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가 진리의 말씀을 올바로 나누어 자신이 하나님 앞에 부끄럽지 않은 일꾼으로 인정받도록 공부하라(딤후 2:15).
과도기의 경륜적 진리 분류

“과도기의 말씀들”에 나타나는 경륜적인 특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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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대로믿는사람들 <2014년 09월호>

과도기적인 책들의 종류

지난 호에서 살펴보았듯이 과도기적인 말씀들이 나타날 수밖에 없는 이유 1) 때문에 과도기적인 책들은 “신약”에만 등장한다. 이 책들로는 마태복음과 사도행전, 히브리서가 있고, 한 가지 더 언급하자면 요한계시록을 포함시킬 수 있다. 마태복음은 구약에서 신약으로 전환되는 과도기적인 책이고, 사도행전은 유대인의 경륜과 교회 시대의 경륜을 이어주는 책이며, 히브리서는 교회 시대에서 환란 시대로 넘어가는 과도기적인 책이다. 그리고 요한계시록은 교회 시대에서 환란 시대로, 환란 시대에서 천년왕국과 영원으로 전환되는 과도기의 말씀들을 다룬다. 이 시대에 수많은 교리적 오류들은 이 책들을 잘못 해석하고 적용한데서 비롯되었다. 말하자면 성경을 올바르게 나누지 못하고 이 책들의 모든 구절들을 신약 교회의 교리로만 억지로 끼워 맞추려 한 것이다. 우리는 과도기적인 책들에서 볼 수 있는 교리적인 특징들을 올바르게 나누어 공부함으로써, 그들과 동일한 오류를 범하는 어리석고 부끄러운 일꾼들이 되지 말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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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도기의 말씀들에 나타나는 경륜적인(또는 교리적인) 특징

과도기적인 책들은 어떤 특징들을 갖고 있는가? 우선, 하나의 시대나 경륜만을 다루지 않고, 두 개 이상의 시대와 경륜을 다룬다. 율법 시대면 율법 시대, 교회 시대면 교회 시대, 환란 시대면 환란 시대, 이렇게 하나의 시대와 경륜에 맞춰져 있는 것이 아니라 서로 다른 두 개의 시대와 경륜을 다루고 있다. 한 권의 책 안에 둘 이상의 서로 다른 경륜이 섞여 있는 것이다. 율법을 다루는 모세오경, 특히 레위기와 민수기, 신명기는 “율법 시대” 하나의 경륜에만 초점이 맞춰져 있기 때문에, 이 책들에 나오는 제사법 및 의식법은 이방인이나 교회 시대의 그리스도인과는 교리적으로 무관하다. 오직 구약의 이스라엘에게만 주신 교리들로 적용해야 하는 것이다. 반면 로마서에서 빌레몬서까지 13권의 바울서신들은 “교회 시대” 한 가지 경륜에만 맞추어져 있다. 따라서 이 책들에 등장하는 교리들과 명령들은 모두 교회에만 적용된다. 그러나 하나님의 경륜이 바뀌는 과정 중에 있는 과도기적인 책들의 경우, 그 안에 서로 다른 두 개의 경륜들이 공존하고 있는 것이다.

둘째, 경륜이 섞여 있다는 것은 각각의 경륜들에 속하는 서로 다른 “대상들”이 나오고 각각의 대상들에게만 적용되는 서로 다른 “교리들”이 섞여 있음을 의미한다. 과도기적인 책들은 서로 다른 경륜에만 적용되는 서로 다른 교리들이 상호 교차하고 있는 “교차로”라 할 수 있다. 즉 각각의 교리들이 적용되는 서로 다른 시기와 대상이 중첩되고 있는 것이다. 마태복음은 구약에서 신약으로 전환되는 과도기의 말씀들을 다룬다. 구약이라 하면 주로 “유대인들”을 대상으로 하는 “율법 시대의 경륜”을, 신약은 “교회”를 대상으로 하는 “교회 시대의 경륜”을 주로 다룬다. 그래서 이 두 가지 경륜들에 해당하는 교리들이 마태복음 안에 공존하는 것이다. 물론 마태복음 대부분의 구절들은 여전히 구약에 속해 있어서 교리적으로는 유대인들에게만 적용되는 구절들이 훨씬 더 많다. 사도행전은 이스라엘에서 교회로, 천국(왕국) 복음에서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으로 전환되는 과도기의 말씀들을 다룬다. 그래서 “유대인”의 경륜에 해당하는 교리들과 “교회”의 경륜에 해당하는 교리들이 섞여 있는 것이다. 히브리서는 교회 시대에서 환란 시대로 전환되는 과도기의 말씀들을 다룬다. 대환란은 “야곱의 고난의 때”라 불리는데 이는 “유대인들”이 그 중심에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 책에는 “환란 시대의 성도들”(특히, “환란 시대의 유대인들”)에게 적용되는 교리들과 “교회 시대의 성도들”에게 적용되는 교리들이 섞여 있는 것이다. 요한계시록은 무려 네 개의 시대와 경륜을 포함하고 있어 각 시대의 특징들을 보여 주는 교리적인 내용들이 함께 공존한다. 이를 무시한 채 성경의 모든 구절들을 교회 시대의 교리들로 가져오려 한다면 혼란에 빠지게 될 것이다.

