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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를 말하면서도 전쟁을 생각하는 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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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대로믿는사람들 <2016년 11월호>
마귀는 살인자요 거짓말쟁이다. 『너희는 너희 아비 마귀에게서 나와서 너희 아비의 정욕을 행하고자 하는도다. 그는 처음부터 살인자였으며 진리 가운데 거하지 아니하였으니, 이는 자기 안에 진리가 없음이라. 그가 거짓말을 할 때는 자신에게서 우러나와 한 것이니, 이는 그가 거짓말쟁이요 또 거짓말의 아비이기 때문이라』(요 8:44). 마귀가 거짓말쟁이요, 거짓말의 아비라는 사실은 창세기 3장에서 최초의 인류를 미혹했을 때 잘 드러나고, 처음부터 살인자였다는 것은 창세기 4장에서 아벨을 죽인 최초의 살인자 카인이 악한 자로부터 나왔고(요일 3:12) 예수 그리스도를 대적하는 마귀의 강력한 예표라는 점에서 잘 나타난다. 이 땅에는 이런 마귀의 속성을 잘 드러내고 있는 대표적인 세 집단이 있는데, 로마카톨릭과 공산주의와 모슬렘이다.교황은 지상 최대의 종교적 위선자이자 사기꾼이고, 그를 수장으로 하는 로마카톨릭은 지상 최고의 거짓말쟁이요 살인자 집단이다. 로마의 콘스탄틴 황제가 기독교를 공인하고(A.D. 313) 니케아 공회를 주재한(A.D. 325년) 이래로, 카톨릭은 오직 "거짓말"(기만, 사기, 공갈, 부정, 교활, 아첨 등)과 "살상"(고문, 협박, 투옥, 추방, 전쟁 등)이라는 전략적 도구를 통해 자기들의 실체를 가리면서 그들 나름의 정치적 입지와 종교적 조직을 강화하고 유지해 왔다.
그들은 입만 열면 거짓말을 한다. 최종권위인 하나님의 말씀과 성경적 교리에 대해서 거짓말하고, 종교적인 자유와 통합, 자기들의 도덕적 타락과 편협한 모습, 교활한 정치적ㆍ종교적 행보들, 세계 정복을 위한 음흉한 목표와 이를 이루기 위한 은밀한 활동들, 예를 들면 20세기의 예수회의 비밀스런 활동이나 제1,2차 세계대전의 배후에서의 움직임 등에 대해 거짓말을 일삼는 것이다. 특히 상황이 불리하다 싶으면 이러한 전략을 즐겨 사용하는데, 거짓말로 자신의 적들을 매수하거나 적절한 타협을 위해 평화를 위한 협상의 자리로 그들을 끌어들인다. 하지만 충분한 정치적 권력과 그것을 행사할 수 있는 권세를 확보했을 때에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정치적이든 종교적이든 그 누구든지 카톨릭에 위협이 되는 자들에 대해 살상을 저지른다. 그래서 정권을 장악한 교황들은 "이단 사냥"이란 명목 아래 성경대로 믿는 그리스도인들을 서슴없이 죽였다. 교황 레오 1세에게 돈으로 매수된 훈족의 아틸라나, 교황 레오 3세의 정치적 하수인이 된 샤를마뉴 대제도 그리스도인들을 살해했다. 영국, 프랑스, 스페인, 독일 등 유럽의 대부분의 카톨릭 통치자들도 그리스도인들을 죽였다.
이처럼 카톨릭이 내세우는 평화 협상은 자기들을 반대하는 자들을 제거하기 위한 "연막"에 불과하다. 1572년에 4만 8천 명의 성경대로 믿는 위그노들이 살해된 "성 바돌로매 대학살"이 대표적인 사례이다. 전통적으로 카톨릭에 속해 있던 프랑스 왕은 당시 그들과 위그노 사이에 격렬하게 벌어졌던 "위그노 전쟁"의 종식과 평화 협상을 구실로 위그노들을 완전히 제거하기 위해 교활한 음모를 꾸몄는데, 자신의 여동생과 위그노의 수장 나바르 군주 간에 결혼을 추진했던 것이다. 8월 18일에 프랑스 파리에서 수많은 위그노들이 참석한 가운데 결혼식이 거행되었고 성대한 만찬도 열렸다. 6일 후인 24일에는 파리 전역에서 카톨릭교도들 사이에 약정된 신호가 떨어지자 카톨릭 군인들과 암살자들은 위그노들의 사령관 콜리그니를 살해하여 창문 밖 길바닥으로 내던졌다. 뒤이어 계층과 신분,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많은 위그노들이 죽임을 당했다. 당시 기록에 따르면 카톨릭교도들의 악마적인 분노가 얼마나 격렬했는지 수많은 시체들이 강물 속에 던져졌고 피가 세찬 물줄기처럼 거리들에 흘러넘쳤다고 한다. 평화는 없었다. 살상과 전쟁만 있었을 뿐이다! 이처럼 오늘날 "세계 평화를 위해 기도한다."고 떠들어 대는 교황들이나 "종교 통합과 평화"를 외치는 로마카톨릭의 거짓말 이면에는, "그들에게 머리를 조아리지 않고 반대하는 자들은 어떤 형태로든 죽여야 한다."는 살인적 의도가 내포되어 있음을 유념해야 한다. 『악인들과 죄악을 행하는 자들과 함께 나를 데려가지 마소서. 그들이 자기 이웃들에게 화평을 말하나 그들의 마음속에는 해악이 있나이다』(시 28:3).
