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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자가의 원수들이 되지 말자[빌립보서 3:17-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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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대로믿는사람들 <2004년 09월호>
빌립보서 3:17-21어떤 개인이나 단체, 사회, 국가의 원수로 규정된다는 것은 유쾌한 일이 못될 것입니다. 우리 나라도 남북 화해의 분위기가 조성되면서 DMZ를 사이에 두고 대치하고 있는 남북관계에서 협상 때마다 북한에서 들고나오는 말은 “우리가 당신네들의 적이냐?”는 것입니다. 우리 당국자들이 대답하기 딱하지 않겠습니까? 그 때문에 6.15 공동선언문이 발표된 직후 우리 국방백서에는 주적이라는 표현이 사라지고 있습니다. 서로 싸우려고 총을 겨누고 있으면서도 적이 없다니 이보다 더 웃기는 코미디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만일 국방 책임자라면 우리의 주적은 공산주의자라고 말할 것입니다. 우리는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를 부인하는 공산주의자들을 적으로 간주할 것이라고 밝히면 별 문제가 없을 것입니다. 러시아와 구소련도 공산주의를 버렸고, 중국도 베트남도 공산주의를 시장경제 속으로 집어넣고 계속적으로 발전하고 있습니다. 공산주의 종주국에서 공산주의를 버렸는데 북한만 공산주의를 고집하면서도 슬그머니 시장경제를 실행하고 있는 것입니다. 북한도 공산주의를 버리고 시장경제와 자유민주주의체제가 된다면 자연스럽게 우리와 원수관계가 해소될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것이 통일의 시작이 될 것이니다.
다른 사람으로부터 원수 또는 원수 같다는 말을 듣는 것은 불쾌한 일입니다. 정치하는 사람들은 원수가 있습니다. 사업하는 사람들도 경쟁자가 있습니다. 개인에게도 원수가 있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도 원수가 있습니다. 하나님의 원수는 마귀와 그의 세력들입니다. 왜 전능하신 하나님께 원수가 있습니까? 하나님께서는 선과 진리, 의를 사랑하시고 실행하시는데 이것을 싫어하는 자가 있어 악으로 선을 억압하고, 비진리로 진리를 왜곡시키며, 죄와 불의로 하나님의 의를 제압하려 하기 때문입니다.
이 세상에 사는 모든 사람은 자유민주주의진영과 공산주의진영으로 나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진영과 마귀의 진영으로 나뉘어집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죄사함을 받고 성령으로 거듭난 사람들은 하나님의 진영에 속하고 그렇지 못한 사람은 모두 마귀의 진영에 속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한 가정 안에 구원받지 못한 사람이 있을 때 이를 가리켜 사람의 원수들은 그 가족 중에 있으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마 10:35,36). 따라서 구원받지 못한 가족과 한 지붕 아래서 사는 사람은 불행합니다. 원수와 함께 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이 세상을 심판하실 텐데 그 이유는 이 세상이 악하기 때문입니다. 세상이 악하다는 것은 길게 설명할 필요가 없습니다. 밤 9시 뉴스나 일간신문을 장식하는 것은 모두 마귀와 그의 자녀들입니다. 이 세상은 마귀가 관장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 세상을 사랑하면 누구나 하나님과 원수가 됩니다(요일 2:17, 약 4:4).
본문은 세상에 있는 구원받지 못한 그리스도의 원수들에게 말씀하신 것이 아니라 구원받은 그리스도인으로서 십자가의 원수로 행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하신 말씀입니다.
어떻게 살아야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가?
