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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과 사역자를 예표하는 “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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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대로믿는사람들 <2026년 07월호>
지난 글에서는 사탄을 예표하는 동물인 “소”에 대해 살펴보았다. 그런데 소는 흥미롭게도 예수 그리스도를 예표하는 동물이기도 하다. 사복음서는 예수 그리스도의 인격과 사역을 네 가지의 입체적 관점에서 기록했는데, 마태복음은 “왕,” 마가복음은 “종,” 누가복음은 “인자,” 요한복음은 “하나님의 아들”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의 모습을 각각 기록하고 있다. 이는 지난 글에서 다루었던 에스겔 1장의 네 그룹의 얼굴과 일치한다. 즉 마태복음(왕)은 그룹의 “사자”의 얼굴과 일치하고, 마가복음(종)은 “황소”의 얼굴, 누가복음(인자)은 “사람”의 얼굴, 요한복음(하나님의 아들)은 “하늘”을 나는 “독수리”의 얼굴과 연결된다. 사탄의 예표로 사용되었던 황소가 마가복음에서는 “종”으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의 예표로도 사용되는 것이다.“소”가 이처럼 상반된 두 존재를 동시에 예표하고 있는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이는 예수 그리스도를 완벽하게 모방하여 자신의 보좌를 하나님의 별들보다 높이며 지극히 높으신 분과 같이 되려고 한(사 14:13,14) 마귀, 즉 그 완벽한 모방자의 야망을 그대로 보여 주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마가복음에서 황소와 같은 “종”의 모습으로 이 땅에 오신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사탄과는 차원이 다른 참된 섬김의 자세를 보여 주셨다. 마가복음의 도처에서 발견되는 “즉시,” “곧,” “곧바로”라는 표현이 바로 그 증거다. 이는 멍에를 멘 소처럼 조금도 주저하지 않고 아버지의 뜻에 순종하며 그분의 일들을 묵묵히 수행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모습을 보여 주는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를 예표하는 “소”의 모습은 “모세의 언약”을 확정 짓는 상황에서도 확연히 드러난다. “모세의 언약”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과 맺으신 조건적 언약이며, 출애굽기 19장에서 처음 제시된다. 이어지는 20장에는 십계명이, 21-23장에는 세부 법규들과 규례들이 주어진다. 이처럼 출애굽기 19장에서 제시되고 20-23장에서 구체화된 언약의 말씀들을, 24장에서 “소”의 피를 뿌림으로써 공식적으로 확정하셨다. 출애굽기 24:5-8에서 모세는 소를 잡아 번제와 화목제로 드리며 소의 피의 반을 대야들에 받아 제단 위에 뿌리고, 언약의 책을 가지고 와서 하나님께 받은 모든 말씀과 명령들을 백성들에게 고했는데, 백성들이 주님께서 말씀하신 모든 것을 행하겠다고 화답하자, 모세가 소의 나머지 피를 백성들에게 뿌리면서 “언약”(covenant)의 피를 선포했던 것이다.
이 언약은 조건을 이행함으로써 그 효력이 발생하는 계약 관계로서의 언약을 뜻한다. 하지만 “히브리서 9장”에서 사도 바울은 소의 피를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과 비교함으로써 이 언약(covenant)을 “유언한 자가 죽음으로써 효력이 생기는 유언”으로서의 언약(testament)에 연결하고 있다. 『그러므로 첫 언약도 피 없이 드려진 것이 아니니 모세가 율법대로 모든 계명을 온 백성에게 말한 후에 송아지와 염소의 피와 물과 주홍색 양털과 우슬초를 가져다가 그 책과 온 백성에게 뿌리며 말하기를 “이것은 하나님께서 너희에게 명하신 언약[testament]의 피라.” 하였느니라. 더 나아가 그는 피를 가지고 성막과 섬기는 데에 쓰이는 모든 기명들에 뿌렸느니라. 율법에 따르면 거의 모든 것이 피로써 정결케 되나니, 피흘림이 없이는 죄사함[remission]이 없느니라』(히 9:18-22). 바울이 말한 첫 언약(first testament), 곧 구약(old testa- ment)은 소의 피, 곧 소가 “죽어서” 흘린 피로 맺어진 언약이다. 구약이 “old te- stament”(옛 유언)라 불리는 것은 “짐승의 죽음”이 동반되었기 때문이다. 신약, 곧 “new testament”(새 유언)는 그 원형인 그리스도의 죽음과 피로 맺어진 언약이다. 주목할 것은, 첫 언약을 맺을 때 소의 피를 백성에게 직접 뿌렸다는 점이다. 이것은 “피뿌림”(히 10:22)으로 우리의 더러운 양심까지도 정결케 하시는 그리스도의 보혈을 예표한다(히 9:14).
