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가 진리의 말씀을 올바로 나누어 자신이 하나님 앞에 부끄럽지 않은 일꾼으로 인정받도록 공부하라(딤후 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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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금률을 지키고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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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대로믿는사람들 <2024년 04월호>

장준익 / 서울솔로몬학교 성경연수원 강사

본 코너는 서울솔로몬학교 성경연수원 교재들의 내용을 요약 정리한 것으로서, 하나님께서 그리스도인들에게 알려 주신 지식의 보화들을 담고 있다.

왕국 헌법인 산상설교의 마지막 부분인 마태복음 7장은 그리스도인이 아닌 사람들도 잘 아는 구절들이지만, 그리스도인들조차도 그 교리적인 의미를 잘 몰라서 잘못 인용하기도 한다. 바로 “황금률”이라 불리는 『사람들이 너희에게 해주기를 바라는 것은 무엇이든지 모두 너희도 그들에게 그렇게 해주라.』(12절)라는 말씀과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13절)라는 말씀, 또 『거짓 선지자들을 조심하라. 그들은 양의 옷을 입고 너희에게 나아오나 속은 약탈하는 이리들이라.』(15절)라는 말씀이 그러하다. 이번 호에서도 왕국 헌법으로서 제시된 이 말씀들의 정확한 의미를 알아보도록 하겠다.

『그러므로 사람들이 너희에게 해주기를 바라는 것은 무엇이든지 모두 너희도 그들에게 그렇게 해주라. 이것이 율법이요, 선지서들이니라』(마 7:12). 이 황금률이 “율법이요, 선지서들”이라면, 이러한 원칙이 율법의 효력이 다시 발휘되는 대환란 때에는 구원을 받기 위한 조건이 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 말씀은 왕국 헌법에 속하기 때문에 대환란 기간에 왕국에 들어가기 위한 구원의 조건이 됨과 동시에 왕국에서 구원받을 수 있는 조건도 된다. 다시 말하면 율법과 선지서들로 뒷받침되는 “왕국 시대의 황금률”인 것이다. 율법과 선지서들은 구약이다. 주님께서는 누가복음 16:16에서 “율법과 선지서들”이 침례인 요한까지라고 말씀하셨다. 본문 12절은 율법과 선지서들을 믿는 사람에게 실제로 영향을 끼치는 “구약적인 의”에 대한 진술이므로, 신약 시대의 황금률이 아니라 구약의 연속선상에 있는 “왕국 시대의 황금률”이라고 해야 옳다.

신약의 그리스도인들은 남이 나에게 해 주기를 바라는 대로만 남에게 베풀어서는 안 된다. 남이 나에게 해 주지 않더라도 “내가 먼저”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다가서는 것이 신약적인 황금률이다(롬 12:10, cf. 요일 4:19). 그리스도의 사랑과 관련된 신약적인 황금률에는 1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죄인들에게 먼저 손을 내미시어 무조건적으로 사랑해 주신 십자가의 정신(요일 4:10,19) 2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 주신 새 계명(요 13:34, 요일 3:16,23), 곧 “남을 위해서 죽어 줄 만큼 사랑해야 한다”는 계명이 반영되어 있다.

『너희는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 이는 멸망으로 인도하는 문은 넓고 그 길이 광대하여 그리로 들어가는 사람이 많으나 생명으로 인도하는 문은 좁고 그 길이 협소하여 그것을 찾는 자가 적음이니라』(마 7:13,14). 진리의 문제에 있어서 항상 다수가 옳은 것이 아니다. 진리를 실행하는 것은 늘 소수였다. 진리를 소수가 실행한다는 것은 성경이 증명하고(행 7,17,19,22장), 또 교회사가 증명하는 바이다. 인류의 역사에서 다수가 진리를 향해 나아간 시기는 오직 “필라델피아 교회 시대”(A.D. 1500-1900)뿐이었다.

