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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과 혼도 구별 못하는 개역성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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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대로믿는사람들 <1997년 10월호>
1990년 <한글킹제임스성경>의 신약성경이 새 성경으로 출간되었을 당시 신촌 지역의 어느 교회에서 전도사로 일하고 있던 한 젊은이가 있었다. 그는 서울교육대학을 나왔지만 주님께 헌신하고 최선을 다해서 주님을 섬기려 하였다. 그러나 이 젊은이는 새성경으로 개역성경에 삭제된 부분들과 오역된 부분들을 대조해 보고 아연실색하였다. 결국 그는 어느 날 회중 앞에 서서 개역성경을 찢어 보이고 그 교회를 떠났다. 내가 그를 만난 것은 그로부터 2,3개월 뒤였다.개역성경은 영과 혼을 구별하지 못하는 성경이다. 이 성경으로는 신학과 교리를 정립시킬 수 없는데도 어리석은 사람들은 ‘조금 틀리면 어떻습니까? 우리 믿음의 선배들도 이 성경으로 주님을 섬겼는데요.’라고 한다. 이 말은 사탄이 이브에게 했던 말이다. “참으로 하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너희는 동산의 모든 나무에서 나는 것을 먹지 말라.’ 하시더냐?”(창 3:1). 예수님께서는 하늘과 땅은 없어져도 내 말들은 결코 없어지지 아니하리라.고 말씀하셨는데도(마 24:35), 말씀을 거역하는 자들은 “참으로 주님께서 말씀하시기를 ‘하늘과 땅은 없어져도 내 말들은 결코 없어지지 아니하리라.’고 하시더냐?”라고 하며 의심을 제기하는 것이다.
개역성경을 선호하는 사람들은 영과 혼에 대해 관심이 없다. 그들은 개역성경 히브리서 4:12에서 하나님의 말씀은 살았고...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라고 쓰고 있으면서도 영과 혼을 구별하지 못하고 영혼이라고 써버린다. 나는 그들이 그렇게 하는 원인을 알고 있다. 그 원인은 그들이 창세기 2:7에서 얼버무렸기 때문이다.
창세기 2:7은 주 하나님께서 땅의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그의 콧구멍에다 생명의 호흡을 불어넣으시니, 사람이 살아 있는 혼이 되었더라.인데, 개역성경은 여호와 하나님이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생기를 그 코에 불어 넣으시니 사람이 생령이 된지라.로 잘못 번역한 것이다. 하나님의 생기(영)를 흙에다 넣으시니 인격을 갖춘 살아 있는 혼(인간)이 태어나야 정상인데 개역성경대로 하면 “생령”, 즉 이상한 신(ghost) 같은 인간이 된 것이다.
창세기 2:7에서 인간이 혼이 된 것을 몰랐던 것은 개역성경이 최초가 아니다. 플라톤(Plato)이 몰랐고, 그의 추종자 어거스틴(Augustine)이 몰랐고, 칼빈(John Calvin)이 몰랐기에 미국의 개신교도 몰랐던 것이다.
영과 혼을 구별하지 못하는 사람은 절대로 성경을 해석할 수 없다. 천국과 하나님의 나라를 구별짓지 못하면 종말론을 엉망으로 만들듯이, 영과 혼을 구별짓지 못하면 하나님, 예수 그리스도, 성령론을 제대로 해석할 수 없게 된다.
그런 근거 위에서 욥기 7:11을 점검해 보자.
• 욥기 7:11
<한글킹제임스성경>
그러므로 내가 내 입을 삼가지 아니하고, 내 영의 고통 가운데 말하리이다. 내가 내 혼의 쓰라림 가운데 불평하리이다.
<개역한글판성경>
그런즉 내가 내 입을 금하지 아니하고 내 마음의 아픔을 인하여 말하며 내 영혼의 괴로움을 인하여 원망하리이다
왜 개역성경은 원문을 훼손시켜 자기들 스스로도 모르는 말을 적어 놨을까? 이 성경으로 주석을 쓴다면 뭐라고 쓰겠는가? 강단에서 강해 설교하는 자들은 무슨 거짓말로 회중을 미혹하겠는가? 신학교에서 성경을 가르치는 자들은 어떻게 가르치겠는가? 한심한 짓들을 하지 않겠는가?