물론 구약에서 동물의 피로 맺은 언약은 신약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로 맺은 언약과는 엄연한 차이점이 있다. 구약에서 동물들의 피는 하나님의 자비하심에 근거하여 죄를 일시적으로 덮어 주시고 용서해 주시는 죄사함(remission)의 근거가 되었다. 하지만 황소들과 염소들의 피로는 결코 죄들을 제거하지 못했다(히 10:4). 따라서 동물들의 피로 드리는 속죄제를 계속해서 반복해야만 했다.
그에 반해서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은 단순히 죄를 덮거나 용서하는 정도가 아니라 죄를 완전히 제거함으로써 인류를 구속(redemption)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스스로 그 언약의 제물이 되셨을 뿐만 아니라, 대제사장으로서 흘리신 자신의 피를 가지고 하늘의 성소로 들어가셔서 우리를 위하여 영원한 구속을 이루신 것이다(히 9:12).
예수 그리스도를 예표하는 소의 모습은 제물로 바쳐지는 소에게서도 찾아볼 수 있다. 속죄제로 드려진 수송아지의 기름과 콩팥은 하나님께 드리는 향기로운 제물로서 제단에서 태워졌지만, 그 고기와 가죽과 똥(배설물)은 부정한 것으로 여겨져 진영 밖에서 태워야 했다(출 29:14, 레 4:11,12). 이 점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성문 밖 갈보리(눅 23:33)에서 배설물과 같이 여겨지는 수치를 당하시며 참혹하게 죽으실 것을 보여 주는 강력한 예표이다. 『이는 죄를 위해 대제사장이 성소에 그 피를 가지고 들어가는 그 짐승들의 몸은 진영 밖에서 태우기 때문이라. 그런즉 예수께서도 자신의 피로써 사람들을 거룩하게 하시려고 성문 밖에서 고난을 받으셨느니라』(히 13:11,12). 바로 이 예수 그리스도, 곧 성문 밖에서 수치스럽게 죽임당하신 분께서 우리의 구주가 되신 것이다.
소가 “하나님의 종”으로서의 예수 그리스도를 예표하는 것처럼, 주님의 사역자 역시 “하나님의 경작지”(고전 3:9)를 일구는 소와 같다. 소의 특성은 하나님께서 요구하시는 일꾼의 자격 조건과 일치한다. 우선 소는 주인을 아는 지혜가 있다. 주님께서는 『소도 자기의 주인을 알고 나귀도 자기 주인의 구유를 알건만』(사 1:3)이라고 말씀하시면서 하나님을 모른 채 배교하는 이스라엘을 꾸짖으셨다. 하지만 참된 사역자는 소처럼 자신이 누구의 소유이며 자신의 영적 힘의 공급처가 어디인지 명확히 인식한다. 소는 또한 근면과 생산성을 상징한다. 『소가 없는 곳의 구유는 깨끗하나, 수소의 힘으로 얻는 것이 많으니라.』(잠 14:4)라는 말씀처럼, 소는 자신이 먹는 양보다 훨씬 더 많은 이윤을 주인에게 남겨 주는 “생산적인” 동물이다. 사역자 역시 소처럼 부지런한 일꾼이 되면 주인의 집을 풍요롭게 한다. “므나의 비유”(눅 19장)에서 주인은 종들에게 동일한 “한 므나”(복음)를 맡긴 후 각 종에게 결실을 물으신다. 복음은 모든 그리스도인이 전파해야 할 의무가 있지만, 특히 사역자가 소가 일하듯 부지런히 전파함으로써 열매를 맺는다면 성도들에게 좋은 본이 될 수 있다.
