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가 진리의 말씀을 올바로 나누어 자신이 하나님 앞에 부끄럽지 않은 일꾼으로 인정받도록 공부하라(딤후 2:15).
과도기의 경륜적 진리 분류

베드로에서 바울로 전환되는 사도행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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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대로믿는사람들 <2018년 09월호>

왜 이 마지막 교회 시대에는 "그리스도의 일꾼"이 좀처럼 나오지 않는 것인가? 하나님의 말씀을 공부하지 않기 때문이다. 세상에서의 성공을 위해서는 밤새워 공부하면서도 성경 공부를 위해서는 단 한 시간도 투자하지 않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시기적으로는 마땅히 선생들이 되었어야 할 자들이 여전히 어린 아기들로 남아 있다. 그들은 단단한 음식, 곧 "질긴 고기"(strong meat)를 소화시킬 능력이 없고, 의의 말씀에 능숙하지 못하며, 그 말씀을 통해 단련된 영적 감각으로 선악을 분별할 수 있는 역량이 전무하다(히 5:12-14). 결국 『자기 자신의 일만을 구하고 그리스도 예수의 일은 구하지』 않는(빌 2:21) 게으르고 무익한 종들로 전락해 버린다.

사도행전은 단단한 음식에 해당된다. 왜냐하면 " 유대인을 위한 경륜에서 교회를 위한 경륜으로 전환되는 과도기적인 책 "이기 때문이다. 이 점에 무지한 어떤 목사나 신학자도 사도행전을 올바르게 해석하고 적용할 수 없다. 유대인과 교회는 엄연히 다른 존재이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유대인"에게 주신 말씀과 "교회"에게 주신 말씀을 각각 그 대상에 맞게 올바로 나누어서 적용하지 않으면 교리적인 혼란이 일어난다. 말하자면 사도행전은 그 두 대상을 향한 말씀들이 한데 섞여 있는 책이기에 주의를 기울여야 하는 것이다. 하지만 이 점을 유념하지 못한 이단들, 곧 칼빈주의자들, 극단적 세대주의자들, 침례(세례)에 의한 중생을 가르치는 로마카톨릭과 그리스도의 교회, 신유와 방언을 외치는 은사주의자들 등이 자기들의 거짓 교리들을 정당화하기 위해 사도행전 주위를 맴돌다가 성령께서 기록하신 이 거룩한 책을 이단 교리의 온상이자 무익한 격론장으로 변질시키고 있다.

사도행전 초반부는 "유대인"을 향한 말씀들로 가득 차 있다. 최소한 사도행전 7장까지만 해도 구약에서 예언된 왕국이 임할 수 있는 상황이었기 때문에, 제자들은 이 땅에 실제적으로 세워질 눈에 보이는 메시아 왕국을 기대했고, 그에 따라 유대인들에게만 "왕국 복음"을 전파했다(본지 301호, pp. 38-42, 『올바로 나누지 않으면 봉인되는 책, 사도행전』 참조). 이것은 유대인이든 이방인이든, 죄인들을 위해 십자가에서 피 흘려 죽으시고 장사되셨다가 다시 살아나신 예수님을 믿는 믿음을 통해서만 구원받을 수 있고 그리스도의 몸 된 "교회"의 구성원이 될 수 있다는 "은혜의 복음"과 전혀 다른 복음으로서, 구원을 위해 율법이나 침례와 같은 행위들이 강조된다. 그 중심에 서 있던 베드로가 오순절의 메시지를 시작으로 전파한 "세 번"의 설교(행 2,3,4장) 역시 그 대상은 유대인들이었고, 내용은 왕국 복음이었다.