욥은 덧없는 인생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인생은 노예 생활 같고(욥 7:1), 시련 같으며(욥 7:18), 바람 같고(욥 7:7), 베틀의 북 같고(욥 7:6), 그림자 같으며(욥 8:9), 달리는 말 같고(욥 9:25), 독수리의 비상 같으며(욥 9:26), 빠른 배 같고(욥 9:26), 바람에 지는 낙엽과 같으며(욥 13:25), 썩은 나무 같고(욥 14:8), 꽃과 같으며(욥 14:2), 구름 같은 것이다(욥 30:15). 인생은 안개 같다고 야고보 사도도 기록하지 않았던가?(약 4:14).
예수 그리스도는 생명 자체이시다(요 14:6, 이 생명은 영생을 말한다). 만일 그분이 죽었다가 살아나지 못하셨다면 그분은 아무에게도 생명을 나눠 주실 수 없는 것이다. 구약에서 이스라엘에게 제시된 생명으로 만나가 있었다. 그러나 그것을 40년 간 먹은 그들은 모두 죽었다. 또 반석에서 나온 물을 마신 광야의 이스라엘은 다시 갈증을 느껴야 했다. 만나이시며, 반석의 물이신 예수님은 그때 그들에게 아직 제시되지 않으셨다. 그들은 율법만을 받았을 뿐이다. 하나님께서 육신으로 오셔서 친히 어린 양이 되시어 성경대로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장사되셨다가 부활하셨을 때 그분은 그분의 생명을 나눠 주시게 된 것이다. 이제 그분이 제시한 복음을 믿고 그분을 영접한 사람은 예수님의 살을 먹고 피를 마신 사람이 된 것이다. 그분의 살은 영원히 배고프지 아니한 양식이요, 그분의 피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한 음료인 것이다. 예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시기를 “진실로 진실로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너희가 인자의 살을 먹지 않고, 또 그의 피를 마시지 아니하면, 너희 안에 생명이 없느니라.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자는 누구든지 영원한 생명을 가졌나니, 내가 그를 마지막 날에 살리리라. 이는 내 살은 참된 양식이요, 내 피는 참된 음료임이라.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자는 내 안에 거하며, 나도 그 사람 안에 거하느니라(요 6:53-56).
욥은 아직 영생의 진의를 몰랐다. 많은 순교자들은 영생의 진의를 알고 있는 사람들이었기에 더 좋은 부활을 택했다. 그런데 욥은 의인이 당하는 고통만을 불평하고 있는 것이다. 자신은 적어도 하나님과 연관해서 결코 잘못한 일이 없다고 생각한 사람이다. 욥은 자기 영으로 하나님을 알고, 교제하고, 경배드릴 수 있음을 알고 있었다. 하나님의 존재와 역사를 부인하는 자는 영이 죽어 있어 깨우침을 받지 못한다. 하나님께서는 아무나 경배와 찬양을 드린다고 받아주시는 분이 아니시다. “영과 진리”로 드리는 경배만 받아주신다. 인간은 영과 진리로만 하나님과 교제가 가능하다. 이것이야말로 거짓말할 수 없는 사실이다. 욥은 하나님과 교제하고 있었으나 자기를 향한 하나님의 뜻을 이해할 수 없었기 때문에 고통스러웠던 것이다. 그런 욥이 그의 혼의 쓰라림을 당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다. 욥은 맨 나중에서야 자기가 하나님 앞에 불평할 수 없는 존재임을 인식하고 이렇게 실토했다. 그러자 욥이 주께 대답하여 말씀드리기를 “주께서는 모든 것을 하실 수 있으며, 주의 생각은 그 무엇도 막지 못한다는 것을 내가 아나이다. 지식 없이 이치를 가리는 자가 누구니이까? 그러므로 나는 깨닫지 못한 것을 말하였으니, 그것들은 내게 너무 경이로워서 내가 알지 못하였나이다. 내가 간구하오니, 들으소서, 내가 말하겠나이다. 내가 주께 묻겠사오니, 나로 알게 하소서. 내가 주에 대하여 귀로만 들었사오나, 이제는 내 눈으로 주를 보나이다. 그러므로 내가 나를 미워하고, 티끌과 재 속에서 회개하나이다.” 하더라(욥 42:1-6).
혼과 영을 구별짓지 못하는 성경은 성경이 아니다. 성경은 교리서이다. 틀린 성경으로 바른 교리를 정립시키는 것이 가능하겠는가? 틀린 성경으로 하나님을 바로 섬겨 영과 진리로 하나님을 경배할 수 있겠는가? 바른 성경이 없이는 교회를 해서는 안되며 바른 성경이 없이는 신학교도 해서는 안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