교회사 초기에는 로마 제국이 소수의 그리스도인들을 박해했고, 중세 암흑시대에는 로마카톨릭이 성경대로 믿는 왈덴시안, 보고마일, 폴리시안, 불가리안, 카타리 등을 박해했다. 종교 개혁 이후에는 제도화된 교회들이 “재침례교도들”을 박해했다. 20,21세기에 들어와서는 배교한 교회들이 성경대로 믿는 소수의 그리스도인들을 “이단”이라 부르고 있다. 그들은 겉보기에는 성장한 것 같지만, 주님께 『너는 비참하고, 가련하며, 가난하고, 눈멀고, 헐벗은 것을 알지 못하는도다.』(계 3:17)라는 책망을 듣는 교회이다. 오늘날에도 진리는 늘 소수와 함께 있는 것이다.
진리를 실행하는 것은 소수이고 그 길이 좁고 협소한 건 사실이지만 진리 그 자체를 찾기가 어려운 것은 아니다. 성경은 늘 활짝 열려 있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이 마음을 닫아 버려서 그것을 찾는 자가 적을 뿐이다. 예수 그리스도께로 나아가는 길은 찾기가 쉽다. 주님을 올바로 찾는 자가 적은 것이지, 주님께 나아가는 길 자체는 전혀 어렵지 않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그러면 내가 너희에게 쉼을 주리라』(마 11:28). 『또 내게 말씀하시기를 “다 이루었노라. 나는 알파와 오메가요 시작과 끝이라. 내가 목마른 자에게 생명수의 샘을 값없이 주리라』(계 21:6). 원하는 자는 누구든지 값없이 마실 수 있는(계 22:17) 생명수의 샘을 하나님께서 왜 찾기 어렵게 하시겠는가? 이러한 초청은 구약에서도 마찬가지였으며, 그때 역시 찾는 자가 적었을 뿐이다(사 55:1-3).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수의 샘은 그야말로 온 인류에게 개방되어 있다!

『거짓 선지자들을 조심하라. 그들은 양의 옷을 입고 너희에게 나아오나 속은 약탈하는 이리들이라』(마 7:15). 왕국의 백성들이 하나님을 의지하고 그분께 필요한 것을 얻는 동안 거짓 선지자들은 그들을 미혹한다. 믿음과 행위로 구원받아야 하는 대환란 기간에 미혹을 당하여 잘못된 길로 들어서면 다시 회개하여 돌이킬 기회가 없으므로 미혹하는 거짓 선지자들을 항상 조심해야 한다. 『거짓 선지자들』은 표적을 구하는 민족인 유대인들(고전 1:22)을 거짓 표적과 이적들로 미혹할 것인데, 이에 안 넘어갈 유대인이 거의 없을 것이다. 그렇기에 주님께서는 마태복음 7장과 24장에서 그들을 분별할 수 있는 기준을 제시하심으로써 미리 경고해 주셨다. 『그때에 만일 누가 너희에게 말하기를 ‘보라, 그리스도가 여기 있다. 혹은 저기 있다.’ 하여도 믿지 말라. 거짓 그리스도들과 거짓 선지자들이 일어나서 큰 표적들과 이적들을 보여 주어, 할 수만 있다면 그 택함받은 자들[유대인들]도 미혹하리라. 보라, 내가 미리 너희에게 말하였노라. 그러므로 그들이 너희에게 말하기를 ‘보라, 그가 광야에 있다.’ 하여도 나가지 말고, ‘보라, 골방에 있다.’ 하여도 믿지 말라. 마치 번개가 동편에서 치면 서편에까지 비치는 것같이, 인자의 오는 것도 그러하리라』(마 24:23-27).

거짓 선지자들은 “양의 옷”을 입고 나아오지만(cf. 슼 13:4, “속이기 위한 털옷”) 속은 약탈하는 이리들이다. 이 종교적 위선자들이 자신을 위장하기 위해 행하는 것은 항상 “순수함”으로 가장하는 것이다. 항상 인자하게 웃고, 비진리에 대해 분노하지 않으며, 언제나 “세계 평화”를 말하고, 세계인들의 “하나 됨”을 이야기한다. 또한 그들은 하나님께 『주여, 주여』라고 부르짖기도 하고 주의 이름으로 예언하기도 하며 주의 이름으로 마귀들을 쫓아내기도 한다(마 7:21,22). 그뿐만 아니라 거짓 선지자들은 주의 이름으로 많은 경이로운 일들을 행하는 자들로서 대환란 때 다시 등장하는 율법을 거슬러서 “불법을 행하는 자들”이다(마 7:22,23).

특히 마태복음 24장에서는 거짓 선지자들이 『그리스도』가 있는 곳을 알려 줄 것이라면서, 그들의 특별한 메시지에 주목하라고 경고하셨다. “그리스도가 광야에 있다, 골방에 있다.”라고 하면서 “특정 장소”를 언급하면 그 사람이 바로 거짓 선지자라는 것이다. 왜냐하면 주님께서는 세상 모든 사람들이 눈으로 볼 수 있도록, 마치 번갯불이 하늘 전체에 퍼지는 것처럼 오실 것이기 때문이다(마 24:27). B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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