을 광고했다. 조 목사는 ”요즘 WCC 문제가 한국 교회 신앙의 혼선을 가져오고 저에게도 많은 질문이 쇄도하고 있습니다. 그동안 저의 소견을 밝히지 못한 것은 전 세계에 있는 친구들과 동역자들에게 미치는 영향을 고민한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한국 교회의 전통적인 신앙이 중심을 잡고 발전하기 위하여 1,200만 성도, 5만 교회, 그리고 10만의 동역자들에게 저의 신앙관을 공개하고자 합니다.”라고 성명의 서두를 떼었다. 그동안 WCC에 대한 자기 소견을 밝히지 못한 것이 전 세계에 있는 그의 친구들과 동역자들에게 미치는 영향을 “고민했기” 때문이라는 말이 무슨 뜻인가? 해석하기에 따라서는 조 목사 자신이 WCC에 대해 입을 열면 자기 친구들과 동역자들에게 “나쁜 영향”을 끼칠 수도 있음을 암시하는 듯하다. 조 목사는 이렇듯 시작부터 매우 모호한 말로 독자들을 혼란에 빠뜨렸다. 자기 표현력이 이 정도밖에 안 되는데 “한국 교회의 신앙의 중심을 잡아주는 인물”로 자처하며 자기 신앙관을 밝히겠다고 나선 것이다. 그러나 그의 신앙관을 읽어 보니, 서투른 삼류배우가 자기 돈 들여 길거리에 무대를 만들고 자신과 어울리지 않는 가면으로 위장하고서 한국 교회의 영적 노숙자들에게 황당무계한 대사를 말하고 있을 뿐이었다.자화자찬(自畵自讚) “정통의 보수신학”
조 목사는 자신이 “정통의 보수신학”을 지향하고 있다고 했다.
『기독교 정통의 보수신학을 지향하고 있습니다. 저는 100년 전부터 우리나라에 온 영-미 선교사들과 신사참배를 거부하다 순교한 선배들의 보수주의 신앙을 계승하고 있습니다』
정통(Orthodoxy)이란 직역성경을 기조로 한 신앙체계로서 성경을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믿는 신념을 말한다. 물론 그 성경은 하나님께서 섭리로 보존하신 진짜 성경을 말하며, 우리 민족에겐 변개되지 않은 바른 성경인 <한글킹제임스성경>을 주셨다. 또 보수(Conservatism)신학이란 바른 성경으로 정립된 바른 교리를 가르치고 실행하는 교회들이 지켜 온 신학적 체계를 말한다. 한국에는 적어도 <한글킹제임스성경>이 소개되기까지는 정통신앙도 보수신학도 없었던 것이다. 1960년대에 갑자기 등장한 은사주의 목사가 자신의 신학을 “정통의 보수신학”이라고 했을 때에는 그보다 황당한 주장도 없는 것이다.
조 목사의 신학적 기초가 된 오순절 운동은 찰스 폭스 파함(Charles Fox Parham: 1873-1929)이라는 인물로부터 시작되었다. 오순절 은사주의자들은 파함이 발단이 된 20세기 성령운동의 본격적인 시작 연도를 1906년으로 잡고 있는데, 이 시기에 일어난 성령운동을 흔히 “아주사(Azusa) 거리의 부흥”이라고 부른다. 그런데 한 가지 특이한 사항은 소위 성령운동이란 것에 동반되었던 ‘방언하는 사람 자신도 모르는 이상한 방언’과 그 소리를 해석한다는 통역, 환상, 예언, 축사(逐邪), 신유 같은 일들이 ‘미국’에서는 1906년 L.A. 아주사 거리에서, ‘유럽’의 노르웨이와 스웨덴에서는 각각 1906년과 1907년에, ‘남미’의 칠레와 브라질에서는 1909년과 1910년에, ‘아시아’ 지역인 인도와 “한국”에서는 각각 1906년과 “1907년”(속칭 ‘평양대부흥’의 해)에, 그리고 ‘아프리카’도 같은 시기에, 그러니까 20세기 초에 전 세계적으로 집중적으로 일어났다는 사실이다. 