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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의 태양의 말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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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대로믿는사람들 <2015년 02월호>
시편 19편은 "악장에게, 다윗의 시"라는 표제가 붙어 있다. 시의 저자인 다윗은 이 시편을 "자연계와 태양에 관한 묵상"에서 "말씀에 관한 묵상"으로 이끌고, 궁극적으로는 시인 자신의 죄에 관한 묵상으로 귀착시킨다. 따라서 시편 19편은 1) 창조 세계를 통한 하나님의 계시(1-6절), 2) 하나님의 말씀을 통한 하나님의 계시(7-11절), 3) 불완전한 화자 자신에 관한 묵상(12-14절)으로 이루어져 있다.『하늘들이 하나님의 영광을 선포하고 창공이 그의 손으로 하신 일을 나타내는도다』(1절). 성경에서 하늘들은 첫째 하늘과 둘째 하늘과 셋째 하늘을 가리키고, 창공은 해와 달과 별들이 있는 우주 공간을 가리킨다(창 1:6-8). 태초에 땅의 기초를 놓으신 분은 하나님이시며, 하늘들 역시 그분의 손으로 만드신 작품들이다(히 1:10). 자연 만물은 하나님의 살아 계심과 그분의 능력을 선포하는 계시의 매체이기에 인간은 자연을 보고도 하나님을 알 수 있다(롬 1:18-20). 그러나 이 가시적인 세계를 넘어 저 우주의 한없는 공간과 그 안에 있는 것들 역시 하나님의 영광을 선포하며 그분께서 하신 일을 나타낸다. 그 모든 창조물들은 그것들을 지으신 분께서 얼마나 위대하신가를 나타낼 뿐 직접적인 숭배의 대상이 될 수는 없다. 그렇기에 성경은 피조 세계에 대한 숭배를 금하고 있으며(출 20:4,5, 신 4:14-19; 5:8,9), 창조주께서 만드신 창공의 별들로 점을 치는 일 또한 금하고 있다(사 47:13,14, 렘 10:2). 우리는 그와 같은 방식으로 피조 세계를 신성시하여 우상 숭배하는 죄를 지어서는 안 되며, 오로지 그 모든 것을 지으신 창조주 하나님만을 찬양해야 한다. 『이는 그들이 하나님의 진리를 거짓말로 바꾸어 피조물을 창조주보다 더 경배하고 섬겼음이라. 하나님은 영원토록 찬양받으실 분이로다. 아멘』(롬 1:25).
『낮은 낮에게 말하고 밤은 밤에게 지식을 보여 주니 말도 없고 언어도 없으며 그들의 음성도 들리지 않으나 그들의 선율은 온 땅을 질러 뻗어 나가고 그들의 말은 세상의 끝까지 다다랐으니』(2-4절). 어쩌면 이것은 성경에서 가장 난해한 구절들 가운데 하나일 수 있다. 그러나 분명하다. 낮은 낮에게 무언가를 말하고, 밤은 밤에게 어떤 지식을 보여 준다. 낮이 미치지 못하는 곳은 없고, 밤이 미치지 못하는 곳도 없다. 낮은 그것이 미치는 모든 곳에, 또 밤은 밤이 미치는 모든 곳에 창조주 하나님에 관하여 계시한다. 창조주께서는 하루 스물네 시간 피조 세계를 통해 자신을 계시하신다. 낮의 세계와 밤의 세계에 펼쳐지는 창조의 위대한 경이를 통해 『세상의 창조 때부터 그분에 속한 보이지 않는 것들이 분명히 보여졌고 심지어는 그분의 영원한 능력과 신격까지도 만들어진 것들에 의해 알려졌으므로』 땅의 죄인들은 변명하지 못한다(롬 1:20). 그들은 어두운 밤에조차 창조주를 부인하기 위해 숨을 곳이 없다.