공산주의 집단 역시 화평을 말하면서도 마음속에 전쟁을 구상하는 자들이다. 그런 거짓말쟁이들과는 협상을 하는 것 자체가 무의미하다. 일례로 남북정상회담이나 6자회담이 북한의 핵개발 야욕을 포기하게 했던가? 김대중 정권의 햇볕정책은 북한의 핵개발을 "부추긴" 실패한 정책이었다. 그런 식의 공산주의 독재자를 달래려는 유화 정책은 어리석은 짓이다. 1938년 영국 수상 체임벌린은, 뮌헨 회담에서 독일의 독재자 히틀러를 달래기에 급급한 나머지 그 "미치광이 카톨릭교도"가 불법으로 점령한 체코슬로바키아의 주데텐란트 지역을 그에게 양도해 주는 대신 "평화를 담보로 한 협정문" 하나를 손에 들고 영국으로 돌아왔다. 그러나 그것이 휴지 조각에 불과했음이 드러나는 데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히틀러를 향한 그의 유화 정책은 평화를 보증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제2차 세계대전의 불을 지피는 불쏘시개가 되었다. 인간은 역사로부터 교훈을 배워야 하지만 그렇게 하지 못하는 것은 인간이 어리석기 때문이다.
북한은 건국 이래로 무력에 의한 적화통일을 포기해 본 적이 없다. 더군다나 핵의 대량 생산과 실전 배치를 위한 노력을 지속하고 있다. 지난 5월 제7차 노동당대회에서 개정한 노동당 규약에 "핵 - 경제 병진노선"을 명문화한 것이나 9월 제5차 핵실험을 통해서도 알 수 있듯이, 독재자 김정은은 핵과 명운을 같이하겠다는 의지를 분명히 하고 있다. 이렇듯 국가의 존립을 위태롭게 하는 적들의 위협 앞에서 "평화 협상"이니 "평화 통일"이니 하는 것은 현실을 무시한 채 떠들어 대는 탁상공론에 불과하다. 평화를 지킬 수 있는 힘의 공백 속에서 평화를 유지하려 하는 것은 위험한 발상이다. 마음속에 화평할 의도가 전혀 없는 자들을 향해 유화 정책과 평화적 방법을 고집하는 것은 오히려 적들의 야욕을 부추기는 일이다. 그런 상황에서 최선의 평화 유지 방법은 적을 제압할 수 있는 강력한 힘을 유지하는 것이다. 북한도 이런 내막을 잘 알고 있기에 주한미군 철수와 한미동맹 파괴를 위해 부단히 노력을 해 오고 있으며, 이에 김대중 정권의 6ㆍ15남북공동선언이나 노무현 정권의 한미연합사령부를 해체하기 위한 노력은 공산주의 독재자의 장단에 두 좌파 대통령이 놀아난 결과였다. 남북공동선언에서 "우리 민족끼리 자주적"으로 통일하자는 것이 얼마나 그럴듯한 거짓말인가? 이는 그들이 말하는 "우리"란 김정일 독재집단과 남한의 친북세력을 의미하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한미연합사를 해체함으로써 "자주국방"을 실현하자는 것이 얼마나 그럴듯한가? 그러나 그것은 국가 안보는 뒷전에 두고 공산주의식 적화통일을 용이하게 하자는 속임수에 불과했다.
제주도 4ㆍ3 폭동, 여수ㆍ순천 반란, 6ㆍ25 남침, 지속된 간첩 남파, 김신조 특공대 청와대 기습 시도, 울진ㆍ삼척 무장공비 침투, 남침용 땅굴, 판문점 도끼만행 사건, 아웅산 테러, KAL기 폭파, 속초 잠수정 침투, 제1,2차 연평해전, 대청해전, 천안함 폭침 사건, 연평도 포격 사건, 다섯 차례의 핵실험 등 결코 평화는 없었다. 역사로부터 교훈을 얻으라. 역사는 오직 그들의 거짓말과 살상만이 있었음을 보여 준다! 『나의 혼이 화평을 미워하는 자와 함께 오래 거하였도다. 나는 화평을 원하나 내가 말할 때 그들은 전쟁을 원하는도다』(시 120:6,7).
