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송오 목사 설교 분류
생명의 말씀에 관해서 (요한일서 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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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대로믿는사람들 <2015년 05월호>
금년 우리 교회 창립 23주년, <한글킹제임스성경> 출간 21주년을 기념하는 일간신문 전면광고를 위해 성원해 주신 교회 내외와 외국에 계신 성도님들께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교회 창립이 성경 출간보다 2년 앞선 것은, 신약성경의 기조 위에 교회가 세워졌기 때문입니다. 금년에는 취지문 자체는 짧았지만 강력한 메시지를 담았고, 우리가 펴낸 책들을 가격과 함께 광고했습니다. 한국 교계는 어안이 벙벙했을 것입니다. 그 가운데서 전화로 문의했던 사람들은 충격과 후회가 교차된 선한 사람들이었을 것이라고 사료됩니다. 메시지 중에서 가장 강력한 한마디는 “기록된 말씀을 믿을 수 없다면, 교회를 다니는 것과 다른 종교에 심취하는 것이 무엇이 다른가? 그런 교회를 왜 다녀야겠는가?”였을 것입니다.
누가 기독교라는 말을 지어냈습니까? 거듭나지 않고 교회에 다니는 사람들입니다. 종교란 창조주를 숭앙하는 신념을 말합니다. 성경의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 종교라면 종교를 믿는 사람들은 그리스도인들과 극소수의 유대인 그리스도인들뿐입니다. 우리 성도들은 기독교라는 말을 쓰면 안 됩니다. 교단 교회들과 카톨릭은 써도 됩니다. 그들은 성경을 믿지 않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창조주요 구속주요 심판주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것이지, 기독교라는 종교를 믿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펴낸 책들이 소개되었는데, <나는 그리스도인인가 칼빈주의자인가>라는 책이 실리지 않았습니다. 곧 출간될 근간들도 소개되지 않았습니다. 메시지 내용 중에 “<한글킹제임스성경>이 출간되지 않았더라면 이 책들이 아직도 사장되어 있어 빛을 보지 못했을 것”이라는 대목이 있습니다. 만일 그랬더라면 우리 교회 역시 그들과 다를 바 없이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교회 이름이 적힌 휴지나 나눠 주며 “구원받으세요!”라고 말했을 것입니다. 그들은 그것이 복음을 전하는 일인 줄로 압니다. 그 교회의 목사도 전도지 한 장 못 만들고, 교인들도 어떻게 해야 복음의 일꾼이 되는지 모릅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일이 무엇인지 모릅니다. 『예수께서 대답하여 그들에게 말씀하시기를 “이것이 하나님의 일이니, 즉 그분이 보내신 이를 너희가 믿는 것이라.”』(요 6:29). 『우리의 권면은 기만이나 부정이나 교활로 말미암지 않았고 오히려 하나님의 승인을 받아 복음을 위탁받은 대로 전하노니 이는 사람들을 기쁘게 하려 함이 아니며 우리의 마음을 시험하시는 하나님만을 기쁘시게 하려 함이니라』(살전 2:3,4).
이번 광고문은 우리 교회 사역의 목표와 일치한 것이며, 이 나라 기독교계에 각성을 촉구하는 하나님의 메시지였습니다. 성경침례교회의 사역 목표는 <한글킹제임스성경>을 정착시키고, 진리의 지식을 확산시키며, 이 민족을 그리스도께로 이겨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고 진리의 지식에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딤전 2:4).
진리의 지식에 이르라.
I. 생명의 말씀에 관해서라(1,2절).
생명의 말씀은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태초에 말씀이 계셨고, 그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그 말씀은 하나님이셨느니라』(요 1:1). 우리 성경에 예수 그리스도를 지칭하는 『말씀』은 모두 고딕체로 되어 있습니다. 영어 <킹제임스성경>에는 대문자로 표기되어 있습니다. 본문과 요한복음 1:1의 『말씀』, 요한계시록 19:13의 『하나님의 말씀』도 고딕체입니다. 반면 히브리서 4:12의 『말씀』은 고딕체가 아닙니다. 이 나라 기독교 목사나 교인들이 이 점을 알 수 있겠습니까? 미국, 영국, 캐나다 등의 기독교인들은 알 수 있습니까? 예수 그리스도를 『말씀』이라고 표기한 말씀은 『오직 하나님의 거룩한 사람들이 성령으로 감동을 받아 말한』 말씀입니다(벧후 1:21). 인간의 할례받지 않은 손으로 그 말씀을 3만 6천 군데 이상 고쳤다면, 그것이 걸레지 하나님의 말씀이겠습니까? 죄인 된 인간이 하나님 앞에서 자신의 의를 드러내며 예수 그리스도의 피를 거부했을 때, 하나님께서는 그런 의를 “더러운 걸레” 같다고 말씀하셨습니다(사 64:6). 성경을 뜯어 고치는 죄가 얼마나 큰 죄입니까! 마찬가지로 변개된 성경은 거룩한 것이 아닙니다. Holy Bible, Holy Spirit, Holy Temple, 곧 거룩한 성경, 거룩한 영, 거룩한 성전(엡 2:21)이 거룩합니다. 거짓 영, 거짓 성도는 거룩하지 않습니다. 거짓 성도 안에는 성령님께서 계시지 않기 때문입니다.
