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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옥에 다녀온 선지자 요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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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대로믿는사람들 <2019년 03월호>
지옥에 관한 설교가 교회 강단에서 사라진 지 오래다! 설령 지옥을 언급한다 해도 "문자적인" 지옥의 실체를 믿지 않는다. 위치상 땅속, 곧 『땅의 심장』(마 12:40)에 지옥이 실제로 존재한다는 사실조차 모른다. 『그들이 지옥으로 파고 들어간다 할지라도 내 손이 거기서 그들을 끌어낼 것이요』(암 9:2a). 지구의 중심까지 파고 들어가는 일이 가능할 경우, 결국 다다르게 될 장소가 "지옥의 문"이지만, 하나님께서는 인간 스스로 그 일을 하도록 허용하지 않으신다. 이것은 인간이 그 어떤 노력으로도 하늘나라에 이를 수 없는 것(롬 3:23)과 매한가지다. 『그들이 하늘까지 올라간다 할지라도 내가 거기서 그들을 끌어내릴 것이라』(암 9:2b). 우주 개발에 투입되는 천문학적인 예산, 우주선, 우주 정거장, 우주복, 우주 식량, 우주 적응 훈련, 수억 원의 여행 경비 등 인간의 모든 수고들이 부질없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설령 화성, 금성, 목성 아니 그 너머에 있는 어떤 행성에 도착하여 얼마간 거주했다 하더라도, 우주 전체가 폭발할 때 그것들은 모두 불타 없어질 것이다(벧후 3:10-12).우주 너머 "하늘의 문"(계 4:1)으로 들어갈 수 있는 방법은 오직 한 가지뿐이다. 인류를 모든 죄악에서 구속하시기 위해(딛 2:14) 갈보리 십자가에서 피 흘려 죽으시고 다시 살아나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면 된다. 『이는 모든 사람이 죄를 지었으므로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다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구속을 통하여 그의 은혜로 값없이 의롭게 되었음이라』(롬 3:23,24). 『아들을 믿는 자는 영생을 가졌고』(요 3:36a), 하늘나라의 시민권을 취득했으며(빌 3:20), 그곳으로 여행할 수 있는 "무료 티켓"도 소유하게 되었다. 뿐만 아니라 영원히 죽지도 썩지도 않는 몸(빌 3:21), 영구한 재산(히 10:34), 영원한 도성(계 21:2), 영원한 집(요 14:2), 영원한 유업(벧전 1:4) 등도 보장되어 있다. 하지만 『그 아들을 믿지 않는 자는 생명을 보지 못하고 오히려 하나님의 진노가 그 사람 위에 머물러』(요 3:36b) 있기에, 결국 지옥으로 던져지게 된다. 『악인은 지옥으로 돌려질 것이요, 하나님을 잊어버린 모든 민족들도 그러하리라』(시 9:17).
1700년대 미국의 제1차 대각성 운동을 주도했던 조나단 에드워즈(1703-1758)는 "성난 하나님의 손 안에 떨어진 죄인들"이란 제목으로 다음과 같이 설교했다. 『하나님께서는 언제라도 죄인들을 지옥으로 던져 버리실 수 있습니다. 지옥의 불길은 이미 여러분을 맞을 만반의 준비를 다 해 놓았으며, 지옥의 용광로는 뜨겁게 달아올라 여러분이 떨어지기만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비참한 세계, 끝없이 타오르는 유황 불못은 지금 여러분의 발밑에 넓게 펼쳐져 있습니다.』 오늘날에는 이런 설교를 좀처럼 찾아볼 수 없다. 물론 지옥에 대해 설교하고 싶은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교회사에서 <킹제임스성경>과 위대한 복음 전파로 가장 찬란했던 시대, 곧 필라델피아 교회 시대(1500-1900)의 마지막 시기에 사역했던 위대한 구령자 R.A. 토레이(1856-1928)는 지옥에 대해 설교하면서 "지옥은 고통스런 진리이다."라고 말했다. 하지만 상대방이 듣기 싫어하는 무섭고 거친 교리요, 인기 없는 주제라 해서 지옥을 경고하지 않는다면, 바로 그 상대방이 백보좌 심판에서 영원한 불못으로 던져지는, 보다 더 고통스런 장면을 우리 두 눈으로 목도하게 될 것이다. 구원받지 않은 죄인들이 불못에 던져지는 모습을 보는 것이 과연 즐거운 일이겠는가? 우리의 구원받지 않은 부모, 배우자, 자녀들, 친척들, 친구들 등이 불못으로 던져지는 모습을 보는 것은 매우 슬프고 고통스런 일이다! 그런 상황에 직면하지 않으려면, 지금 바로 지옥이라고 하는 이 "고통스런 진리"를 그들에게 경고해 주어야 한다. 더 이상 지체할 시간이 없다!
