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 분류
교회들마다 충돌하는 “구원의 교리”
컨텐츠 정보
- 188 조회
- 목록
본문
성경대로믿는사람들 <2025년 10월호>
지금까지 기독교계 내에서 기독교계 전체, 혹은 교단과 그 교회들의 문제점을 거론하며 “개혁”을 말하는 사람들이 있어 왔다. 하지만 그들이 추구했던 “개혁의 초점”은 문제의 본질을 직시하지 못했기에 근본적인 변화를 일으킬 수 없었다. 기독교계의 근본적인 문제들 중 가장 핵심적인 것은 “구원의 교리”이다. 성경의 많은 교리들 중에서 “구원의 교리”가 특히 중요한 이유는, 유일하게 그 교리가 “지옥의 영원한 형벌로부터 구원받을 수 있는 근거”이자 “지역 교회의 구성원이 될 수 있는 근거”가 되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지역 교회의 각 회원이 지옥의 심판으로부터 구원을 받음으로써 구원의 확신 가운데 성경대로 믿고 섬길 때, 그 교회가 정상적인 기능을 발휘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상에 빛을 비추는 역할을 할 수 있는 것이다.성경은 『네가 네 입으로 주 예수를 시인하고 또 하나님께서 그를 죽은 자들로부터 살리신 것을 네 마음에 믿으면 구원을 받으리라.』(롬 10:9)라고 선언하고 있다. 이 “구원의 복음”에 따라 자신이 죄인인 것을 인정하고, 예수 그리스도께서 자신의 죄를 대신하여 십자가에서 못박혀 죽으시고 부활하신 사실을 믿으면 지옥의 영원한 형벌에서 구원받게 된다. 그러나 배교한 기독교계에서 가르치는 “구원의 교리들”로는 죄인의 구원은커녕, 멸망을 가져올 뿐이다.
스스로를 우리나라의 장자 교단이라고 일컫는 “장로교”는 성경이 아닌 “칼빈주의”를 신봉한다. “칼빈주의”는 창세전에 하나님께서 주권적인 영원한 판결을 통해 어떤 사람은 구원받기로 정해 놓으셨고, 어떤 사람은 지옥에서 멸망하도록 정해 놓으셨다는 사악한 이단 교리이다. 그들이 주장하는 근거 구절 중 대표적인 것이 “에베소서 1:4,5”인데, 그 해석은 “왜곡” 그 자체이다. 『하나님께서 세상의 기초를 놓으시기 이전에 우리로 사랑 안에서 그분 앞에 거룩하고 흠 없게 하시려고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시어 하나님의 기쁘신 뜻에 따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우리를 자신의 자녀로 입양할 것을 예정하셨으니』(엡 1:4,5). 여기서 칼빈주의자들은 『세상의 기초를 놓으시기 이전에』, 『택하시어』, 『예정하셨으니』라는 어휘를 조합하여, “하나님께서 창세전에 구원받을 자들을 미리 택하시고 구원받도록 예정하셨다”고 주장한다. 그들은 『그리스도 안에서』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라는 어휘가 없는 것처럼 해석한 것이다. 이 에베소서 구절의 정확한 의미는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여 『그리스도 안에』 있게 된 사람들을 『택하시어』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자신의 자녀로 입양할 것을 예정』하셨다”는 의미이다. 칼빈주의자들은 죄인이 그리스도 안에서 택함받으려면 먼저 그리스도 안에 있어야 하고, 그리스도 안에 있으려면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믿고 영접해야 한다는 진리를 고의로 무시한 것이다.
성경에는 위와 같은 “예정론”을 반박하면서 인간의 의지적인 선택을 강조하는 구절들이 많이 있다(출 35:29, 레 22:23, 민 15:3, 신 12:6, 대상 28:9, 스 3:5, 시 54:6; 119:108 등). 성경에 따르면 인간은 얼마든지 하나님의 초청을 자기 의지로 거부할 수 있다(잠 1:24,25). 이러한 의지적 선택을 무시하는 “예정론”으로는 아무도 구원받을 수 없는 것인데, 그것을 가르치는 “장로교”가 이 나라의 장자 교단이면 뭐하고 막내 교단이면 뭐하겠는가!
요한 웨슬리의 후예들임을 자랑하는 감리교도들과 성결교도들은, 알미니안주의의 영향을 받은 웨슬리가 재정립한 웨슬리안주의(“웨슬리안 알미니안주의”라고도 함)를 받아들여 “구원을 잃어버릴 수 있다”고 가르친다. 물론 성경에는 “구원을 잃어버릴 수 있다”고 해석될 만한 구절들이 있다. 『그러나 끝까지 견디는 자는 구원을 받으리라』(마 24:13). 『이는 우리가 처음의 확신을 끝까지 견고하게 붙들면 그리스도께 참여한 자가 되기 때문이라』(히 3:14). 『한 번 깨우침을 받고 하늘의 선물을 맛보며, 성령의 동참자가 되고 하나님의 선한 말씀과 오는 세상의 능력을 맛본 자들이 만약 떨어져 나간다면 다시 새롭게 하여 회개시킬 수 없나니, 이는 그들이 스스로 하나님의 아들을 다시 십자가에 못박아 공개적으로 조롱함이라』(히 6:4-6). 알미니안주의 교회들은 이러한 구절들을 교회 시대에 적용하여 행위 구원을 가르치지만, 히브리서의 이 말씀들은 “환란 시대”에 적용된다.
