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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끄럽기 짝 없는 간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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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대로믿는사람들 <2014년 10월호>
여호사밧은 남유다 아사왕의 아들이며, 솔로몬의 아들 르호보암 때부터 시작된 남유다 네 번째 왕이었다(대상 3:9,10). 그는 아버지 아사의 모든 길로 행하여 주님의 눈앞에서 옳은 것을 행했고, 그 길에서 돌이켜 벗어나지 아니한 선한 왕이었다(왕상 22:43). 왕으로서 몇 가지 치적이 있었는데, 유다의 모든 방벽 친 성읍들에 군대를 배치하고 유다 땅과 그의 아버지 아사가 빼앗은 에프라임 성읍들에 거점을 둠으로써 북왕국 이스라엘에 대하여 스스로 힘을 길렀다(대하 17:1,2). 또 주님을 향한 열정도 있어서, 아버지 아사왕 때에 남아 있던 남색자들을 나라에서 쫓아냈으며(왕상 22:46), 조상 다윗의 처음 길로 행하여 바알들을 찾지 아니하고 주 하나님을 찾으며 그분의 계명대로 행하고 북왕국 이스라엘의 행실을 쫓지 아니했다. 주님께서는 이런 여호사밧과 함께하시어 그의 왕국을 견고하게 하셨고, 또 온 유다가 그에게 예물을 가져와 재물과 영예가 그에게 풍성하도록 해 주셨다. 이에 여호사밧의 마음은 주님의 길에서 고무되어 유다에서 산당들과 아세라들을 제거하기도 했다(대하 17:3-6).남유다의 여호사밧왕이 북왕국 이스라엘에 대해 스스로 힘을 길렀다지만, 그의 참된 국력은 방벽 친 성읍들이나 군대가 아니었다. 그 힘은 그가 백성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고 순종했다는 데 있었다. 『또한 그의 치리 제삼년에는 그가 보내어 그의 고관들, 즉 벤하일과 오바댜와 스카랴와 느다니엘과, 미카야로 유다의 성읍들에서 가르치게 하였더라. 또 그들과 함께 레위인들, 즉 스마야와 느다냐와 스바댜와 아사헬과 스미라못과 여호나단과 아도니야와 토비야와 토바도니야 등 레위인들을 보내고, 그들과 함께 제사장들인 엘리사마와 여호람을 보냈더라. 그들이 주의 율법책을 가지고 유다에서 가르치고 유다의 온 성읍들을 두루 다니며 백성을 가르치니라』(대하 17:7-9). 그랬더니 『주의 두려움이 유다 주변에 있는 땅의 모든 왕국들에 임하므로 그들이 여호사밧을 대항하여 전쟁을 일으키지 아니하더라. 또 필리스티아인들 중 얼마는 여호사밧에게 예물과 은으로 세를 가져왔으며, 아라비아인들은 그에게 짐승떼를 가져왔으니 숫양 칠천칠백과 숫염소 칠천칠백이더라.』(10,11절)고 성경은 말씀하고 있다. 여호사밧은 이에 힘입어 성곽들과 국고 성읍들을 건축하고, 전사와 힘센 용사들을 유다 전역의 방벽 친 성읍들에 군대로 두었다(12-19절). 『주는 전사』(출 15:3)이시기에, 주님께서 함께하시는 여호사밧왕에게 두려울 것은 없었다. 불필요한 사람과 제휴하지 않아도 그의 왕국은 “주님의 말씀”으로 인해 얼마든지 든든히 세워져 갈 수 있었다. 그러나 여호사밧은 북왕국의 아합에게로 불필요한 발걸음을 내디뎠다. 『여호사밧에게 재물과 영예가 풍성히 있었으며, 그가 또 아합과 친족 관계를 맺었더라』(대하 18:1). 배가 부르고 모든 일이 잘 풀리면 인간은 딴 생각을 품기 쉽다는 것을 보여 준다. 먹고 배부르고, 또 아름다운 집들을 짓고 그 안에 거하며, 소떼와 양떼가 번성하고 은과 금이 증식되고 가진 모든 것이 번성하면, 마음이 높아져 주님을 잊고 자신의 능력과 손의 힘으로 그 모든 재물을 가져왔다고 생각하는 것이 인간이다(신 8:12-17).