미국의 심혈관 질환 내과 전문의 모리스 S. 롤링스는 본래 철저한 무신론자로서 "모든 종교는 사기이고, 죽는다는 것은 그저 아무런 고통 없이 사라지는 것일 뿐이다."라고 믿고 있었다. 하지만 그는 1977년 어느 날 실제로 경험한 한 사건을 계기로 엄청난 삶의 변화를 겪게 된다. 당시 48세 된 찰리 맥케익이란 환자가 심전도 검사를 받고 있었는데, 갑자기 그가 심장 마비를 일으켰다. 롤링스 의사는 침착하게 심폐소생술과 심장제세동기를 반복적으로 사용하면서 환자의 심장 박동을 정상적으로 돌아오게 하려고 애를 썼다. 바로 그때 환자가 비명을 지르면서 이렇게 소리쳤다. "제발 멈추지 마세요! 난 지금 지옥의 문턱에 있어요! 제발 멈추지 말아 주세요!" 지난 25년 동안 죽음에 다가가는 환자들을 많이 보아 온 그였기에 처음에는 그 환자가 환각 증세를 보이고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 환자의 얼굴에 서려 있던 공포는 지금까지 상대했던 환자들과는 너무나 다른 모습이었다.
『그 환자는 심장이 다시 뛰고 호흡이 다시 돌아올 때마다 "지옥을 봤어요!"라고 소리를 질렀어요. 공포에 질린 나머지 저에게 살려 달라고 애원했습니다. 저도 그때 죽음이 두려워졌죠. 그의 놀라는 표정을 보았습니다. 지금까지 이보다 더 공포에 질린 모습을 본 적이 없었습니다. 일그러진 그의 얼굴은 완전히 공포에 사로잡힌 모습 그 자체였습니다. 눈동자는 완전히 풀려 있었고, 온몸은 땀으로 흠뻑 젖은 채 머리카락이 삐쭉삐쭉 솟은 것처럼 부들부들 떨고 있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그때 그는 또다시 이상한 말을 했습니다. "선생님은 절대로 이해하지 못할 거예요! 제가 지옥의 문턱까지 갔었다는 사실을... 제발 저를 그곳으로 돌려보내지 마세요!" 그는 절체절명의 순간에 놓여 있었던 것이 분명합니다. 저로서는 한 번도 경험해 보지 못한 공포에 사로잡혀 있었다고나 할까요.』
성경에는 예수 그리스도 외에 실제로 지옥에 들어갔다가 다시 살아 나온 유일한 인물이 나오는데, 바로 선지자 "요나"다. 그는 일반적인 법칙에 예외가 되는 특별한 사람이었다. 심지어 그가 지옥에서 드린 기도는 응답되기까지 했다(욘 2:7). 이유가 무엇인가? 선지자 다니엘처럼 하나님의 사랑을 크게 받았기(단 9:23) 때문인가? 요나서 4장에서 그가 멸망을 눈앞에 둔 12만 명 이상의 죄인들을 긍휼히 여기기는커녕, 하찮은 박 넝쿨에 대한 과도한 집착으로 완고한 고집만 드러낸 모습을 보면 그렇게 보기는 어려울 것 같다. 그렇다면 그의 기도 내용이 아주 뛰어났기 때문인가? 이것도 아닌데, 그의 기도는 누가복음 16장의 부자가 지옥에서 드린 기도보다 못했기 때문이다. 사실 부자는 자기 자신을 위해서도 아니고, 오직 지상에 남겨진 자기 형제들을 위해 소위 "중보"의 기도를 했다. 『내가 당신께 간구하오니 당신께서 나사로를 내 아비 집에 보내어 주소서. 나에게 다섯 형제가 있으니 그가 그들에게 증거하여 그들로 이 고통의 장소에 오지 않게 하소서』(눅 16:27,28). 하지만 그의 기도는 거절당했다.
