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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은 고집이 센 사람들을 미워하신다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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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대로믿는사람들 <2015년 12월호>
사람은 자기가 사는 동안 나름대로 의미 있는 생을 살려고 노력한다. 이는 인간의 조상 아담이 그 좋은 낙원에서 외로움을 해소시켜 줄 아내를 지음 받고서도 왜 하나님의 명령에 불순종함으로써 저주를 받아 그곳에서 쫓겨났어야 했는가를 돌이켜 봐야 한다. 그 후 아담 자신은 얼굴에 땀을 흘려야 빵을 먹을 수 있게 되었는데 하나님께서 그가 흙으로 지음 받았기에 흙을 갈아 먹다가 죽어 흙으로 돌아가라 하셨다(창 3:19). 또 그의 아내 이브는 고통 가운데서 자식들을 낳아야 했고 또 남편의 주관하에서 살아야 했다(창 3:16). 하지만 인간들은 이 명령에 순종하지 않음으로써 세상은 죄와 갈등이 끊이질 않고 이어져 오늘에 이르고 있다. 사람이 땀 흘리지 않고 먹고 살려고 했기에 죄들을 짓고 남을 해치며, 심지어 남을 죽이기도 하며 더 나아가 전쟁을 일으켜 약탈하고 점령하며 불안한 세상을 만들고 있는 것이 세계사이다.성경을 유대교와 기독교의 경전 정도로 치부하며 완고한 마음으로 이 핑계 저 핑계 대면서 공부하거나 믿기를 거부하는 사람은 자기가 낸 열매를 먹게 되는데 그것이 심판이다.
예수님께서 지상 사역 기간 동안(A.D. 30-33년) 이렇게 말씀하셨다. 『나를 거절하고 내 말들을 받아들이지 아니하는 자는 그를 심판할 이가 있으니, 곧 내가 말한 그 말이 그를 마지막 날에 심판하리라』(요 12:48). 성경을 무시하고 살았던 사람들은 이 한 구절로 심판의 불구덩이인 지옥에서 영원을 보내야 한다.
인류 역사상 권세와 부와 쾌락을 가장 많이 향유했던 이스라엘의 솔로몬왕은 그의 생을 56세로 결산하면서 남긴 최후의 성명을 그가 쓴 전도서 마지막에 이렇게 기록했다. 『전체 일의 결론을 들을지니, 하나님을 두려워하고, 그의 계명들을 지키라. 이것이 사람의 모든 의무니, 이는 하나님께서 선이든 악이든 모든 행위와 모든 은밀한 것들을 심판하실 것임이라』(전 12:13,14). 이것이 어디 솔로몬왕의 개인적인 소견인가? 성경의 저자이신 성령 하나님께서 그를 감동케 하시어 기록케 하신 것 아닌가? 어떻게 살아야 잘 사는 인생인가? 지상 생명은 얼마 안 있으면 끝날 것이라고 알고 살면서 자기 혼이 심판을 받게 됨을 알고 대비해야만 잘 사는 것이다(히 9:27).
다윗왕은 자기 지상 생의 기간이 손 너비만큼밖에 안 된다는 점을 알고 살았다. 『보소서, 주께서 내 날들을 손 너비만큼 주셨으므로 내 연수가 주 앞에서는 없는 것 같사오니 진실로 가장 좋은 상태에 있는 모든 사람도 다 헛될 뿐이니이다. 셀라』(시 39:5). 또 다른 시편 기자는 『우리의 연수가 칠십이요, 강건하면 팔십이어도 그 연수의 힘은 수고와 슬픔이니, 그것이 곧 끊어지면 우리가 멀리 날아가나이다.』(시 90:10)라고 썼고, 욥도 『나의 날들이 베틀의 북보다도 빠르니 소망 없이 지나가는도다.』(욥 7:6)라고 말했다. 뿐만 아니라 욥의 친구 엘리파스는 인생이 무엇인지를 알았다. 『역경은 티끌에서 오는 것이 아니요, 고생도 땅에서 생겨난 것이 아니지만 불티가 위로 날아가는 것과 같이 사람은 고생하려고 태어나느니라. 나는 하나님께 구하고 나의 일을 하나님께 맡기리라』(욥 5:6-8).
