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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때의 난제, “교회의 성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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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대로믿는사람들 <2025년 04월호>
마지막 때에 “교회의 성별”이 쉬운 문제일까? 지금의 세속화된 교회들에게는 매우 어려운 문제이다. 세상에 발을 들여놓기는 쉬워도 거기서 빠져 나오기는 어렵기 때문이다. 이것이 죄의 속성이다. 마약 중독에 빠진 죄인이 마약을 끊임없이 요구하는 것처럼, 세상에 중독된 교회들 역시나 세상을 끊임없이 갈구한다. 그들은 늪에 발을 넣었다가 온몸이 빠져 버려 질식사한 사람과 같다. 지금의 교회들은 죽은 것이다. 마지막 때의 교회들은 세상이라는 거대한 늪에 완전히 빠져 버려서 그들 자신의 능력으로는 벗어나는 것이 불가능하다. 성경 어디에도 지금의 교회들이 세상을 버리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돌아올 것이라는 말씀은 없다. 다만 인간 쇠락의 법칙에 따라 타락에 더 큰 타락을 더할 뿐이다. 바로 이것이 성경대로 믿는 그리스도인들이 마주하고 있는 “아주 어려운 때”이다. 『또 이것을 알라. 마지막 날들에 아주 어려운 때가 오리라. 사람들이 자기를 사랑하고 돈을 사랑하며, 자긍하고 교만하며, 하나님을 모독하고 부모에게 불순종하며, 감사하지 아니하고 거룩하지 아니하며 무정하고, 화해하지 아니하며, 모함하고 절제하지 못하며, 사납고, 선한 것을 좋아하지 아니하며 배반하고 분별이 없으며, 자만하고 쾌락을 사랑하는 것이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보다 더하며 경건의 모양은 있으나 경건의 능력은 부인하리니, 이런 자들에게서 돌아서라. 이들 중에는 가정집에 몰래 들어가 어리석은 여인들을 사로잡아 죄들을 짊어지게 하여 여러 가지 정욕으로 끌려가게 하는 자들이 있나니 항상 배우나 진리의 지식에는 결코 이를 수 없느니라』(딤후 3:1-7).성경대로 믿는 그리스도인들은 세상과 타협한 교회들을 가리켜서 “세상 교회”라고 부른다. 하나님을 섬기겠다고 나선 그들이 “세상 교회”가 된 것은 하나님께서 어떤 분이신가를 알지 못한 채 육신적인 생각으로 섬김을 흉내 내려 했기 때문이다. 세상 방식으로 섬겨도 받아주실 것이라는 착각에 빠져 하나님께 육신적인 열성으로 다가섰다가 퇴짜 맞은 “카인의 종교”로 전락하고 만 것이다(창 4:3,5). 거절당한 카인은 몹시 격노하고 안색이 변하기라도 했지만, 배교한 교회들은 자기가 거절당한 줄도 모른 채, 『이 악한 현 세상』(갈 1:4) 전체가 악함 속에 놓여 있다는(요일 5:19) 성경의 경고에도 불구하고 의가 불의와 관계를 맺을 수 있는 것처럼, 빛과 어두움이 사귈 수 있는 것처럼 행동하고 있다. 그리스도와 세상 신인 벨리알을 조화시키려 하는 그들은, 믿지 않는 자들과 멍에를 같이 메지 말라는 명령이 있음에도 믿지 않는 세상과 같이하는 우를 범한 것이다(cf. 고후 6:14,15). 대답해 보라. 『너희는 그들에게서 나와 따로 있고 더러운 것을 만지지 말라.』(고후 6:17)라는 명령이 우스운 것인가? 하나님께서 금하신 “더러운 것”을 왜 만지는 것인가? “더러운 것”을 만지면 더러워진다는 것도 모른다는 말인가?
하나님께서는 “분리주의자”시다. 그분께서 “분리주의자”시라는 점을 아는 교회는 세상과 타협하지 않는다. 문제는 배교한 교회들이 “분리주의자”께서 기록하신 성경에 계시된 “성별에 관한 진리”를 완전히 무시하고 있다는 데 있다. 그들이 세속화에서 벗어날 길은 “진리”를 수용하는 것뿐인데, 그 일은 성별을 명하신 하나님께서 그분의 “책”에 자신을 어떤 분으로 계시하시는가를 아는 데서부터 시작된다.
