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가 진리의 말씀을 올바로 나누어 자신이 하나님 앞에 부끄럽지 않은 일꾼으로 인정받도록 공부하라(딤후 2:15).
이송오 목사 설교 분류

그리스도인의 고난 - 이송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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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성경대로믿는사람들 <1996년 08월호>

베드로전서 4:12-16


12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를 연단시키려는 불 같은 시련에 관하여 너희에게 어떤 이상한 일이 일어나는 것처럼 이상하게 여기지 말고
13 도리어 너희가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여하는 자들이 되는 것이니 즐거워하라. 이는 그의 영광이 나타나실 때에 너희도 큰 기쁨으로 즐거워하게 하려 함이니라.
14 너희가 그리스도의 이름을 위하여 욕을 당하면 복이 있느니라. 이는 영광의 영 곧 하나님의 영께서 너희 위에서 안식하고 계시기 때문이니라. 그들의 편에서는 그 분께서 비방을 당하시나 너희의 편에서는 영광을 받으시느니라.
15 너희 중에 누구도 살인자나 도둑이나 행악자나 다른 사람들의 일에 간섭하는 자처럼 고난을 당하지 않게 하라.
16 그러나 만일 너희가 그리스도인으로서 고난을 당하면 부끄러워하지 말고 오히려 그 일로 인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

고통은 하나님의 자녀가 받아야 할 당연한 몫이다. 성경은 그리스도인이 고난받는 것을 당연시하고 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여하는 것을 즐거워하라고 하셨다(13절). 또 고통을 당하면 그 일로 인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고 하셨다(16절).
어떤 사람은 구원을 받으면 모든 문제가 끝나는 줄로 안다. 그러나 구원을 받으면 그때부터 문제가 시작된다. 하나님의 자녀가 되기 이전에는 누구나 마귀의 자녀였다. 그러나 그 사람이 자신이 죄인임을 깨닫고 성령으로 다시 태어나면, 마귀는 마치 새끼를 빼앗긴 암콤이 그 새끼를 다시 찾으려고 헤매고 다니는 것과 같이 그 사람을 믿음에서 끌어내리려고 발악한다. 그때부터 그 사람에게는 눈에 보이지 않는 치열한 싸움이 시작되는 것이다.
그리스도를 믿는 특권은 고통받는 특권과 함께 주어진다. 세상 사람들이 당하는 고통과 슬픔, 문제들은 특정한 목적이 없기에 별다른 의미도 없다. 의미없는 인생이기에 스스로 생을 끝내 버리려는 사람들도 있다. 그러나 하나님의 자녀가 당하는 고통과 슬픔과 문제에는 반드시 목적이 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그리스도인 각인의 인생에 목적을 두고 계시기 때문이다. 따라서 그리스도인이 당하는 시련과 고난은 그분의 허락없이는 오지 않는다는 사실을 늘 기억해야 한다.
그렇다면 여러분은 지금까지 어떤 고난에 동참해 보았으며 또 그 고난으로 인하여 얼마나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는가?

Ⅰ. 성도의 시련은 그리스도의 고난에 동참하는 것이다 - 12,13절

“불 같은 시련”은 몹시 견디기 어려운 시련을 말한다. 육체적 고통, 정신적 고통, 재정적 고통, 믿음 때문에 당하는 고통...고통이란 인간의 극기심으로도 이겨내기 어려운데도 주님은 우리에게 고난에 참여하는 것을 즐거워하라고 하신다.
선교사 아도니람 저드슨은 버마에서 7년 동안 갖은 고난을 겪은 후에 감옥에서 17개월을 보냈다. 철제 차꼬와 쇠사슬로 인해 그의 손목과 발에는 흉한 흉터 자국이 남게 되었다. 그는 출옥하게 되자마자 다른 주에 가서 복음을 전하겠다고 당국에 신청했다. 그때 그 관리는 그에게 다음과 같은 말을 했다. “우리 나라 사람들은 당신이 하는 말은 믿지 않을 것이요. 그러나 당신의 그 흉터를 보고서는 감명을 받을까 두렵소.”
이 세상에 살면서 그리스도인은 고난을 받을 수 있다(빌 1:29, 딤후 3:12, 히 13:3, 롬 8:18). 성경은 이것을 그리스도께서 당하신 고통의 교제에 참여한 것이라 한다(빌 3:10,11).
그리스도께서는 당시의 종교 지도자들에게 메시야가 아니라고 배척당하셨다. 하나님이시면서도 하나님을 모독한 자라고 저주받으셨다. 3년 반 동안 죄인처럼 쫓겨다니셔야 했다. 주님은 집도 없고, 재산도 없고, 소유물도 없으셨다. 또 뺨을 맞고, 채찍으로 맞고, 침뱉음도 당하고, 수염도 뽑히고, 옷도 벗기우고 마귀라고 불리고, 결국 범죄자의 극형인 십자가에서 처형되시어 갈보리의 고통을 겪으셨다. 죄없으신 분이 우리의 죄 때문에 고통을 당하셔야 했던 것이다.
침례인 요한과 바울도 감옥에 갇혔다가 목베임을 당했으며 야고보도 목베임을 당했다. 이뿐만 아니라 수많은 신실한 성도들도 믿음을 지키고 진리를 수호하고 말씀을 지키려다 감옥에 갇히고, 고문당하고, 화형대에서 불에 태워지고, 때로는 사자에게 던져지고, 독사가 든 자루 안에 넣어진 채 물에 던져지기도 했다. 이렇게 고통을 당하고 죽임을 당하면서 그들이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시나이까?”라고 부르짖지 않았겠는가!
그러나 하나님은 자신의 행하심에 대한 이유를 인간에게 모두 알려 주지는 않으신다. 우리는 인간의 구원계획을 실현하시기 위해 하나님께서 친히 육신을 입고 이 땅에 오셔서 고난을 겪고 죽으셔야 했음을 기억해야 한다. 하나님의 목적은 사랑만 가지고 실현되는 것이 아니다. 땀도, 눈물도, 때로는 피도 요구된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Ⅱ. 그리스도의 이름을 위하여 욕을 당하면 복이 있다 - 14절.