성경이 없었다면 이와 같은 생의 조언을 어디에서 들을 수 있었겠는가? 성경을 알고 믿고 실행하는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의 생을 비교해 보라! 성경을 모른 채로 오래 살지 못하거나 깨닫지 못했다면 그는 멸망하는 짐승과 같다고 말씀하셨다(시 49:12,20).
그 사람이 누구인가? 하나님의 권면 앞에 완고한 사람 아니겠는가?
이스라엘의 사울왕은 완고한 사람의 전형이었다. 성령의 인도함을 받지 못한 사람의 생은 완고함으로 가득 차 있다. 완고한 사람은 타인의 조언을 듣지 않는 것이 특징이다. 율법에 따르면 고집이 세고 반항적인 아들이면 부모가 고장의 성문으로 데려가 성읍의 장로들에게 알리면 성읍의 사람들은 그 아들을 돌로 쳐 죽일 수 있었다. 고집은 악 그 자체였기 때문이다(신 21:18-21).
하나님을 섬기는 하나님의 청지기의 첫째 조건은 비난받을 일이 없고 자기 고집대로 하지 않은 사람이어야 한다(딛 1:7). 고집스럽게 행한다는 말은 성령의 역사하심을 무시하고 인간의 육신적인 방법으로 강행하는 것을 말한다. 성도가 기도 따로 행동 따로 행한다면 그가 행한 일에는 선한 열매가 열릴 수 없게 된다. 기도하는 사람이 하나님께서 조성해 주시는 환경을 인내로 기다리지 않고 즉흥적으로 결정하게 되면 결국은 실패하게 되고 그 과정은 험난할 수밖에 없다. 하나님의 사람은 그 무엇을 할지라도 하나님보다 앞서 가면 낭패를 당하게 됨을 알아야 한다.
선지자요 제사장인 사무엘은 불임의 여인 한나의 기도로 태어난 하나님의 사람이었다. 하나님께서는 사무엘을 통해 이스라엘을 통치하실 계획이셨는데 그가 치리한 지 50년도 채 안 되어 백성들은 왕을 달라고 외쳤다. 사울은 그렇게 해서 왕으로 세움을 받았다. 하나님께서는 사울을 시험적으로 쓰셨던 것이 아니라 선지자 사무엘로 그에게 조언하게 하셨다. 만일 사울왕이 선지자 사무엘의 조언에 순종하고 따랐더라면 어떻게 되었을까? 사울왕은 아들 요나단과 같은 날 전쟁에서 죽지도 않았을 것이며, 그의 왕국이 자기 대에서 비참하게 끝나지 않았을 것이다. 그는 자기의 고집 때문에 하나님의 인도함을 받지 못해서 40년간 치리하고 패망해 버렸다.
그가 어떻게 자신의 고집을 부림으로써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저버렸는지 보라. 하나님 안에서 무슨 일을 계획하는 성도들이 있다면 위로부터 오는 지혜와 영력으로 인도하심을 받아야 한다. 이것은 비단 교회 운영에만 국한되는 것이 아니요 모든 일에도 동일한 원칙이다. 이 세상은 옳은 일이라고 해서 다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는 것은 우리의 생애 내내 보고 경험하는 일들이지 않던가! 정의와 진리가 당연히 승리해야 옳은데 세상은 그걸 인정해 주지 않는다.
사울이 왕이 된 후 첫 번째 전쟁은 B.C. 1095년경 필리스티아인들과의 전쟁이었다. 이스라엘은 외적과 전쟁을 할 때면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전쟁을 했기에 인간이 하나님의 법을 위반하지 않는 한 모두 승리했다. 이는 하나님께서 정해 주신 규칙을 따랐기 때문이었다.
필리스티아인들은 이스라엘과 싸우려고 삼만 병거와 육천 기병으로 올라와 벧아웬 동편 믹마스에 진쳤다. 그런 막강한 전력을 본 이스라엘은 토굴과 가시나무 숲과 바위와 요새와 심지어 웅덩이에도 숨었고, 얼마는 요단을 건너 갓과 길르앗 땅으로 도망을 쳤다. 사울과 함께했던 잔류병들도 사기가 떨어져 떨면서 어쩔 수 없이 사울을 따랐다(삼상 13:5-7).