그러나 문제는 완고한 유대인들이 메시아 왕국의 왕이신 예수님을 거부하고 십자가에 못 박아 죽였던 것처럼 베드로를 위시하여 왕국 복음을 전파한 사도들을 거부하고 박해했다는 사실이다. 그러한 거부는 스테판의 설교 때 절정에 달했는데, 그들은 그를 돌로 쳐 죽였다(행 7장). 결국 유대인들은 왕국으로 들어갈 수 있는 마지막 기회마저 걷어차 버렸고, 이제 왕국은 완전히 거부되어 미래의 재림 때로 연기되고 만다. 곧 스테판의 죽음을 기점으로 유대인을 위한 경륜은 메시아께서 다시 오셔서 그들을 회복시키실 때까지 잠시 보류되고, 교회를 중심으로 하는 새로운 경륜이 본격적으로 진행되어 나가는 것이다. 그러는 가운데 하나님께서는 예수 그리스도를 거부하는 유대인들을 버리기 시작하신다. 사도행전 7장에서는 "예루살렘"의 유대인들을 버리시고(A.D. 33년), 13장에서는 "소아시아"의 유대인들을(A.D. 44년), 18장에서는 "유럽"에 있는 유대인들을(A.D. 55년), 28장에서는 "전 세계"에 흩어져 있는 유대인들을 버리신다(A.D. 63년). A.D. 70년에는 로마의 티투스 장군에 의해 예루살렘이 완전히 파괴되고, A.D. 135년에는 유대인들이 이스라엘 땅에서 완전히 추방된다.

그리고 그 버림받은 유대인들을 대신하여 사마리아인들을 포함한 이방인들이 그 자리를 차지하게 되는데, 이들은 마태복음 10:5에서 예수님께서 열둘을 보내실 때 "가지 말라."라고 명령하셨던 바로 그 대상들이다. 하지만 이제는 경륜이 바뀌었으므로 사역의 중심은 그들에게로 옮겨진다. 우선 사도행전 8장에서는 "사마리아인들"에게로 사역이 확대되고, 또한 "이방인" 에디오피아 내시가 구원을 받는데, 다시 말해 하나님께서는 이방인을 위한 구원에 있어서 저주받은(창 9:25) "함족" 후손들을 먼저 기억해 주신 것이다. 9장에서는 이방인의 사도로 부름받은 바울이 회심함으로써 "셈족"을 구원하기 위한 준비가 마련되고, 10장에서는 베드로가 "야펫 족속"에 속한 코넬료에게 복음을 전함으로써 이방인을 위한 구원의 문이 본격적으로 열린다.

이처럼 "교회를 위한 경륜"으로 그 시대와 대상이 바뀌다 보니 구원을 위한 복음의 내용에도 변화가 생길 수밖에 없었는데, 왕국 복음으로 일관했던 베드로 역시 이전에 했던 세 번의 설교와 판이하게 달라진 복음을 전하게 된다(행 10:43; 11:17; 15:11). 특히 사도행전 15장에서 "구원을 받으려면 율법에 따라 할례를 받아야 하는가"에 대한 문제를(1,2절) 규명하기 위해 예루살렘 회의가 열렸을 때, 베드로가 이방인 코넬료에게 복음을 전했던 일을 떠올리며 언급했던 내용은 그의 교리가 이전의 오순절 설교와 확연하게 달라졌음을 보여 준다. 『많은 논의가 있은 후에 베드로가 일어나서 그들에게 말하기를 "형제 여러분, 당신들이 아는 대로 하나님께서 오래전부터 우리 가운데 택하시어 나의 입을 통하여 이방인들이 복음의 말씀을 듣고 믿게 하셨느니라... 우리와[유대인] 그들[이방인] 사이에 어떤 차이도 두지 아니하셨으니 믿음으로[행위가 아님] 그들의 마음을 정결케 하셨느니라... 우리는[유대인]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로[행위가 아님] 구원받는 것을 믿으며 그들도[이방인] 마찬가지니라."고 하더라』(행 15:7,9,11).

그런데 베드로의 "중심 역할"은 여기까지였다. 엄밀히 말하면 사도행전 12장까지였고, 15장의 예루살렘 회의에서조차도 경륜이 전환되고 있는 과도기적인 상황에서 달라진 구원의 복음에 대해 교리적인 진술만 보탰을 뿐이다. 비록 베드로가 자신에게 주어진 "천국의 열쇠들"을(마 16:19) 활용하여(영적인 적용) 이방인들에게 구원받을 수 있는 복음의 문을 열어 주긴 했지만(코넬료의 경우), 이방인을 위한 사역의 "중심적인 역할"까지 담당하지는 않았다.

