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가 진리의 말씀을 올바로 나누어 자신이 하나님 앞에 부끄럽지 않은 일꾼으로 인정받도록 공부하라(딤후 2:15).
성경과전쟁 분류

기드온의 불가능한 싸움, 그러나 완전한 승리

컨텐츠 정보

본문

성경대로믿는사람들 <2018년 01월호>

하나님께서는 종종 그분의 연약한 성도들을 "불가능한 싸움"으로 내모실 때가 있지만, 그때마다 그 전장에는 "완전한 승리"로 이끄시는 전능하신 주 하나님께서 가장 선두에 서서 싸우고 계신다.

기드온은 미디안 군대와 일전을 치르기 위해 이스르엘 골짜기, 하롯의 샘 곁으로 출전했다. 당시 기드온과 함께 그곳에 진을 치고 있던 백성들의 수는 32,000명이었는데, 하나님께서는 그 수가 너무 많다고 말씀하신다. 『너와 함께한 백성이 너무 많아, 내가 미디안인들을 그들의 손에 줄 수 없나니, 이는 이스라엘이 나를 거역하여 자만하며 말하기를 '내 손으로 나를 구원했다.'고 말하지 않게 하려 함이라』(판 7:2). 물론 바락이 시스라와 싸울 때 참전했던 1만 명(판 4:10)보다 많은 수인 것은 사실이지만, 135,000명에 달하는(판 8:10) 적들에 비하면 결코 많은 수가 아니었다. 그 수는 아군 병력에 네 배를 상회하는 규모로서, 재판관기 7장에서는 『그 무리가 메뚜기떼 같고 그들의 낙타도 무수하여 그 무리가 바닷가의 많은 모래 같더라.』(12절)라고 말씀한다. 약 13만의 병력을 1열로 세워 행군할 경우, 그것은 맨 앞에 있는 사람과 맨 뒤에 있는 사람이 "같은 날" 목적지에 도착할 수 없는 길이의 규모라고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는 적들의 수에 비해 1/4정도로 적은 32,000명도 너무 많다고 말씀하시는 것이다(2절).

여기서 우리는 다시 한 번 전쟁은 "사람의 수"로 하는 것이 아님을 깨닫게 된다. 스카랴 4:6에서는 『힘으로도 아니요, 능력으로도 아니며, 오직 나의 영에 의해서니라. 만군의 주가 말하노라.』라고 말씀한다. 사울의 아들 요나단은 『주의 구원하심은 사람의 많고 적음에 제한받지』(삼상 14:6) 않는다고 말했다. 그의 친구 다윗 역시 『어떤 이들은 병거들을 의지하고 어떤 이들은 말들을 의지하나, 우리는 주 우리 하나님의 이름을 기억하리로다.』(시 20:7)라고 고백했다. 이에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이 자기들의 손으로 구원했다고 말하지 않게 하시기 위해, 인간이 스스로 노력하여 이룰 수 있는 모든 "가능성"마저 완전히 차단하기 시작하신다(3절). 결국 6절에 가서는 그 수를 32,000명에서 300명까지, 곧 1% 미만으로까지 줄여 버리셨다. 말하자면 1대 450의 싸움이 되었은즉, 인간적인 견지로는 완전히 "불가능한 싸움"이 되었다. 하나님만을 신뢰하지 않으면 절대로 이길 수 없는 싸움을 싸우게 하신 것이다. 사실 어떤 전쟁이든지 주께서 함께하시지 않는다면 힘센 용사들도 무용지물에 불과하다.

