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가 진리의 말씀을 올바로 나누어 자신이 하나님 앞에 부끄럽지 않은 일꾼으로 인정받도록 공부하라(딤후 2:15).
이송오 목사 설교 분류

하나님께 경배하라 - 이송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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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대로믿는사람들 <2001년 01월호>

(계 19:10)


성경의 마지막 책 요한계시록 22:9에서는『하나님께 경배하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성품과 그분의 독특하신 속성은 그분의 권능이십니다. 그분은 권위가 있으신 분이시기에 자신이 만드신 피조물들에게 순종을 요구하실 수 있으며 그분은 거룩하신 분이시기 때문에 정직하게 살 것을 요구하실 수 있습니다. 또한 거짓말하지 말고 속이지 말고 숨기지 말라고 요구하실 수 있습니다. 또 그분은 피조물들에게 살아 있는 동안에 열심히 일하라고 명령하실 수 있습니다. 또 피조물들에게 미워하지 말고 사랑하라고 명령하실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특히 그분의 자녀들에게 하나님께 경배하라고 말씀하시고 있습니다. 경배받으시는 것은 하나님의 속성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경배받으시기를 좋아하시는데 그렇다고 해서 아무에게나 받으시는 것은 아니며, 인간들이 제멋대로 하는 경배를 받으시는 것도 아닙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분의 자녀들이 그분이 정하신 규례대로 경배를 할 때 받으신다는 것입니다.
오늘날 하나님을 바로 알지 못하는 사람은 제멋대로 하면서 하나님을 경배한다고 합니다. 과연 인간들의 그 다듬어지지 않은 행위들이 경배에 합당하겠습니까? 창조주이시고 구속주이신 하나님, 그분은 제국의 흥망성쇠를 가늠하시고 인간의 생사화복을 가늠하시며 세계 역사를 주관하시고 성경대로 그분의 시간표를 이행하시고 계십니다. 바로 그분께서 지금도 여전히 경배를 원하고 계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도 우리는 주님께 경배를 드리려고 이 자리에 모인 것입니다. 그러나 자기 백성들로부터 경배를 원하시는 것이지, 아무나 찬송 부르고 손뼉을 친다고 해서 경배를 받으시는 것이 아닙니다.
요한복음 4:23은 아주 의미심장한 말씀입니다.『그러나 참된 경배자들이 아버지께 영과 진리로 경배드릴 때가 오나니 바로 지금이라. 이는 아버지께서 자기에게 경배드리는 그런 자들을 찾으심이니라.』 하나님께 영과 진리로 경배드릴 자격이 있는 사람이 누구입니까? 하나님께서는 그 의미를 알고 영과 진리로 예배드리는 그 자격있는 사람을 찾고 계시는 것입니다. 경배라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피뿌림을 받은 하나님의 자녀들만이 영과 진리로 하나님 앞에 드릴 수 있는 것입니다. 또한 하나님의 자녀라도 자기 몸을 드리는 헌신된 사람이 참 경배자로서 합당한 예배를 드릴 수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하나님께 몸을 드리지 않은 채로 앉아서 마음으로는 다른 생각을 하고 있다면 그것은 참된 경배가 될 수 없습니다. 여러분, 하나님을 속일 수는 없습니다. 경배를 드리는 사람의 수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다만 누가 어떻게 드리느냐가 중요한 것입니다. 막상 경배를 드려야 할 성도들이 경배보다 더 소중한 일이 있다는 것은 하나님보다 더 소중한 일이 있다는 것이며, 그것은 바로 우상인 것입니다. 경배자가 경배의 대상을 잘 알지 못하고 경배드리게 되면 우상에게 경배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경배드리는 데 있어 하나님께 하지 않고 우상에게 하고 있다면 하나님께는 모독이요 성도에게는 수치로 돌아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참된 경배자를 찾고 계십니다. 어떻게 드리는 것이 참된 경배입니까?