이것은 교회들이 19세기 필라델피아 교회 시대 말엽에 <킹제임스성경>(KJV)을 버리고 1880년대부터 영어 개역성경(Revised Version, 신약 1881년, 구약 1885년) 같은 변개된 성경을 택한 뒤로 세기가 바뀌면서 약 5년(1906-1910) 동안 집중적으로 일어났다는 데에 그 의의가 크다 하겠다. 마귀는 교회들이 바른 말씀을 버리고 부패한 성경을 택하자 오염된 성경들로 그들을 병들게 만드는 작업을 진행한 뒤 때가 되자 믿음이 아닌 “체험”을 강조하는 마귀의 신학으로 배교한 교회들을 완전히 파멸시켜 버린 것이다. 한마디로, 참되신 그리스도 안에 있는 진리의 사랑을 거부한 교회들에게 “강력한 미혹”이 보내져 “은사주의자” 적그리스도의 도래를 준비케 한 것이다. 『그 악한 자가 오는 것은 사탄의 역사에 따라 모든 능력과 표적들과 거짓 이적들과, 멸망하는 자들 안에 있는 모든 불의의 속임수로 오는 것이니, 이는 그들이 진리의 사랑을 받아들이지 아니하여 구원을 받지 못하였기 때문이라. 이로 인하여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강력한 미혹을 보내시어 거짓말을 믿게 하심은 진리를 믿지 않고 불의를 좋아하는 모든 자로 심판을 받게 하려 하심이라』(살후 2:9-12). 그리하여 20세기와 21세기의 배교한 교회들에서는 참된 신약 교회사에서 19세기 필라델피아 교회 시대까지 풍미했던 “정통의 보수신학”을 찾아볼 수 없게 되었고, 대신 비성경적인 교단 교리에 은사주의의 방언과 신유, 예수 믿으면 만사형통하고 복 받는다는 거짓 교리가 접목된 “잡종 신학”이 대세를 이루게 된 것이다.
20세기 초에 시작된 은사주의의 맥을 이어 오늘날 자칭 세계 최대 교회라는 것을 이끈 조용기 목사는 성경에 없는 뜻 없는 소리(meaningless sound)를 방언이라며 들고 나와 이 나라 교계를 은사주의 교리로 혼탁하게 만든 장본인이다. 성경에 따르면 방언이란 “외국어”(foreign language)였다. 사도행전 2장에 보면 지중해 연안 국가들에 흩어져 있었던 유대인들이 예루살렘으로 경배드리러 왔을 때 그들을 향하여 예수님의 열한 제자들이 성령으로 충만하여 “자기들의 고유 언어(외국어)”로 설교한 것이 방언이었다. 『그러자 그들이 모두 놀라고 이상히 여겨 서로 말하기를 “보라, 말하고 있는 이 사람들은 모두 갈릴리 사람이 아니냐? 그런데 어떻게 해서 우리 각 사람이 우리가 태어난 곳의 고유 언어로 말하는 것을 듣게 된단 말인가?... 우리가 그들이 우리의 언어로 하나님의 위대한 일들을 말하는 것을 듣고 있도다』(행 2:7,8,11). 신약성경에서 방언은 『이는 그가 더듬는 입술과 다른 언어로 이 백성에게 말씀하실 것임이라.』는 이사야 28:11의 예언이 성취된 것이었다. 성경의 저자이신 성령께서는
『율법에 기록되기를 “주가 말하노라. 내가 이 백성에게 다른 방언들과 다른 입술들을 가진 사람들을 통해 말할 것이지만 그들은 그 모든 것으로도 내게 듣지 않을 것이라.”고 하였느니라.』고 고린도전서 14:21에 기록하심으로써 방언에 관한 “구약의 예언”이 사도들의 시대에 “성취”되었음을 알려 주셨다. 성경적인 방언은 『다른 언어』, 곧 “외국어”였으며, 『이 백성』, 곧 “믿지 않는 유대인들”을 대상으로 한 『표적』(고전 1:22; 14:22)으로서의 초자연적인 외국어 구사 능력이었던 것이다. 