시편 19:4은 로마서 10:18에서 인용되었다. 『그러나 내가 말하노니 그들이 듣지 아니하였느냐? 실로 들었느니라. 그들의 음성이 온 땅에 퍼져 나갔고 그들의 말이 세상 끝까지 이르렀느니라.』 이 말씀의 문맥적 의미는 앞선 10:15이 보여 준다. 『화평의 복음을 전하며 좋은 일들의 기쁜 소식을 가져오는 자들의 발이 얼마나 아름다운가!』 즉 "복음 전파"이다. 이방인들은 『그들의 음성』 곧 "낮과 밤의 시각적인 계시"를 통해 하나님의 존재하심을 알 수 있지만, 그래도 그 죄인들에게 "복음"이 필요하다는 것을 사도 바울은 역설하고 있다. 이 점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도 강력히 역설하셨던 바이다.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들을 가르치고,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침례를 주며 내가 너희에게 명령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보라, 내가 세상 끝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마 28:19,20).
『그가 그들 가운데 태양을 위하여 장막을 세우셨도다. 태양은 신랑방에서 나오는 신랑 같고, 경주하는 강한 남자처럼 기뻐하는도다. 그의 떠오름은 하늘 끝에서부터며 그의 회전은 하늘 끝들까지니 그 열기로부터 숨은 것은 아무것도 없도다』(4-6절). 다윗은 창조물들을 통한 계시의 중심에 "태양"을 부각시킨다. 소경조차도 그 열기를 느낄 수 있으니 만민에게 창조주 하나님을 계시하는 데 태양만큼 효과적인 것은 없다.
『태양을 위하여 장막을 세우셨도다.』라는 말씀에서 우리는 "장막절"을 읽는다. 장막절은 주님의 "재림"을 예표하는 명절로, 우리는 『어린양의 혼인식』(계 19:7)을 마치고 "신랑방에서 나와 경주하는 강한 남자처럼" 하늘의 군대를 이끌고 재림하시는(계 19:11-16) 주 예수 그리스도에 관하여 읽게 된다. 『태양은 신랑방에서 나오는 신랑 같고, 경주하는 강한 남자처럼 기뻐하는도다』(5절).
성경의 저자이신 성령님께서는 "재림"하시는 주 예수 그리스도를 화덕같이 탈 날의 "태양"으로 묘사하신다. 『보라, 이는 화덕같이 탈 그 날이 오기 때문이니... 그러나 내 이름을 두려워하는 너희에게는 의의 태양이 그의 날개에 치유를 가지고 솟아오르리니』(말 4:1,2). 『의의 태양』이신 주님께서는 의인들에게는 치유하시는 태양으로, 악인들에게는 그들을 불태우는 불길로서 계시되신다.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자들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에 순종치 아니하는 자들을 불길 가운데서 벌하시리니 이런 자들은 주의 임재와 그의 능력의 영광으로부터 떠나 영원한 멸망의 형벌을 받게 될 것이라』(살후 1:8,9).
죄인들을 불태우시는 태양으로서의 주님을 야고보서 1:11에서 잘 묘사하고 있는데, 거기서는 "솟자마자" 풀을 마르게 하는, 지금과는 다른 태양이 보인다. 『해는 타는 열기로 솟자마자 풀을 마르게 함으로 풀의 꽃이 떨어져서 그 모양의 아름다움이 사라지나니, 부자도 그의 길이 이와 같이 쇠잔하리라』(약 1:11). 이 말씀은 대환란 때 사람들을 불로 태우는 태양을 간접적으로 보여 주지만(계 16:8), 그 직접적인 의미는 『의의 태양』께서 "솟아오르시자마자" 대환란 때 짐승의 표를 받은 자들을 지체 없이 심판하시는 "재림"을 나타낸다. 『보라, 주가 불과 함께 올 것이며, 회오리바람과 같은 그의 병거들과 더불어 오리니 진노함으로 그의 분노를, 불꽃으로 그의 책망을 나타내리라. 주가 불로, 또 주의 칼로 모든 육체를 징책하리니 주에게 살육당할 자가 많으리라』(사 66:15,16). 『의의 태양』이신 주 예수 그리스도의 『떠오름은 하늘 끝에서부터며 그의 회전은 하늘 끝들까지니 그 열기로부터 숨은 것은 아무것도 없』을 것이다(시 19:6). 재림하시어 죄인들을 심판하시고 천년왕국을 수립하시면, 주님의 이름은 해 뜨는 데부터 해 지는 데까지, 즉 온 땅에서 날마다 찬양받으실 것이다(시 113:3).