여호사밧은 이스라엘 역사상 가장 사악한 왕과 친족 관계를 맺었다. 주님과 주님의 말씀으로 만족하지 못하고 “인간관계”를 원했던 것이다. 하나님이 아닌 사람의 손을 붙잡는 것은 “죽음”을 요구하는 저주의 관계로 들어서는 일이다. 아니나 다를까, 몇 년 후 아합은 사마리아에 있는 자신을 찾아온 여호사밧을 설득하여 시리아와의 전쟁에 동참하게 했다(대하 18:2). 여호사밧은 아합과 “친족”이었기에 “친족의 요구”를 거부할 수 없었다(3절). 즉 전쟁 없이도 나라를 운영할 수 있었던 여호사밧이었는데 불필요한 제휴가 그를 불필요한 전쟁으로 이끈 것이다. 아합을 대적하여 군사력을 길렀던 여호사밧인데, 이제는 아합을 치려고 준비한 자신의 군대로 아합을 도와야 하는 상황에 이르렀다.
세상을 사는 성도가 하나님을 잊고 사람과 육신적인 제휴를 하면, 그가 세상에서 성별하여 주님 안에서 축적해 왔던 힘을 세상을 위해서 허비해야 한다. 죄로 멸망해 가는 아합을 도왔듯이, 죄로 멸망하는 세상을 유익하게 하는 일에 성도의 에너지를 써야 한다. 주님 한 분만으로 만족하면 그 무엇도 부러울 것 없는 안전과 풍요 속에서 살 수 있으련만, 우리 가운데에는 눈에 보이는 사람에게 쉬 관심을 갖고 하나님을 쉽게 잊어버리는 습성의 노예가 얼마나 많은가!
여호사밧이 아합과 제휴한 일에서 한 가지 기이한 현상을 목도하게 된다. 전쟁에 나가기 전, 여호사밧은 아합에게 전쟁에 관해 주의 말씀에 물어볼 것을 요구했다(대하 18:4). 아합의 사백 명의 거짓 선지자들은 『올라가소서. 하나님께서 그것을 왕의 손에 넘겨주시리이다.』(5절)라고 거짓 예언을 했다. 그곳에 그들 외에 주께 물을 만한 주의 선지자가 없느냐는 여호사밧의 질문에, 아합은 자신에게 항상 나쁜 것만을 예언하는 미카야를 데려오게 했다. 미카야는 하나님께서 거짓말하는 영을 보내시어 사백 명의 거짓 선지자들의 입에 있게 함으로써 아합을 라못길르앗에서 쓰러지게 하려 한다는 하나님의 계획을 전했다(13-22절).
여기서 여호사밧의 “이상 행동”이 감지된다. 하나님께서 아합에 대해 재앙을 말씀하셨다는 참 선지자의 말을 분명히 들었음에도, 평소 자신의 백성에게 말씀을 가르쳐 주님을 두려워하는 법을 배우게 했던 이전 모습과는 달리, 그것을 한쪽 귀로 흘려버리고 전쟁을 하러 라못길르앗으로 올라간 것이다. 『미카야가 말하기를 “만일 왕이 분명히 평안히 돌아오신다면, 주께서 나를 통하여 말씀하신 것이 아니니이다.” 하고 또 말하기를 “너희 온 백성아, 경청하라.” 하더라. 그리하여 이스라엘 왕과 유다 왕 여호사밧이 라못길르앗으로 올라가니라』(대하 18:27,28). 여호사밧은 주님께 물어 볼 것을 아합에게 요구한 장본인이었다. 그럼에도 하나님의 말씀을 정확히 전달한 선지자의 예언을 무시하고 시리아와의 전쟁에 참여하고 만다. 여호사밧은 아합과 “죽음의 제휴”를 함으로써, 참 선지자와 거짓 선지자를 구별할 수 있는 영적 분별력을 상실한 것이다.