첫째, 하나님께서는 이집트의 노예 상태에서 해방시키신 이스라엘 백성에게 실생활에서 “분리”하는 법을 가르치셨다. 즉 자신의 백성이 먹을 수 있는 짐승과 먹을 수 없는 짐승을 분리하셨으며(레 11장), 가축의 교접 문제, 작물의 파종과 옷감의 배합, 남녀의 구분된 복장, 심지어 “헤어스타일”까지도 규정하셨다. 『너희는 내 규례들을 지킬지니라. 너는 네 가축을 다른 종류와 교접시키지 말며, 너는 네 밭에 씨앗을 섞어 뿌리지 말고, 베와 양털을 섞은 옷을 입지 말지니라』(레 19:19). 『여자는 남자에게 속한 옷을 입지 말 것이며 남자도 여자의 의복을 입지 말지니 이는 그렇게 행하는 모든 자는 주 너의 하나님께 가증함이니라』(신 22:5). 『너희는 머리 가를 둥글게 깎지 말며 턱수염 가를 손상시키지 말지니라』(레 19:27). 이와 같은 규례들을 주신 하나님께서 관심을 가지신 것은, 그분의 백성인 이스라엘이 “분리”를 “생활화”하여 “죄로부터의 분리”로까지 이어지게 하려는 데 있었다.
이집트가 “세상”을 예표하고 거기서 “분리해” 내신 백성에게 “분리”를 실행하게 하셨다면, “세상”에서 불러내신 교회 또한 “분리”를 실행하는 것이 당연하다. 하나님께서는 구약의 이스라엘에게 『너는 수소와 나귀를 함께하여 밭을 갈지 말지니라.』(신 22:10)라고 하셨는데, “수소”는 하나님을 섬기는 “성도”의 모형이고(고전 9:9,10), “나귀”는 거듭나지 못한 “죄인”의 모형이다(출 13:13, 욥 11:12). 따라서 이 두 짐승에게 멍에를 매어 함께 밭을 갈게 해서는 안 된다는 명령은 거듭난 “그리스도인”과 거듭나지 못한 “세상 죄인”이 함께 섬길 수 없다는 신약적 진리를 보여 준다 하겠다. 즉 『믿지 않는 자들과 멍에를 같이 메지 말라.』(고후 6:14)라고 하신 것인데, 거듭난 그리스도인이 메어야 할 멍에는 세상의 멍에가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멍에”이며, 바로 이 멍에를 메고 주님께로부터 진리를 배워 나가야 하는 것이다.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내 멍에를 메고 나에게서 배우라. 그리하면 너희가 너희 혼에 쉼을 얻으리라. 이는 내 멍에는 쉽고 내 짐은 가볍기 때문이라』(마 11:29,30).
둘째, 하나님께서는 “처소”에 있어서도 분리를 강조하셨다. 예를 들어 출애굽 열 재앙 가운데 파리떼 재앙에서 파라오의 백성과 주님의 백성 사이에 구분을 두셨는데, 이스라엘 백성이 거하는 “고센 땅”을 구별하여 그곳에만 파리떼가 “없게” 하셨다. 『내가 그 날에 내 백성이 거하는 고센 땅을 구별하여 그곳에는 파리떼가 없게 하리니 결국 너는 내가 땅 가운데 있는 주임을 알게 되리라. 내가 내 백성과 네 백성 사이에 구별을 두리니 내일 이 표적이 있으리라』(출 8:22,23). 하나님께서는 그분의 백성이 거하는 고센 땅을 다른 모든 이집트인들의 처소로부터 분리시키셨다. 그것이 『내 백성과 네 백성 사이에 구별을 두』시는 방법이었는데, 하나님께서 함께 계신다는 것 자체가 지면의 모든 백성들로부터 이스라엘을 구별시키는 기본적인 기준이었으며(출 33:16), 땅의 모든 백성들 가운데서 성별시켜 자신의 유업이 되게 하신(왕상 8:53) 하나님께서는 주님 자신이 함께 계시는 처소에는 섭리적인 뜻에 의해 재앙을 허락하지 않으시기도 했다.
역병에 걸린 문둥병자를 다른 이스라엘 백성들로부터 분리시키신 일 또한 “처소”에 있어서의 분리를 강조한다. 『그에게 역병이 있는 모든 날 동안은 그가 더럽혀진 것이니 그는 불결하니라. 그는 혼자 살되 그의 처소는 진영 밖이니라』(레 13:46). 문둥병자는 그의 병으로 인해 불결해져 있는 동안에는 진영 밖의 분리된 처소에서 살아야 했다. 성경에서 문둥병이 “죄”의 예표인 점을 감안하면, 하나님께서 “죄인들의 처소”와 “성도들의 처소”를 구별하심을 알 수 있는데, 이 점은 죄인들의 세상이 하나님과 그분의 성도들로부터 분리되어 있음을 깨닫게 해 준다. 즉 『이 세상의 신』(고후 4:4)인 마귀에게 넘겨진 현 세상(눅 4:5,6)은 하나님께로부터 분리되어 있다. 세상의 모든 죄인들은 『소망도 없고 세상에서 하나님도 없』이(엡 2:12) “진영 밖에 격리된 문둥병자들”처럼 살고 있는 것이다. 그들의 최종 처소는 영원한 지옥이며, 그 지옥은 세상 모든 죄인들이 하나님과 그분의 성도들로부터 영원히 격리되는 감옥이다. 다윗이 『그러나 벨리알의 아들들은 모두 내다 버린 가시나무 같으리니, 이는 손으로 그들을 잡을 수 없음이라. 그들을 만지려는 사람은 철과 창자루를 갖추어야 할 것이요, 그들이 그 자리에서 완전히 불태워지리라.』(삼하 23:6,7)라고 했을 때, 그는 죄의 결과물인 『가시나무』(창 3:18) 같은 죄인들이 지옥에서 불태워진다는 점을 말한 것이었다. 『내다 버린 가시나무』 같은 죄인들이 가야 할 처소는 지옥뿐이지만, 거듭난 그리스도인들은 성령으로 침례를 받아 그리스도의 몸의 지체들이 되었기에(고전 12:12-27) 결코 그 불타오르는 감옥에 가둬지지 않는다.
