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가 진리의 말씀을 올바로 나누어 자신이 하나님 앞에 부끄럽지 않은 일꾼으로 인정받도록 공부하라(딤후 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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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의 죽음”으로 낳으신 “교회”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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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대로믿는사람들 <2024년 10월호>

진정한 “주기도문”인 “요한복음 17장”에는 “아버지”와 “아들의 죽음”이 언급되며,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에 관한 특별한 계시가 주어진다. “교회”는 영원하신 “아버지”께서 “아들의 죽음”을 통해 낳으셨기에 그 가치가 무한하고 “아버지”와의 관계 또한 영원하다. 하나님의 피로 사신(행 20:28) “하나님의 교회”가 거룩하고 의로우신 “아버지”를 섬기는 길은 “순결한 성별”뿐이다. “교회”는 하나님의 아들의 죽음으로 자신을 낳아 주신 “아버지”께 나아가는 성경적으로 올바른 길을 알고 있어야만 한다.

예수님께서는 『아버지시여』(요 17:1)라는 말로 그분의 기도를 시작하셨다. 요한복음 17장에 기록된 주님의 기도는 “아들”께서 “아버지”를 부르는 것으로 시작된 것이다. 성경은 이 “아들”과 관련하여 “아버지”를 다음과 같이 계시한다.

1 아들을 세상에 보내신 참되신 분(『나를 보내신 분은 참되시도다.』 - 요 7:28),

2 말씀이신 아들과 함께 계셨던 분(『태초에 말씀이 계셨고, 그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 요 1:1, cf. 요일 1:2),

3 아들을 세상에 구주로 보내신 분(『우리는 아버지께서 아들을 세상의 구주로 보내신 것을 보았고』 - 요일 4:14),

4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한 처녀의 몸을 통해서 낳으신 분(『그러므로 주께서 친히 한 표적을 너희에게 주시리라. 보라, 한 처녀가 임신하여 한 아들을 낳으리니 그의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 사 7:14, cf. 시 2:7, 히 1:5,6, 요 1:14),

5 자신과 인간 사이에 중보자 예수 그리스도를 세우신 분(『하나님은 한 분이시요,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 중보자도 한 분이시니, 곧 사람이신 그리스도 예수시라.』 - 딤전 2:5),

6 죄인들이 화해해야 할 대상이신 분(『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안에 계셔서 세상을 자신과 화해하게 하시며』 - 고후 5:19),

7 자신과 화해한 죄인들에게 성령을 보내시어 모든 진리를 가르치시는 분(『그러나 위로자이신 성령을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시리니』 - 요 14:26, 『진리의 영이신 그분이 오시면 너희를 모든 진리로 인도하시리라.』 - 요 16:13),

8 우리에게 천상에 있는 모든 영적인 복을 주신 분(『그리스도 안에서 천상에 있는 모든 영적인 복으로 우리에게 복 주신 하나님,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께서는 복되시도다.』 - 엡 1:3),

9 우리를 거듭나게 하시고, 산 소망을 갖게 하시며, 우리를 위해 하늘에 유업을 간직해 두셨을 뿐만 아니라, 자신의 능력으로

우리를 보호하고 계시는 분(『하나님,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를 송축하리로다. 그분은... 우리를 거듭나게 하사 산 소망을 갖게 하셨으며 너희를 위하여 하늘에 썩지 않고 더럽지 않고 쇠잔하지 않는 유업을 간직해 두셨으니 너희는 마지막 때에 나타내려고 예비하신 구원을 얻기 위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능력으로 보호받고 있느니라.』 - 벧전 1:3-5),

10 주 예수 그리스도를 높이심으로써 함께 영광을 받으시는 분(『모든 혀가 예수 그리스도를 주라 시인하여 하나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셨느니라.』 - 빌 2:11).

11 영과 진리로 경배를 받으시는 분(『하나님은 한 영이시니 그분께 경배드리는 자들은 영과 진리로 경배드려야만 하리라.』 - 요 4:24),

12 홀로 영원무궁토록 찬양과 영광을 받으시는 분(『영원무궁토록 찬양받으실 하나님,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 - 고후 11:31).

위와 같은 “아버지”와 “아들” 사이의 근본적인 관계는 인간이 영생을 얻으려면 “아버지와 아들을 동시에 알아야 한다”는 점을 보여 준다. 『영생은 이것이니, 곧 사람들이 유일하시고 참 하나님이신 아버지와 아버지께서 보내신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옵니다』(요 17:3). 말하자면 “인간 예수”를 아는 것은 인간의 구원에 아무런 도움이 안 되며, “셋째 하늘의 아버지”께서 “보내신” 분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시라는 사실을 알아야만 구원에 이를 수 있는 것이다.