성도가 세상과 손잡으면, 그 즉시 영적 분별력을 상실하게 된다. 이미 세상과 타협해 버린 상황에서 하나님께 인생의 길을 묻는 것은 무의미한 일이다. 설령 바른 길을 보여 주는 “경고”가 주어진다고 해도, 그것을 따를 만한 믿음을 상실했기에 죽음을 향해 죄의 어두운 길을 재촉하기가 쉽다. 『어두움 가운데 행하는 사람은 자기가 어디로 가는지 알지 못하느니라』(요 12:35). 너무 늦기 전에 세상과 맞잡은 손을 뿌리쳐야 한다!
여호사밧이 친족 관계를 맺은 아합이 전장에서 보인 행동은 성도가 세상과 육신적으로 제휴할 때 직면할 수 있는 위험의 한 유형을 보여 준다. 『이스라엘 왕이 여호사밧에게 말하기를 “나는 변장을 하고 전장으로 가리이다. 그러나 왕은 왕복을 입으소서.” 하여 이스라엘 왕은 변장을 하고 그들이 전장으로 가니라』(대하 18:29). 아합의 이 돌출 행동은 여호사밧의 위기로 이어졌다. 시리아와의 전쟁에서 “왕”으로 돋보이는 것은 왕복을 입은 “여호사밧”뿐이었는데, 마침 여호사밧만이 적의 집중공격 대상이 된 것이다! 『그때 시리아 왕이 그와 함께한 병거 대장들에게 명하여 말하기를 “너희는 작은 자나 큰 자와 더불어 싸우지 말고 오직 이스라엘의 왕과만 싸우라』(30절). 이스라엘의 왕 아합은 자신이 설득하여 전쟁에 끌어들인 유다 왕 여호사밧과 실제 전장에서는 동행하지 않았다. 이 전쟁은 본질적으로 이스라엘과 시리아 사이의 전쟁이었다. 그러나 아합은 자신이 적의 공격 대상이 될 것이 뻔했기에 변장을 하고서 모습을 감춰 버렸다. 이로써 여호사밧만이 이스라엘의 왕처럼 보여 적의 집중공격을 받게 된 것이다.
주 안의 성도는 순수하기에 사람을 의심하지 않고 잘 믿는 성향을 가지고 있다. 그런 그가 세상에서 하나님의 도움을 뿌리치고 사람과 손잡을 때 “아합”과 같은 죄인들의 배신에 예상치 못한 위기에 봉착할 수 있다. 성도는 세상을 사랑하지 말아야 하며(요일 2:15,16), 하나님만을 의지하여 살아야 한다. 모든 일에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데 주력해야 한다(요일 2:17). 살면서 “아합들”을 만나지 않도록 기도하고, “아합들”에게 육신적으로 다가가 스스로 제휴하는 일을 절대적으로 삼가야 한다. 여호사밧은 시리아 군대가 자신에게 몰려든 죽음의 위험 앞에서 주께 부르짖어 죽음을 모면했다. 『여호사밧이 부르짖더라. 이에 주께서 그를 도우시고 하나님께서 그들을 움직여 그에게서 떠나게 하시니라』(대하 18:31). 하지만 이 일에 있어서 “여호사밧”에게 무슨 간증이 있는가? “내가 세상과 손잡고 쓸데없는 일에 인생을 허비하다 죽을 고비를 만났는데 주님의 도우심으로 벗어났다.”고 말하려는가? “참으로 부끄럽기 짝 없는 간증”이 아닐 수 없다. 하나님의 말씀을 사랑하고 준행하며 주님으로부터 모든 필요를 채움 받아 인생의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이 악한 현 세상에서 택해야 할 성경적인 삶이다(빌 4:19). BB