현재 그리스도인의 몸은 “세상”에 있지만 그의 진정한 처소는 “셋째 하늘”이다. 허물과 죄들 가운데서 죽었다가 그리스도와 함께 일으켜진 그의 영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천상”에 함께 앉혀져 있기 때문이다(엡 2:6). 이러한 성도의 시민권이 “하늘”에 있다는(빌 3:20) 말씀은 부인할 수 없는 진리이다. 『그러므로 너희가 그리스도와 함께 살아났으면 위에 있는 것들을 구하라. 거기에는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의 오른편에 앉아 계시느니라. 위에 있는 것들에 너희 마음을 두고 땅에 있는 것들에 마음을 두지 말라』(골 3:1,2). 이렇듯 세상은 그리스도인이 마음을 둬야 할 곳이 아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지상에 계실 때 『너희 자신을 위하여 하늘에다 보물을 쌓아 두라.』(마 6:20)라고 말씀하셨다면, 성도의 영원한 보물이 쌓여 가는 “하늘나라”야말로 그의 마음을 둬야 할 처소이다. 세상에서 타국인 같고 낯선 순례자 같은 하늘의 시민권자는 혼을 거슬러 싸우는 육신의 정욕들을 멀리하며(벧전 2:11) 하늘로 떠날 준비를 해야 하는 것이다. 『주께서 호령과 천사장의 음성과 하나님의 나팔 소리와 함께 하늘로부터 친히 내려오시리니 그러면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자들이 먼저 일어나고 그리고 나서 살아남아 있는 우리도 공중에서 주와 만나기 위하여 그들과 함께 구름 속으로 끌려 올라가리니, 그리하여 우리가 영원히 주와 함께 있으리라』(살전 4:16, 17). 이 일은 마지막 나팔 소리에 눈깜짝하는 순간에 일어날 것이다. 나팔 소리가 나면 먼저 죽은 성도들이 썩지 아니하는 몸으로 일으켜지고 살아 남아 있는 우리도 변화되어 하늘로 올라갈 것이다(고전 15:52). 예수 그리스도를 죽은 자들로부터 살리시어 하나님의 오른편에 앉히신 그 강력하고 위대하신 능력으로 우리 그리스도인들을 이 세상에서 셋째 하늘로 옮겨 주실 것을 약속하고 계시는 것이다(엡 1:19,20).
배교한 교회들의 성별은 “성경에 계시된 진리”를 받아들이느냐에 달려 있다. 오직 그 한 가지에 달려 있지만 그 일이 요원하기만 한 것은, 그들에게는 성경을 “문자 그대로” 믿을 믿음이 없기 때문이다. 『세상도, 세상에 있는 것들도 사랑하지 말라.』(요일 2:15)라는 이 단순한 말씀조차도 믿기 어려운 “문제의 구절”로 보일 지경이다. 그들은 왜 말씀을 깨닫지 못하는가? 왜 그들은 마음이 피뿌림을 받아 악한 양심으로부터 깨끗해진(히 10:22) 적이 없는 것처럼 세상을 사랑하고 있는 것인가? 그 해답을 다음의 말씀이 제시하고 있다. 『하물며 영원하신 성령을 통하여 흠 없는 자신을 하나님께 드린 그리스도의 피가 어찌 죽은 행실에서 너희 양심을 정결케 하여 살아 계신 하나님을 섬기게 하지 못하겠느냐?』(히 9:14) 예수님께서는 사람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깨닫지 못하는 이유를 그들의 아비가 마귀이기 때문이라고 하셨다(요 8:43,44). 그들은 그리스도의 피로 죽은 행실에서 양심이 정결케 된 적이 없기에 그들의 아비가 지배하는 세상에서 성별하여 하나님을 섬길 수 없는 것이다. 설령 거듭났다 해도 “지금” 그리스도의 피로 자신의 더럽혀진 양심을 정결케 할 줄 모르기에 성경대로 섬길 수가 없다. 성경대로 믿는 그리스도인들이 교회의 개혁을 부르짖고 있지만 교회들이 세상에서 성별하는 일은 난제 중의 난제로 남아 있다. 성별에 관한 말씀이 소화시키기에 “쓰다”(계 2:10)고 아이처럼 뱉어서는 안 된다. 믿음으로 수용하고 자신에게 적용할 때 하나님께 인정받는 교회가 될 수 있다. BB