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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국의 위대함과 이방의 심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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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대로믿는사람들 <2004년 03월호>
이사야 예언의 가장 큰 특징은 메시야 왕국에 대한 강조이다. 메시야로 오시는 유대인의 왕은 지금까지 존재했던 모든 통치자들이 비길 수 없을 만큼 완벽한 의의 통치를 하실 것이다. 이 점에 있어서 이사야 선지자는 철저히 전천년주의자였다. 인간들이 행하는 어떠한 통치도, 어떠한 사회 개혁 프로그램들도 헛되다는 것을 그는 잘 알았기 때문이다. 이는 웃시야 때부터 히스키야 시대까지 살았던 그의 시대적 배경에서 볼 때 더욱 두드러진다. 웃시야와 히스키야는 개혁적인 왕들이었다. 백성들을 우상 숭배로부터 돌이켰고, 신앙의 모범을 보였던 왕들이다. 히스키야는 더욱 그랬다. 하지만 그 모든 시대를 살았던 선지자는, 그런 통치나 개혁으로 유토피아가 오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잘 았았다. 이 일은 오직 메시야께서 오시어 왕국을 이루실 때에만이 가능한 것이었다.그분이 오시면 그토록 염원하던 온전한 의의 통치가 실현될 것이다. 그 통치의 범위도 단순히 이스라엘에 한정되지는 않을 것이다. 그 왕국은 세계적인 왕국이 될 것이다. 이사야는 바로 이러한 관점으로 예언을 하고 있다. 총 66장이나 되는 이사야를 쪼개고 나누어 저자와 그 저작 시대를 구분하는 학자들의 견해와는 대조적으로, 이사야는 바로 이 왕국의 일관된 관점으로 예언을 진행시켜 나가는 것이다. 때로 역사적인 사건과 맞물려 등장하는 예언도 있지만, 그러한 사건들은 메시야 왕국이라는 주제를 위한 도입이나 예시로서 등장할 뿐이다. 이 예언을 위해서 이사야는 이스라엘의 범죄나 고난, 심판 등도 함께 다룬다.
다윗의 보좌
왕국에 대한 구체적 예언은 첫부분, 즉 2장에서 한 번 다루었다. 거기에서는 주의 전의 산이 우뚝 설 것이요, 그 시온 산에서 주께서 새로운 율법을 가르치신다고 하셨다. 또한 세계적으로 전쟁이 그칠 것이라는 예언도 있었다(사 2:2-4). 비슷한 예언이 11장에서 한 번 더 강조가 되는데, 여기서는 그 왕국의 왕이 “이새의 줄기,” 즉 다윗의 가문을 통해 오신다는 내용이 강조된다. 『이새의 줄기에서 한 싹이 나며 그의 뿌리들에서 한 가지가 자랄 것이라』(사 11:1). 메시야가 다윗의 씨를 통해서 오신다는 예언은 예레미야도 강조하고 있는 바이다(렘 23:5; 33:15).
이 예언이, 단순히 유다의 보좌가 다윗의 후손들로 채워지게 된다는 예언이 아닌 것은 다음에 이어지는 구절들로 분명해진다. 4,5절에는 그분의 의로운 통치가 언급되어 있다. 『...또 그는 그의 입의 막대기로 세상을 치고 자기 입술의 호흡으로 악한 자를 죽일 것이라』(사 11:4). 이것은 요한계시록 19장에서 흰 말 타고 내려 오시는 그리스도께서 그 입에서 나오는 칼로 악인들을 죽이시는 장면과 같다(계 19:15).
그분의 의로운 통치는 사람들에게만 미치는 것이 아니다. 이사야 2장에서는 온 세상이 전쟁을 하지 않겠다고 했지만, 여기서는 한 걸음 더 들어가서, 자연 피조세계까지 평화롭게 되겠다고 예언한다(11:6 -8). 심지어 동물들의 체질까지 바뀌어질 것이다. 『암소와 곰이 함께 먹으며 그것들의 새끼들이 함께 누울 것이요, 사자가 소처럼 짚을 먹으리라』(11:7).