한편 요나는 『내가 주의 목전에서 내어쫓겼으나 내가 다시 주의 거룩한 전을 바라보리이다.』(욘 2:4)라고만 기도했다. 물론 요나도 하나님께서 살려만 주신다면 니느웨로 가서 전파하겠다는 서원을 하기는 했다(욘 2:9). 그러나 니느웨 사람들이 회개함으로써 재앙을 피하고 그 "고통의 장소"로 들어가지 않기를 원했던 것은 아니다. 사실 그는 그들이 재앙에 대한 경고를 받더라도 궁극적으로는 멸망하기를 바랐다! 하나님께서 니느웨 사람들에게 내리시기로 했던 재앙을 돌이키셨을 때 요나가 보였던 반응을 보라! 『그 일이 요나를 심히 불쾌하게 하였으니, 요나가 매우 노하였더라... 오 주여, 내가 주께 간구하오니 내 생명을 내게서 취하소서. 사는 것보다 죽는 것이 내게 더 나음이니이다』(욘 4:1,3). 과연 이것이 불순종의 대가로 이미 죽음을 맛보았고, 심지어 지옥의 뜨거운 맛까지 경험한 선지자로서 할 수 있는 말인가? 『그때 주께서 말씀하시기를 "네가 성내는 것이 잘하는 것이냐?" 하시더라』(욘 4:4). 실로 요나는 쓸데없는 항변으로 자신의 목숨까지 걸었던 것인데, 그만큼 인간의 못된 성품과 완고한 마음은 "지옥 불"로도 쉽게 고쳐지지 않는 법이다. "불"로 죄를 "정결하게"(purge) 할 수 있다고 거짓말하는 로마카톨릭의 "연옥"(purgatory)의 교리는 그야말로 망상에 불과하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피만이 인간의 죄를 완전히 제거할 수 있는 것이다!
자, 그럼에도 요나는 일반적인 법칙을 깨고 지옥에서 나올 수 있었다. 이러한 사실은 하나님의 자비하심으로밖에 설명이 안 되지만, 여기에는 보다 중요한 이유가 있었으니, 곧 "예수 그리스도를 위한 예표" 때문이었다. 『요나가 사흘 낮과 사흘 밤을 고래 뱃속에 있었듯이, 인자도 그처럼 사흘 낮과 사흘 밤을 땅의 심장 속에 있을 것이라』(마 12:40). 요나는 실제로 죽었다. 그저 고래 뱃속에서 기절했다가 깨어난 것이 아니다. 『주께서 내 생명을 부패함에서 건져내셨나이다』(욘 2:6). 즉 하나님께서는 죽은 요나의 육체가 썩어가고 있을 때 다시 살리신 것이다. 심지어 그의 혼은 지옥에까지 내려갔다. 『내가 나의 고통으로 인하여 주께 부르짖었더니 주께서 나를 들으셨나이다. 내가 지옥의 뱃속으로부터 부르짖었더니 주께서 내 음성을 들으셨나이다』(욘 2:2). 분명 요나는 영원히 꺼지지 않는 불이 실제로 타오르고 있는 지옥 안에 있었던 것이며, 그곳은 『땅의 심장』으로 불리는 『땅의 아랫부분들』(겔 31:16) 혹은 『땅의 더 낮은 부분들』(시 63:9)에 위치해 있고, 또한 어떤 죄인도 빠져나올 수 없도록 "열쇠들"(계 1:18)로 굳게 잠긴 "문들"(마 16:18)과 빗장들(욘 2:6)로 막혀 있다.
