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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약과 시대들...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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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대로믿는사람들 <1999년 12월호>
우리는 성경에서 몇 가지 언약들을 통해 시대들이 나누어지는 체계를 발견하게 되는데, 이것들을 통해 또한 하나님의 경륜이 어떻게 변해가는가도 발견하게 된다. 어찌보면 이 부분이 세대주의의 핵심이라고 말할 수도 있지만, 한편으로는 잘못 이해되어 가장 많은 오해를 사기도 하는 부분이다.하나님께서 사람들에게 약속을 하시는 것 중, 특별히 인간사 전체를 통괄하는 그분의 경륜과 관계된 약속들을 “언약”(covenant)이라고 한다. 흔히 우리 나라 신학계에서 “계약”이라 번역하기도 하는데(이를테면 “계약신학”), 이는 잘못된 번역이다. 왜냐하면 우리말에서 계약이라 함은 쌍방간의 합의에 의해서 이루어지는 것인데, 성경에서 말하는 언약은 하나님의 일방적인 언약이기 때문이다. 사람들에게는 합의하시는 것이 아니라 단순히 “요구”하실 뿐이다. 모든 언약들의 주체는 오직 하나님이시다. 그러므로 그분께서 자신의 다루심을 어떻게 나타내 보이실지를 인간에게 계시하시고 그에 맞는 요구를 하시는 것이 이 언약들 가운데 포함되어 있다. 따라서 이 언약들에 의해 시대들이 나누어진다는 것은 아주 자연스러운 것이다. 이에 클라렌스 라킨은 세대주의를 정의하기를 “시대에 따른 하나님의 계획과 목적”이라 하였다. 이것은 참으로 올바른 정의라 아니할 수 없다. 자, 그러면 성경은 하나님의 경륜에 따라 어떤 시대들로 나뉘어지며, 그것들을 구분짓는 언약들이란 어떤 것들인가?
1. 에덴의 언약 - 무죄 시대
이 언약은 하나님께서 아담을 처음 만드시고 그에게 이 땅을 경영하라고 주시면서 맺으신 언약이다.『하나님께서 그들에게 복을 주시고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시기를 “다산하고 번성하며 땅을 다시 채우고 그것을 정복하라. 그리고 바다의 고기와 공중의 새와 땅 위에서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 하시니라. 하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보라, 내가 온 지면 위에 씨 맺는 모든 채소와 씨를 내는 나무의 열매가 있는 모든 나무를 너희에게 주노니, 그것이 너희에게 먹을 것이 되리라. 땅의 모든 짐승과, 공중의 모든 새와 생명이 있어 땅 위를 기어다니는 모든 것들에게 내가 모든 푸른 채소를 먹을 것으로 주노라.” 하시니 그대로 되니라』(창 1:28-30). 주로 명령으로 이루어지는 이 언약은 아담에게 땅에 대한 통치권을 주시겠다는 언약이었다. 아담과 이브는 죄없는 상태에서 이 땅을 가득 채우고 땅을 정복하며 만물을 다스려야 한다. 그 통치권은 약속받았다. 그러므로 아담은 이 명령에 순종하기만 하면 된다. 이때 하나님께서 원하신 계획은 이 땅을 죄없는 인류로 가득 채우시겠다는 것이었다. 나아가서, 이 땅이 가득 차면 다른 별들에까지 이주시켜 죄없는 인류로 온 우주를 가득 채우시고자 했던 것이다.