“아버지”와 그분께서 보내신 “예수 그리스도”는 모든 것을 공유하실 정도로 “일체”이시다. 『나의 모든 것은 아버지의 것이오며 또 아버지의 것은 나의 것이옵니다』(요 17:10). 여기서 우리는 “삼위일체”로서의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를 알아야 한다.


1 성경은 하나님으로서의 예수 그리스도를 아버지 하나님과 동등하신 분으로 묘사한다. 『나와 나의 아버지는 하나니라』(요 10:30). 『나를 본 자는 아버지를 보았느니라』(요 14:9).

2 예수 그리스도를 보면 아버지를 보는 것인 이유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나님, 곧 아버지의 형상이시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형상이신 그리스도』(고후 4:4). 『그분 안에는 신격의 모든 충만함이 몸의 형태로 거하시나니』(골 2:9, 신격의 일부가 아니라 “신격의 모든 충만함”을 지니신 분, 곧 완벽한 “하나님”이시다!).

3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하나님으로서의 영예를 버리고 종의 형체인 사람과 같은 모양으로 나타나셔서 자신을 낮추셨기 때문에”(빌 2:7,8) 아버지께 종속되셨던 것이지 결코 “신격”을 버리신 분이 아니셨다. 예수님께서는 『신격[Godhead]』, 곧 “삼위일체”의 한 분으로서 아버지와 동등한 분이시다. 아버지와 아들께서는 두 분 다 “참 하나님”이신 것이다. 『그분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 이분은 참 하나님이시며』(요일 5:20). 『참 하나님이신 아버지』(요 17:3).

4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마태복음 17장의 변형산에서 성육신 이전의 “하나님”으로서의 영광을 잠시 보여 주셨다. 『그의 얼굴은 해처럼 빛나고 그의 옷은 빛처럼 희어지더라』(마 17:2).

5 아버지께서는 창조주이시며 구약의 주 여호와 하나님이신데, 그분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우리와 똑같은 육체의 모양을 입고 나타나셨다. 『우리에게 한 아들이 주어졌음이니... 그의 이름은... 영원하신 아버지라』(사 9:6). 『하나님께서는 육신으로 나타나셨고』(딤전 3:16).

성경은 신구약 성경 모두에서 “예수 그리스도”께서 “참 하나님”이심을 명백히 밝히고 있다. 『그러나 아들에게 말씀하시기를 “오 하나님이여, 주의 보좌는 영원무궁하며』(히 1:8). 『오 하나님이여, 주의 보좌는 영원무궁하며』(시 45:6). 바로 이 하나님, 곧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구주”, 곧 『구주 예수 그리스도』(벧후 3:18)이시며, 그리스도인들은 이 『위대한 하나님이신 우리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스러운 나타나심』(딛 2:13)을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요한복음 17:1에서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르신 아들께서는 다음과 같이 기도하셨다. 『그 시간이 왔나이다. 아버지의 아들을 영화롭게 하셔서, 아들도 아버지를 영화롭게 하게 하옵소서.』 시간이 시작된 이후 많은 시간이 흘렀지만, 『그 시간』과 같은 시간은 그때까지 지나간 적이 없었다. 즉 『그 시간』은 아버지의 아들께서 갈보리 십자가에서 죽으실 시간이다.