그러나 요나의 혼은 그곳에서 풀려났고 몸은 부활할 수 있었다. 그렇게 해서 예수 그리스도의 예표가 될 수 있었는데, 주님께서는 실제로 십자가에서 죽으셨을 때 땅의 더 낮은 부분들인 지옥으로 내려가셨다가 부활하시어 하늘들 위로 올라가셨던 것이다. 『따라서 그가 올라가셨다는 것은 그가 땅의 더 낮은 부분들로 먼저 내려가셨다는 것이 아니고 무엇이냐? 내려가셨던 그가 모든 하늘들 위로 올라가신 바로 그분이니 그가 모든 것을 충만케 하시려 함이니라』(엡 4:9,10). 이것이 가능했던 이유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지옥과 사망의 열쇠들』(계 1:18)을 갖고 계신 분이기 때문이다. 사망과 지옥은 예수 그리스도 앞에서 어떤 권세도 갖지 못한다. 그래서 성경은 반석이신 예수 그리스도 위에 세워진 교회를 지옥의 문들이 이기지 못한다고(마 16:18) 말씀하는 것이다. 따라서 예수님을 믿고 따르는 성도들은 지옥과 사망에 대해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 사망은 우리를 가두어 둘 수 없다. 이것은 구원받은 성도들에게만 주어지는 특권이다. 하지만 구원받지 못한 죄인들은 사망과 지옥을 이길 수 없다. 예수님께서 그 열쇠들로 그들을 지옥과 사망 안에 영원히 가두어 버리실 것이기 때문이다. 그야말로 요나는 예외가 되는 인물이었던 것이다!
현 세상에서 지옥의 실상을 간접적으로 경험할 수 있는 곳이 화재 현장이다. 과거에 몸담았던 직장의 물류센터에서 불이 났는데, 당시 화재를 진압하던 소방관 한 명이 지하 2층에서 실종된 일이 있었다. 그 소방관을 찾으려면 그곳 내부 구조를 잘 알고 있는 직원이 그 화재 현장으로 함께 들어가야 한다고 해서, 내가 산소통과 보호 장비를 착용하고 내려갔다. 내려가자마자 마주하게 된 현실은 검은 연기와 칠흑 같은 암흑뿐이었다.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캄캄한 어둠 속에서 작은 손전등 하나와 내부 구조에 대한 머릿속 기억만을 의지한 채 벽을 더듬어 갔던 일이 아직도 생생하다. 보호 장비를 착용했어도 숨 막힐 정도의 뜨거운 열기가 그대로 느껴졌는데, 여기에 고통으로 몸부림치는 사람들의 울며 이를 가는 소리까지 들렸다면 지옥을 방불케 했을 것이다. 결국 바닥에 엎드린 채 웅크려 있는 싸늘한 주검을 찾아냈지만, 출구로부터 얼마 떨어지지 않은 지점에서 발견되었기에 안타까움이 너무 컸다. 이 캄캄한 "지옥"에서 출구를 찾지 못했던 것이다! 실제 지옥에도 문들은 있지만, 일단 그곳으로 들어간 죄인들에게는 탈출할 수 있는 "비상구"가 열리지 않는다!
지옥은 결코 "비유적인 장소"가 아니다. 문자적인 지옥을 경고했던(겔 20:45-48) 선지자 에스겔에 대해 배교한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는 비유를 말하지 아니하는가?』(겔 20:49)라고 반응했다. 오늘날 배교한 현대 교회들도 "부자와 나사로의 실제 이야기"에 등장하는 문자적인 지옥에 대해 이와 동일한 반응을 보인다. 어떤 반응을 보이든 간에 『생명의 빵』(요 6:35)을 먹지 않은 모든 죄인들은 실제적인 지옥에서 새까맣게 타버린 "토스트"처럼 될 것이다. 태양보다 더 순수하시고 더 뜨겁게 작열하는 강렬한 빛이신(요일 1:5) 하나님 앞에 누가 감히 설 수 있겠는가? 하나님의 자비와 사랑은 오직 갈보리 십자가를 통해서만 나타났다.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받아들이지 않으면 영원한 불못의 형벌을 피할 수 없는 것이다. 왜냐하면 『우리 하나님은 소멸케 하시는 불』(히 12:29)이시기 때문이다! BB