히브리서는 교회 시대와 환란 시대의 과도기적인 책이기 때문에, 거기에는 교회 시대뿐만 아니라 환란 시대의 교리도 담겨 있다. 이 점을 모른 채 환란 시대의 구원에 해당하는 말씀들을 지금 이 시대에 적용하면 행위 구원의 이단 교리가 나올 수밖에 없다. 교회가 휴거된 후 전개되는 대환란 때의 구원 방법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율법을 대환란 기간의 끝까지 지키는 “믿음과 행위의 결합”이며, 대환란 때의 구원을 직접적으로 다루는 “요한계시록”에서도 이 점을 증거하고 있다. 『여기에 성도들의 인내가 있으며 여기에 하나님의 계명들과 예수의 믿음을 지키는 자들이 있느니라』(계 14:12, cf. 계 12:17; 15:3). 교회 시대의 구원 교리는 “로마서에서 빌레몬서까지”의 “바울 서신”에 담겨 있다. “진리의 말씀을 올바로 나누지”(딤후 2:15) 않기에 교회 시대와 환란 시대를 구분하지 않는 알미니안주의 교회들은 참된 교회가 휴거된 후 대환란에 들어가게 될 것이다. 아무런 구원의 보장도 없이 행위에 매달리다가 대환란에 들어갈 것이라면, 그런 교회에 왜 다니는 것인가!
잘못된 구원론을 주장하는 교회들 중에는 특히 “침례”를 구원의 필수 요소로 가르치는 곳들이 있다. 그들은 “침례의 행위”가 구원에 절대적이라고 가르치는 이단들인데, 바로 “로마카톨릭”과 “그리스도의 교회”가 대표적이다.
로마카톨릭은 <가톨릭 교리문답> 212번에서 「세례는 물로 씻는 예절인데, 이 성사를 받는 사람은 원죄와 본죄의 사함을 받고 그 죄벌까지 온전히 면함을 받으며 천주의 자녀가 되고 천주교회의 지체가 되고 다른 성사 받을 자격을 받습니다.」라고 가르친다. 또 213번에서는 「세례성사가 구원받기에 필요한 것이니, 예수께서 말씀하시기를 “아무라도 물과 성령으로 다시 새로 나지 아니하면 능히 하느님의 나라에 들어가지 못할 것이라”고 하셨습니다.」라고 가르친다. 물에 잠기는 “침례”를 “세례”로 바꾸고 “물로 씻는 예절”이라 하여 “세례”가 “죄를 씻는” 예절인 것처럼 만든 그들은, “세례”를 중요한 “구원의 교리”로 제시했다. 그러나 교리문답 213번에 인용된 요한복음 3:5은 결코 “침례”를 말씀하신 구절이 아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육체의 출생을 “물로 태어나는 것”으로, 아담의 죄로 죽었던 영이 다시 살아나는 것을 “성령으로 태어나는 것”으로 설명하신 것이다. 이 말씀을 오해하여 “세례”와 연관 짓는 어리석음은 로마카톨릭이 얼마나 성경에 무지한 집단인가를 보여 준다.
“그리스도의 교회”는 로마카톨릭처럼 “사도행전 2:38,” 곧 『베드로가 그들에게 답변하기를 “회개하라. 그리고 죄들을 사함받은 것으로 인하여 너희 각자는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침례를 받으라. 그리하면 너희가 성령의 선물을 받으리라.』라는 말씀을 근거로 “침례에 의한 구원”을 주장한다. 그러나 베드로가 이 말을 한 것은, 메시아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죽였다는 사실에 찔림을 받은 유대인들에게 메시아를 죽인 죄에 대한 해결 방법을 제시한 것이지 결코 지옥의 형벌로부터의 개인적인 구원 방법을 제시한 것이 아니다. 그리스도의 교회는 「믿음은 “새 생명의 시작”이고, 침례는 “새 생명의 탄생”」이라고 주장한다. 그들은 “믿음에서 침례까지”를 “구원을 얻는 공식 과정”이라고 말하며, “침례를 받지 못하면 구원의 완성에 이르지 못한 것”이라고 가르치는 것이다. 그러나 성경은 『물은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하심으로 인하여 이제 우리를 구원하는 모형이니, 곧 침례라. (이것은 육체의 더러움을 제거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향한 선한 양심의 응답이라.)』(벧전 3:21)라고 말씀하심으로써 침례가 “구원의 모형”에 지나지 않음을 강조한다. 침례는 예수 그리스도의 죽으심과 장사되심과 부활하심에 믿음으로 참여한 성도가 앞으로 선한 양심으로 하나님의 뜻에 따라 살 것을 간증하는 의식인 것이다.
이 마지막 때에는 배교한 교회들 안에서 “구원의 교리”가 충돌하고 있다. 성경은 칼빈주의 교회의 “예정론”이나 알미니안주의 교회의 “행위 구원론”을 가르치지 않으며, 교회 시대에 “구원을 위해 받는 침례”를 말씀하지도 않는다. 다만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받으리라.』(롬 10:13)라고 선언한다. 즉 교회 시대의 구원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면” 은혜로 받는 “선물”인 것이다. 『너희가 믿음으로 말미암아 은혜로 구원을 받았으니 이것은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니 아무도 자랑하지 못하게 하려 하심이라』(엡 2:8,9). “다른 복음”을 전하는 자들은 성경의 저주 아래 있다(갈 1:9). 비성경적인 교단 교리를 내세워 “다른 복음”을 전하는 자들은 정신을 차려야 한다. 교회의 개혁은 말로 되는 것이 아니라, “바른 복음을 통한 구원”으로 뒷받침될 때 이루어질 수 있다. BB