그것은 신유와 함께 『사도의 표적들』(고후 12:12)로 분류되며 그 표적들은 사도들의 시대가 저물면서 중지되었다(고전 13:8, 딤전 5:23, 딤후 4:11,20). 그런데 이것을 흉내내어 똑같이 ‘방언’이라고 이름하며 이상한 소리를 내면서 “갑자기” 등장한 것이 소위 “순복음”(Full Gospel)이란 집단이었다. 그들은 6·25 전쟁으로 무너진 경제재건의 분위기를 틈타 가난과 질병으로 고생하는 민초(民草)들에게 “예수 믿으면 병 낫고 잘 산다.”고 가르쳐 순진한 사람들로부터 헌금을 걷어 치부했고 조용기 목사처럼 교회재벌이 되기도 했다. 그런데 조 목사의 은사주의 친구인 로버트 슐러(Robert Shuller)는 조 목사처럼 “번영 신학”을 가르치며 교인들에게서 헌금이나 거둬들이고 교회성장운동을 벌이다가 “망해” 버렸다. 번영은 무슨 번영이란 말인가! 그것은 “모순덩어리” 궤변일 뿐 전혀 진리가 아니다. 그것을 가르쳐서 걷은 헌금으로 치부하던 목사마저도 망해 버리지 않았던가! 마귀에게 속았던 것이다. 친구가 망해 버린 조 목사의 세계교회성장운동 본부는 지금 어떻게 되었는가? 같은 은사주의 동료들인 베니 힌(Benny Hinn), 짐 베이커(Jim Baker), 오랄 로버츠(Oral Roberts), 존 킬패트릭(John Kilpatrick), 케네스 해긴(Kenneth Hagin), 케네스 코플랜드(Kenneth Copeland), P.H. 해먼드(Hammond), 돈 노리(Don Nori) 등은 어떻게 되었는가? 그들은 정체가 탄로나자 수면 아래로 가라앉아 버렸다. 진리를 위해 아무 일도 하지 못하는 깡통 허수아비들이었던 것이다.
D.L. 무디(Moody)에 의해 무디성경학교 교장으로 발탁된 탁월한 성경학자인 R.A. 토레이(Torrey, 1856-1928)는 1900년대 초의 오순절집회의 무질서와 당시 “자유연애의 뜨거운 침대”라고 불리던 오순절 운동을 둘러싼 스캔들에 실망하여 오순절 운동을 근대 교회에 나타난 운동 가운데 가장 부도덕한 운동이라고 비판했다. 이런 오순절 성령운동이 성령께서 이끄신 운동이겠는가? 성경을 아는 성도는 오순절 은사주의를 결코 성령에 의해 시작된 신학으로 보지 않는다. 어제의 은사주의는 오늘의 은사주의일 뿐이다. 그것은 “정통의 보수신학”이 아니다. 20세기 초에 갑자기 등장한, 성경적 기원도 없고, 신실한 주의 종들이 가르친 적도 없는, 참된 “정통의 보수신학”을 거스르는 돌연변이 이론(異論)이며, 바른 말씀을 저버린 교회들이 썩은 성경을 먹고 시름시름 앓아누운 사이 마귀가 심고 간 “독보리”인 것이다(마 13:25). 이런 은사주의 목사가 자신을 “정통의 보수신학 지향자”라 했을 때 우습다는 생각이 절로 나지 않겠는가? 실로 지나가던 견공(犬公)이 포복절도(抱腹絶倒)할 일인 것이다.
WCC에 관한 “자가당착(自家撞着) 증후군”
또한 조 목사는 성명에서 자신의 WCC 반대 입장을 공언했다.
『종교 다원주의를 거부합니다. WCC는 종교다원주의, 동성결혼 허용, 공산주의를 포용하며 다양성을 위장하는 혼합종교 성향이지만, 저는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구원을 강조하는 성서적 삼위일체 신앙을 전하고 있습니다.』
이 글만 보면 조용기 목사가 마치 사악한 WCC를 반대하는 사람처럼 보일 것이다. 그러나 그가 지금까지 벌인 기회주의적인 말들을 종합해 보면 생각이 싹 바뀔 것이다. 이제부터 조 목사의 ‘말 바꾸기 게임’을 관람해 보도록 하자.
