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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 가지 “성경 해석의 법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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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대로믿는사람들 <2022년 08월호>
“성경 해석학”이라는 분야가 있다. 영어로는 “Hermeneutics”라고 하는데, 이 단어는 “헤르메뉴티케”(ἑρμηνευτική)라는 헬라어에서 파생되었다. 흔히들 이 단어를 그리스의 신 “헤르메스”(Hermes)와 연결시키는 경향이 있는데, 헤르메스는 신들의 메시지를 인간에게 가져다 준 “학문, 창안, 연설, 웅변, 저술, 예술의 신”으로 알려져 있다. 태양계 내에서 가장 큰 행성인 “목성”(주피터, Jupiter)에서 왔다고 알려진 “제우스”(최고의 신)를 위해 “대신 말을 전달하는 존재”(행 14:12,13), 곧 일종의 “전달자”(전령)이자 “통역자”인 “머큐리”(Mercury, 수성)가 바로 헤르메스이며, 이런 이유로 그는 전령에게 가장 중요한 요소인 “스피드,” 곧 “속도의 신”으로도 불린다. 머리에 쓴 헬멧과 발에는 각각 “두 날개”가 달려 있고, 그가 갖고 다니는 “카두세우스”(Caduceus)라는 전령의 지팡이 머리에도 “두 날개”가 있으며, 특히 서로 얼굴을 맞대고 있는 두 마리의 뱀이 서로 얽힌 채로 지팡이를 감아 올라가는 모습은 영락없는 “사탄과 적그리스도의 모습”이다! 또한 “헤르메뉴티케”라는 단어를 처음 사용한 사람은 사탄이 세운 철학자 “플라톤”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런 방식의 용어 추론이 “성경 해석학”의 기원을 설명해 주는 것은 아니다!한편 성경은 『모세와 모든 선지자들로부터 시작하여 자신에 관하여 모든 성경에 있는 것들을 그들에게 설명하시더라.』(눅 24:27)라고 말씀한다. 여기에서 『설명하시더라.』에 해당하는 헬라어는 “디에르메뉴오”(διερμηνεύω)로서 “헤르메뉴티케”와 관련되어 있으며, 이것은 “자세히 또는 철저하게 설명하고 해석(해설)하다” (interpret thoroughly)는 의미이다. 당시에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엠마오로 가던 두 제자에게 “성경이 말씀하시는 바가 바로 이것”이라고 구체적으로 알려 주셨는데, 비록 그 두 제자가 처음에는 『모세와 모든 선지자들로부터 시작하여 자신에 관하여 모든 성경에 있는 것들』, 곧 “구약의 말씀들”을 이해하지 못했지만, 주님께서 그 말씀들을 자세하게 해석해 주시면서 성경을 열어 보여 주셨을 때 온전히 깨닫게 되었다(눅 24:32).
이렇듯 “성경 해석”이란 성경에서 말씀하시는 바가 무엇인지 정확하게 설명해 주는 것을 의미하고, “성경 해석학”은 그 설명 방식에 있어서 “올바른 해석 방법”을 취하도록 도와주는 학문적인 도구이다. 다시 말해 “하나님께서 성경을 통해 말씀하신 것의 의미를 분명하게 하는 것” 또는 “하나님의 말씀의 정확한 의미를 성경적으로 올바르게 결정하는 것”이 바로 “성경 해석학”인 것이다. 이렇게 성경을 해석하는 방법에는 “열 가지 방법”이 있다(<럭크만 주석성경>, “부록 38. 성경 해석학” 참조).