이 얼마나 급박한 위기상황이었는가? 사울과 군대는 제사장 사무엘의 명령에 따라 노심초사하며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정해 준 때를 따라 7일을 기다렸으나 사무엘이 오지 않자 백성들은 사울로부터 흩어지기 시작했다. 그런 급박한 상황에서 위기관리 능력을 발휘하지 않았다면 전쟁이 패배로 끝났을 때 사울왕이 그 죄에서 면죄될 수 있었겠는가? 사울왕은 자기에게 제사를 드릴 자격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번제물을 가져다가 번제를 드렸던 것이다. 번제가 끝나자 제사장 사무엘이 왔다. 여기에 하나님을 섬기는 사람과 하나님을 섬기지 않는 사람들 간에 차이가 있다. 하나님을 섬기지 않았다면 위기관리 능력이 있어야 유능한 인물이 되나, 하나님은 재력과 일류 대학 출신 일꾼들과 인간의 지혜에 의존하지 않으신다.
하나님의 법칙은 솔로몬왕이 쓴 전도서 9:11 그대로이다. 『내가 돌이켜 해 아래서 보니 경주가 빠른 자에게 주어지는 것이 아니고, 전쟁이 힘센 자에게 오는 것도 아니며, 먹을 것이 현명한 자에게 오는 것도 아니고, 재물이 명철한 자에게 오는 것도 아니며, 은총이 재주 있는 자에게 주어지는 것도 아니니, 때와 기회가 그들 모두에게 일어나는도다.』 이 말씀이 십중팔구 세상 사람들에게는 역설같이 들릴 것이지만, 우리 하나님께서 자신의 일꾼들을 시험하시는 방법이기도 하다. 하나님은 전사이시다(출 15:3). 현대전에서 이 말씀을 믿는 군지휘관이나 군통수권자가 있는가 보라. 그래서 그들은 전쟁에서 패배한다.
하나님의 대리인인 제사장 사무엘이 사울에게 했던 말을 보라. 『사무엘이 사울에게 말하기를 "왕이 어리석게 행하였나이다. 왕이 주 왕의 하나님께서 왕에게 명령하신 계명을 지키지 아니하였나이다. 그리하였더라면 주께서 이제 이스라엘 위에 왕의 왕국을 영원히 세우셨을 것이니이다. 그러나 이제 왕의 왕국은 지속되지 못하리이다. 주께서 그의 마음에 맞는 한 사람을 찾으셨으며, 주께서 그에게 주의 백성을 다스릴 대장이 되라고 명령하셨으니, 이는 왕이 주께서 왕에게 명령하신 것을 지키지 아니하였기 때문이니이다." 하고』(삼상 13:13,14). 이것이 사울왕이 40년을 통치하고 아들 요나단과 더불어 죽고 자기 후손이 왕위를 계승받지 못한 채 다윗에게로 넘겨진 원인이 되었다.
사무엘은 길갈을 떠나 기브아로 올라갔는데, 사울이 백성을 헤아려 보니 달랑 6백 명뿐이었다. 요나단은 달랐다. 『주께서 우리를 위하여 일하실까 하노라. 주의 구원하심은 사람의 많고 적음에 제한받지 않기 때문이라』(삼상 14:6).
1. 사무엘이 사울에게 했던 명령은 아말렉을 다 죽이라는 것이었으나 사울은 자기 생각대로 행함으로써 다시 한 번 명령에 불순종했다. 그것 역시 자신의 고집 때문이었다. 『그러자 사무엘이 말하기를 "주께서 번제와 희생제를 주의 음성에 복종하는 것만큼 크게 기뻐하시나이까? 보소서, 복종하는 것이 희생제물보다 낫고, 경청하는 것이 숫양의 기름보다 낫나이다. 이는 거역함은 마법하는 죄와 같고 완고함은 행악과 우상 숭배와 같음이니이다. 왕이 주의 말씀을 거역하였기에, 주께서도 왕을 거절하여 왕이 되지 못하게 하셨나이다 ." 하더라』(삼상 15:22,23).