I. 너희는 모두 나를 따르는 자가 되라(17절).
이것은 예수님의 말씀이 아니라 사도 바울이 한 말씀이지만 하나님의 영감으로 기록된 성경입니다. 사도 바울은 우리들에게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려면 자신을 본받는 사람이 되라고 말씀합니다. 사도 바울의 생은 예수 그리스도 우리 주님을 기쁘시게 하는 삶을 성경대로 산 사람이었기 때문에 우리에게 자신을 본받는 사람이 되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고후 6:8). 그는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을 얻기 위해서 세상의 학문과 유대교의 교리와 세상의 가치관들을 배설물같이 여긴 사람입니다(빌 3:7). 그는 그리스도에게 인정받는 것을 최고의 영예로 알았습니다(빌 3:9). 부활에 이르기 위해서 그분의 죽음을 본받고 싶어했습니다. 자기가 죽으면 부활할 것을 알기 때문에 그리스도의 죽음을 본받고 싶어한 것입니다. 그분을 알고 그분의 부활의 능력과 고난의 교제를 알고 싶어했습니다(빌 3:10). 예수 믿으면 부자가 되고 만병통치하고 만사형통한다고 하는 자들은 고난의 교제를 전혀 모르는 것입니다. 성경에는 면류관을 받으려면 지금 십자가를 지라고 했습니다. 세상의 왕들, 부자들, 판사, 검사, 의사, 외교관 등 모두 다 죽음을 두려워합니다. 그런데 죽었다가 부활하는 것을 알았다면 어떻게든지 죽은 자들의 부활에 이르려고 하지 않겠습니까?(빌 3:11) 이를 위해서 애쓰는 사도 바울의 삶의 목표를 빌립보서 3:12-14에서 볼 수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자기가 왜 살아야 하며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배웠고, 그대로 실천했던 삶이었기에 우리들에게 모두 자신을 따르는 자가 되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죽은 사람이 어떻게 다시 살아나게 되었습니까?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셨기 때문입니다. 주님은 이 십자가를 지시기 위해 영문 밖에서 죄수로서 처형되셨습니다(히 13:12). 이스라엘 백성들은 문둥병에 걸린 사람을 영문 밖 곧 진영 밖으로 내보냈습니다. 죽은 사람을 다시 살리는 일은 하나님의 일인데 이 일을 하려면 주님께서 십자가를 지셔야 했고, 그리고 몸소 살아나셔야 했습니다(마 10:38). 만일 주님께서 죽으셨다가 다시 살아나지 못하셨다면 다른 사람들을 살릴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죽은 자들의 부활이 없다면 그리스도도 살아나지 못하셨으리라. 만일 그리스도께서 살아나지 못하셨다면 우리가 전파하는 것도 헛것이요, 너희의 믿음 또한 헛것이라. 뿐만 아니라 우리는 하나님의 거짓 증인들로 밝혀지리니 이는 우리가 하나님께서 그리스도를 살리셨다고 증거하였기 때문이라. 만일 죽은 자들이 정녕 살아나지 아니한다면 그분께서 그리스도를 살리지 아니하셨으리라』(고전 15:13 -15). 『보라, 내가 너희에게 한 가지 신비를 말하노니 우리가 다 잠잘 것이 아니요 오히려 우리가 모두 변화될 것이니 마지막 나팔에 눈깜짝하는 순간에 그러하리라. 나팔 소리가 나면 죽은 자들이 썩지 아니하는 몸으로 일으켜지며 우리도 변화되리라. 그리하여 이 썩을 몸이 반드시 썩지 아니할 몸을 입고 이 죽을 몸이 반드시 죽지 아니할 몸을 입으리라』(고전 15:51 -53).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 것이며 또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누구나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라』(요 11:25,26).
우리가 살아 있는 동안에 주님이 공중에 재림하시면 우리 모두는 죽지 않고 휴거됩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이 십자가를 지는 삶을 싫어하면서 예수님과의 고난의 교제를 하려 하고, 부활의 능력을 알려고 하며 교회에만 다니려고 하는 것입니다. 이런 사람들을 가리켜 성경은 십자가의 원수들이라고 말씀합니다. 이런 사람들은 구원을 받았기에 그리스도의 원수가 아닙니다. 십자가를 지지 않고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려고 하기 때문에 십자가의 원수들인 것입니다. 이런 사람들은 죽을 때까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습니다.
어떻게 살아야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가?
II. 사도 바울은 많은 사람들이 십자가의 원수들로 행하고 있다고 말씀합니다.
『(내가 자주 너희에게 말하였고 지금도 눈물로 말하지만 많은 사람이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원수들로 행하고 있느니라. 그들의 종말은 파멸이며 그들의 하나님은 자기들의 배요, 그들의 영광은 자기들의 수치 속에 들어 있고 그들은 땅의 것들을 생각하느니라.)』(빌 3:18,19). 사도 바울 시대(A.D. 60년-66년경)에 벌써 “부활의 능력”을 알았노라고 좋아하는 사람들이 있었고, 그들의 입에서 주님과의 고난의 교제, 즉 십자가를 지고 부활을 증거하겠노라고 말했던 많은 사람들이 있었지만 그들 가운데 많은 사람들이 십자가를 지지 않고 부활의 능력을 증거할 수 있다고 거짓말을 했던 것입니다. 그 당시에 그들은 주로 유대인 그리스도인들(롬 11:28)이었습니다. 오늘날도 마찬가지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부활을 이야기하고 고난의 교제를 이야기하지만 십자가 지기를 싫어합니다. 그래서 그런 사람들은 십자가의 원수들로 남는 것입니다.