모슬렘 역시 평화란 미명 아래 전쟁을 원하는 집단이다! 1991년 이래로 『땅과 평화의 교환』이란 원칙 아래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 자치정부(PLO)와 합의한 여러 협정들은 이 사실을 입증해 주고 있다. 아랍권은 상황이 불리할 때면 화평을 말하며 평화의 조약을 체결하는 자리로 나아오지만 사실 그 속내는 전쟁을 염두에 두고 있다. 일례로 1998년 10월, 이스라엘의 네타냐후 총리와 PLO의 아라파트가 체결한 "와이리버 협정"이 그러했다. 아라파트는 조약을 체결한 뒤에 네타냐후를 "평화 전개 운동의 동조자"라 불렀고, "당신의 안전이 우리의 안전이다... 우리는 폭력과 대결로 되돌아가지 않을 것이다... 우리는 우리 땅과 우리 이웃의 땅에서 평화가 지배하도록 이끌어 갈 것이다."라는 아주 그럴듯한 말을 했다. 그러나 이것은 "협정"이 아니었다. 협정이란 쌍방 간에 주고받는 약속이어야 하는데, 이것은 오직 팔레스타인만을 위한 일방적인 협약이었다. 이를 중재했던 미국의 빌 클린턴은 "네타냐후가 '이스라엘 땅의 소유권'이 아니라 '이스라엘의 안전'을 위한 굳은 입장을 표명했다."며 그를 추켜세웠다. 그러니까 이스라엘은 점령한 땅을 내어 주고 평화와 안전을 약속받았다는 것인데, 과연 지금 그 지역이 안전한 것인가? 평화로운 것인가? 분쟁은 끝나지 않았고 결과적으로 땅만 내준 꼴이 되었다. 그 땅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에게 약속해 주신 땅이었는데, 평화란 이름으로 하나님의 재가도 받지 않고 제멋대로 양도해 버린 것이다. 이 협정으로 PLO는 요르단 강 서안의 40%를 자치 영역으로 확보했고, 요르단 강 서안에 거주하는 팔레스타인 아랍인의 99%가 그들 자치 정부하에 들어오게 되었다. 그렇다면 땅과 맞바꾼 평화는 어떻게 되었는가? 평화는 없었다. 얼마 후 아라파트는 테러 행위를 방지하려는 노력도 하지 않은 채 오히려 그의 각료들과 더불어 테러 행위를 적극 격려했다. 협정을 무시하면서 자국민들에게는 이스라엘과 평화롭게 살라고 호소하기는커녕 폭력을 행사하도록 고무시켰다. 결국 이스라엘은 속은 것이다. 평화의 언약 따위는 없었다. 이스라엘을 전쟁과 파멸로 몰아넣는 거짓 약속이었을 뿐이다.
대환란 때 이스라엘은 또 속을 것이다. 적그리스도는 이스라엘에게 평화롭게 다가와 그들과 언약을 맺을 것이지만, 환란 중간에 그 언약을 일방적으로 파기하면서 그들을 파멸의 구덩이로 던져 넣을 것이다(단 9:27). 이런 거짓 언약에 대해 이사야 선지자는 이렇게 예언했다. 『너희가 말하기를 "우리가 사망과 더불어 언약을 맺었고 우리가 지옥과 더불어 합의하였도다. 넘치는 재앙이 지나갈지라도 우리에게 임하지 못하리니 이는 우리가 거짓을 우리의 피난처로 삼았고 허위 아래 우리가 우리 자신을 숨겼음이라." 하였도다』(사 28:15). 이스라엘은 환란 끝에 가서야 그들의 유일한 소망이자 피난처는 메시아이신 주 예수 그리스도이시라는 사실을 절실히 깨닫게 될 것이다. 그때까지는 사탄의 강력한 미혹에 속아 고통스런 기간을 보내야 할 것이다.
평화는 없다! 거짓말과 전쟁만 있을 뿐이다! 이것이 마귀의 자식들의 실체다. 그런 거짓말쟁이들과 살인자들은 결국 그들의 아비를 따라 불못으로 들어갈 것이다(마 25:41, 계 20:10). 『그러나 두려워하는 자들과 믿지 아니하는 자들과 가증스런 자들과 살인자들과 음행하는 자들과 마술하는 자들과 우상 숭배하는 자들과 모든 거짓말하는 자들은 불과 유황이 타는 못에 참여하리니 이것이 둘째 사망이라."고 하시더라』(계 21:8). 그들에게 속는 자도 마찬가지다. 왜 속는 것인가? 하나님께서 제시하신 진리의 사랑을 받아들이지 않아 구원받지 못했기 때문이다. 진리를 믿지 않고 불의를 좋아했기 때문이다(살후 2:10-12). 결국 속는 자만 손해를 보게 되어 있는 것이다! BB