“기독교는 다원주의를 절대 허용할 수 없으며, 구원은 오직 예수님밖에 없다. WCC는 종교다원주의를 주장하지 않고 있다”(2012년 3월 2일 CBS TV 특집 좌담 ‘한국 교회와 WCC 부산총회’).
“나는 죽어도 WCC가 아니다. WCC는 개들이나 하는 것이다. 순복음이 WCC를 하겠는가. 순복음처럼 복음주의가 어디에 있는가?”(2012년 7월 10일자 <아멘넷> 보도)
“WCC는 종교다원주의, 동성결혼허용, 공산주의를 포용하며 다양성을 위장하는 혼합종교 성향이지만, 저는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구원을 강조하는 성서적 삼위일체 신앙을 전하고 있습니다”(2012년 9월 25일 일간지에 낸 성명).
“우리는 (WCC) 부산총회가 일부의 우려와 오해의 소지를 말끔히 씻어내고 성공적으로 치러지기를 소망한다”[WCC의 문제점들을 WCC 내의 “소수 사람들”과 “몇몇 회원들의 모호한 언행,” “일부의 주장,” “일부 인본주의적 신학의 모습” 탓으로 돌리며](“기독교대한하나님의성회(여의도순복음) 총회원 일동”이 2012년 10월 8일 국민일보에 “조용기 총재목사님의 뜻을 따라” 낸 성명).
우리는 이렇듯 말의 앞뒤가 안 맞고 처음의 자기주장을 스스로 부인하는 것을 “자가당착”(自家撞着)이라고 한다. 반복적이기에 거의 “증후군”에 가깝다. 진리의 지식도 영적 분별력도 없는 이가 간에 붙었다 쓸개에 붙었다 해온 행태가 이제는 자신이 만든 줄로 제 몸을 스스로 묶어 버린 자승자박(自繩自縛)의 형세를 만들어 버렸다. 이쯤 되면 그와 그의 교회는 자기 현실을 알아 자포자기(自暴自棄)하고 WCC에 대해, 무엇보다도 “성경의 진리”에 대해 함구해야 마땅하지 않겠는가!
카멜레온이 체색을 바꾸는 이유는 천적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하려는 것과 먹이사냥을 위해 주변 환경에 맞춰 위장하려는 것이다. 그러나 아무리 위장하려 해도 카멜레온은 카멜레온일 뿐이다.
지금까지 살펴본 내용들을 종합해 보면, 조 목사가 “위장술”에 매우 능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는 자신을 “정통의 보수신학”으로 위장했고, 복음도 아닌 “순복음”을 가르쳐 왔고 또 “개인 전도는 쑥스럽기도 하고 부끄러워 잘 못한다.”면서 “복음주의”로 위장했으며, WCC에 대한 찬성과 반대를 오감으로써 자기 정체를 쉬 감지할 수 없게 위장했다. 주님은 복음도 전하지 못하면서 목사로 위장해 이 소리 했다 저 소리 했다 하며 두 마음을 쏟아내는 것은 정욕적이며 마귀적인 것이지 하나님께서 부르신 사람에게서 나올 수 있는 행보가 아니라고 말씀하신다(약 1:8; 3:10-16). 주님께서 부르신 “진짜 하나님의 종”의 진솔한 고백을 들어보라! 『그러므로 우리가 자비를 받은 것과 같이 이 직분을 받았으니... 오히려 감추어진 수치스러운 일들을 버리고 교활함 가운데서 행하지 아니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거짓되이 다루지 아니하며 오직 진리를 나타냄으로써 하나님 앞에서 우리 스스로를 각 사람의 양심에 추천하노라』(고후 4:1,2). 하나님께서 부르셔서 들어쓰시는 종에게는 반드시 그 증거가 있기 마련이다. 그렇지 않기에 자기가 쳐놓은 덫에 스스로 걸려들고 있는 것이다. 악인은 입술의 죄과로 올무에 걸리게 된다(잠 12:13). 에디오피아인이 그의 피부를 바꿀 수 없고 표범이 그의 점들을 바꿀 수 없듯이, 악을 행하는 데 익숙한 사람은 그 무슨 수로 위장한다 해도 자신의 실체를 가릴 수 없음을 알아야 하는 것이다(렘 13:23). BB