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가 진리의 말씀을 올바로 나누어 자신이 하나님 앞에 부끄럽지 않은 일꾼으로 인정받도록 공부하라(딤후 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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앤드류 머레이의 <하나님을 기다리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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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대로믿는사람들 <2024년 10월호>

솔로몬의 노래 2:8은 신랑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신부인 교회를 하늘로 데려가시기 위해 돌아오시는 것을 묘사한다. 『내 사랑하는 이의 목소리로다! 보라, 그가 산들 위로 뛰며, 작은 산들 위로 가볍게 뛰며 오는도다.』 그리스도인은 주님의 다시 오심을 기다리는 사람들이다. “나의 구주, 나의 하나님”께서 나의 이름을 공중에서 불러 주실 그날을 기다리며 사는 사람이 바로 “그리스도인”이다.

어느 날, 학생들과 함께 이야기 나누다가 “혹시, 오늘 하나님께서 오시지 않을까?”라고 말하였더니 한 학생이 두 눈을 크게 뜨고 두 손을 마주 잡으며 격앙된 목소리로 이렇게 말했다. “선생님, 그럼 예수님 얼굴을 볼 수 있는 거지요? 우리 예수님은 어떻게 생기셨을까요? 정말 보고 싶어요!” 그 학생은 다른 무엇도 염두에 두지 않았다. 그저 예수님을 직접 뵐 수 있으리란 생각만으로 설레고 들뜬 표정을 지었다. 순간, 이처럼 주님을 매 순간 기다리고 있는지를 되짚어 보게 되었다. 아침에 눈을 떴을 때, ‘혹시 나의 하나님이 오늘 오시려나?’라고 기대하며 시작하는가? 하나님을 만날 생각만으로도 기쁨으로 가슴이 쿵쿵대는가? 매일의 삶 속에서 『나의 사랑, 나의 어여쁜 자야, 일어나 떠나자.』(솔 2:10)라고 하실 주님의 목소리가 들려오기를 간절히 기다리고 있는가?

앤드류 머레이(Andrew Murray, 1828-1917)는 남아프리카공화국 케이프타운에서 목회했는데, 성도들 중에는 마을 밖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었다. 그들은 아주 가끔 교회 예배를 위해서만 마을로 들어올 수 있었기에, 그들이 매일의 생활 속에서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을 살아가는 데 도움을 주고자 <하나님을 기다리며>(말씀보존학회)를 쓰게 되었다고 말한다. 이 책이 “31장”으로 되어 있는 것도 한 달의 날짜 수에 맞춰서라고 한다. 이처럼 머레이는 목회의 방향을 “모든 성도가 하나님을 기다리며 그분과의 깊은 만남을 구하고, 그분께 온전히 의존하여 쉴 수 있도록 그들을 인도해야 하는 것”에 있다고 보았다.

머레이의 목회 방향에 따라 쓰인 <하나님을 기다리며>는 그리스도인이 하나님을 기다리며 사는 삶이 얼마나 복된 일인지를 깨닫게 해 주는 책으로, 서문에서 책을 쓴 목적을 밝히고 있다. “이 책이 우리의 실천과 경험 속에서 ‘오직 하나님을 기다리는’ 축복을 알아가는 데 사용되기를 바랄 뿐입니다. 우리가 이것을 깨달을 때, 우리의 삶은 오직 하나님만을 기다리며, 우리의 생각이나 노력에 의지하지 않고, 성령의 능력 안에서 살게 될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이 “하나님을 기다리는 삶”을 사는 것이 얼마나 축복인지를 진실로 깨닫게 될 때 자연히 하나님만을 의지하며 주님의 다시 오심을 기다리면서 살게 되고, 그러한 기다림은 성령님의 능력 가운데 살도록 이끄는 힘이 된다. 그러므로 전적으로 하나님을 기다리는 삶은 “인지”(어떤 사실을 인정하고 아는 것)가 아니라 “행위”가 되는데, 머레이도 그러한 태도에 관해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사랑하는 그리스도인들이여, 기다림은 많은 신앙의 덕목들 중의 하나가 아님을 깨달으십시오. 기다림은 그리스도인의 가장 기본이 되는 성품이어야 합니다. 기다림은 우리의 기도와 경배, 믿음과 순종을 더 가치 있게 할 것이며 새 힘을 불어넣어 줄 것입니다. 왜냐하면 기다림은 우리를 하나님 자신과 떨어질 수 없게 연결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또한 어떤 것도 방해할 수 없는 하나님의 선하심을 맛보는 즐거움을 주기 때문입니다”(p.118).