이 계획은 원래 그 이전, 즉 사탄이 타락하기 전에 갖고 계셨던 계획이기도 했다. 그때 하나님께서는 천사들을 비롯한 영적 존재들로 우주를 가득 채워 하나님의 우주적인 통치를 영원히 나타내려 하셨던 것이다. 하지만 잘 아는 바와 같이 사탄은 타락했다. 그리고 그로 인해 우주는 더럽혀졌다. 하나님께서는 부득이하게 그분의 피조 세계를 심판하실 수밖에 없었고, 그때 우주는 큰 홍수로 심판받았던 것이다. 그래서 창세기 1:1에서는『태초에 하나님께서 하늘과 땅을 창조하셨느니라.』고 말씀하신 다음에, 곧이어 1:2에서는『땅은 형체가 없고 공허하며 어두움이 깊음의 표면에 있으며 하나님의 영은 물들의 표면에서 거니시더라.』고 되어 있는 것이다. 많은 사람들은 1절의 창조를 6일 간의 창조 행위를 가리키는 창조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렇다면 그 창조는 “태초”가 아니다. 또 이 창조가 6일 간의 창조 행위를 말한다면 사탄은 언제 창조되었으며, 언제 타락했겠는가? 6일의 창조 기간 가운데 사탄이 창조되었다는 말을 우리는 볼 수 없다. 또한 에덴으로 사탄이 침투했을 때는 그 이전에 타락한 사탄이 와야 하는데, 6일 가운데 창조되었다면 언제 타락했다는 말인가? 사탄은 분명 그 이전에 타락했음이 틀림없다. 그렇다면 사탄은 그 이전에 창조되었음도 틀림없다. 따라서 창세기 1:1의 “태초”는 6일 간의 창조 기간보다 훨씬 이전에 있었던 “원래의 창조”를 나타내는 “태초”인 것이다. 2절은 타락 후 심판이 있은 다음 황폐해진 우주의 모습을 잘 보여준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심판으로 온 우주를 가득 채운 물들의 표면에 거니시며 재창조를 준비하신다.
따라서 6일 간의 “재창조” 이후 새롭게 펼쳐진 세상에서 아담에게 새로운 땅을 약속하셨을 때 그에게 그 땅을 “다시 채우라”(replenish)라고 말씀하신 것은 매우 큰 의미가 있다. 사탄의 타락으로 인해 무너진 계획을 이제 아담의 인류를 통해 다시 세우시려는 것이었다. 이때 주어진 또 하나의 명령은『선과 악의 지식의 나무에서 나는 것은 먹지 말라.』(창 2:17)는 것이었다. 동산의 모든 나무에서 나는 것을 마음대로 먹을 수 있다는 약속(창 2:16)과 더불어 주어진 이 명령은, 불복종하면 “반드시 죽으리라.”는 형벌 조항까지 담겨 있었다.
이 언약으로 시작되는 시대는 거의 완벽했다. 왜냐하면 그들에게는 아직 죄가 없었기 때문이다. 금지된 열매를 먹은 다음부터 문제가 발생하지만, 아직 먹기 전까지는 그들에게 죄가 발견되지 않았다. “인간은 태어날 때부터 죄인이다.”라는 진리는 아담 이후의 사람들에게만 적용될 수 있는 말이다. 금지된 열매에만 참여하지 않는다면 그들이 하는 어떠한 행동도 죄가 될 수 없었다. 따라서 이 시대를 “무죄 시대”(innocence)라 한다. (가끔 이 말을 “순수의 시대,” 또는 “순진무구의 시대”라고 번역한 책들이 있는데, 이는 세대주의의 이해가 부족해서 단어의 뜻만 갖고 잘못 번역한 것이다.)
2. 아담의 언약 - 양심 시대
하지만 이 무죄 시대는 매우 짧게 끝났다. 그들은 자식 한 명 낳아 보기도 전에 타락하여, 하나님의 계획을 조금도 성취시키지 못하고 무너지고 말았던 것이다. 물론 여기에는 이미 타락해 있던 사탄의 개입이 매우 큰 역할을 담당한다. 사실 이때부터 하나님과 사탄 사이에 길고도 긴 영적 전쟁이 땅과 인간을 놓고 벌어진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어느 시대에나, 어느 영적 전쟁에서나 마찬가지로 인간은 둘 중 하나의 편이 되어야 한다. 즉 사탄의 편이 되거나 하나님의 편이 되거나 하는 것이다. 다른 일에서는 중립이 있을 수 있으나, 영적인 문제가 개입되는 순간부터 중립이란 있을 수 없다. 성경 어디를 펴 보아도 요한계시록 마지막에 이를 때까지 하나님과 사탄이 벌이는 이 거대한 영적 전쟁은 그치지 않는다.