사도 바울은 주님의 십자가 이후에 기적적으로 주님의 음성을 듣고 구원받았고, 신약 교회의 교리를 정립하였으며, 교회 운영의 초석을 놓았습니다. 그가 쓴 14권의 신약성경이 바로 신약 교회 교리의 근간이 되었습니다. 한편 사도 요한은 예수님의 12제자 중 한 사람이었고, 베드로, 야고보와 더불어 핵심 멤버였으며, 그 중에서도 가장 많이 주님의 사랑을 받은 제자였습니다. 그가 요한복음을 A.D. 88-90년경 기록하여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이심”을 증거하였습니다. 따라서 사도 바울은 사도 요한에 관하여 들었을 것입니다. 통신과 교통이 원활하지 않았던 그 당시에 둘은 만날 수는 없었겠지만 각자가 받은 사역에 충실했을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A.D. 70년에 로마 장군 티투스가 예루살렘을 정복하고 성전을 불태우기 전에 순교했지만, 사도 요한은 A.D. 70년 예루살렘의 침공을 알았고, 그가 요한1,2,3서를 기록했던 연대는 A.D. 88-90년경이었으며, 요한계시록을 기록했던 연대는 그 이후였는데, 팟모라는 섬에 유배되었을 때였고 이때를 A.D. 95-96년경으로 추정할 수 있습니다.
사도 요한은 어떤 인물이었습니까?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에 관하여 가장 잘 아는 인물이었습니다. 요한일서에서만도 “안다”라는 단어가 무려 38번이나 등장합니다.
그렇다면 어떤 그리스도인이 예수 그리스도 우리 주님을 가장 잘 섬길 수 있습니까? 사도 바울이 기록한 대로 신약 교회를 찾아 교회 생활을 하며, 사도 요한이 기록한 대로 교회 시대의 교리와 대환란의 교리와 천년왕국에 관한 지식을 알고 믿으면 가장 잘 섬기는 성도가 됩니다. 저의 권면은 성경의 다른 책들을 제쳐 놓으라는 말이 아닙니다. 구약성경을 소외시켜도 된다는 말도 아닙니다. 우선적으로 이 책들을 공부하여 성경적 기초를 다지라는 말입니다. 사도 바울의 서신서들과 사도 요한의 서신서들, 사도 베드로와 야고보의 일반서신들을 먼저 공부해야 성경을 더 쉽게 이해할 수 있습니다.
진리의 지식에 이르라.
II. 하나님은 빛이시요, 그분 안에는 어두움이 전혀 없습니다(5절).
성경에는 “태초에”라는 말씀으로 시작되는 책이 세 권 있는데, 첫 번째는 모세가 기록한 창세기 1:1이고, 두 권의 책들은 사도 요한이 기록한 책들입니다(요 1:1, 요일 1:1). 사도 요한이 기록한 요한일서 1:1은 『태초부터 계셨고, 우리가 들었으며, 우리 눈으로 보았고, 주목하여 살폈으며, 우리 손으로 직접 만졌던 생명의 말씀에 관해서라.』고 말씀합니다. 제 설교는 생명의 말씀에 관한 설교입니다. 우리가 바른 성경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그 말씀의 어느 한 부분을 믿지 못한다면 그는 어느 한 편의 장애를 갖게 됩니다. 율법을 지키다가 한 가지를 범하면 율법 전체를 범하는 것과 같다는 말씀은 바로 이 점을 뒷받침합니다. 기록된 말씀에 의심하는 사람은 하나님의 자녀가 될 수 없습니다. 그런 하나님의 말씀을 변개시키는 자는 지옥의 저주를 받은 자입니다. 저에게 질문을 보내 온 죄수들도 있고 교인들도 있는데, 말씀을 의심하는 질문은 악취가 나서 답장을 쓰기도 싫습니다. 말씀을 대하면 먼저 믿어야 합니다. 설령 고래가 요나를 삼킨 것이 아니라 요나가 고래를 삼켰다고 쓰여 있더라도 그렇게 믿어야 합니다. 그것이 믿음입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믿고 구원받았습니다.