『그 시간』은 아버지와 아들의 뜻이 일치하여 세상이 시작되기 이전부터 정해진 특별한 시간이었다. 『영생의 소망 안에서 주어진 것으로, 이 영생의 소망은 거짓말하실 수 없는 하나님께서 세상이 시작되기 이전에 약속하셨다가』(딛 1:2). 이 약속은 사람에게 주어진 것이 아니었다. 『세상이 시작되기 이전에』 사람은 없었다. 이것은 하나님의 아들께서 죄인들을 위해 죽어야 한다는 제안을 창세 전에 아버지 하나님께로부터 들었을 때 그 아들께 주어진 약속이었다. 사람으로 태어난 뒤 죄인들을 위해 죽으면 “아버지”께서 그분을 “부활”시켜서 “영생”을 주시겠다는 약속이었던 것이다. 이 『영생의 소망』을 품은 “아들”께서는 그분 자신이 하나님이시면서도 실로 “그 시간”을 위해 “육신으로 나타나셨고”(딤전 3:16), “그 시간”을 위해 세상으로 들어오셨는데, 바야흐로 “그 시간”이 이르렀던 것이다. 『아버지시여, 그 시간이 왔나이다. 아버지의 아들을 영화롭게 하셔서, 아들도 아버지를 영화롭게 하게 하옵소서』(요 17:1). 그렇다면 “아들”께서 십자가에 못박혀서 죽으셔야 할 “그 시간”은 요한복음 17장에서 드러나는 “아버지”와 어떤 관계가 있는 것일까? “아들”께서는 “십자가의 죽음”을 앞두고서 그분 자신의 아버지를 『거룩하신 아버지』(요 17:11)와 『의로우신 아버지』(요 17:25)로 불러드렸다. 이 두 호칭은 “그 시간,” 곧 “아들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실 일”이 “아버지”의 두 성품과 갖는 관계를 보여 준다.

1 『거룩하신 아버지시여』(요 17:11) : 하나님께서는 빛이시기에 그분 안에는 어두움이 전혀 없다(요일 1:5). 하나님의 이와 같은 거룩하심은 “죄에 대한 그분의 증오”를 의미한다. 『주께서는 정결한 눈을 가지셨기에 악을 차마 보지 못하시며 죄악을 볼 수도 없나이다』(합 1:13). 하나님께서는 그분의 거룩하신 성품에 따라 어두운 죄를 반드시 심판하셔야 하는 것이다. 『보라, 너희는 주를 거역하여 죄를 지은 것이니, 반드시 너희의 죄가 너희를 찾아낼 것임을 알라』(민 32:23).
거룩하고 『영원하신 하나님』(롬 16:26)께 죄를 지은 인간이 자신의 죗값을 치른다면 그 대가는 『영원한 멸망의 형벌』(살후 1:9)이어야만 한다. 하나님께서는 『소멸케 하시는 불』(신 4:24)이시다. 죄인이 스스로 속죄하고자 한다면 『결코 꺼지지 않는 불 속인 지옥』(막 9:43)에서 직접 영원히 불타는 길밖에 없는데, 바로 이것이 인간 스스로 할 수 있는 속죄이다. 말하자면 죄인은 자신을 구원할 수 없다는 점에서 한계에 부딪히고 마는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그와 같은 죄인을 구원하시려고 죄의 대가를 대신 치를 “영원한 속죄제물”을 마련하셨다. “하나님의 아들”께서 죄인들을 대신해 죽으신 것이다! 죄를 싫어하셔서 죄인들에게 죽음을 선포하신 하나님께서, 죄인들을 사랑하셔서 그분의 아들을 그 죄인들의 자리에서 대신 죽게 하셨으니, 이것이 바로 “대속”(代贖)이다. 죄에 대한 하나님의 공의와 죄인을 향한 하나님의 사랑을 동시에 충족시키기 위해 하나님의 아들께서 갈보리 십자가에서 대신 속죄하는 심판을 받으셨던 것이다! 『그가 친히 나무에 달린 자신의 몸으로 우리의 죄들을 담당하셨으니, 이는 우리가 죄들에는 죽고 의에는 살게 하려 하심이니라.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너희가 낫게 되었느니라』(벧전 2:24).

2 『오 의로우신 아버지시여』(요 17:25) : 이 호칭은 의로우신 하나님께서 악인을 의롭다고 선언하셔야 하는 일의 문제를 보여 준다. 영원히 멸망할 죄인들을 불쌍히 여기신 하나님께서는 실수와 오류투성이이요, 사악하고 반역적이며, 헛되고 아무것도 아니며, 모태로부터 곁길로 벗어난 죄인들을 의롭다고 선언하셔야 할 문제를 안고 계셨다. 하나님께서는 “악을 선하다 하고 선을 악하다 하는” 자들에게 화를 선언하셨던 분이시다(사 5:20). 그런 분께서 어떻게 “사악한 죄인들”을 “의롭다”고 선언하시고도 자신이 의로울 수 있는가? “어떻게 하면 자신의 ‘거룩하심과 죄에 대한 진노’를 주님 자신의 ‘은혜와 자비’와 화해시킬 수 있는가?” 이 질문에 대한 답은 “화목제물”에 있었다.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아들을 화목제물로 보내심으로써 죄인을 의롭다고 선언하시고도 의로우실 수 있게 되신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그의 피를 믿는 믿음을 통하여 그를 화목제물로 세우셨으니 이는 하나님의 오래 참으심 가운데서 이전에 지은 죄들을 사하심으로 인하여 그의 의를 선포하려 하심이요, 곧 이때에 자기의 의를 선포하심은 자신도 의롭게 되시고 또한 예수를 믿는 자도 의롭다 하려 하심이니라』(롬 3:25,26).