이 첫 번째 전쟁에서 우리의 조상은 지고 말았다. 그들이 하나님의 명령에 불순종함으로 그들 안에 죄가 발견되었고, 이 짧았던 “무죄 시대”는 종결을 고하게 된다. 이때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책망하시며, 남자와 여자와 뱀을 차례로 책망하시는 가운데, 남자에게는 수고의 고통을, 여자에게는 해산의 고통과 남자에게 복종함을, 그리고 뱀에게는 종신토록 흙을 먹고 살 것이라는 형벌을 내리셨다. 땅도 아담으로 인해 저주를 받아 그 아름다움을 잃어버리게 된다.
그런데 뱀에게 내리는 형벌은 단순히 흙을 먹으리라는 것에 그치지 않고 그의 멸망에 대한 저주로까지 이어진다. 그리고 뱀에 대한 이 저주는 인간에게는 크나큰 축복의 언약이요, 또 하나님께는 사탄과 벌이는 모든 전쟁에서 최후의 승리를 차지하시겠다는 선포이기도 하다. 바로『내가 너와 여자 사이에, 또 네 씨와 그녀의 씨 사이에 적의를 두리니, 그녀의 씨는 너의 머리를 부술 것이요, 너는 그의 발꿈치를 부술 것이라.』(창 3:15)는 말씀이다. 이 선포는 사실 하나님께서 직접 사탄과 싸우는 두 개의 큰 전쟁을 내포한다. 첫 번째 전쟁에서 뱀의 씨는 여자의 씨, 곧 예수 그리스도의 발꿈치를 물 것이고, 두 번째 전쟁에서 여자의 씨는 뱀의 씨의 머리를 부술 것이다. 여기서 첫 번째 전쟁이라 함은 십자가에서 벌어진 큰 전쟁을 말함이요, 두 번째 전쟁이라 함은 주님께서 재림하시면서 사탄의 머리를 부숴버리시는 큰 전쟁을 말한다.
비록 인간은 자신들의 죄로 인해 하나님의 그 풍성한 축복에서 떨어져 나갔고, 그 후로 태어날 모든 인류를 죄 가운데 집어 넣었으며, 하나님의 계획을 전혀 이루어 드리지 못했지만, 우리의 자비로우신 하나님께서는 그러한 인간에게도 자비를 베푸시어, 최후의 승리를 약속해 주신 것이다. 물론 십자가 자체도 발꿈치를 상하셨다 해서 실패하셨다는 말은 아니다. 우리 주님께서는 십자가에서도 승리하셨다. 왜냐하면 자신의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죽음의 속박에 놓여 있는 사람들을 놓아주셨고(히 2:15), 친히 부활하심으로 사망의 권세에서 승리하셨기 때문이다. 사실상 사탄은 아직 그의 권세만 잃지 않았을 뿐이지 이미 패배자로 판결을 받은 셈이다.
이에 따라 하나님께서는 비록 타락하여 낙원에서 쫓겨나는 인간들이지만, 그들에게 이러한 약속들이 사실임을 인쳐주시기 위해 한 표적을 주셨으니, 곧 가죽 옷으로 그들에게 입혀 주셨다는 것이다. 왜 가죽 옷인가? 이 가죽 옷이 양의 가죽이었다는 것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십자가에서 친히 속죄 제물이 되시겠다는 것에 대한 약속이었다.
