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숭배의 대상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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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대로믿는사람들 <1992년 10월호>
1. 삼위일체바빌론의 종교 의식들은 짙은 안개 속에 가려져 있었으나 이제 그 안개는 서서히 걷히고 있다. 그리스와 이집트, 페니키아, 로마의 고대 문헌들을 보면 바빌론의 종교가 그들 각국에 영향을 미쳤다는 것과, 그들의 종교 의식이 각국의 상황에 따라 다양한 형태로 나타나지만 본질적으로는 서로 같다는 것을 알 수있다. 선지자 예레미야는 이 모든 우상 숭배의 문화가 흘러나온 최초의 근원이 바빌론이라고 말했다. 이것은 역사가들이 단지 역사적인 연구만으로 추론해 낸 결과와도 일치한다. 고대의 여러 문헌들을 연구한 조나라스(Zonaras)는 수학과 천문학의 전래 경로에 대해 다음과 같은 결론을 얻는다. “이 두 학문은 갈대아에서 이집트로, 거기서 다시 그리스로 전달되었음이 증명된다.” 이처럼 이집트인과 그리스인이 수학과 천문학을 갈대아에서 배워간 것이라면, 이 두 학문이 갈대아에서 신성시되었으며 성직자들이 독점했던 학문이었음을 고려할 때, 두 나라의 종교 역시 같은 출처에서 유래했다고 볼 수 있는 근거는 충분한 것이다.
분젠(Bunsen)과 레이야드(Layard)의 연구 역시 같은 결론이다. 분젠은 이집트의 종교 체제가 아시아에서, 즉 “바벨에 위치한 원시 형태의 제국”에서 유래했다고 밝혔다. 레이야드도 이집트 종교체제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한다. “원시적 형태의 예배가 상당히 고대의 것임을 증명하고 있으며, 그것이 앗시리아 평야 지대의 거주민들로부터 전래된 사실은 성사(sacred histoey)와 세속사(profane history)가 동일하게 증명하는 바이다. 그것은 ‘완전’이라는 별명을 얻었으며 이집트의 그것보다도 훨씬 앞선 최고로 오래된 종교 제도로 여겨졌다. 포피리(Porphyry)와 클레멘스(Clemens)는 앗시리아인의 종교 교리 중 상당한 부분이 이집트의 그것과 일치함을 언급 했다.” 같은 주제와 관련해서 그는 바빌론의 유적에 대한 벌크(Birch)의 연구를 인용한다. “유적에 나타난 12궁도(zodiac ; 황도대에 12성좌를 배치한 그림)는 두말 할 나위 없이 그리스인이 12궁의 배열과 개념을 (그것과 얽혀서 필연적으로 그들의 신화까지도) 갈대아에서 끌어 왔다는 것을 보여 준다. 그리스인의 오리온 성좌가 님롯과 일치하는 점도 주목할 만하다.”
우바로프(Ouvaroff) 역시 그리스의 옛 도시 엘류시스의 신비 의식에 대한 그의 저서에서 같은 결론에 도달한다. 다신론을 최초로 그리스에 전달한 것은 이집트의 성직자들이었음을 밝히면서 그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이러한 증거들로 미루어 보아 신비 의식들은 외부로부터 그리스로 이식된 것이며, 비록 그리스의 지역적 관념들과 혼합되기는 했으나 우주에 대한 도덕관이나 종교관에 있어서는 그 근원지로부터의 특성을 잃지 않았다. 이 모든 사실들을 종합해 볼 때 과학과 문명의 중심지는 바로 동방이었음을 알 수 있다.” 그렇다면 이집트와 그리스가 그들의 종교를 바빌론으로부터 가져왔다는 증거는 충분한 셈이다. 페니키아인의 종교 제도 역시 바빌론으로부터 유래했다는 증거 또한 충분하다. 마크로비우스(Macrobius)는 페니키아인의 종교 의식에서 나타나는 뚜렷한 특징들이 앗시리아에서 유입된 것이 분명하다고 말했는데, 고대 문헌들은 바빌론을 앗시리아에 포함시켰던 것이다. 그는 “현재 페니키아인들이 숭배하는 여신의 원형은 비너스 이며, 이러한 숭배는 이전에 앗시리아인들 사이에서 행해졌던 것이다.”라고 썼다.
이제 고대 바빌론과 로마 카톨릭 양 체제에서 동질성을 정립하려는 시점에서 독자는 양자가 과연 얼만큼이나 일치하는 것인가라는 의문을 갖게 될 것이다. 그러나 갈대아의 종교의식에 대해 연구할 때 주의해야 할 사실은 한쪽 나라에서 빠진 요소가 다른 나라에서 발견되기도 하며, 표면적으로는 관련이 없어 보이는 요소들이 전체적인 시각으로는 공통된 특징을 구성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면 고대 이집트, 그리스, 페니키아, 로마의 종교 의식이 일치한다는 점과 이들이 모두 바빌론 종교의 특성을 지닌다는 점을 연구의 실마리로 잡고 두 개의 바빌론, 즉 구약의 바빌론과 신약 바빌론의 교리 및 그 실상을 비교해 나가기로 하겠다.