2. 사울왕은 전투하는 군대에게 저녁 때까지, 즉 원수들에게 복수하는 때까지는 음식을 먹지 말라고 명령했다(삼상 14:24). 사울의 아들 요나단이 숲에서 꿀을 발견하고 막대기로 꿀을 좀 맛보았더니 눈이 밝아졌다(29절). 요나단은 배곯은 군대들을 알고서 이렇게 위로했다. 『요나단이 말하기를 "내 아버지가 땅을 괴롭게 하였도다. 내가 네게 청하노니, 보라, 이 꿀을 조금 맛봄으로써 내 눈이 이만큼 밝아졌거늘 하물며 백성이 오늘 그들의 원수들에게서 뺏은 탈취물을 마음껏 먹었더라면 필리스티아인들을 살육함이 지금 훨씬 더 크지 않았겠느냐?" 하더라』(29,30절). 결국 백성들은 배고픔을 견디다 못해 탈취물을 보고 너나 할 것 없이 쏜살같이 달려가서 양과 송아지를 그 자리에서 잡아 피째 먹었다. 사울의 어리석은 고집으로 인하여 그들 군대들로 율법을 범하게 만들었다. 그러나 율법 이전에도, 율법 시대에도, 율법 이후에도 고기를 피째 먹어서는 안 되었다(창 9:4, 레 17:14, 행 15:20).
3. 그 후 사울은 하나님이 유념하고 기름부은 다윗을 까닭없이 증오하며 그를 죽이려고 추적했다. 그 기간은 무려 7년여나 되었다. 마귀에게 관장된 사람들은 하나님의 종들을 죽이려 한다. 다윗은 도망 다니면서도 사울을 죽일 수 있는 절호의 기회들이 두어 번 있었으나 하나님의 기름부음을 받은 사람을 해쳐서는 안 된다는 신념 때문에 그때마다 손대지 않고 자리를 떴었다. 다윗의 이 점이 하나님께 사랑받은 또 하나의 장점이 되었다. 사무엘 선지자가 사울왕에게 했던 조언들은 오늘날 성령께서 들어 쓰시는 종들에게 말씀으로 넣어 주시는 인도하심과 같다. 성령으로 인도하심을 받을 수 없는 사역자는 하나님의 일을 할 수 없는 것과 같다. 오늘날 배교한 목사들이 하나님의 일들을 할 수 없는 것은 성령님이 그들 안에 계시지 않기 때문이다. 그 결과 성령의 열매를 맺지 못한 자들이 성령의 은사들을 흉내내려고 애쓰는데 그런 행동은 하나님을 속이고 회중을 속이고 자신을 속이는 일이다. 사울왕과 동일하다.
사울은 다시 필리스티아인들의 공격을 받았는데 그 군대를 보고 겁을 먹었다. 『사울이 주께 물었으나, 주께서 그에게 꿈으로도, 우림으로도, 선지자를 통해서도 대답하지 아니하시더라』(삼상 28:6). 그랬더니 급기야 그는 악령 들린 무당을 찾아 나섰다. 사울왕은 엔돌에서 패망했고, 결국 자살했다. 아들 요나단도 죽었다.
그리스도인이 성경적으로 믿고 행하지 아니하면 이방인과 같이 된다. 구원받지 않은 사람들이 교회 다니고 설교한다고 해서 하나님과 무슨 관련이 있겠는가? 하나님께서 그런 자들에게 받으실 영광이 있겠는가? 전무하시다.
치리자가 그리스도인이 못 되고 자기의 지혜로 국정을 운영하려 했을 때 마귀는 그대로 공격하게 된다.
그리스도인은 완고한 마음을 버리고 성경에서 배운 대로 성령으로 충만하게 될 때 주님과 교제하며 평안과 안위를 얻게 됨을 알라. 『그러므로 내가 이것을 말하고 주 안에서 증거하노니 너희는 더 이상 다른 이방인들처럼 허망한 마음으로 행하지 말라. 그들 마음의 완고함 때문에 그들 안에 있는 무지를 통하여 하나님의 생명에서 멀리 떨어졌고 그들의 명철은 어두워졌으며 감각을 상실하여 자신을 방탕에 내어주어 욕심으로 모든 불결한 것을 행하느니라. 그러나 너희는 그리스도를 그렇게 배우지 아니하였느니라. 진리가 예수 안에 있는 바와 같이 과연 너희가 그에게서 듣고 또 그에 의해 배웠을진대 이전 행실에 관해서는 기만의 욕망에 따라 썩어진 옛 사람을 벗어 버리고 너희 생각의 영 안에서 새롭게 되어 하나님을 따라 의와 참된 거룩함 안에서 창조된 새 사람을 입으라』(엡 4:17-24).
교만한 사람은 고집이 센 사람이다. 교만은 가장 두드러진 마귀의 속성이다. BB