이와 같이 “기다림”을 어떤 사람이 “때가 되어 오기를 바람”이라는 사전적 의미로만 이해하기에는 그리스도인에게 너무도 미흡하다. 하나님께서 오셨을 때 나타날 그 놀라운 역사를 안다면 그야말로 벅찬 감격의 날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하나님을 맞이하는 그날은 모든 피조물에게는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날이 될 것이며, 하늘로 들림을 받아 올라가는 그리스도인에게는 하나님께서 만물의 주인이심을 경험하는 날이 될 것이다.

머레이는 하나님께서 그리스도인에게 요구하시는 것은 단 한 가지 “하나님을 기다리는 것”이라고 말한다. 이 한마디 속에 “포기, 순종, 앙망, 신뢰 등”이 포함되어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p.14,15). 하나님을 기다리는 그리스도인은 하나님께서 권능으로 행하실 모든 것을 온전한 확신으로 붙잡고 있기에 더욱더 하나님께 전적으로 자신의 삶을 맡기게 된다. 그렇기에 하나님을 막연하게 기다리는 성도와 매 순간 기다리는 삶을 사는 성도는 그 신앙생활에서 드러나는 열매가 다르다. 그리스도인에게 “하나님을 기다리고 있는가?”라고 물었을 때 바른 진리로 구원받은 사람이라면 “그렇다.”라고 대답할 것이다. 그러나 “당신은 하나님을 기다리는 삶을 살고 있는가?”라는 질문에는 주춤대는 이들이 많을 것이다. 어쩌면 그 질문을 통해 자기 신앙생활을 되짚으며 회개하기도 하고 믿음을 점검하기도 할 것이다. 지금, 이 순간 주님께서 오신다면 기쁘기보다는 부끄러울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하나님을 기다리는 삶은 어떻게 살아야 하는 것일까? <하나님을 기다리며>에서 그 방법들을 알려 주는데, 첫째로는 “복음을 전하며 사는 삶”이다. 머레이는 그리스도인이 하나님을 기다리며 향유하는 특권에는 큰 책임이 수반된다고 말한다(p.85). 즉 믿지 않는 사람들의 비참한 상태를 생각하면서 그들을 위해 하나님을 기다려야 한다는 것이다. 불신자들에 대한 연민이 강할수록 그리스도인이 복음을 들고 거리로 나가는 일은 더 잦을 것이다.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파하는 일에도 더 열심을 낼 것이며, 한 사람이라도 더 하나님께로 이겨오기 위해 분투할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온종일 기다리는 그리스도인은 복음을 전하는 일이 바울의 고백처럼 부득불 해야 할 일이 된다(고전 9:16).

둘째로는 “인내하며 매일의 삶 속에서 십자가 앞으로 나아오는 삶”이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을 기다리는 자에게 복을 주신다고 약속하셨다(사 30:18). 자비와 은혜가 풍성하시고 모든 일에 공의로우신 하나님께서는 결코 그리스도인의 기다림을 헛되게 하지 아니하실 것이다. 그러한 믿음으로 하나님과 함께 호흡하며 살면 된다. “기다림이 생명의 호흡과 같이 된다는 것은 하나님의 임재와 사랑 안에서 지속적으로 쉬는 것이며, 우리 안에서 그분의 일이 완성되도록 우리 자신을 끊임없이 내려놓는 것입니다”(p.107). 주님을 고대하는 자는 누구라도 수치를 당하지 않게 하시는(시 25:3) 하나님께서 변경할 수 없는 말씀으로 약속하셨다. 이 약속이야말로 그리스도인이 매일의 삶 속에서 끊임없이 옛 사람을 벗어 버리고 새 사람으로 살아가기 위해 십자가 앞으로 나아오게 하는 약속이지 않은가! 하나님을 바라며 고대하는 누구라도 하나님께서 철저하게 지켜 주실 것이기 때문이다. 얼마나 아름다운 동행인가! 얼마나 선하신 주님이신가! 시편 기자는 『오, 주께서 주를 두려워하는 자들을 위하여 쌓아 두신 주의 선하심이 얼마나 큰지요!』(시 31:19)라고 말한다. 하나님의 선하심의 크기를 인간이 어떻게 가늠할 수 있겠는가마는 그 선하심을 맛볼 수는 있다. 머레이는 그 한 가지 방법이 바로 “그분을 기다리는 것”이라고 말한다. 하나님은 선하신 분인데 그리스도인이 그러한 “선하심”이 드러나도록 하나님을 기다리지 않아서 맛보지 못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하나님을 기다리며 인내하는 사람들에게는 하나님께서 그 선하심을 드러낼 것이라고 말한다(p.117). 『주께서는 자기를 기다리는 자들에게와 자기를 찾는 혼에게는 선하시도다』(애 3:25).