이런 예언들이 구원받지 못한 사람들에게는 믿을 수 없는 것들이기에, 그들은 이 말씀들을 비유적으로 해석한다. 예컨대 지배자와 피지배자가 평등하게 된다든지, 옛 성품과 새 성품이 조화를 이룬다든지, 심지어 선과 악이 하나가 된다든지 하는 것들이다. 자유주의자들은 종종 이러한 해석들을 취하는데, 만약 옛 성품과 새 성품이 조화를 이루게 되면 그것은 큰 일이다. 성도에게 있어서 옛 성품은 죽어야 하며, 오직 그리스도를 입음으로 새 성품만이 살아나야 한다. 타락한 성품과 변화받은 성품이 어찌 한 하나님의 성전 가운데 있어야 하겠는가? 이는 선과 악을 하나로 만들려는 시도로서, 철저히 이교도적인 사상인 것이다.
성경은 문자 그대로 자연계가 회복된다고 말씀하고 있다. 이는 신약성경에서도 강조하고 있는 진리이다(롬 8:19-23). 그리고 이러한 물리적 회복은 영적 회복과 함께 이루어지게 되는데, 세상은 모두가 우리 주를 알게 될 것이다. 『그들은 나의 모든 거룩한 산에서 해치거나 파괴시키지 않으리니 이는 마치 물들이 바다를 덮음같이 세상이 주의 지식으로 충만할 것임이니라』(사 11:9). 문자 그대로, 이교도들은 하나도 없어지고 세상 모든 사람들이 예수 그리스도, 그분만을 믿을 것이라는 말이다. 얼마나 좋겠는가? 오늘날처럼 종교분쟁도 없어질 것이고, 테러도 당연히 없어질 것이다. 에큐메니칼 자유주의자들은 서로의 종교를 인정하는 가운데 싸우지 말자고 하나, 수많은 선교사들도 바로 이것을 목적으로 복음을 전하고 있다. 하지만 모든 사람이 그리스도를 믿는 것, 이것은 선교활동으로 이루어질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이방 종교들이 완전히 없어지는 것, 이것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 때에만 가능한 것이다.
이것은 참으로 위대한 유토피아다. 모든 정치가들, 종교인들, 교육가들, 후천년주의자들, 프리메이슨, 노동운동가들, 공산주의자들, 인본주의자들, 뉴에이지 운동가들이 꿈꿔 온 이상 세계이다. 하지만 그들은 그들의 이상 세계에 예수 그리스도라는 왕을 두지 않는다. 그러나 성경은 유대인의 왕 예수 그리스도 없이는 절대로 그런 세상이 오지 않는다고 말씀한다. 오직 그리스도의 재림으로 인해서만 이 일은 이루어질 것이다.
이스라엘의 회복
그리스도의 통치는 전 세계적으로 미칠 것이지만, 우선적으로 그분은 유대인의 왕이 되신다. 그러므로 흩어진 유대인들은 돌아올 것이고, 박해받는 이스라엘은 온전히 회복되어 모든 민족 위에 우뚝 서게 될 것이다.
이사야 선지자는 이 일에 대해서도 처음부터 끝까지 동일하게 강조하고 있다. 『...이스라엘의 내쫓긴 자들을 모으시며 땅의 네 모퉁이로부터 유다의 흩어진 자들을 함께 모으시리라』(11:12). 이는 북왕국 이스라엘이 사로잡히기도 전에 한 예언이다. 『오 예루살렘아, 먼지를 떨어버리고 일어나 앉으라. 오 시온의 사로잡힌 딸아, 네 목의 줄을 스스로 풀지어다... 이는 주께서 시온을 다시 데려오실 때 그들이 눈을 마주볼 것임이라』(52:2,8). 그때 유다(남왕국)와 이스라엘(북왕국)은 서로 싸우지 않을 것이요. 오히려 한 나라가 될 것이다(사 11:13, 참조. 겔 37:22). 그뿐 아니라 이방 왕국들도 이스라엘에게 복종할 것인데, 에돔, 모압, 암몬뿐 아니라 이집트까지도 그럴 것이다(사 11:14-16; 14:1-3).