이후로 시편 19편은 하나님을 계시하는 것이 그분의 창조 세계에서 그분의 "말씀"으로 전환된다.
『주의 율법은 완전하여 혼을 회심시키며, 주의 증거는 확실하여 우매한 자를 현명하게 만들고 주의 규례는 정당하여 마음을 기쁘게 하며, 주의 계명은 순수하여 눈을 밝게 하도다. 주를 두려워함은 순결하여 영원히 지속되고 주의 명령들은 모두 참되고 의로우니, 그것들은 금보다, 정녕 많은 정금보다 더 바랄 만하며, 꿀과 벌집보다 더 달도다. 뿐만 아니라 그것들로 인하여 주의 종이 경고를 받으며, 그것들을 준수함으로 큰 상이 있나이다』(7-11절).
다윗은 하나님을 계시하는 그분의 말씀을 다음과 같이 표현한다. 『주의 율법』(7절), 『주의 증거』(7절), 『주의 규례』(8절), 『주의 계명』(8절), 『주를 두려워함』(9절), 『주의 명령들』(9절). 하나님께서는 이와 같은 말씀들로 스스로를 계시하시는데, 특히 『주를 두려워함』(9절)은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그분께서 두려우신 분이라는 사실을 계시받고 실제적으로 느끼는 두려움을 표현한 것이다. 말씀을 통해 주님을 두려워하게 되면 죄를 짓지 않게 되고(출 20:20), 그 사람의 내면이 깨끗하게 되기에 『주를 두려워함은 순결하』다(9절).
시편 기자는 이러한 말씀들에 관하여 두 가지로 정리한다.
첫째, 그 말씀들은 금보다, 정녕 많은 정금보다 더 바랄 만하며, 꿀과 벌집보다 더 달다는 것이며(10절), 둘째, 그것들로 인하여 주의 종이 경고를 받으며, 그것들을 준수함으로 큰 상이 있다는 것이다(11절).
하나님의 이름으로 일컬음을 받는 성도는 금은보화나 혀를 즐겁게 하는 음식보다 하나님의 말씀을 더 기뻐하고 즐거워해야 한다(마 4:4, 욥 23:12, 렘 15:16). 말씀으로 죄와 미래에 관해 경고를 받고 그 말씀을 지킴으로써 상을 얻을 수 있어야 한다. 즉 우리의 영적 필요를 채워 주시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모든 무거운 것과 쉽게 에워싸는 죄를 벗어 버리고, 인내로 우리 앞에 놓인 경주를 하되(히 12:1), 이기려고 애를 쓰며 상을 얻게 되도록 열심히 달려야 한다(고전 9:24,25).
『누가 자기의 과오들을 깨달을 수 있겠나이까! 주께서 숨은 과오들로부터 나를 깨끗게 하소서』(12절). 우리에게는 깨닫지 못하고 지나간 숨은 과오들이 있을 수 있다. 드러나게 지은 죄는 아니지만, 망각의 강에 던져진 그것을 다시 꺼내어 씻어야만 한다. 자기 연민 속에 보낸 시간들, 마음으로 자신을 높이며 보낸 시간들, 사람에게 인정받지 못해 남몰래 괴로워했던 시간들, 정신적으로 게으르거나, 마음속으로 무자비하게 비판하며 지나쳐 버린 일들, 내심 타인의 주의를 끌려고 했던 일들로부터 깨끗게 되어야 한다. 다윗은 그런 류의 죄들을 놓고 기도하고 있다. 『우리의 은밀한 죄를 주의 얼굴빛 가운데』 두실 수 있는 분(시 90:8), 즉 『나를 살피사 내 마음을 아시며 나를 시험하사 내 생각들을』 아시는 분은 "하나님" 한 분뿐이기 때문이다(시 139:23).