우선, 숭배의 대상에 있어서 바빌론과 로마는 일치한다. 고대 바빌론 사람들은 로마 카톨릭에서 그러듯이 말로는 유일신의 존재를 인정했다. 그들은 인간사에 관여하는 것으로 믿었던 수많은 신들을 숭배하면서도, 그 신들 위에 가장 뛰어나며 유일하고 전능한 창조주가 존재함을 분명히 인식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러한 인식은 대부분의 다른 나라들도 마찬가지였다. 윌킨슨(Wilkinson)은 그의 저서 <고대 이집트인, Ancient Egyptions>에서 “인류 역사의 초기에는 전능하며 만물을 창조한 유일신의 존재를 믿는 것이 세계의 보편적 신앙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유일신에 대한 개념은 전통적으로 가르쳐졌으며 후대의 모든 문명화된 나라들도 이를 받아들였다.”라고 말한다. 말렛(Mallet) 역시 “고딕 종교는 우주의 주인인 위대한 신이 존재하며 만물이 그에게 순종한다고 가르쳤다.”고 했다. 고대 아이슬랜드의 신화에서는 이 신을 “존재하는 모든 것의 창조주이며 영원히 살아있는 경외의 대상, 모든 비밀을 알고 있는 영원 불변의 존재”라고 표현하고 있으며 그에게는 “무한한 능력과 지식, 절대적인 공의”가 있다고 말한다. 고대 인도에도 유일신에 대한 같은 신앙이 있었다는 증거가 있다. 현재의 힌두교는 수백만의 신들을 믿지만 최초에는 전혀 그렇지 않았다는 것을 힌두 경전들을 통해 알 수 있다. 메이져 무어(Major Moor)가 베다(Veda)에서 인용한 바에 의하면 힌두교 최고의 신인 브라만(Brahm)은 다음과 같이 묘사된다. “그의 영광은 너무나 위대하여 비할 데 없도다. 그는 만물 위에 비추고 만물을 소생시키는 자이며 그로부터 모든 것이 발하는도다. 태어난 모든 것은 그로 말미암아 사는 것, 그에게로 만물이 돌아가도다.” <메누 법전,Institutes of Menu>에서는 브라만을 “외적 기관으로는 그 본질을 감지할 수 없으며 마음으로만 볼 수 있는 존재, 육안으로는 볼 수 없으며 영원 속에 존재하는 신, 모든 존재의 정수인 동시에 그 어떤 존재도 이해할 수 없는 존재”라고 묘사한다. 인용된 구절에는 범신론의 흔적이 있지만, 문장의 뜻 자체는 힌두교 내에서 한때는 훨씬 순수했던 신앙이 존재했다는 것을 증명하고 있다.
고대 힌두교도들은 신의 완벽한 성품 뿐만 아니라 죄많고 타락한 세상을 대하는 데서 드러나는 그의 자비로운 성품도 분명히 인식하고 있었다. 이것은 그들에게 유일하고도 영원한 신을 뜻하는 ‘브라만’의 이름으로 알 수 있다. 이 이름의 의미에 대해서 여러 가지 추측들이 있어 왔는데 이들을 검토해 보면 ‘브라만’이 히브리어 ‘라만’에 그리스 문자 접두어가 첨가된 단어라는 데 일치한다. 이러한 접두어의 첨가는 히브리어 혹은 갈대아어에서 파생된 산스크리트어에 흔히 있는 일이었다. 히브리어 ‘라만’은 “자비롭고 인정 많은 자”를 뜻하는데, 자비가 베풀어지는 곳으로서의 ‘태’나 ‘잔’을 의미하기도 한다. 힌두인들이 그들 최고의 신에게 브라만이란 이름을 붙였다는 것은 브라만과 히브리어 라만이 같은 의미를 지닌다는 가정이 아니고서는 설명될 수 없다.
‘브라만’의 의미에 대한 고찰을 계속하면서 우리는 창조에 대한 흰두인들의 인식이 만물의 기원에 대한 창세기의 설명과 정확히 일치함을 보게 된다. 카스트 제도의 브라만 계급은 다른 계급들을 지배하고 스스로 신성한 성직자 계급으로 인정받기 위해서 이렇게 가르쳤다. 즉, 다른 계급들은 (눈에 보이지 않는 브라만의 가시적 표상, 출현으로서) 브라만의 팔이나 몸, 발 등에서 탄생했지만 자신들만은 창조주 신의 ‘입’으로부터 나왔다는 것이다. 베다는 브라만에 대해서 “모든 존재가 그의 「입」으로부터 창조되었다.”고 말하는데, 이것으로 그들이 한때 현재와는 매우 다른 교리를 가르쳤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타락 이래로 인간에게 “자비롭고 인정많은 자”(출34:6)로서 계시된 그 신은 동시에 “말씀하자 그대로 되었으며”, “명령하자 만물이 생겨났고”, “그 능력의 말씀”으로 만물을 지으신 전능한 신으로도 인지되었다. <아시아 연구, Asiatic Researches, 제 7권, p.293>를 보면 유일하고 참되며 살아 계신 하나님께 돌려져야 할 신성한 칭호가 우상의 칭호로 전락한 것이 힌두교 내의 모든 도덕적 타락과 인도 사원 안에 수많은 우상들을 가져오는 결과가 되었음을 알 수 있다.