『오 아버지시여, 세상이 있기 전에 내가 아버지와 함께 갖고 있던 그 영광으로 이제 나를 아버지와 함께 영화롭게 하여 주옵소서... 아버지시여, 내가 바라오니 아버지께서 내게 주신 그들도 내가 있는 곳에 나와 함께 있게 하셔서 그들로 아버지께서 내게 주신 나의 영광을 보게 하소서. 이는 아버지께서 세상의 기초가 놓이기 전부터 나를 사랑하셨기 때문이옵니다』(요 17:5,24). 성경을 믿지 않으면서 공부한다고 말하는 것은 농담하는 것과 같습니다. 아이가 먹어야 자라듯이, 성도들은 말씀을 먹어야 합니다. 믿고, 공부해야 합니다. 그것이 말씀을 먹는 것입니다. 카톨릭은 요한복음 6:53-58을 이해하지 못해서 지금도 과자부스러기와 포도주를 먹고 마시면서 어리석은 짓을 하고 있습니다. 요한복음 6:63을 보십시오! 『살리는 것은 영이니, 육은 전혀 무익하니라. 내가 너희에게 한 말들은 영이요, 생명이라』(요 6:63).
『하나님은 빛이시요, 그분 안에는 어두움이 전혀 없다는 것이라』(요일 1:5). 사도 요한이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는 “하나님은 빛이시라.”는 사실입니다. 하나님은 사랑이시고 소멸케 하시는 불이시지만 그보다 더 우선되는 말씀은, 그분은 빛이시기에 그분 안에는 어두움이 전혀 없다는 것입니다.
태양은 예수 그리스도의 예표입니다(시 19:5,6, 말 4:2). 천년왕국에서도 태양은 예수 그리스도의 예표입니다(벧후 1:19, 살전 5:5-11). 이사야 14:12의 루시퍼를 개역성경은 예수 그리스도를 뜻하는 “계명성”으로 변개시켜 놓았습니다. 세상의 모든 종교들은 태양 숭배로 시작되었습니다. 우리나라 우상 숭배자들도 정월 초하룻날 동해안 경포대, 포항 호미곶, 높은 산 정상들로 가서 해에게 소원을 빌러 갑니다. 갔다 와서는 대단한 일을 하고 온 것처럼 자랑합니다. 이런 작태를 교인들도 행합니다. 우리나라나 중국, 일본뿐만 아니라 모슬렘 국가들, 불교 우상 숭배자들도 동일합니다.
몸의 빛은 눈입니다(마 6:22). 인간은 몸의 눈으로 보듯이, 혼의 눈은 지성이고, 영의 눈은 양심입니다. 영이 거듭나야 하나님을 볼 수 있고 알 수 있습니다. 영이 거듭나지 않은 교인들은 죽을 때까지 교회를 다녀도 지옥으로 갑니다. “지성이면 감천”은 세상 종교인들의 위안입니다.
경남기업 회장은 장로였음에도 불구하고 그의 양심을 그리스도의 피로 씻지 못했기에 2조 원의 재산을 가지고서도 자살했습니다. 그처럼 살다가 자살한 기업인들과 관리들이 근간에만 10명이 넘습니다. 그가 죽으면서 누구누구에게 얼마를 줬다는 그 쪽지를 왜 지니고 있었을까요? 그는 왜 그들에게 돈을 줬을까요? 하나님을 알고 싶으면 혼이 열성을 낼 게 아니라, 영이 살아나서 영으로 자기 혼을 주관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 육신의 정욕, 안목의 정욕, 생의 자랑을 버릴 수 있게 됩니다. 탐심은 우상 숭배입니다. 정치하는 사람들, 비자금 마련하는 사람들, 치부하려는 목사들, 모두 다 우상 숭배자들입니다.
진리의 지식에 이르라.