이것은 위대한 신약 시대를 예표하는 사건이다. 죄로 인해 자기 자신의 힘으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어쩔 수 없는 인간에게 하나님께서 자신의 아들의 죽으심으로 인한 그분의 온전한 은혜로만 구원한다는 것에 대한 강력한 예표였다. 하지만 그렇다고 그들이 십자가를 바라보고 구원받았다는 말은 아니다. 그들은 단지 하나님께서 주신 가죽 옷을 입었을 뿐이다. 그들은 결국 하나님의 은혜의 상태에서 떨어져 나갔던 것이다. 그 이후로 그들이 얼마나 많은 제물을 하나님께 드렸는지는 알 수 없지만, 그렇다한들 그것이 예표는 되었을지언정 그것으로 구속을 이루는 효력은 발휘할 수 없었다. 구원을 이루는 것은 예표가 아니라 실체여야 한다. 예표는 단지 앞으로 그렇게 하시겠다는 약속일 뿐이다.
그렇다면 그들은 무엇을 행해야 하는가? 그들 안에 죄가 발견됨으로 이미 “무죄 시대”는 끝났다. 그렇다고 아직 율법과 같은 구체적인 법문이 주어지지도 않았다. 십자가로 구속이 완성되어 믿기만 하면 되는 것은 더 더욱 아니다. 그렇다면 그들은 양심에 따라 행동할 수밖에 없었다. 로마서 2:15,16에 율법이 없는 이방인들은 양심에 따라 판단받는다고 되어 있는 것과 같이, 그들은 그 양심에 따라 판단받아야만 했다. 이로써 인간에게는 “양심 시대”가 열리게 되었다.
3. 노아의 언약 - 인간정부 시대
하나님의 경륜이 무죄 시대에서 양심 시대로 바뀌었지만, 그렇다고 인간들이 양심에 따라 더 선을 행한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그들의 죄를 더욱 드러낼 뿐이었다. 이들의 죄는 극에 달하여 결국 하나님의 심판이 내려지게 되었는데, 이 심판은 온 인류에 대한 완전한 대가로 “인류의 멸종”이라는 것이었다. 오직 노아와 그의 가족들만이 살아남게 되었는데, 이때 노아는 아담과 마찬가지로 전세계를 단독으로 소유하게 되었다. 아담도 그 이전에 있었던 존재들이 멸종한 다음에 새롭게 땅을 다시 채우기 위해 창조되었고, 노아도 그 이전에 있었던 종족들이 멸망한 다음 땅을 다시 채우기 위해 남겨졌다.
그래서 노아의 언약은 아담이 타락하기 전에 맺었던 에덴의 언약과 매우 유사하다.『하나님께서 노아와 그의 아들들에게 복을 주시며 그들에게 말씀하시기를 “다산하고 번성하여 땅을 다시 채우라. 너희를 두려워함과 너희를 무서워함이 땅의 모든 짐승들과 공중의 모든 새들과 땅 위에서 움직이는 모든 것들과 바다의 모든 고기들에게 미치리니, 그들이 너희 손에 넘겨졌음이라』(창 9:1,2). 여기에서 에덴의 언약에 추가되는 사항은『살아서 움직이는 모든 것은 너희에게 먹을 것이 되리라... 그러나 고기를 생명과 더불어, 즉 거기에 있는 피째 먹지 말지니라』(창 9:3,4). 즉 육식이 허용되되 피째 먹지 말라는 것과,『사람의 피를 흘리는 사람은 사람에 의해서 자기의 피도 흘려지게 되리니』(창 9:6), 즉 사형제도가 제정됐다는 것이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노아의 언약이 맺어졌다고해서 갑자기 하나님의 경륜이 바뀌지는 않았다는 사실이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는 아담 때와 마찬가지로 여전히 이 땅을 주님께서 원하시는 새로운 종족으로 가득 채우시려 하고 계시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서 아담의 창조 때와 똑같은 관점으로 그분의 계획을 실현시키려 하신다는 것이다. 그렇기에 온 인류를 멸종시키시고, 노아로하여금 새로운 인류를 번성시키라고 하신 것이다. 그러므로 이전 경륜과 다른 어떠한 것을 제시하실 필요는 없었다. 오히려 무죄 시대였던 아담의 창조 때의 경륜으로 돌아가야 할 정도였다. 하지만 무죄 시대로 돌아갈 수는 없다. 왜냐하면 이미 타락한 성품은 다시 회복되지 않기 때문이다. 아담으로 인해 인류는 모두 태어날 때부터 죄인이 되었고, 죄에서 해방시키는 일은 십자가 사건이 있기까지 아무도 해결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개인의 죄들에 대한 심판의 근거를 따질 때는 여전히 양심 시대가 연장된다.