셋째, 과도기적인 책들은 신약 안에 있지만 “구약적인” 책들이다. 이 사실을 아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즉 같은 신약 안에 있는 바울서신들은 교회 시대에 적용되는 교리들로 가득 차 있어서 “오직 믿음으로 구원받고 한 번 구원받은 사람의 구원은 영원히 보장된다.”는 신약적인 교리로 일관하지만, 과도기적인 책들은 그렇지 않은 것이다. 신약에 포함되어 있으면서도 오히려 “구약적인” 율법과 연관되어 있어서, “행위 구원 및 끝까지 견뎌야 구원받는다.”는 교리가 등장하고 왕국복음과 표적들이 나타난다. 이런 내용들은 교회 시대의 교리로 결코 적용할 수 없는 것들이다.

과도기의 말씀들을 공부하는 방법

오늘날 대부분의 이단들은 “과도기적인 책들”을 사사로이 해석하고 억지로 풀려는 데서 생겨났다. 이에 대해 베드로는 그의 두 번째 편지 “첫 장”(1장)과 “마지막 장”(3장)에서 두 번이나 경고한다. 『성경의 어떤 예언도 사사로운 해석에서 나온 것이 아니니』(벧후 1:20). 『무식한 자들과 견고하지 못한 자들이 다른 성경들처럼 억지로 풀다가 스스로 멸망에 이르느니라』(벧후 3:16). 그럼에도 불구하고 알미니안주의자들은 “그리스도인도 한 번 받은 구원을 잃어버릴 수 있다.”고 거짓말한다. 그들은 이런 이단적인 교리의 근거로 “끝까지 견뎌야 구원을 받는다.”(마 24:13)는 말씀이나 “떨어져 나가면 다시 새롭게 회개시킬 수 없다.”(히 6:6)는 말씀을 제시한다. 반면 칼빈주의자들은 이런 구절들을 만나면 제대로 해석하지 못한 채 교회 시대 성도들에게 억지로 끼워 맞추려 한다. 로마카톨릭이나 그리스도의 교회들은 “세례 혹은 침례를 받아야 구원받는다.”고 거짓말한다. 이 이단 교리의 기초는 사도행전 2:38에 있다. 그러나 그들은 사도행전 2장에서 베드로가 설교했던 대상이 이방의 죄인들이 아니라 메시아를 십자가에 못박은 유대인들(행 2:36)이라는 사실을 간과해 버린다. 신유나 방언 따위로 사람들을 미혹하는 은사주의자들은 마태복음이나 사도행전에 나오는 병 고침과 방언 같은 표적들을 근거로 그들의 거짓 교리를 정당화한다. 그러나 그들은 이 표적들이 교회가 아닌 이스라엘에게 주어진 것이며 은혜의 복음이 아닌 왕국 복음과 연관되어 있다는 사실에 완전히 무지하다. 행위 구원 및 침례에 의한 중생을 가르치는 이런 각종 이단들은 과도기적인 책들을 올바르게 이해하지 못해서 생겨났다. 이는 그들이 “한 책” 안에 공존하는 “서로 다른” 교리들과 각각의 교리들이 적용되는 “서로 다른” 대상들을 올바르게 나누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그들은 성경이 모순적이고 오류투성이의 책이라고 주장하기까지 한다. 그렇다면 과도기적인 책들을 바르게 깨달을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인가?