우리가 잊고 사는 "숨은 과오들"은 하나님의 말씀으로 드러나게 된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 있고 능력이 있어 양날이 있는 어떤 칼보다도 예리하여 혼과 영, 그리고 관절과 골수를 찔러 가르고 마음의 생각들과 의도들을 판별하』기 때문이다(히 4:12). 우리는 말씀을 통해서 죄를 깨닫게 되며(롬 3:20), 거룩하고 선하며 의로운 말씀으로(롬 7:12) 찔림을 받고(행 2:37) 깨끗이 씻겨진다(엡 5:26). 또한 그 말씀은 우리를 "간음"과 "살인"처럼(다윗의 경우) 미리 생각하고 계획하고 실행에 옮기는 "고의로 짓는 죄들"로부터도 지켜 준다(『주를 두려워함』). 그 죄들이 우리를 주관하지 못하게 하며, 우리를 올바르게 만들어 주어 우리를 큰 죄과로부터 순결하게 해준다. 『또 주의 종을 고의로 짓는 죄들로부터 지켜 주시어 그 죄들이 나를 주관하지 못하게 하소서. 그리하면 내가 올바르게 되리니 내가 큰 죄과로부터 순결하게 되리이다』(시 19:13).
"숨은 과오들"과 "고의로 짓는 죄들"은 인간의 불완전성을 보여 준다. 그를 온전케 할 수 있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뿐이다.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영감으로 주어진 것으로 교리와 책망과 바로잡음과 의로 훈육하기에 유익하니 이는 하나님의 사람이 온전하게 되며, 모든 선한 일에 철저히 구비되게 하려 함이니라』(딤후 3:16,17).
『나의 힘이시며 나의 구속주이신, 오 주여, 내 입의 말과 내 마음의 묵상이 주의 목전에 받아들여지게 하소서』(14절). 결과적으로 다윗이 하나님의 창조 세계와 그분의 말씀을 묵상했을 때 깨닫게 된 것은 바로 그 하나님만이 그의 힘이시며 구속주시라는 사실이었다. 그는 하나님의 위대한 창조 세계와 그분의 말씀 앞에서 자신이 비참한 죄인임을 깨닫게 되었고(12,13절), 바로 그 주님께서 그의 숨은 과오들까지도 정결케 해주시는 것만이 자신이 살 길임을 고백한다.
시편 19편은 "창조 세계"(1-6절)와 "주의 말씀"(7-13절)에 관한 묵상으로 양분된 듯하지만, 사실 그 둘의 관계는 드러나지 않게 상호 긴밀히 연결되어 있다. 그 관계가 두 부분의 절정인 "6절"과 "12절"에서 발견된다.
6절: 『그[태양]의 떠오름은 하늘 끝에서부터며 그의 회전은 하늘 끝들까지니 그 열기로부터 숨은 것은 아무것도 없도다.』 계시적으로 볼 때, 이 구절은 태양, 곧 『의의 태양』이신 주님께로부터 "숨겨질" 것은 아무것도 없다는 뜻이다.
12절: 『누가 자기의 과오들을 깨달을 수 있겠나이까! 주께서 숨은 과오들로부터 나를 깨끗게 하소서.』 말씀을 다루는 관련 문맥(7-13절)과, 말씀의 경고 기능을 볼 때(11절), 이 구절은 마음의 생각들과 의도들을 판별하시는(히 4:12) "주의 말씀"이 우리의 "숨은" 과오들을 드러내어 깨끗게 해주실 것임을 보여 준다.
시편 19편은 "그 어떤 것도 그 앞에 숨겨질 수 없는" 『의의 태양』과 "그분의 말씀"에 관한 묵상이다. 그 앞에 비밀로 간직된 것이 드러나지 않을 것이 없고 숨겨진 것도 알려지고 공개되지 않을 것이 없다(눅 8:17). 심판은 재림에 앞서 그리스도인들에게서부터 먼저 시작된다(벧전 4:17). 그때 『주께서 어두움에 감추어진 것들에 빛을 비추시고 마음의 의도들을 나타내시리라.』(고전 4:5)고 말씀하신다. "숨길 수 없다면" 지금 말씀의 빛으로 드러내어 자백하고 용서받는 것이 현명하다. 우리가 죄들을 자백하면 주님은 신실하시고 의로우셔서 우리의 죄들을 용서하시며, 모든 불의에서 우리를 깨끗하게 해주실 것이다(요일 1:9). BB