그러나 이 양심 시대에도 여전히 인간은 죄를 짓게 되고 하나님의 계획을 이루지 못한다. 이들의 죄도 이전처럼 세상에 가득 퍼진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이전처럼 모든 인류를 멸망시키지 않으시고, 단지 바벨탑에서 흩어버리기만 하신다. 그리고 이 흩어진 사람들을 통하여 각 민족들이 나뉘어지게 되고, 그들은 각각 나름대로 정부를 구성한다. 최초의 왕국은 창세기 10:10에서 님롯을 통해 시날 땅(바빌론 지역)에 세워진 이방 왕국이다. 그리고 이들은 모두 노아의 세 아들을 통해 갈라진 세 인종에서 파생된 민족들이다. 이때부터 세상은 이들을 통해 이방인들의 역사를 이루어 나간다. 아직 유대인이 선택되기 전이기에 모든 사람들은 이방인이다. 이 이방인들이 각각의 정부를 만들어 나름대로 살아간다. 그래서 이때부터를 “인간정부 시대”라고 부른다. 중요한 것은 이 “인간정부 시대”라는 새로운 경륜은 무죄 시대나 양심 시대처럼 인간의 죄들에 따른 하나님의 심판의 근거로서의 경륜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개인의 죄에 따른 하나님의 심판의 근거로 볼 때는 여전히 양심 시대이다. 여기서 시작되는 인간정부 시대는 다른 관점으로 시작되는 경륜인데, 그것은 왕국에 관한 경륜이다. 하나님과 사탄의 전쟁은 단순히 인간을 죄인이 되게 하거나 죄에서 해방시키거나 하는 차원의 전쟁으로 그치지 않는다. 그 전쟁은 하나님께서 계획하신 왕국을 사탄이 자신의 왕국을 일으켜 대항하는 차원으로 발전된다. 이때 이방의 국가들(정부들)이 생겨나는 것은 향후 나타날 하나님의 정부, 즉 이스라엘을 통한 신정국가를 대적하기 위해 생겨난 왕국들이다. 사탄은 항상 이방 왕국들을 통해서(단독 왕국이든, 연합 왕국이든) 이스라엘을 공격했고, 또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따라서 이때의 역사를 주관하시는 하나님의 경륜은 여전히 양심 시대가 유지되는 가운데 새롭게 등장한 인간정부 시대인 것이다.
4. 아브라함의 언약 - 약속 시대, 또는 족장 시대
이렇게 타락한 인간들을 다루심에 있어서, 하나님께서는 이전처럼 온 세상을 멸하지 않으신다. 이제 하나님께서는 순수한 인류로 온 땅을 채우시겠다는 계획을 바꾸셨다. 물론 이 계획은 취소되지 않았다. 이 원래의 계획은 후에 그리스도께서 완전한 승리를 거두신 후 죄와 죄의 기원인 사탄이 멸망한 다음에 온전히 이루어질 것이다. 하지만 아직은 아니었다. 어차피 죄성을 가진 인간으로는 순수하게 땅을 채울 수 없다. 이에 하나님께서 택하신 방법은 온 세상 가운데 하나님의 신정통치로 인해 우뚝 설 수 있는 모델 국가를 만드시어, 그 민족으로 하여금 세상의 모범 왕국으로 삼으시는 것이다.