III. 어둠 가운데 행하면 거짓말하는 것이며 진리를 행하지 않는 것이라(6절).
주님을 두려워하지 않는 성도는 죄를 짓습니다. 그러면서도 자신의 양심을 달래기도 합니다. 그 순간 그는 양심을 한 번 더 마비시키며, 그리스도의 피를 부정합니다. 그때 그는 성경의 수십 구절을 스스로 밟아 버리는 죄를 짓습니다. 죄가 남긴 열매를 그가 맛볼 때에야 비로소 자기에게로 돌아옵니다. 하지만 자백했다고 해서 죄의 결과까지 치유되는 것은 아닙니다. 그렇다면 어떤 사람들이 죄를 짓습니까? 말씀을 통해 주님과 교제를 소홀히 한 성도들입니다. 그리스도인은 주님과의 교제를 중요시 여겨야 하고, 실제적으로 하루에 1시간 이상 별도로 교제의 시간을 가져야 합니다. 우리가 그리스도의 심판석에 서기까지 주님과의 교제가 삶의 중요한 부분이 되어야 합니다. 『그러므로 서 있는 줄로 생각하는 사람은 넘어지지 아니하도록 주의하라』(고전 10:12). 성경의 지식을 알고, 그 일에 대한 성경 구절을 많이 암송한 성도는, 그렇지 않은 성도들보다 죄에 대한 대처가 훨씬 강력합니다(엡 5:8,11,13,14, 요일 1:6-10).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우리는 죄와 죄들을 제거했습니다. 그 피가 우리의 나중 죄들도 깨끗하게 할 수 있으니 죄를 고의적으로 짓는다는 것이 믿음이고 지식입니까? 요한일서 1:9은 구원이나 속죄에 관하여 다루고 있는 것이 아니며, 6절에서 말하는 “교제”와 7절에서 말하는 “깨끗하게 됨”에 관해서 말씀하고 있는 것도 아닙니다. 그리스도인이 현재 어떻게 거룩하게 되는가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께서는 다가올 선한 것들의 대제사장으로 오셔서, 손으로 짓지 아니한, 곧 이러한 건물이 아닌 더 크고 더 온전한 성막을 통하여 염소와 송아지의 피로 아니하고 오직 자신의 피로 한 번 성소에 들어가셔서 우리를 위하여 영원한 구속을 이루셨느니라. 황소와 염소의 피와 암송아지의 재도 불결한 자들에게 뿌려 그 육체를 정결케 함으로써 거룩하게 한다면, 하물며 영원하신 성령을 통하여 흠 없는 자신을 하나님께 드린 그리스도의 피가 어찌 죽은 행실에서 너희 양심을 정결케 하여 살아 계신 하나님을 섬기게 하지 못하겠느냐? 이런 연유로 그는 새 언약의 중보자이시니, 이는 첫 언약 때에 범죄한 것들을 구속하시려고 죽으심으로써 부르심을 받은 자들로 그 영원한 유업의 약속을 받게 하시려는 것이라』(히 9:11-15). 우리가 알다시피, 주님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신 것은 그 피로 죄를 용서받은 후에 다시 죄를 짓는 자들을 상대한 것이 아니고, 그 피로 죄를 제거한 후 거룩한 삶을 영위하는 성도들을 위함인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래서 주님은 그런 성도들과 교제하심을 기록해 놓고 있는 것입니다.
말하자면 죄인들의 입은 변명으로 꽉 차 있습니다. 세상의 죄인들을 변론하는 변호사들이 있습니다. 어떤 변호사가 인기 있습니까? 거짓말로 교묘히 법을 호도하는 자들입니다. 인간이 만든 법들은 그래서 잘 지켜질 수 없습니다. 그 중 한 가지가 당사자들을 데리고 나와 데모하는 것입니다. 주말이면 별의별 노조들이 서울 시가지 넓은 장소들을 다 차지하고 있습니다. 그들의 요구 사항은 국민들로 세금을 더 내라는 것입니다. 이 세상은 거대한 감옥입니다. 죄수가 다스리는 감옥과 같습니다. 출세? 당선? 그 배후에는 얼마나 간교한 거짓말들이 있는지 모릅니다. 알고 속고, 모르고 속고, 이들이 국민입니다. 데모크라시(Democracy, 민주주의)가 호도되니 거짓말쟁이들의 활동무대가 되었습니다. 이는 어느 나라나 동일합니다.
결론적으로
이 세상은 예수 그리스도와 교제할 수 있는 성도들과, 그렇지 않은 세력들이 공존합니다. 성경을 믿지 않는 교회, 종교, 교육, 출세, 고소득, 그 안에는 진리의 지식이 없습니다. 주님께서는 구원받은 성도들로 거룩한 삶을 살면 교제할 수 있다고 가르쳐 주셨습니다. 자신이 주님과 교제할 수 있는 자격자인가 보십시오! 이것이 우리가 배우고 실천해야 하는 진리입니다. 여러분의 생은 거룩합니까? 하나님께서 운영하시는 교회 안에서 이 점을 배우지 못하면, 이 세상 어디에서도 진리의 지식을 배울 곳이 없음을 알아야 합니다.BB
여기에 실린 “이달의 설교”는 요약된 것입니다. 이 설교의 전문을 포함해 이송오 목사님의 매 주일 설교를 성경침례교회 홈페이지(www.kjv1611.or.kr)에서 직접 들으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