이스라엘의 회복을 위해 이사야는 “남은 자들”(remnants)이라는 용어를 종종 사용하는데, 이 또한 이사야 예언의 큰 주제 중 하나이다. 쉽게 말하면, 이스라엘은 그 범죄 때문에 심판을 받게 되는데, 그 심판이란 주로 이방인들에게 침략받고 학대받는 것이다(신 28장). 이 심판이 얼마나 큰지, 유대인들은 거의 진멸되게 된다. 고대 바빌론의 침략 때에도 그랬고, 앞으로 대환란 때에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의 뿌리를 남겨 두신다. 하나님께서는 이들을 통해 다시금 이스라엘 왕국을 세우실 것이고, 이들을 통해 그 왕국을 번성케 하실 것이다. 이들을 바로 “남은 자들”이라고 부른다. 앞으로 대환란 때, 유대인들은 극심한 박해를 받을 텐데, 수많은 사람들이 죽을 뿐 아니라, 대부분의 사람들이 배교할 것이다. 이 “남은 자들” 또한 그들과 함께 고난을 당할 것이나, 이들은 그들의 죄에 가담치 않으며, 율법을 지키면서 그들의 믿음을 지킬 것이다. 또한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보호하실 것이다. 그래서 그들은 그들의 본토로 돌아올 것인데, 이는 마치 그들의 조상들이 출애굽을 한 것과 같을 것이다. 『남게 될 그의 백성의 남은 자들을 위해 앗시리아로부터 대로가 있게 하시리니 이스라엘이 이집트 땅에서 나왔던 그 날에 이스라엘에 있었던 것과 같게 하시리라』(11:16).
이방인들의 심판
이스라엘의 회복은 곧 이방인들의 심판을 의미한다. 이사야는 여러 번에 걸쳐 이스라엘의 회복, 메시야 왕국, 이방인들의 심판 등을 반복적으로 예언하고 있다. 11장에서 23장까지도 바로 이것을 말하기 위한 한 단락인데, 11,12장에서 메시야 왕국의 위대함을 언급했다면, 13장부터는 이방인들, 주로 이스라엘 주변국들에 대한 심판이 다루어진다. 각 민족들을 심판함에 있어서 이사야는 “...에 대한 엄중한 말씀이라.”는 표현을 사용하고 있다.
13장과 14장은 바빌론에 대한 심판(“엄중한 말씀”)이다. 이 예언은 바빌론이 유다를 멸망시킴에 있어서 포악성과 교만이 드러났고(13:11,16), 결국 바빌론도 멸망하게 된다는 말씀이다(13:17-19). 그러나 이 예언은 단순히 바빌론의 침략과 멸망이라는 과거 역사에 한정되지 않는다. 선지자는 이때를 “주의 날”(the day of the LORD)이라고 언급하는데(13:6,9), 이는 전능하신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심판의 날을 가리킨다. 이것은 대선지서나 소선지서에서도 동일하다. 그날에는 하늘의 현상들도 흔들릴 것이다(13:10). 특히 이 날을 묘사함에 있어서 『진통하는 여인처럼 아픔 중에 있으리라.』(13:8)고 말하는데, 이 묘사는 예레미야에 따르면 대환란을 말한다(렘 30:6,7). 그래서 이 예언은 시대를 뛰어넘어 적용되는 이중적인 예언이다.
따라서 이 바빌론은 B.C. 539년에 메데 페르시아에게 멸망당한 바빌론을 말한다기보다는, 요한계시록 17,18장에서 묘사하는 바 사탄이 다스리는 “신비의 바빌론”에 초점이 맞추어져야 한다. 이러한 사실을 뒷받침이라도 하듯이, 이사야 14장에서는 바빌론 왕을 가리켜서 사탄이라고 명명하고 있다. 『오 아침의 아들 루시퍼야, 네가 어찌 하늘에서 떨어졌느냐! 민족들을 연약하게 하였던 네가 어찌 땅으로 끊어져 내렸느냐!』(14:12) 14:4을 보면 이 예언을 받는 대상은 분명히 바빌론 왕이다. 전체적인 묘사 또한 바빌론 왕이 심판받는 모습을 보여 준다. 하지만 12절 이후의 내용들은 단순히 인간으로서의 바빌론 왕이라 볼 수 없다. 일단 “루시퍼”라는 그 이름이 언급되어 있고, 그는 하나님의 별들보다 그의 보좌를 높여, 저 하늘에 있는 하나님의 산 위에 앉으려는 야심을 품었다(12:13,14).