하나님의 아들께서는 초림 때 우리를 대신해서 “하나님의 거룩하심”을 충족시키는 “죄 없는 의로운 삶”을 사셨다. 그 뒤 십자가에서 우리의 죄들을 지시고 우리가 받아야 할 진노를 대신 받으심으로써 “하나님의 진노”를 충족시키셨으며, 우리에게는 그분 자신의 “하나님의 의”를 주심으로써(전가) “은혜와 자비”를 충족시키셨다. 주님께서는 우리의 죄를 가져가시고 그분의 의를 우리에게 주셨다. 인간의 죄와 하나님의 의를 맞바꾸신 것이다. 이렇게 함으로써 죄인들을 의롭다고 선언하신 하나님을 그 누구도 불의하다고 말할 수 없게 하셨다. 결코 의롭지 못한 우리가 “하나님의 아들의 대속적 죽음”으로 인해 죄와 죽음과 지옥의 문제를 해결받았으며, 하나님의 의를 소유함으로써 영원한 생명을 얻게 된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의 아들의 죽음”은 십자가의 대속 사역에서 끝나지 않았다. 그거룩한 죽음은 “그리스도의 몸”으로서의 “교회”가 등장하는 한 독특한 시대, 곧 “교회 시대”를 예고했다.

요한복음의 기록자 사도 요한은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의 예표이다(계 4:1, 요 13:23,25; 21:22). 그가 기록한 요한복음에는 다른 복음서들과는 달리 “교회 시대”의 구원 교리를 다루는 구절들이 다수 발견되며, 그 17장에서는 “그리스도의 몸”에 관한 위대한 진리가 계시된다. 『이는 그들 모두가 하나 되게 함이오니, 아버지시여,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시고 내가 아버지 안에 있는 것같이 그들도 우리 안에서 하나가 되게 하여서 세상으로 하여금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을 믿게 하여 주옵소서. 또 아버지께서 내게 주신 그 영광을 내가 그들에게 주었사옵니다. 그리하여 우리가 하나인 것같이 그들도 하나가 되게 하려는 것이옵니다. 내가 그들 안에, 또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심은 그들을 하나로 온전하게 하셔서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과 나를 사랑하신 것처럼 그들을 사랑하신 것을 세상으로 알게 하려 함이니이다』(요 17:21-23). 이 기도는 주님의 제자들은 물론, 『그들의 말을 통하여 나[예수 그리스도]를 믿을 사람들도 위한 것』(요 17:20)이었다. 이 때문에 이것은 사도들 이후로 주님을 믿게 된 “모든 그리스도인들”을 대상으로 한 기도이기도 한 것이다.

위의 기도는 『우리[아버지와 아들]가 하나인 것같이』(요 17:22), 즉 삼위일체 하나님께서 하나이신 것같이 우리 그리스도인들도 하나 되게 해 주실 것을 바라고 있다.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시고 내가 아버지 안에 있는 것같이 그들도 우리 안에서 하나가 되게 하여... 내가 그들 안에, 또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심은 그들을 하나로 온전하게 하셔서』(요 17:21,23). 즉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영접한 모든 그리스도인은 그분의 몸 안으로 들어가 “그리스도의 몸”을 이룬다. 『유대인이나 이방인이나, 종이나 자유인이나 한 성령에 의하여 우리 모두가 한 몸 안으로 침례를 받았으며 또 모두가 한 성령 안으로 마시게 되었느니라』(고전 12:13). 이 때 그리스도께서도 그리스도인들 안으로 들어오신다(『너희 안에 계신 그리스도』 - 골 1:27). 거듭난 그리스도인들이 들어가 있는 그리스도께서는 아버지 안에 계시고, 아버지께서도 그리스도 안에 계신다. 따라서 그리스도 안에 있는 그리스도인들은 자동적으로 아버지 안에 있게 되고 아버지께서도 자동적으로 그리스도인들 안에 계시게 되는 신비로운 관계가 형성될 수밖에 없다. 이와 같은 관계는 오직 하나님만이 이루실 수 있는 위대한 신비이다. BB [다음 호에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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