그 임무는 다른 이에게 맡겨졌으니, 곧 사도 바울이었다. 바울은 스테판이 죽는 순간에 처음으로 등장하는데(행 7:58), 이것은 결코 "우연한 일"이 아니었다. 왜냐하면 새롭게 변화될 경륜을 계획하신 하나님께서 유대인을 위한 경륜이 마감되고 이방인 중심의 교회를 위한 경륜으로 넘어가는 역사의 한 페이지에 그를 의도적으로 등장시키신 것이기 때문이다. 이로써 바울은 사도행전 9장에서 회심한 이후 13장부터 28장까지 지금까지의 사역과는 전혀 다른 방향의 사역을 이끌게 되는데, 곧 이방인들을 위한 사도로서의 역할을 감당했던 것이다. 그는 이방인들에게 은혜의 복음을 전파하며 교회를 세워 나갔다. 세 차례의 선교 여행은 그런 사역의 면모를 잘 설명해 준다. 사역의 중심지도 예루살렘이 아닌 "안티옥"으로 바뀌었다. 특히 이곳에서 제자들은 처음으로 "그리스도인"이란 호칭으로 불리기 시작했다(행 11:26). 바울이 선교 여행의 기점으로 삼은 곳도 안티옥 교회였다. 안티옥을 중심으로 복음과 진리가 확산되어 나갔으며, 바르게 보존된 성경 필사본들도 함께 확산되었다. 바울은 자신의 사역을 한마디로 다음과 같이 표현했다. 『그러나 나의 달려갈 길을 기쁨으로 끝마치고 내가 주 예수로부터 받은 사역,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을 증거하기 위해서라면 이런 일을 전혀 개의치 아니할 뿐 아니라 나의 생명을 조금도 아끼지 아니하노라』(행 20:24). 말하자면 바울의 사역은 "은혜의 복음"을 위한 영적 싸움이자 믿음의 전진이었던 것이다. 물론 바울은 은혜의 복음을 증거하면서도 자신의 동족인 유대인들을 향한 영적 부담을 한시도 내려놓지 않았다. 왕국이 거부된 이후 교회 시대에 전파되는 은혜의 복음도 우선적으로 전파될 대상은 유대인이었던 것이다(롬 1:16). 하지만 그들이 왕국 복음뿐만 아니라 이 은혜의 복음마저 거절했을 때는, 바울 역시 그들을 떠나 이방인들을 향해 갈 것이라고 경고했다(행 28:28).

그런 가운데 지금까지 2천여 년의 교회 시대가 지나오면서 이방인들을 대상으로 은혜의 복음은 지속적으로 확산되어 왔다. 하지만 이 교회 시대도 마지막 문턱에 와 있다. 이방인들의 죄악이 충만해지고 있기 때문이다(롬 11:25). 이방인들을 향한 복음의 문이 닫히고 있는 것이다. 지금은 복음과 진리를 선포하는 신실한 일꾼들을 좀처럼 찾아보기가 어려운 시대다. "추수밭들에 대한 환상"(마 9:37,38), 곧 지옥으로 달려가는 죄인들을 복음으로 이겨와야겠다는 추수할 일꾼으로서 가져야 할 환상을 잃어버린 그리스도인들이 부지기수다. 왜 그런 것인가? 하나님의 말씀을 공부하지 않기 때문이다. 공부하지 않기에 신실한 청지기들이 나오지 않는 것이다. 언제 『네 청지기직을 청산하라[ give an account of thy stewardship].』(눅 16:2)라는 소환장이 날아올지 모른다. 청지기직을 청산하는 그날에 우리는 그리스도의 심판석에 서서 그 청지기직과 관련하여 『하나님께 자신에 관해 설명[ give account of himself to God]』(롬 14:12)하게 될 것이다. 더 이상 일할 수 없는 밤이 오기 전에 부지런히 성경을 공부함으로써 신실한 일꾼으로 발견되도록 힘써야 하는 것이다. BB