첫째로 예수 그리스도 앞에 어떤 것도 두어서는 안됩니다. 예수님께만 경배를 드려야지 다른 것이 있어서는 안됩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위해서 순교한 사람들도 있었고, 예수 그리스도를 위해서 복음을 전해 수십만 수백만 명을 주님께로 인도한 부흥사도 있었고, 또 예수 그리스도를 위해서 아프리카 오지에 파송되어 그 사람들과 함께 생활하면서 복음을 전했던 사람도 있었습니다. 파푸아뉴기니아나 남태평양 식인종들이 사는 곳에 가서 그 사람들에게 죽임을 당한 선교사들도 있었습니다. 그 많은 수난을 겪은 존 페이튼 같은 선교사들도 있었습니다. 그 외에도 공산주의국가들이나 모슬렘 국가에서 복음을 전하던 훌륭한 선교사들도 있었습니다. 그 나라의 언어를 배워서 성경을 번역하기 위해서 갖은 노력을 다한 선교사들도 있었습니다. 그 사람들 중에는 감옥에 갇히고 풍토병을 못 이겨서 요절한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한 가지 알아야 할 것은 그 사람들의 영향력이 예수 그리스도의 광채를 흐리게 해서는 안된다는 것입니다. 빌리 그래함이나 존 칼빈이나 요한 웨슬리나 그 누구든지 간에 그들의 말이 예수님의 말씀보다 중요할 수 없습니다. 그 어떠한 사람들도 인간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보다 위에 있을 수 없습니다.『아무도 자의적인 겸손과 천사들을 숭배함으로 너희의 상을 속여 빼앗지 못하게 하라. 그는 보지 않은 것을 억지로 주장하고 자기 육신의 생각으로 헛되이 과장하며, 머리를 붙들고 있지 아니하니 온 몸이 머리에서 마디와 힘줄을 통하여 영양을 공급받고 엮어져서 하나님께서 자라게 하심으로 자라느니라』(골 2:18,19). 그들의 교리가 성경적인 가르침보다도 우선되어서는 안됩니다. 그들의 유명세가 그리스도보다 높아서도 안됩니다. 그들이 무슨 일을 했든지 간에, 교회를 수백 개 세우고 수십만 명을 주님께 인도했다 하더라도 그들의 영향력이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을 가려서는 안됩니다. 그 어떤 명분일지라도 예수 그리스도 앞에 두는 것은 우상 숭배인 것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참된 경배자를 찾고 계십니다. 어떻게 드리는 것이 참된 경배입니까?

두 번째로 경배받으실 분과 경배하는 자들 사이에 약속이 맺어져 있어야 합니다. 여러분, 잠시 출애굽기 24:1-8을 주의깊게 읽어 보시기 바랍니다. 모세는 이스라엘 백성들로 하나님과의 언약을 맺음에 있어서 단지 백성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전달했습니다. 모세가 먼저 결단해서 백성들에게 “너희들은 무조건 하나님께 경배드려야만 한다.”고 하지 않았습니다. 출애굽기 24:3에서『모세가 와서 백성에게 주의 모든 말씀들과 모든 명령들을 말하였더니 모든 백성이 한 음성으로 대답하여 말하기를 “주께서 하신 모든 말씀들을 우리가 행하리이다.”』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 순종하고 하나님께 경배하겠다고 백성들이 동의했습니다.
모세가 말씀을 전달하고 백성들이 그 말씀을 듣고 동의하니까 그때야 비로소 5절에서 보듯이 번제와 화목제를 드렸습니다. 그 다음에는 그 동물을 잡아 가지고 대야에 담은 피를 반은 제단에다 뿌리고 반은 백성에게 뿌렸습니다.『모세가 피를 떠서 백성에게 뿌리고 말하기를 “언약의 피를 보라. 이는 주께서 이 모든 말씀에 관하여 너희와 맺으신 언약이라.” 하더라』(출 24:8). 대야에 담아서 반은 제단에다 뿌리고 반은 백성에게 뿌렸는데 제단에 뿌린 피는 죄를 용서해 주셨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는 죄인과 하나님과의 관계를 정상화한 것입니다. 죄가 있는 상태에서는 인간과 하나님과의 관계는 정상화되지 않습니다. 또한 백성에게 뿌린 피는 하나님과 관계를 정상화한 백성이 하나님께 순종의 생활을 약속한 것입니다. “아, 우리가 하나님께서 명령하신 대로 하겠습니다.”라고 약속한 것입니다. 그중 첫째가 경배인 것입니다. “제가 하나님께 순종하고 하나님께 경배를 드리겠습니다.”라고 피로 언약을 맺은 것입니다.
신명기 5:3을 보면『주께서는 이 언약을 우리의 조상과 더불어 맺으신 것이 아니고 우리와 더불어 맺으신 것이니, 우리 곧 오늘 여기에 살아 있는 우리 모두와 맺으신 것이라.』고 말씀합니다. 오늘 여기에 모인 여러분들 가운데도 예수 그리스도의 피뿌림으로 인해서 하나님께 경배드리겠다고 언약을 맺으신 분만이 경배드릴 수 있는 것입니다. 신명기 6:4,5에 보시면『오 이스라엘아, 들으라. 주 우리 하나님은 한 분 주시니 너는 네 마음을 다하고 네 혼을 다하고 네 힘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할지니라.』고 말씀합니다. 이것이 경배하는 사람이 갖추어야 할 자격인 것입니다. 이것의 의미를 모른 채 앉아서 찬송가만 따라 부르는 것은 참된 경배가 아닙니다.