1. “문자적인 해석”(literal interpretation)의 법칙 - 초림 당시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선생님, 내가 영생을 상속받으려면 어떻게 하여야 하리이까?』(눅 10:25)라고 질문하는 율법사에게 『율법에는 무엇이라고 기록되어 있으며 너는 어떻게 읽느냐?』(눅 10:26)라고 말씀하셨고, 바울은 『성경이 무엇이라고 말하고 있느냐?』(롬 4:3), 『그러나 성경이 무엇이라 말하느냐?』(갈 4:30)라고 물었다. 만일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무언가를 말씀하셨는데도 불구하고 말씀하신 그 의미를 우리가 전혀 깨닫지 못한다면, 그 말씀은 우리에게 아무런 도움도 되지 않았을 것이다. 또한 하나님께서 “애매모호한 언어”로 말씀하셨다면, 그러한 말씀 역시 주님께서 우리를 향해 갖고 계신 목적들을 전혀 이루지 못했을 것이다. 그래서 언어를 만드신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확실하게 이해하고 깨달을 수 있는 “분명한 언어”로 말씀하셨고, 이에 우리는 “문자적인 해석 방법”을 취하여 그 말씀을 있는 그대로 해석하고 받아들여야 한다. 그래서 “성경 해석의 제1원칙”이 바로 “문자적인 해석”인 것이다. 성경에 “기록되어 있는 언어 그대로,” 곧 “그 언어의 의미 그대로” 이해하라는 것이며, 절대로 성경은 영적(비유적, 은유적, 풍유적)으로 해석하면 안 된다. 그런 방식으로 해석하면 사람마다 해석이 달라져서 성경 해석에 일관성이 사라진다. 물론 성경에는 비유적이고 상징적인 언어도 등장한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그런 언어들 역시 문자적인 해석에 바탕을 두고 해석해야 한다. 특히 그런 비유나 상징들은 성경 스스로 해석해 주고 있기에 문자적인 해석을 중심으로 성경과 성경을 비교하여 해석하면 오류를 범하지 않게 된다.
2. “세 가지 적용”(triple application)의 법칙 - 성경을 문자적으로 해석한 다음 “역사적으로”(육하원칙에 따른 역사적인 사실 그대로), “영적으로”(교훈적으로 - 롬 15:4, 본보기로 삼기 위해 - 고전 10:6,11, 책망과 바로잡음과 의를 통한 훈육을 위해 - 딤후 3:16), “교리적으로”(믿음과 실행을 위한 실제적인 원리나 예언적인 진리를 위해 - 딤후 3:16) 적용하라는 것이다. 여기서 주의할 점은 이 “세 가지 적용” 중에서 항상 “교리적인 적용”이 우선되어야 한다는 것인데, 먼저 시대와 경륜에 따른 올바른 교리를 정립해 놓은 이후에 역사적으로나 영적으로 자유롭게 적용해야 하지 그렇게 하지 않으면 “혼란”만 가중된다.
3. “첫 언급”(first mention)의 법칙 - 어떤 단어가 성경 본문에서 처음 사용될 때 그것이 어떤 의미와 용례로 사용되었느냐에 따라, 이후에 그 단어가 등장하는 본문의 기본적인 의미와 분위기(긍정적 또는 부정적 분위기)가 결정된다.
4. “점진적인 계시”(progressive revelation)의 법칙 - 하나님의 계시가 한 번에 모두 주어지지 않고 조금씩 그리고 점진적으로 주어졌음을 의미한다. 즉 계시가 점점 발전하는 것이다. 만일 모세오경으로 계시가 모두 주어졌다면 시편이나 선지서 등의 책들이 기록될 필요가 없었을 것이다. 또한 구약의 선지자들보다는 신약의 사도들이 하나님의 계시를 더 많이 알았다. 말하자면 신약이 구약보다 더 많은 진리를 내포하고 있는 것이다. 예수님께서는 부활하신 이후에 40일간을 제자들과 함께 계시면서 십자가에서 죽으시기 이전에 가르치신 내용보다 더 많은 것을 가르쳐 주셨다. 왜냐하면 그 이전에는 그들의 듣는 귀가 매우 둔하여 설령 가르쳐 주셨다 해도 그들이 제대로 이해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한편 다른 사도들보다는 “바울”이 더 많은 계시를 받았는데, 이와 같은 맥락에서 “사복음서”를 통해 모든 계시가 주어진 것은 아니었기에 “바울 서신”이 기록될 수밖에 없었다. 사도 요한은 “요한계시록”을 통해 더 많은 계시를 깨달았다. 바울도 요한처럼 셋째 하늘로 끌려 올라가서 본 것들이 있었지만, 그는 그가 본 것들에 대해 말하지 말라는 명령을 받았다(고후 12:2-4). 놀라운 것들을 보았지만, 당시에는 그것들이 사람들에게 계시되는 것이 허락되지 않았다. 하지만 요한은 말하도록 허락을 받았기에 요한계시록을 통해 많은 하나님의 계시들을 기록할 수 있었다.