우리 나라에서도 주님을 섬기겠다고 신학교에 들어가서 공부하고, 교회도 세우고, 선교도 한다 하고, 부흥회도 하고, 민족복음화니 세계복음화를 떠들어대면서 거창한 슬로건을 내걸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그들은 십자가는 지기 싫어하면서 십자가를 지고 고난받는 사람들로부터 존경과 인정을 받고 싶어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런 자들을 모두 십자가의 원수들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주님께서는 누구나 제자가 되겠다면 그렇게 하라고 하신 것이 아닙니다. 구원받은 사람들은 모두 하나님의 자녀이지만 그리스도의 제자가 되기 원하는 사람은 몇 가지 조건을 갖추어야 합니다. 여러분들은 자신에게 나도 제자가 될 수 있는가라고 물어보아야 합니다. 『또 그들 모두에게 말씀하시기를 “누구든지 나를 따라 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날마다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라. 누구든지 자기 생명을 구하고자 하면 잃을 것이요, 누구든지 나를 위하여 자기 생명을 잃으면 구하리라. 사람이 온 세상을 얻고도 자기 자신을 잃거나 버림을 받게 되면 무슨 유익이 있겠느냐? 나와 나의 말들을 부끄럽게 여기는 사람은 누구든지 인자가 자신과 아버지와 거룩한 천사들의 영광으로 올 때에 그 사람을 부끄럽게 여기리라』(눅 9:23-26).
주님의 제자가 되기 원하는 사람은 먼저 자신을 부인해야 합니다. 하나님 앞에서 자신을 부인하지 않는 사람은 주님을 첫째로 사랑할 수 없습니다. 우리는 무수한 사람들이 자기 유익을 위해 살면서도 예수 그리스도를 위해서 산다고 하는 것을 듣는데 거짓말입니다. 소위 하나님의 일을 한다고 하는 사람들이 성경을 붙들고 성경 앞에서 거짓말을 하는 것입니다. 신약에 와서 그리스도의 첫째 계명은 마음을 다하고 혼을 다하고 생각을 다하고 힘을 다해서 주 하나님을 사랑하라는 것입니다. 많은 문제들이 그리스도인이라면서 주님을 첫째로 사랑하지 않는 데서 생기는 것입니다.
두 번째는 날마다 자기 십자가를 져야 합니다. 그 사람은 한두 번은 십자가를 질 수 있지만 형편상 여러 번은 질 수 없고, 그것도 날마다 지는 것은 너무 어려운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는 자기가 죽었다 다시 살아나는 것을 별로 달갑게 여기지 않는 사람입니다. 죽었다 다시 살아나는 것보다도 현재의 자기 수고가 더 값지다고 생각하고 있는 것입니다. 자기를 부인하고 날마다 십자가를 지는 것까지는 그래도 남이 보지 않으니까 간신히 할 것 같은데 그렇게 하고 주님을 따르는 것은 남이 보는 일이라서 못할 것 같다고 말하는 이런 사람이 바로 십자가의 원수입니다. 처음 거리설교를 하려면 입이 안 떨어집니다. 그러나 성령충만하면 할 수 있습니다. 설교 준비를 하고 나서 무릎꿇고 기도하면 성령충만하게 되는 것입니다.
인자의 말들을 부끄럽게 여긴 자들은 버림받은 자들이라고 했습니다. 버림받은 자들이 무엇입니까? 배교한 자들입니다. 믿는다는 사람에게서 믿음이 싹 사라져 버린 상태입니다. 믿음이 사라진 사람은 아무것도 못하는 죽은 사람입니다. 십자가의 원수들은 주님을 위해서 사는 사람이 아니라 자신의 지상 삶을 용이하게 하려고 주님을 이용하는 사람들입니다. 그들은 지상 삶을 위해서 심지어 다른 복음까지 전하며 교회를 돈버는 곳으로 만들고 있는 것입니다. 그들은 성경을 버리거나 변개된 성경을 붙들기도 하고 심지어는 성경을 고치면서도 하나님을 믿는다고 말합니다. 그들은 그리스도를 말하지만 그리스도께 속하지 않은 자들입니다(요일 4:5,6). 그리스도께 속하지 않으면 마귀에게 속한 자들입니다. 그런 자들의 종말은 파멸이며 그들의 하나님은 그들의 배요 그들의 영광은 자기들의 수치 속에 들어 있고, 그들은 땅의 것들을 생각합니다
어떻게 살아야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가?