저는 여러분들에게 이스라엘이 피로 언약을 맺었고, 성도들이 피로 언약을 맺었다고 말씀드렸는데, 그러면 하나님과 피로 언약을 맺은 이스라엘이 이 약속을 이행했습니까? 아닙니다. 이스라엘은 3주도 채 안되어서 우상을 만들어 경배함으로써 순종하겠다고 동의한 그 약속을 파기시켜 버렸습니다. 오늘날도 많은 자칭 그리스도인들이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약속해 놓고서 갖가지 이유와 핑계를 대면서 그 약속을 파기해 버리고 있습니다. “저는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고, 저는 하나님께 어떠한 일이 있어도 경배드리겠습니다.”라고 해놓고 그 약속을 지키지 않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명령을 무시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마치 순종을 약속하고 경배를 약속하고서도 자기 우상에게로 돌아서 버리는 것과 같습니다. 이스라엘은 우상에게로 돌아갔습니다. 결과적으로 그런 행동은 하나님 아버지를 슬프게 하는 것입니다.
우리 하나님은 한 영이시지만 인격을 가지신 영이십니다. 우리가 죄를 지으면 슬퍼하시고 진노하십니다. 우리가 불순종하면 반역이라고 여기시는 것입니다. 악한 사람은 반역만을 찾습니다. 우리가 이 악한 세상에서 육신을 입고 진리를 실행하는 삶을 살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도움이 없이는 불가능합니다. 이것은 그리스도인이면 누구나 시인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지속적으로 보호해 주실 것을 원하는 것입니다. 우리들의 건강도 지속되어야 하며 우리가 하는 일의 번영도, 우리의 가정의 안정도, 무사고도 지속되어야 합니다. 언제까지입니까? 다시 오실 주님을 만날 때까지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매일, 매순간마다 주님께 기도합니다. 그래서 그 기도로 지속적인 하나님의 도우심을 받는 것입니다.
사실 모슬렘들은 아무리 가난해도 성지순례를 하라고 합니다. 그래서 그들은 그 명령을 누가 했을지라도 성지순례를 합니다. 아마 그리스도인들에게 당신이 구원받기 위해서 평생 동안에 세계일주를 해야 한다고 하면 그 일을 할 것입니다. 그런데 쉬운 일을 요구하면 너무 쉽기 때문에 안합니다. 제도화된 교회에 가보십시오. 제가 성경핵심강연회를 하면서 미국 서부에서부터 동부까지 12일 동안에 11곳을 다녔습니다. 로스앤젤레스에서 시작해서 샌프랜시스코, 산호세, 보스턴, 뉴욕, 뉴저지, 워싱턴 D.C.까지 한국 사람들의 큰 교회들은 거의 다 가 보았습니다. 그런데 자매들은 잘 차려입고 부산하게 점심 준비는 잘 하는데 정작 강연회에는 참석하지 않습니다. 그들에게는 교회에서 밥하는 것이 더 중요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깨닫고, 하나님의 말씀의 존귀함을 아는 것은 덜 중요했던 것입니다. 이것이 인간이라는 것을 여러분은 아셔야 합니다. 사람들은 어려운 일을 해내면서 가장 쉬운 일을 하라고 하면 하지 않습니다. 경배드리는 것은 마음의 자세에 달려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그 마음의 자세를 요구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참된 경배자를 찾고 계십니다. 어떻게 드리는 것이 참된 경배입니까?

세 번째로 영과 진리로 드리는 경배이어야 합니다. 오늘날 소위 교회라는 곳들에서 그들은 경배를 드린다고 하고 있으나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그 경배와는 거리가 멀기 때문에 그 경배는 진정한 경배가 될 수 없습니다. 열린 예배, 찬송가, 율동, 악기들, 박수, 그래서 참석자들의 감정을 고조시켜서 흥분하게 만드는 것입니다. 일부러 감정을 고조시켜 기분을 좋게 만들어서 쓸데없이 서원하게 만들고, 돈 내게 만들고, 약속하게 만들고, 거짓 충성을 도출해 내는 것이 현대판 경배입니다. 모두가 성경에 근거 없는 것들입니다. 그래서 성경에 근거가 없기 때문에 문화라고 이름붙이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을 경배 문화라고 합니다. 그러나 대부분의 제도화된 교회들에서 이러한 문화 행사를 자행하고 있는 것이 오늘날의 실정입니다. 그것이 또 하나의 우상이라는 사실을 여러분들이 아셔야 합니다.