사실 요한계시록은 “다니엘 2부”와도 같은데, 이는 다니엘에 계시된 내용이 요한계시록을 통해 발전하고 있기 때문이다. 사실 구약과 신약은 분리된 별개의 책이 아니다. 신약은 구약 속에 포용되어 있고, 구약은 신약 속에서 펼쳐지기 때문이다. 그래서 레위기는 히브리서가, 다니엘은 요한계시록이, 유월절이나 이사야 53장은 사복음서가 없이 제대로 이해할 수 없다. 말하자면 레위기의 희생 제사들은 히브리서에 나오는 예수 그리스도의 단번 속죄와 연결되고, 다니엘의 예언들은 요한계시록의 예언들과 상호보완적으로 연결되고 있으며, 유월절 양과 이사야 53장의 내용은 사복음서에 나타난 예수 그리스도의 고난 및 구속과 연결되고 있는 것이다. 구약보다는 신약으로 가면서 계시가 더 발전되어 나가는 것인데, 이것을 가리켜 “향상된 계시”(점진적 계시)라고 말한다. 이처럼 성경의 계시는 구약에서 신약으로 계시가 점점 발전되어 가다가 요한계시록에서 끝이 난다. 요한계시록 이후에는 더 이상의 새로운 계시가 주어지지 않는다.
5. “문맥”(context)의 법칙 - 성경을 해석할 때 문맥 안에서 해석하는 법칙인데, 누군가가 잘 말했듯이 “문맥에서 벗어난 본문은 핑계에 불과하다”(A text without a context is a pretext). 각종 이단들 및 이단 교리들은 변개된 성경들에 근거하거나 성경 본문을 문맥과 상관없이 해석할 때 대거 양산된다.
6. “예표”(types)의 법칙 - 어떤 대상이 하나의 “모형”(그림자)이 되어 앞으로 다가올 대상이나 본래 존재하고 있는 대상의 “원형”(실상)을 미리 보여 주는 것을 의미한다. 구약의 “모형들”은 기본적으로 신화적이거나 풍유적인 인물들 또는 사건들이 아니고 구약 시대에 “실존했던 인물들”과 “실제 일어났던 역사적인 사건들”이지만, 신약 시대에 등장한 인물들 및 성취된 사건들과 비교해 볼 때 일종의 “본보기”(고전 10:11, 히 8:5)나 “그림자”(골 2:17, 히 10:1)가 된다. 예표 또는 모형이라고 하는 것은 구약의 관점에서는 아무런 의미가 없고 신약의 관점에서 볼 때 의미가 있다. 구약의 모형들은 신약의 진리를 풍성하게 해 주고 신약 시대를 사는 성도들에게 풍성한 권면과 교훈을 준다(고전 10:1-11).
7. “대조(contrast)와 유사(similarity)와 반복(repetition)”의 법칙 - “대조”는 서로 같지 않은 것들, 곧 조화를 이루지 못하는 말씀들을 올바르게 나누고 구분하는 것을 의미한다. 서로 다른 것은 결코 같은 것이 아니다! 하나님께서 같다고 하지 않으신 것들을 찾아내어 명확하게 구분해 내면 성경을 올바르게 해석할 수 있다. “유사”는 서로 조화되는 구절들을 찾아서 해석하는 것이다. 『너희는 주의 책에서 찾아 읽으라. 이것들 중에는 하나도 부족한 것이 없고, 하나도 자기 짝이 없는 것이 없으리니 이는 바로 나의 입이 명령하였고, 바로 그의 영이 그것들을 모으셨음이라』(사 34:16).
“반복”은 해당 본문을 올바르게 깨달아 알 때까지 반복해서 읽고 공부하고 외우는 것이다. “반복”만큼 좋은 공부 방법도 없다. 『명령을 명령 위에 반복해야 하고 명령을 명령 위에 반복하며, 줄을 줄 위에 반복하고 줄을 줄 위에 반복하여 여기서도 조금, 저기서도 조금 하니』(사 28:10). 『끝으로 나의 형제들아, 주 안에서 기뻐하라. 너희에게 같은 말을 쓰는 것이 내게도 지루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너희를 위해서도 안전하니라』(빌 3:1). 어떤 “지식”이든지 여러 번 반복하지 않고서는 제대로 습득할 수 없다. 머리뿐만 아니라 마음으로 완전히 배우고 자신의 몸으로 완벽하게 체득할 때까지는 그 말씀(성경적 지식)을 읽고 묵상하고 암송하고 공부하고 실행하는 일을 지속적으로 반복해야 한다.
