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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내하며 마음을 견고케 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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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대로믿는사람들 <2019년 05월호>
성경은 『사람은 고생하려고 태어나느니라.』(욥 5:7)라고 말씀한다. 그래서 “인생(人生)은 고생(苦生)이다.”라는 말이 있는 것이다. 아담이 선과 악의 지식의 나무에서 나는 열매를 먹은 이래로, 인류는 전 생애 동안 “고통 중에서” 소산을 “먹어야” 했다(창 3:17). 속된 말로 인생은 “먹기 위해 살고, 살기 위해 먹는 것”임을 감안할 때, 삶 자체가 고생스러울 수밖에 없다는 사실이 이 저주 안에 잘 내포되어 있다. 마귀가 통치하는 현 세상에서는 흔히 “삶은 행복해야 하고, 행복하지 않으면 무언가 잘못 돌아가고 있는 것”이라고 말하지만, 이 말은 『반드시 죽으리라.』(창 2:17, “부정적”)라고 경고하신 하나님의 말씀에 대적하여 『반드시 죽지는 아니하리라.』(창 3:4, “긍정적”)라는 거짓말로 이브를 미혹했던 마귀의 오래된 속임수에 불과하다. 물론 구원받은 그리스도인은 “행복한 사람”(시 144:15, 잠 16:20)임에 틀림없다. 하지만 세상이 말하는 행복은 그리스도인의 행복과 판이하게 다르며, 행복한 그리스도인의 삶도 고생스러운 인생살이에서 완전히 벗어날 수는 없다. 기록된 말씀 그대로 인생 그 자체가 고생인 것이다!고생으로 점철된 인생에서 하나님께서 허락하시는 고난은, 죄로 인해 올 수도 있고(대하 29:6-9), 욥처럼 마귀의 키질로 인해 올 수도 있으며(욥 1,2장), 신실함과 경건함 때문에 올 수도 있다(고후 1:8, 딤후 3:12). 어떤 이유에서 왔든지 고난 자체가 견디기 힘든 일임은 분명하다. 하지만 그리스도인은 고난을 대하는 태도에 있어서 세상 죄인들과 극명하게 다를 필요가 있다. 하나님께서는 구약의 백성인 이스라엘을 『독특한[peculiar] 보물』(출 19:5)로, 신약의 백성인 그리스도인들을 『독특한[peculiar] 백성』(벧전 2:9)으로 여기시는데, 이는 그분의 자녀들이 어딘가 남다른 데가 있기를 원하시기 때문이다. 그리스도인은 모든 면에 있어서 세상 사람들과 달라야 한다. 세상 사람들은 고난에 대해 좌절하고 낙심하며 불평불만을 토로하기 일쑤다. 심하면 자살하기까지 한다. 그러나 그리스도인은 고난을 통해 절제와 인내심을 터득하고, 하나님의 은혜를 깨달으며, 겸손과 순종을 배운다. 절망하는 대신, 오히려 소망을 지닌다. 아무리 힘들어도 견뎌 내고, 일곱 번 넘어져도 다시 일어나는 것(잠 24:16)이 그리스도인의 삶인 것이다.
성경에는 그리스도인들을 위한 고난의 본보기가 많이 있다. 일례로 야곱은 외삼촌에게 사기를 당했고, 한때 가장 사랑하는 아들(요셉)을 잃었던 적이 있으며, 딸은 강간을 당했고, 장자는 침상을 더럽혔다. 요셉은 형들에 의해 종으로 팔렸고, 누명을 쓰고 감옥에도 갇혔다. 모세는 하루아침에 왕자에서 노숙자로 전락했다. 다윗은 왕의 시기로 인해 죽음의 위협을 피해 다녀야 했고, 아들의 반역으로 죽을 뻔하기도 했다. 다니엘은 너무 신실해서 자신을 살해하려는 음모에 시달려야 했고, 의로운 욥은 단 하루 만에 자녀들과 재산 모두를 잃었다. 은혜의 복음을 열정적으로 전파했던 바울은 유대인들의 박해를 받았는데, 그 압박이 얼마나 극심했던지 『견딜 힘을 잃어 심지어는 삶의 절망에까지』(고후 1:8) 이르렀을 정도다.