이를 위해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물론 아직은 “아브람”이었다.)을 택하셨다.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에게『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게 할 것이며 네게 복을 주고 네 이름을 위대하게 하리니, 너는 복이 되리라.』(창 12:2)고 말씀하셨는데, 이 외에도 “아브라함의 언약”은 창세기 13:14-17; 15장; 17:1-8 등에서도 볼 수 있다. 이 언약은 크게 하늘의 별처럼, 또 바다의 모래처럼 아브라함의 씨를 번성케 하신다는 “씨”에 대한 언약과(창 15:5; 22:17), 그 땅을 유업으로 주신다는 “땅”에 대한 언약(창 13:14-18; 15:18-21)으로 나누어 볼 수 있는데, 이는 유대인들에게 그 땅을 소유로 주어 거하게 하시겠다는 언약이다. 물론 이 “씨”에 대한 부분에서는 갈라디아서 3장에 따라 교회가 차지할 영적인 부분이 있다. (교회는 그리스도를 통해 믿음으로 아브라함의 자손이 된다.) 하지만 교회는 그 땅에 대한 소유권이 없다. 그러므로 그 땅을 유업으로 받는 씨는 아브라함의 영적인 씨가 아니라 육신적인 씨인 이스라엘인 것이다.
이때 이스라엘은 단지 그 땅에 거하는 정도가 아니라 “큰 민족”이 될 것이라고 약속을 받는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한 민족을 팔레스타인 땅에 심으셔서 그들을 직접 통치하시는 가운데, 그 민족을 온 이방의 복으로 삼아, 이 민족을 통해서 이방인들에게 복을 주시겠다는 약속이다. 앞서 인간정부 시대에서 시작된 모든 이방 민족들은 사탄의 수하에 있지만, 아브라함을 통해 나올 한 민족은 그 모든 민족들과 구별되어 하나님의 통치 가운데 있게 된다. 이때 이스라엘이 약하게 되면 온 이방 가운데에 웃음거리가 되겠지만, 이스라엘이 위대하게 되면 그때는 하나님의 이름이 온 땅에 높아지는 것이고, 그것을 통해서 하나님의 계획을 이루실 수 있다. 그러므로 아브라함이 택함을 받는 시점은 하나님의 경륜상 매우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
아브라함에게 있어서 특히 중요한 것은 그가 믿음을 통하여 의롭게 되었다는 것이다(롬 4:11).『아브람이 주를 믿으니 주께서 그것을 그에게 의로 여기셨더라』(창 15:6). 사실 구약성경에 있는 모든 사람 중에서 신약 성도와 가장 유사하게 구원받은 사람이 있다면 그는 아브라함이다. 왜냐하면 믿음으로 의롭게 되었기 때문이다. 아직 율법이 주어지기 전에 약속을 믿음으로 의를 입었다. 하지만 그의 의가 신약 시대의 의와 완전히 일치하는 것은 아니다. 아직 그는 십자가의 피로 구원받은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의 생애에 있었던 많은 사건들이 십자가와 그리스도를 예표하기는 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그림자일 뿐, 실제적으로 뿌려진 그리스도의 피를 믿고 구원받은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그가 신실하게 믿은 것은 하나님의 신실하신 약속이었다. 그리고 이 약속은 이삭과 야곱에게도 동일하게 상속된다. 성경은 그들을 “약속의 상속자들”이라고 말씀한다(히 11:9). 그래서 이 시대를 “약속 시대”라고 하며, 또 이 시대의 무대가 주로 아브라함, 이삭, 야곱 등의 족장이며, 이들이 약속을 받은 사람들이기에 이 시대를 “족장 시대”라고도 한다. 물론 이방인들 가운데는 여전히 양심 시대와 인간정부 시대가 이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