"용기 없는 군인"은 전쟁에 참여할 자격이 없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최종 300명의 정예군을 선별하시는 과정이 매우 흥미롭다. 『그러므로 이제 너는 가서 백성의 귀에 선포하여 말하기를 '누구든지 두려워하고 무서워하는 자는 길르앗 산에서 떠나 돌아가라.' 하라." 하시니 백성 중에서 돌아간 자는 이만 이천 명이요, 남은 자가 일만 명이더라』(3절). 우선 전체 병력 중에서 "두려워하고 무서워하는" 사람 22,000명(약 69%)을 집으로 돌려보내신 것이다. 사실 이것은 "전쟁에 관한 율법"의 규정이기도 했다. 『겁에 질리고 낙담하는 자가 있느냐? 그는 자기 집으로 돌아갈지니 그의 형제들의 마음이 그의 마음과 같이 되지 않도록 하려 함이라』(신 20:8). "겁쟁이"는 정예군의 대열에 들어올 수 없다! 전쟁에서 적과 싸우기를 두려워하고 쉽게 겁을 내며 자주 낙심하는 군인은 다른 전우들의 사기만 떨어뜨릴 뿐 아무런 도움도 되지 않는다. "전쟁의 승리는 사망자의 수가 아니라 겁에 질린 자의 수에 의해 판가름 난다."라는 아랍 속담이 있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사막의 여우" 독일의 롬멜을 제압했던 미국의 패튼 장군은 "겁은 전염성이 강하다."라고 말했다.

1899년 영국의 마지막 제국 전쟁이라 불리는 제2차 보어 전쟁 당시 아주 특이한 죄명으로 유죄 판결을 받은 병사가 있었는데, 죄명이 "낙담시키는 죄"였다. 이 군인은 병영을 돌아다니면서 "우리가 싸워야 할 적군이 얼마나 강한지, 왜 우리는 이 고지를 방어하기가 어려운지, 우리가 주둔해 있는 이 도시는 반드시 점령될 것이라든지" 등의 여러 가지 소문을 퍼트리고 다녔는데, 결국 그의 낙담어린 말 한마디가 영국 군대 전체를 무기력하게 만들고 말았다. 어떤 강력한 무기나 가공할 만한 군사적인 세력이 아니더라도, 보이지 않는 공포와 그로 인한 온갖 망상이나 뜬소문, 염려, 불안감이 전세를 역전시키고 군대의 사기를 꺾어 버릴 수 있다. 오늘날 이슬람 과격분자들이 "테러"를 통해 노리는 효과가 바로 이것인데, 테러는 상대방의 저항 의지를 마비시키고 전략적이고 이성적으로 대응하는 능력을 파괴시키는 최상의 방법인 것이다. 겁쟁이는 고향으로 돌아가야 한다. 이렇게 해서 기드온 곁에는 1만 명이 남았다. 재판관기 4장에서 바락이 1만 명의 병력으로 시스라가 이끄는 900대의 강력한 철병거를 물리친 전적을 감안하면 아직까지는 해볼 만한 싸움이었다.

"경계에 실패한 군인"은 그리스도의 정예군이 될 수 없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이런 인간적인 생각에 찬물을 끼얹으신다. 그 수도 너무 많다고 하시면서(4절) 두 번째 선별 기준을 제시하신 것이다. 『그리하여 그가 백성을 물로 데려갔더니 주께서 기드온에게 말씀하시기를 "누구든지 개가 핥듯이 자기 혀로 물을 핥는 자는 따로 세울지니라. 무릎을 꿇고 엎드려 마시는 자도 그같이 하라." 하시니 그들의 손을 입에 갖다 대고 핥은 자들의 수가 삼백 명이요, 백성의 남은 자는 다 무릎을 꿇고 엎드려 물을 마시더라』(5,6절). 무릎을 꿇고 엎드려서 물을 마신 병사 9,700명(약 30%)도 집으로 돌아가야 했는데, 여기에는 무슨 문제가 있는 것인가? 이들은 지금 전쟁 중이라는 사실을 간과했다. 그들의 진영 북쪽 바로 맞은편에 135,000명의 대군이 집결해 있다는 사실을 잊어버린 것이다. 이들은 경계를 늦추고 머리를 땅에 처박은 채 육신의 목마름을 채우기에 급급했던 자들이다. 전쟁에서 적들을 경계하지 않고 방심한 군인은 "제1의 표적"이 된다.