물론 고난에 있어서 가장 훌륭한 본보기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예수님께서는 완벽한 하나님이심과 동시에 완벽한 사람으로서 배고프셨고 목마르셨으며 거절당하셨고 조롱을 당하셨다. 마귀들의 우두머리라는 비방을 받으셨고 얻어맞으셨으며, 결국 죽임을 당하셨다. 일찍이 선지자 이사야는 이런 모습의 예수님에 대해 『질고에 익숙한 사람』(사 53:3)이라고 예언했다. 주님께서는 당장에라도 『열두 군단이 넘는 천사들』(마 26:53)을 불러내시어 죄인들의 모든 『모순된 행동들을』(히 12:3) 단번에 해결하실 수 있는 능력이 있었지만, 온전한 인간으로서 그 모든 고난들을 인내로 견뎌 내셨다. 이것은 예수님께서 우리의 연약함과 괴로움을 동정하실 뿐 아니라 완전히 “이해하실” 수 있는 분임을 보여 준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너희가 마음이 지쳐 낙심치 않기 위하여 자기에게 저질러진 죄인들의 그와 같은 모순된 행동들을 견뎌 내신 그를 깊이 생각하라.』(히 12:3)라고 말씀하신 것이다. 과연 우리가 고난을 당한다 해서 예수님만큼 고통스럽겠는가? 아무리 억울한 일을 당했다 한들 예수님만큼 억울하겠는가? 무거운 짐을 어깨에 지고 있다 한들 전 인류의 죄를 담당하신 예수님만 하겠는가? 특히 예수님께서는 그런 박해와 고난을 당하면서도 악을 악으로 갚지 않으셨고, 모욕을 모욕으로 갚지 않으셨으며, 스스로 복수하지도 않으셨다(벧전 2:23). 오직 하나님의 구원 계획을 이루시기 위해 묵묵하게 인내하셨을 뿐이다(사 53:7). 또한 『혼이 심히 슬퍼 죽을 지경』(마 26:38)이셨지만 오히려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마 11:28)라고 말씀하신다. 이처럼 위로해 주시는 예수님께서 우리를 능히 도와주실 수 있기에(히 2:18), 우리 역시 충분히 고난을 견뎌 낼 수 있는 것이다.
『나의 형제들아, 주의 이름으로 말한 선지자들을 고난과 인내의 본으로 삼으라』(약 5:10).
무엇보다도 그리스도인은 고난 가운데서도 소망을 가질 수 있다. 아브라함에게는 확신과 소망이 있었다. 『이는 그가 기초들이 있는 한 도성을 기다렸음이니』(히 11:10). 소망이 있었기에 고향과 친척을 떠나 어디로 가야 하는지도 모르면서 떠났고, 평생 장막에서 지냈으며, 아들을 하나님께 바치는 일에 있어서도 전혀 주저하지 않았다. 그가 평생 나그네요 타국인으로 살아갈 수 있었던 이유도 바로 이 “하나님의 약속”에 대한 소망 때문이었다.