III. 그리스도의 공중 재림을 기다리고 사는 사람입니다(20,21절).
여러분이 지금 마음속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을 고대하고 산다면 하나님의 약속에 따라 면류관을 받을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을 기다리고 믿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은 천지 차이입니다. 사람이 죽으면 사람의 몸도 짐승의 시체와 마찬가지로 땅에다 묻거나 불태웁니다. 왜 사람이 죽으면 벌레가 먹고 구더기가 생깁니까? 더럽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잘생긴 남자나 아름다운 여자라 할지라도 죽으면 벌레들이 먹습니다. 육신은 천한 몸이기 때문입니다. 인간의 마음도 심히 악하고 더럽습니다. 사람이 죽으면 그가 가지고 있던 지식, 기술, 재능, 아름다움, 재산 등 이 모두가 어떻게 되는 것입니까? 아깝지만 아무것도 가지고 갈 수 없습니다. 이것이 인생입니다. 따지고 보면 죽었다 다시 살아나는 것보다 더 소중한 것은 없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시민권이 하늘에 있다고 가르쳐 주십니다. 셋째 하늘에 우리의 구세주이시며 대제사장이시고 왕이신 예수님이 계십니다. 그곳에는 우리가 신실한 섬김과 예수 그리스도께 순종했던 열심들이 이루어낸 것들이 보물들처럼 쌓여 있습니다. 우리의 사랑하는 사람들과 구원받고 죽은 사람들이 그곳에 있습니다.
그러나 배가 그들의 하나님인 자들에게는 셋째 하늘에 아무것도 없습니다. 그들은 그들의 열정, 사랑하는 사람들, 그들의 구세주인 교육, 종교, 직업, 과학, 스포츠, 부동산, 주식, 현찰 등 전부가 땅에 있습니다.
주님이 오시면 우리의 천한 몸이 그리스도의 영광스런 몸으로 변화됩니다. 『사랑하는 자들아, 이제는 우리가 하나님의 아들들이라. 우리가 어떻게 될 것인지는 아직 나타나지 아니하였으나 그가 나타나시면 우리가 그와 같이 되리라는 것을 아노니, 이는 우리가 그분 그대로 그분을 볼 것이기 때문이라』(요일 3:2).
결론적으로 디모데전서 2:4에서 『하나님께서는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고 진리의 지식에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고 하셨습니다. 그렇다면 지금 모든 사람들이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여 구원받고 삽니까? 구원받은 모든 사람이 진리의 지식에 이르며, 진리를 갈급해 하며 삽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소수의 사람들만이 구원을 받고, 그 중에서도 소수의 사람들만이 진리의 지식을 깨우치고 살고 있습니다. 또 그들 중 소수의 사람들만이 십자가의 원수들로 살지 않는 것입니다. 십자가의 원수들로 살지 않는 그 사람들은 누구입니까? 순수한 믿음을 가지고 성경대로 믿고 주님을 사랑하는 사람들입니다. 이 사람들이 없다면 소중한 복음은 배설물처럼 내버려질 것입니다. 이 사람들이 부활의 능력을 알고, 고난의 교제의 의미를 아는 사람들입니다. 이 사람들은 단 한 가지 동기 때문에 이 세상을 살아갑니다. 지금 하나님께서는 여러분에게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지를 가르쳐 주고 계십니다. 『그가 모든 사람을 위하여 죽으신 것은 산 자들이 이제부터는 더 이상 자신들을 위하여 살지 않고 자기들을 위하여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신 그분을 위하여 살게 하려는 것이라』(고후 5:15).
이렇게 살지 않으면 십자가의 원수로 남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쓰임을 받고 안 받고 하는 것과는 차원이 다릅니다. 여러분이 죽었다 다시 부활하는 것을 알고, 예수 그리스도께서 다시 오시는 것을 믿기 때문에 여러분은 전에 살았던 그 생활방식과는 다르게 사는 것입니다. 그분은 우리를 살리기 위하여 십자가에서 죽으셨다가 다시 살아나시어 셋째 하늘에 오르시어 이제 조금 있으면 오실 것입니다. 그분께서는 불꽃 같은 눈으로 지켜보시며 십자가를 지지도 않고 주님을 따르지도 않으면서 진리를 따라 산다고 하는 자들로 하여금 거짓말하지 못하게 하실 것입니다. 그래서 여러분은 십자가의 원수들로 살아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BB
여기에 실린 “이 달의 설교”는 요약된 것입니다. 이 설교의 전문을 포함해서 이송오 목사님의 매주일 설교를 성경침례교회 홈페이지(www.kjv1611.or.kr)에서 직접 들으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