반면에 개처럼 물을 핥아서 마신 자들은 적들에게 틈을 주지 않고 주위에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항상 경계를 늦추지 않은 자들이다. 전장에서 "경계"는 매우 중요한 요소다. 오늘날 미국 역사상 가장 위대한 대통령 중 하나로 손꼽히는 토머스 제퍼슨은 "끊임없는 경계는 자유를 얻기 위한 대가이다."라고 했다. 어떤 신실한 목사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그리스도인의 적들은 다른 적들보다도 더 무자비하며 수도 많다. 그들은 구원받은 우리가 추구하는 목적지에 도착하는 것을 조금도 원하지 않는다. 비록 그들이 우리를 영원한 요새인 약속의 땅으로부터 끄집어낼 수는 없어도 그곳을 향한 우리의 행진에 많은 방해를 가할 수 있다. 좀 더 인내하며 경계하고 기도하라! 왜냐하면 우리에게는 싸워야 할 적이 있기 때문이다. 경계와 기도는 우리의 전신갑옷을 빛나게 할 것이다. 우리의 수고와 전쟁은 이제 곧 끝날 것이며 승리와 영광만이 우리를 둘러싸게 될 것이다."

"불가능한 싸움"은 "믿음"을 입증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다!

이리하여 두려워 떨지도 않고 깨어 있어 경계를 늦추지 않은 300명(약 1%)의 정예군이 선발되었고, 하나님께서는 이들을 전장에 투입하셔서 대승을 거두게 하셨다. 완전한 승리를 위해 사용된 전략은 "세 가지"였다. 첫째, "보리빵 한 덩어리가 미디안 진영으로 굴러가서 그들을 무너트리는 꿈"(13,14절)을 통해 적들의 사기를 떨어트리고 그들을 낙담과 혼란에 빠트리는 것이었다. 한 덩어리의 "보리빵"은 기드온의 "칼"이다(14절). 빵과 칼은 "하나님의 말씀"을 의미하는데(마 4:4, 히 4:12), 바로 여기에 모든 전쟁의 승리의 비결이 있다. 둘째, 기습이었다. 기드온은 300명을 세 부대로 나누고 "중간 경점"(19절), 곧 밤 10시와 새벽 2시 사이에 야간 공격을 기습적으로 감행했던 것이다. 적들이 준비하기 전에 기습하면 적들은 이성과 균형을 잃고 실수를 남발하면서 공황 상태에 빠지기 쉽다. 전쟁은 "속도"를 중요한 가치로 생각하는 분야다. 나폴레옹은 "천천히 심사숙고하고 빠르게 행동하라."라고 했다. 특히 적들의 규모가 크고 막강할 때 예기치 않은 방법으로 기습하면 그 효과는 극대화된다. 셋째, 왼손에 든 항아리를 깨트리면서 등불을 밝히고 오른손으로는 나팔을 불며 『주의 칼이요, 기드온의 칼이라.』(20절)라고 소리를 지르는 것이었다. 갑작스레 발산한 불빛과 폭발하듯이 터져 나온 음성은 300명의 병력을 순간적으로 300개의 대대, 곧 최대 30만 명에 달하는 병력으로 보이는 효과를 낳았을 것이다. 질그릇이 깨져야 그 안에 들어 있는 빛이 발산할 수 있다. 육신이 죽지 않고서는 그 안에 담긴 보물(고후 4:7)의 빛이 발산할 수 없으며, 그리스도의 능력의 탁월함과 영광스런 승리를 목도할 수 없게 된다.

결국 미디안 진영에는 일대 큰 혼란이 일어났고 그들은 자멸하고 말았다(21,22절). 이제 전세는 기울었고 미디안은 완전히 제압당했다(판 8:28). 이것은 하나님께서 이루신 "완전한 승리"였다. 언제든지 우리는 승리가 불투명해 보이는 "불가능한 싸움"에 투입될 수 있다. 하지만 우리는 『군대가 나를 대적하여 진칠지라도 내 마음은 두려워하지 아니하며, 전쟁이 나를 대적하여 일어날지라도 그 가운데 나는 담대하리라.』(시 27:3)라는 믿음을 견지해야 한다. 불가능한 싸움에 처하는 것은 우리가 그런 믿음을 주님 앞에 내보일 수 있는 절호의 기회라는 사실을 잊지 말라! BB

성경과전쟁 18 / 1 페이지
RSS
번호
제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