우선, 성경의 모든 구절들을 문자적으로 해석해야 한다. 이것은 성경을 해석하는 가장 기본적인 원칙으로, 이 원칙을 따르면 성경을 있는 그대로 믿게 된다. 하나님의 말씀은 “사실 그대로 받고 믿을 때”에만 온전히 깨달을 수 있다(살전 2:13). 그런데 과도기적인 책들은 문자적인 해석만으로 쉽게 이해할 수 있는 책들은 아니다. 그래서 알미니안주의자들은 문자적으로 해석한답시고 “교회 시대의 성도들도 끝까지 견뎌야 구원받는다.”는 왜곡된 주장을 하고, 칼빈주의자들은 문자적으로 풀지 못하니까 영적으로 억지로 끼워 맞추는 것이다.

그래서 두 번째 부분에 주목할 필요가 있는데, 곧 진리의 말씀을 올바로 나누어 공부해야 한다(딤후 2:15). 나누되 “올바르게” 나누어야 한다. 올바로 나눈다는 것은 “하나님의 경륜의 차이”를 올바르게 이해해야 한다는 뜻이다. 즉 하나님의 다양한 경륜에 따라 나타나는 서로 다른 대상들과 교리들을 올바르게 나누어야 하는 것이다. 성경을 문자적으로 해석한다고 했을 때, 그것은 이단들처럼 한 구절만 떼어내어 문자적으로 해석하는 것이 아니다. 진정한 문자적 해석은 문맥을 고려한다. 문맥을 고려하여 문자적으로 해석한다는 말은 그 말씀이 “어떤 시대에 사는 어떤 사람에게 주신 말씀이냐” 하는 것까지도 문자적으로 받아들여야 한다는 뜻이다. 일례로 마태복음은 구약의 연장선상에서 유대인에게 유대인의 왕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보여 주는 책이기에, “유대인의 관점에서 문자적으로” 해석해야 한다. 히브리서는 “마지막 날들(히 1:2)을 사는 성도들”에게 주신 말씀이기에(“마지막 날들”은 교리적으로 환란 시대를 가리킴) “마지막 날들을 사는 사람들의 관점에서 문자적으로” 해석해야 하는 것이다. 물론 모든 성경은 역사적으로, 교리적으로, 영적으로 적용할 수 있다. 그러나 성경이 기록된 첫 번째 목적은 “교리”이므로(딤후 3:16), 교리적으로 적용할 때는 성경의 각 책들과 각 장들과 절들을 “칼로 나누듯이” 교리적으로 정확히 나누어야 한다. 교리적인 구분을 명확히 하고 그에 따라 각 책들의 교리적 혹은 경륜적 위치를 바르게 설정하지 못하면, 성경을 온전히 깨달을 수 없다. 즉 하나님의 경륜들을 올바르게 구분할 줄 아는 세대적인 지식이 있어야만 하는 것이다.

셋째, “경륜”과 그 경륜이 적용되는 “시기”와 “대상”을 올바르게 나누어야 한다. 성경은 인류를 세 부류, 즉 유대인과 이방인과 하나님의 교회로 구분한다(고전 10:32). 따라서 각 대상에 맞게 진리의 말씀들을 교리적으로 구분하여 적용해야 한다. 말하자면 과도기적인 책들의 각 구절들을 문맥을 고려하여 각각의 대상에 맞게 올바르게 나누어 적용해야 하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가장 중요한 한 가지는 성경의 주제가 왕국이므로, 물리적 왕국인 천국과 영적 왕국인 하나님의 나라를 올바르게 구분해야 한다는 것이다(본지 268,269호 참조).

이상 네 가지 사항을 유념하여, 과도기의 말씀들을 문자적으로 해석하고 역사적으로, 영적으로 적용하는 것은 물론, 교리적으로도 올바르게 나누어 적용함으로써 각각의 과도기적인 책들을 보다 더 자세하게 공부해 나가도록 하자. BB

(각주)--------------------------

1) 과도기적인 책들은 왕국의 연기에 따른 교회 시대의 등장과 밀접한 연관을 갖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