이 “루시퍼”(Lucifer)라는 말은 사탄의 이름으로서, 그 명칭은 구라틴 성경에서 가져온 것인데, 라틴어 “LUX FERO”를 음역한 것이다. 그래서 루시퍼란 “빛(Lux)을 발하는 자(Fero)”라는 뜻이다. 이에 대한 히브리어 단어는 “할랄”(לי)이라고 하는데, 뜻은 역시 동일하다. 이는 사탄이 “빛의 천사”라는 사실과도 연결되는 말이다(고후 11:14). 하지만 사탄은 자신의 정체를 알리기 싫어하기 때문에, 자기의 자식들을 통해서 철저하게 그 모습을 감추거나 혹은 왜곡하고 있다. 이 부분에서도 마찬가지인데, 대부분의 변개된 성경들은 “아침의 아들 루시퍼”(Lucifer, son of the morning)를 “아침의 아들 새벽별”(morning star, son of the dawn, NIV)이라고 오역했다. 성서들마다 약간의 묘사는 다르지만, “새벽별”이라는 것만큼은 대부분이 취하는 오역이다. 우리말 <한글판개역성경>에서도 “아침의 아들 계명성(啓明星)”이라고 번역한 바, 계명성이란 새벽별을 말한다. 그러나 루시퍼, 혹은 “할랄”이라는 단어는 단지 “빛을 발하는 자”라는 말일 뿐이다. 빛을 발한다고 무조건 별이라 단정할 수는 없지 않은가? 더욱이 “새벽별”이라는 것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고귀한 이름 중 하나이다(계 22: 16). 따라서 변개된 성서들은 사탄을 말하는 자리에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붙여 버림으로써, 일단 사탄의 정체를 감추고 또 사탄을 지극히 높이고 있는 것이다.
14:28 이후에는 팔레스티나, 즉 필리스티아에 대해 경고(“엄중한 말씀”)를 하고 있다. 그 땅은 불타는 것으로 심판받을 것이다.
15,16장에는 모압이 심판을 받는다.
17장에는 다마스커스, 즉 시리아가 심판을 받는다.
18장에서는 에디오피아가, 19장에서는 이집트가 심판을 받는다. 이 둘은 다른 나라이지만, 같은 나일 강을 끼고 있고 홍해를 통해 무역하는 등 한 문화권을 이루고 있어 하나로 취급된다. 이집트는 당시 최강대국 중 하나이다. 동방의 앗시리아나 바빌론과 맞설 수 있는 민족이고, 이스라엘과 어떤 형태로든지 항상 관련을 맺고 있는 민족이다. 유다는 동방 제국들의 손에서 피하기 위해 이집트를 의존한 것으로 선지자들의 책망을 받곤 했다. 여기서 선지자는 아무리 강력한 민족들일지라도 하나님께서 심판하신다는 것을 보여 준다. 즉 역사의 주인은 하나님이시라는 것이다. 더욱이 이집트는 하나님의 능력을 보고 그 앞에 엎드리며 하나님께 예물도 가져오게 된다(18:7; 19:21). 그러나 이는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하시는 날에 이루어질 예언이다. 『이집트에 대한 엄중한 말씀 이라. 보라, 주가 빠른 구름을 타고 이집트로 오시리라. 이집트의 우상들이 그의 면전에서 떨며 이집트의 마음이 그 한가운데서 녹으리라』(19:1).
특이한 것은, 그날에 주께서 이집트를 치실 뿐 아니라 치유하신다는 것이다(19: 22). 더욱이 이집트와 앗시리아가 함께 하나님의 백성이 되어 복을 받는다고 말한다. 『그 날에 이스라엘은 이집트와 앗시리아와 더불어 셋 가운데 하나가 될 것이며, 땅 가운데 복이 되리니 만군의 주께서 그들에게 복을 주어 말씀하시기를 “내 백성 이집트와 내 손으로 지은 앗시리아와 나의 유업 이스라엘에 복이 있으라』(19:24, 25).