아브라함의 영적 자손들(갈 3:7)인 그리스도인들에게도 소망이 있다. 『이제 그들이 사모하는 곳은 더 좋은 본향, 곧 하늘에 있는 것이라』(히 11:16). 신약에서 모범적인 교회들 가운데 하나인 데살로니가 교회의 성도들은 여러모로 칭찬을 받았다. 또한 극심한 고난과 박해도 받았다(살전 2:14; 3:3). 이로 인해 “순교자들”이 생겨나기도 했는데(살전 4:13), 바울은 그들을 “소망의 말씀”으로 위로해 주었다. 『주께서 호령과 천사장의 음성과 하나님의 나팔 소리와 함께 하늘로부터 친히 내려오시리니 그러면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자들이 먼저 일어나고 그리고 나서 살아남아 있는 우리도 공중에서 주와 만나기 위하여 그들과 함께 구름 속으로 끌려 올라가리니, 그리하여 우리가 영원히 주와 함께 있으리라』(살전 4:16,17). 바울은 사랑하는 형제자매들을 잃은 슬픔을 위로하기 위해 그리스도인들이 공중으로 들림 받게 될 그날, 곧 휴거에 대한 소망을 상기시켜 주고 있다. 이는 그날이 오면 그리스도 안에서 잠들었던 모든 성도들을 다시 만날 수 있고, 자신의 생명보다 더 사랑했던 주님과 영원히 함께 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바울은 이 말끝에 이렇게 권면한다. 『그러므로 이러한 말로 서로 위로하라』(살전 4:18). 소망은 성도에게 가장 강력한 “위로의 말”이다! 우리는 우리의 천한 몸이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스러운 몸같이 변모될(빌 3:21) 그날을 소망한다. 그날에는 우리의 모든 슬픔과 아픔이 사라질 것이다. 상습적인 두통이나 허리와 어깨 통증은 한순간에 없어질 것이다. 더 이상 악인들의 번성을 보면서 분노하지 않아도 되고, 불의한 현실 앞에 좌절하지 않아도 될 것이다. 우리를 짓눌렀던 삶의 무게도 벗어 버릴 것이고, 악한 현 세상에서 우리를 괴롭게 했던 모든 것과 문자 그대로 완전히 이별하게 될 것이다. 이 『복된 소망』(딛 2:13)이 있기에 우리는 견디고 또 견딜 수 있는 것이다.
“긴 시련 때로는 견디기 힘들어, 불평과 낙담과 시험을 당해도,주 곧 오신다네 신부를 데리러, 내 눈물 사라지리 그 영원한 날에”
항구에 정박해 놓으려고 만든 배는 없다. 근해든 원양이든, 배는 거친 파도를 뚫고 목적한 장소로 가야 한다. 항해 중에는 비바람이나 태풍이 불어올 때도 있고, 배를 집어삼킬 만한 높은 파도가 몰려올 때도 있다. 그러한 위기 상황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방법은 단 한 가지뿐이다. 곧 “인내하고 견디는 것”이다. 그렇지 못하면 파선하고 침몰하게 된다. 감사하게도 우리에게는 우리를 목적지까지 안전하게 데려다주실 유능한 “선장”이 계신다. 그분과 함께라면 모든 위기를 극복할 수 있다. 힘들고 고통스러우며 긁힌 상처들이 여기저기 생기겠지만, 오히려 우리는 그것들로 인해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와 자비를 더 잘 알게 될 것이다. 하나님을 따라 높은 파도를 훌쩍 뛰어넘는 법도 배우게 될 것이다. 파도를 넘을 때마다 우리의 믿음은 더욱 굳건해질 것이고, 동시에 더욱 겸손해질 것이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광야로 인도하신 목적이었고(신 8:2,16), 또한 우리에게 고난을 주시는 이유이기도 하다. 그러므로 고생으로 가득한 인생의 무게에 억눌려 있지 말자(눅 8:14). 맥없이 처진 손과 쇠약한 무릎을 일으켜 세우자(히 12:12). 우리의 믿음의 창시자시요 완성자이신 예수를 바라보자(히 12:2). 죄인들의 그와 같은 모순된 행동들을 견뎌 내신 주님을 깊이 생각하자(히 12:3). 영원히 주와 함께 있을(살전 4:17) 그날을 간절히 소망하면서 남자답게 일어나 주의 일을 넘치게 하자. 『너희도 인내하며 마음을 견고케 하라. 주의 오심이 가까움이라』(약 5:8). BB