그리스도인은 세상 사람들과 다르다. 영광의 영께서 우리 몸에 안식하고 계시기 때문이다. 그리스도인이 잠시 받는 환난은 훨씬 뛰어난 영광의 비중을 이루어가기 때문에(고후 4:17) 고난 가운데 있던 그리스도인들은 굳이 그것을 면하려 하지 않았으며 그로 인해 더 좋은 부활을 얻고자 하였다(히 11:35). 그것이 별 것이 아니라면 왜 구태여 그것을 얻으려 했겠으며 심지어 목숨까지 바쳐가며 얻으려 했겠는가!
선교사가 안락한 처소를 생각했다면 그는 이미 선교사로서의 자격이 없다. 선교사는 그 지역의 원주민처럼 먹고, 자고, 생활해야 한다. 아프리카에서 활동한 어떤 영국 선교사는 백인 우월감을 갖고 있었고, 맹수 핑계를 대며 총을 메고 다니면서 원주민들의 음식에 인상을 찌푸리기까지 했다. 이런 사람은 무자격 선교사이며 하나님께서 쓰시는 사람이 아니다. 이런 사람에게 무슨 열매가 있겠는가? 하나님의 일을 하는 사람이 좋은 집, 좋은 차, 더 나은 보수, 더 좋은 혜택 때문에 일을 한다면 그는 삯꾼에 불과하여 하나님이 쓰시는 사람이 아니다.
주님이 제시한 생명의 원칙은 자신을 부인하고, 십자가를 지고 따르라는 것이다. 십자가를 진 사람 치고 죽지 않은 사람이 있겠는가? 한 알의 밀알이 죽지 않았는데 어찌 썩겠는가?

Ⅲ. 왜 그리스도인이 고통을 당하는가

병의 고통은 죄의 결과이기도 하다(요 5:14). 그러나 질병은 때로는 하나님의 역사이기도 하다(요 9:2,3). 주님은 여러 가지 이유로 병을 허락하신다. 거룩함에 이르게 하시고, 나쁜 습관을 고치며, 경건한 삶을 살게 하고, 성도의 마음을 위로 향하게 하며(골 3:1-3), 세상을 사랑하지 못하게 하시려고(요일 2:15) 고통을 허락하시기도 한다.
고통은 때로 다른 사람의 죄에 의해 야기되기도 한다. 난잡한 생활을 한 부모에 의해 태어나 장님이 되는 수도 있고 우상숭배하는 자들의 집안에서 태어나 그 죄악을 감찰받는 경우도 있다(출 20:5).
고통은 하나님의 섭리적인 다루심일 때도 있다(고후 1:3-7). 하나님께서는 고통을 허락하시고 또 고통을 견딜 수 있게 해 주시며 위로도 해 주신다. 때로는 우리가 이해할 수 없는 시련도 있다. 그러나 고통의 원인을 살펴보면 대부분은 가깝거나 먼 요인들이 있고, 그 책임의 절반은 자신에게 있음을 알 수 있게 된다.
당신이 겪고 있는 시련과 고난과 문제들은 하나님의 은혜와 능력을 간증할 수 있도록 하나님께서 주신 것일지도 모른다. 어쩌면 그 고난을 통해, 구원받지 못한 사람은 이겨낼 수 없는 일들을 그리스도인은 이겨낼 수 있음을 간증하기 위한 것일지도 모른다. 당신이 하나님의 은혜로 그 고난들을 이겨낸다면 하나님께서는 존귀와 영광을 받으실 것이다. 바로 이것이 어쩌면 당신이 겪고 있는 고난의 목적인지도 모른다.

Ⅳ. 고통을 당한 성도의 자세는 어때야 하는가 - 16절

고통을 경시해서는 안된다. 또 하나님의 손길에 저항해서도 안된다. 그분의 뜻에 순복하여 그 뜻을 수용하고, 자신을 성숙하게 만들어 줄 계기에 감사해야 한다. 고난을 당하면 그 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야 한다. 자신에게 허락된 시련과 고난과 문제들로 인해 그분의 은혜와 능력을 간증할 수 있게 되었다면 얼마나 소중한 일이겠는가! 그리스도 때문에 아무런 고난도 겪지 않고 사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은 그리스도를 위해 아무 일도 하지 않으려는 사람이다.
고통과 슬픔과 문제가 있는 인생을 원하는 사람은 없다. 그러나 우리에게 고통을 허락하시는 분은 우리의 고난을 줄곧 지켜봐 주시는 분이요, 견딜 수 있는 힘을 주시는 분이요, 위로해 주시는 분임을 알아야 한다.
자신이 그리스도의 고난에 아직 참여하지 않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먼저 감사해야 하고, 고난을 겪는 사람들을 이해하며, 무슨 일에서든지 참여하려 해야 할 것이다(고후 4:10,11,15,16).
우리가 지상에서 사는 삶의 의미는 그분의 고난에 참여하는 것이다. 이것이 곧 고통의 교제인 것이다. 그리스도인의 생활 방식은 이렇듯 독특한 것이다. 기도하면 무엇이나 다 이루어지고 무슨 병이나 다 낫는다고 가르치는 자들은 성경을 모르는 사기꾼들임을 알아야 한다.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여하는 것을 즐거워하라. 당한 고난으로 인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사람이 되라. 그리하면 그리스도의 시상대에서 상을 받고 부끄러움을 당하지 않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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