이집트와 앗시리아는 원수의 나라들이며, 항상 적그리스도를 예표하는 나라인데 이렇게 묘사하는 것은 참으로 이상하다. 이를 두고 자유주의 신학자들은, 이 부분이 바로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의 편협한 선민사상을 책망하시는 내용이라 주장한다. 하나님께서는 더 이상 이스라엘만의 하나님이 아니요 이방인의 하나님도 되신다. 더 나아가서 하나님께서는 더 이상 그리스도인들만의 하나님이 아니요 모든 인류의 하나님이 되신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이 말은 전혀 그런 뜻이 아니다. 하나님께서는 구원받지 않은 사람들의 아버지가 되지 않으신다. 구원받지 않은 자들은 멸망할 것이다. 이 예언은 문자 그대로 이집트와 앗시리아가 하나님 앞에 복종한다는 것이다. 또한 재림 때의 이스라엘 땅은 이 지역들을 포함할 만큼 확장될 것이다(창 15:18-21).
20장도 이집트와 에디오피아에 대한 심판을 언급하는 장이다. 여기서는 역사적 사건, 즉 앗시리아 왕 살곤(살곤 2세)이 아스돗을 정복하고 이집트까지 진출할 때의 사건에 한정된다. 이스라엘과 유다가 앗시리아를 대적하기 위해 이집트에 의지하는 것이 얼마나 헛된가를 보여 주는 예언이다. 이집트 역시 이스라엘처럼 사로잡혀갈 것이기 때문이다. 교훈은 분명하다. 하나님의 성도는 오직 하나님만을 의지해야 한다.
21장에서는 바빌론의 심판을 한 번 더 다룬다. 21:1에서는 “바닷가 광야”라고 되어 있는데, 21:2에서 엘람과 메디아에 의해 멸망한다고 한 것을 보니 바빌론을 말한다. 그러나 이 예언 역시 미래의 재림 때로 넘어간다. 왜냐하면 21:9에서 『바빌론이 무너졌도다, 무너졌도다. 그가 바빌론 신들의 모든 조각한 형상들을 다 땅에다 부서뜨리셨도다.』라는 파수꾼의 선포가 나오는데, 이는 요한계시록 18:2에서 신비의 바빌론이 무너지는 선포와 같기 때문이다.
21:11,12은 두마(에돔)에 대한 심판을 다루고 있고, 21:13-17은 아라비아에 대한 심판을 다룬다. 23장에서는 마지막으로 투로에 대한 심판을 다룬다. 투로는 페니키아 지중해변에 있는 항구 도시로서 매우 아름다울 뿐 아니라, 킷팀(쿠프로)과 그리스를 건너 타시스(스페인)까지 무역함으로 그 부와 사치 또한 유명한 곳이다. 그러나 성경은 그곳을 “창녀”라 부른다(23:16). 무역, 부유함, 창녀, 이런 단어들이 함께 모여 있을 때 우리는 요한계시록 18장을 보게 된다. 요한계시록에 예언된 바빌론 또한 부와 사치로 장식한 창녀라고 언급되며, 그녀의 멸망 때에 그와 무역한 모든 나라들도 애통한다고 되어 있다.
이와 같이 이사야는 메시야 왕국의 위대함을 예언하는 가운데, 이스라엘 주변에 있는 이방 민족들을 하나하나 심판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가 살펴 본 바대로, 이 심판은 단순히 이사야 당시의 이방 민족들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재림 때의 이방 민족들에 대한 예언이며, 한 걸음 더 나아가 적그리스도의 왕국, 즉 마지막 때의 신비의 바빌론에 대한 예언이다. 결국 모든 예언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에 초점이 맞추어진다. 왜냐하면 메시야 왕국이란 그리스도의 재림 때에 이루어질 왕국이기 때문이다. BB
<다음 호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