신에 대한 바빌론 사람들의 인식이 너무도 우상 숭배적이었기 때문에 주께서는 그의 백성이 그 흉내라도 내는 것을 엄격히 정죄하셨다. 『스스로 거룩케 하는 자들과 동산 한가운데 나무 뒤에서 스스로 깨끗케 하는 자들은 돼지 고기와 가증한 것과 쥐를 먹는 자들이니, 그들이 함께 소멸되리라. 주가 말하노라.』(사66:17). 바빌론 사람들은 유일신이라는 개념 안에 세 개의 인격을 포함시켰다. 레이야드의 연구에 의하면 그들은 삼위일체의 상징으로 정삼각형을 사용했는데 이것은 지금의 로마 카톨릭에서 사용하는 것과 같은 것이다. 그러한 상징은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영원하신 하나님에 대해 완전히 왜곡된 개념을 갖게 한다. 그런 상징물이 어떻게 “주와 같은 자 누구이며 그와 비할 자 누구이랴?”고 하신 하나님과 비슷하기라도 할 수 있단 말인가?
로마 카톨릭 교회 안에는 - 예를 들면 소위 삼위일체주위자(Trinitarians)로 불렸던 마드리드의 수도원 같은 곳에 - 하나의 몸체에 세 개의 머리가 붙어 있는 삼위일체 하나님의 형상이 있는데 이와 똑같은 형상이 바빌론에도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레이야드는 그의 저서에서 고대 앗시리아에서 숭배되었던 삼위일체 신에 대한 연구를 제시했다(삽화 3). 그 오른쪽에 있는 그림(삽화 4)은 파슨(Parson)의 <야벳, Japhet>에 등장하는 것인데, 이는 성 페테르부르그의 금화상자에서 발견된 메달에 새겨져 있던 것이다. 이것은 시베리아 이교도들에 의해 숭배되었던 신의 형상인데, 세 머리의 배열이 레이야드의 연구와는 다르게 배열되어 있으나 상징하는 바는 같다.
우리가 삼위일체를 숭고한 신비로서 믿는데 반해서 이교도들은 그러한 형상들로 삼위일체를 묘사함으로써 그 개념을 저속화시켰다. 인도의 한 오래된 동굴 사원에서 발된 형상은 그들 최고의 신인 “에코 데바 트리무르티”(‘세 개의 형상을 가진 하나의 신’이라는 뜻)였는데 그 신은 한 개의 몸체에 세 머리를 가진 형상으로 묘사되어 있었다. 일본의 불교도들도 그들의 최고신인 부다를 “산 파오후”라고 이름하며 세 개의 머리를 가진 같은 모양으로 형상화하고 있다. 이교에서 나타나는 삼위일체에 대한 이러한 인식은 고대로부터 내려온 것이다. 우상 숭배로 오염되기는 했지만 고대 모든 민족들에게 삼위일체 신에 대한 인식이 공통적으로 존재했었다는 사실은 그 문제에 대한 최초의 교리가 인류에게 얼마나 뿌리 깊이 존재해 있었는지를 보여주는 것이다.
앞에서 본 레이야드의 삼위일체 삽화를 세밀하게 검토하면 그림 안에 있는 동그라미를 발견할 수 있다. 레이야드는 이 동그라미가 “제한 없는 시간”을 의미하는 것으로 해석했는데, 동그라미의 상형문자적 의미는 사실 전혀 다르다. 갈대아에서 동그라미는 ‘0’(zero)을 뜻하기도 했지만 동시에 “씨앗”을 의미하기도 했다. 갈대아의 상징체계는 하나의 문자가 대부분 이중적 의미를 지녔는데, 일반인의 눈에는 단순한 ‘0’(zero)으로 보이는 동그라미가 문자의 이중 의미를 전수받은 사람에게는 “씨앗”을 뜻하는 것으로 이해됐던 것이다. 이러한 사실을 전제로 하고, 이제 앗시리아인이 그들의 최고 신을 형상화한 상징이 로마 카톨릭의 상징과 정확하게 일치함을 살펴 보자. 양자의 상징에는 공통적으로 나이 많은 남자의 머리와 ‘씨앗’을 뜻하는 동그라미, 그리고 새, 혹은 비둘기의 날개와 꼬리가 있다. 이것은 아버지와 그 씨앗인 아들, 그리고 성령의 연합을 의미하는 것이다. 이것이 이교 우상 종교에서 하나님의 삼위를 묘사한 방법이었다. 이러한 묘사는 산헤립(Sennacherib)의 시대까지 존속해 왔으나 바빌론 시대에 이르러서는 신에 대한 개념에 중대한 변화가 일어난 것으로 보여지며 이를 뒷받침하는 충분한 증거가 있다. 그 결과 삼위는 영원한 아버지와, 인간 어머니로 화신한 하나님의 영, 그 화신의 결과 생겨난 신성한 아들로 재구성된다. <다음호에 계속>
BB