마지막으로, 멍에를 멘 소는 고집부리지 않고 주인의 고삐에 따라서 움직인다. 이는 자신의 뜻을 버리고 날마다 자기 십자가를 지고 주님을 따르는 제자도의 전형을 보여 준다(눅 9:23). 주님께서는 주님의 뜻을 따라 섬기는 사역자에게 그의 필요를 채워 주시겠다고 말씀하셨다. 『너는 곡식을 밟아 떠는 소에게 망을 씌우지 말지니라』(신 25:4). 사도 바울은 이 구절을 인용하며 하나님께서 소들에게 관심을 두신 것이냐고 반문했다(고전 9:9). 신명기의 말씀이 단순히 짐승을 위한 규례가 아니라, 하나님의 일들을 소처럼 수행하는 사역자들을 위해 기록된 것임을 밝힌 것이다. 디모데전서 5:18에서도 신명기의 말씀을 동일하게 인용하는데, 여기서는 일꾼이 자기 삯을 받는 것이 합당하다는 누가복음 10:7을 나란히 제시하며 말씀과 교리에 수고하는 장로들을 배나 존경하라고 말씀한다. 문맥상 “존경한다”는 말은 영적인 의미뿐 아니라 물질적 보상도 포함한다. 밭 가는 사람이나 곡식을 떠는 소가 수확의 소망을 가지고 일하듯, 주님의 사역지를 소처럼 일구는 사역자 역시 자신의 사역을 통해 생계를 유지할 소망을 가질 수 있는 것이다. 영적인 것을 뿌렸다면, 거기서 물질적인 것을 거두는 것은 당연한 일이며(고전 9:11), 이것은 하나님의 공의로운 원칙인 것이다.
이 마지막 시대에 필요한 것은 화려하고 윤기가 번지르르한 털을 뽐내며 육신적인 기교를 부리는 짐승이 아니다. 비록 주목받지 못할지라도 십자가의 발자취를 따라 주인의 밭에서 묵묵히 밭을 일구면서, “일꾼이 자기 음식을 받는 것이 합당하다.”라는 주님의 약속만을 신뢰하며 섬기는 “소”와 같은 일꾼이다.
하나님의 일을 수행하는 사역자는 내게 능력 주시는 “그리스도”를 통하여 모든 것을 할 수 있다는(빌 4:13) 바울의 고백에서 보듯이 주님께서 공급해 주시는 영력으로 섬기는 사람이다. 따라서 사역자는 자신을 통해 맺히는 열매들에 대해 다만 무익한 종이 해야 할 일을 했을 뿐이라면서(눅 17:10) 주 하나님께만 모든 영광을 돌려 드려야 한다. “가지”가 열매를 맺는 것은 가지 자체가 아니라 그것이 붙어 있는 포도나무 때문임에도 불구하고(요 15:4) 자신이 무언가 되는 줄로 생각하며(갈 6:3) 교만해진다면, 그는 사역자로서의 소가 아닌 사탄으로 예표되는 소의 모습을 띠게 된다.
이제 우리는 두 종류의 “소” 앞에 서 있다. 교만과 찬탈의 소를 닮을 것인가, 아니면 자기에게 주어진 멍에를 메고 묵묵히 주인의 밭을 일구는 소를 닮을 것인가? 당신은 어떤 소가 되고 싶은가? 답은 “한 가지”이다. “주님처럼” 자신에게 지워진 멍에를 온순히 메고, 그 십자가의 발자취를 한 걸음 한 걸음 온전히 따르는 것이 진정한 제자도의 길이다. 이 마지막 시대에 필요한 것은 화려하고 윤기가 번지르르한 털을 뽐내며 육신적인 기교를 부리는 짐승이 아니다. 비록 주목받지 못할지라도 주인의 밭에서 묵묵히 밭을 일구며, “일꾼이 자기 음식을 받는 것이 합당하다” 하신 주님의 약속만을 신뢰하며 섬기는 “소”와 같은 신실한 일꾼인 것이다. BB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