셋째로는 “예수 그리스도의 다시 오심을 소망하며 겸손히 교회를 섬기고 형제 사랑을 실천하는 삶”이다. 머레이는 책에서 이렇게 말한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시기를 기다리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의 영광을 기다리는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지금 여기서 그분의 몸인 교회를 겸손히 사랑 속에서 섬겨야 하는 것입니다. 사랑을 실천하는 자들만이 예수 그리스도의 오심에 준비된 자들입니다. 서로 사랑하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신부인 교회의 생명이자 아름다움입니다”(p.137,138). 베드로는 베드로후서에서 『너희의 믿음에 덕을, 덕에 지식을, 지식에 절제를, 절제에 인내를, 인내에 경건을, 경건에 형제 우애를, 형제 우애에 사랑을 더하라.』(벧후 1:5-7)라고 하면서 형제 사랑을 강조한다. 하나님을 바라면서 예수 그리스도를 기다리는 사람은 자신이 속한 교회에서 겸손히 주님을 섬기는 사람이며 형제를 사랑하는 사람이다(요일 4:20,21). 지역 교회의 모든 구성원이 지체들을 사랑하며 하나님을 바라면서 주님의 다시 오심을 기다리며 산다면, 그 지역 교회는 하나님의 능력 안에서 참으로 많은 일들을 할 것이고, 그 열매를 통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교회가 될 것이다.

서문에서 머레이는 책을 통해 말하고자 한 바를 다음과 같이 쓰고 있다. “이 책을 통해 말하고자 했던 것을 몇 마디로 다 표현할 수는 없겠지만, 무엇보다 ‘우리가 하나님을 알지 못한다’는 그 사실을 강조하고 싶었습니다. 자신의 약함이나 실패를 불평하는 사람들이 있다면, 또는 거룩함을 구하는 모임이 있다면, 저는 그들을 향해 ‘여러분에게는 하나님이 있지 않습니까?’라고 말해 주고 싶습니다. 우리가 정말로 하나님을 믿는다면 그분이 모든 것을 바로잡아 주실 것이기 때문입니다”(p.4). 하나님을 기다리는 일도, 바라는 일도 쉽지 않다고 느껴진다면, 이 또한 하나님께 나아가서 간구하면 될 일이다. 우리에게는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계시기 때문이다. 바로 내 안에 계시는 하나님께서 깨우쳐 주실 것이며, 간절히 바라기를 원하면 매 순간 그렇게 일깨워 주셔서 우리를 모든 점에서 바로잡아 주실 것이다. 이것을 믿는 그리스도인이라면 두려워할 것이 없으며, 오직 주님 한 분만을 바라며 주님께서 오시기를 소망하는 가운데 하루하루를 살아가야 하지 않겠는가!

그렇다면 “하나님을 기다린다.”라고 할 때, 그 의미에서 가장 중요한 점은 무엇일까? 시편 기자는 『주의 진리로 나를 인도하시고 나를 가르치소서. 주께서는 내 구원의 하나님이시니 내가 종일 주를 기다리나이다.』(시 25:5), 『주여, 이제 내가 무엇을 기다리겠나이까? 나의 소망은 주께 있나이다.』(시 39:7)라고 고백하고 있는데, 그리스도인의 고백도 이와 같아야 할 것이다. 소망을 주께 두는 그리스도인은 온종일 주를 기다리면서 순간마다 하나님의 온전한 인도하심을 바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이렇게 명령하고 계신다. 『너는 주를 기다리라. 담대하라. 그리하면 그가 네 마음에 힘을 주시리라. 내가 말하노니 주를 기다리라』(시 27:14).

『오 내 혼아... 너는 하나님을 바라라』(시 43:5). 앤드류 머레이는 매 장마다 마지막 문장을 이 성경 말씀으로 끝맺음하고 있다. 그리스도인의 삶은 하나님을 기다리며 사는 삶이다. 그리스도인이 하나님을 진실로 바란다면 항상 예수 그리스도를 기다리는 삶을 살게 될 것이다. 다시 말해서 예수 그리스도를 기다리지 않고 있다면 이는 진실로 하나님을 바라고 있다고 볼 수 없다. 이 책은 매 순간 하나님을 바라며 살아가도록 힘을 북돋아 주고 실제 생활에서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를 알려 주는 실천적인 지침서이다. 우리의 기억은 희미해질 수 있지만, 반복은 그것을 확연하게 떠올릴 수 있도록 붙잡아준다. <하나님을 기다리며>를 머리맡에 두고 아침마다 1장씩 읽으며 주님의 다시 오심을 간절히 바라며 하루를 시작한다면, 하나님을 기다리는 삶을 살아가고자 하는 그 마음을 단단히 붙들어 줄 것이다. B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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