주님은 참된 경배는 영과 진리로 드리는 경배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그러나 참된 경배자들이 아버지께 영과 진리로 경배드릴 때가 오나니 바로 지금이라. 이는 아버지께서 자기에게 경배드리는 그런 자들을 찾으심이니라. 하나님은 한 영이시니 그분께 경배드리는 자들은 영과 진리로 경배드려야만 하리라.”고 하시니라』(요 4:23,24). 여기서 말하는 ‘영’이란 구원받은 성도가 그 안에 내주하시는 성령님을 통해서 영으로 하나님과 영적 관계를 맺는 것입니다. 성도는 성령으로 충만한 가운데서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겠다는 자세로 주님 앞에 서는 것입니다. 그래서 제가 여러분에게 합당한 말씀을 전파하면 여러분들은 속으로 ‘아멘’ 합니다. 겉으로 ‘아멘’해도 상관없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모든 죄를 자백하며, 육신적이지 아니하고 주님으로 채워지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자신의 몸만 예배실에 있고 마음은 자기가 원하는 곳에 있게 하는 것은 영으로 드리는 예배가 될 수 없습니다. 바쁘다는 핑계라든지 그 어떤 이유도 정당화 될 수 없습니다. 여러분, 대통령이 언제 한번 만나자고 한다면 핑계를 대겠습니까? 우리 주님이 대통령보다 못한 존재입니까? 그러나 우리는 주님의 피뿌림을 받은 사람이기 때문에 주님의 명령에 순종하겠다고 약속했습니다.
‘진리’가 무엇입니까? 마음 속에 어떤 거짓도 없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은 거짓말하지 않는 사람입니다. 어떤 속임수도 없는 것입니다. 저는 어떤 비성경적인 교리도 수용하지 않습니다. 경배에는 의식과 형식이 필요 없는 것입니다. 그렇게 드리는 경배를 순수한 경배라고 하는 것입니다. 자기의 주장을 굴복시키고 오직 진리만을 실행하고 진리만을 사랑한다는 자세로 하나님 앞에 나올 때 진리로 드리는 예배가 되는 것입니다.
때로는 이 “진리”(truth)라는 것은 진실을 말합니다. 거기에는 거짓이나 가식이 없습니다. 주님 앞에 진실되이 나아가는 것입니다. 성경적 교리와 교단 교리는 다릅니다. 교리에는 성경적인 교리도 있고 마귀의 교리도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성경으로 검증되지 않은 모든 교리는 마귀의 교리입니다. 성경으로 검증되지 않은 모든 것은 비성경적이고 비성경적인 것은 이단적인 것입니다. 요한복음 4:24에 보면 경배를 드리는 것이 단지 좋다고 말씀하시지 않았습니다.『영과 진리로 경배드려야만 하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must”입니다. 반드시 그렇게 해야 한다고 하셨습니다. 이렇게 드리는 경배를 하나님께서 성도들로부터 받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우리 성도들은 반드시 영과 진리로 하나님께 경배드려야만 합니다. 주님께서는 제 인생의 여러 경우들을 통해서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고 확인하셨습니다. 저는 한번도 제가 주님을 위해서 무엇을 희생하고 있다고 말씀드린 적이 없습니다. 제가 현재 이렇게 복음을 전하고 진리를 가르치면서 사는 것이 가장 정확한 인생 방법이라고 주님께서 가르쳐 주셨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저는 전혀 후회하지 않습니다. 제가 가져야 할 그 이상으로 주님께서는 저에게 너무 많은 은혜를 베푸셨습니다. 주님께서 저를 용서해 주시고 저를 받아주셨을 때 그때 저는 죽었습니다. 저는 한참 후에야 그것을 깨달았습니다. ‘아, 내 인생은 덤이구나. 진작 죽었어야 했는데.’ 사실 1978년에 제가 예수님과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혀서 죽었을 때 그때 저도 죽었어야 했는데, 실제적으로 죽었어야 했는데, 지금 살아있는 것입니다. 덤으로 사는 인생인 것입니다.
주님께서 여러분들에게 똑같은 질문을 하고 계십니다. “너희는 나를 사랑하느냐?” 주님께서 그 질문을 저에게만 하시는 것이 아니라 여러분에게도 하시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잘못 깨닫고서 나는 주님을 위해서 너무 많이 희생하며 살고 있다고 할지 모르지만, 주님은 이렇게 묻고 계십니다. “나는 영과 진리로 나에게 경배드리는 참 경배자들을 찾고 있다.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네. 사랑합니다.” “그래, 바로 너와 같은 참 경배자를 찾고 있었다. 고맙다. 과연 네가 나의 피뿌림을 무시하고 있지 않았구나!”
주님께서 참 경배자들을 찾고 계시다는데 여러분은 그것을 무시하시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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