8. “완전한 진술”(complete mention)의 법칙 - “성경 66권” 안에 있는 서로 다른 책에서 같은 내용을 기록하고 있다 해도 어떤 한 구절이 다른 구절보다 더 완전하게 서술하고 있을 때, 완전하게 서술하는 구절에 비춰서 완전하게 서술하지 않은 구절을 해석해야 하지 그 반대로 해석해서는 안 된다. 일례로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누구든지 음행한 연고 외에 자기 아내를 버리고 다른 여자와 혼인하는 자는 간음하는 것이요, 또 버려진 여자와 혼인하는 자도 간음하는 것이라.”고 하시더라.』(마 19:9)라는 말씀을 『주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시기를 “누구든지 자기 아내를 버리고 다른 여자와 혼인하는 자는 그 아내에 대하여 간음하는 것이요 여자가 자기 남편을 버리고 다른 남자와 혼인하면 그 여자도 간음하는 것이라.”고 하시니라.』(막 10:11,12)라는 말씀과 비교해 보라. “마가복음”의 본문에서는 마치 무작정 아내를 버리고 다른 여자와 혼인하는 자에 대해 말씀하는 것 같지만, “마태복음”의 본문에서는 분명한 “조건”이 제시되고 있는데, 곧 “음행한 연고 외에”라는 조건이 달려 있는 것이다. 이러한 경우에는 보다 더 “완전한 진술”을 담고 있는 “마태복음”의 본문에 비추어 “마가복음”의 본문을 해석해야 하는데, 다시 말해 배우자가 “음행”한 경우에는 그 배우자를 버리고 다른 배우자와 혼인하는 것이 “간음”이 아닌 게 된다.
9. “이중 적용”(double application)의 법칙 - 성경의 예언을 해석할 때 주로 적용되는 법칙인데, “예언”은 현 시점에서 과거에 이미 일어난 한두 가지 역사적인 사건에만 국한되지 않고, 그 이상의 미래에 일어날 여러 가지 예언적인 사건들에 적용될 수 있는 것이다.
10. “간격”(gap)의 법칙 - 초림에 관한 예언과 재림에 관한 예언을 다룰 때 자주 활용되는 해석 법칙이다. 초림과 재림 사이의 시간적 간격은 대략 2천 년인데, 하나의 구절 안에서 “쉼표” 하나로 초림에서 재림으로 시간적인 간격을 뛰어넘는 것이다. 가장 대표적인 사례가 이사야 61:1,2이다. 이런 현상이 발생하는 이유는 구약에서는 2천 년의 교회 시대가 계시되어 있지 않고 “감추어져” 있으며, 초림 당시 이 땅에 세워질 수 있었던 왕국의 수립이 재림 때로 연기되었기 때문이다.
성경을 믿지 않는 목사와 성경 교사는 다른 사람에게 “성경은 진리이며, 온전한 진리이고, 단 하나의 유일한 진리다.”라고 확신시켜 줄 수 없다. 성경이 하나님의 말씀임을 믿지 않으면서 성도들을 제대로 양육할 수 있는 성경 교사는 없다. 성경을 불신하는 자들은 불신자들을 키워 내고, 의심하는 자들은 의심하는 자들을 길러 내며, 어리석은 자들은 완고하고 어리석은 고집쟁이들을 양산해 낼 뿐이다. 성경을 임의로 해석하는 자리에 앉아 있는 교사는 성경보다 우위에 있게 되고 자기 앞에 앉아 있는 사람들에게 전능하신 하나님 대신 자기 자신을 따르도록 만들게 된다. 따라서 성경을 가르치는 사람은 어떤 상황에서도 “성경이 무엇이라고 말씀하시는지”에만 초점을 두어야 한다. BB