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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가 “크리스마스”를 지키지 않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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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대로믿는사람들 <2023년 12월호>
박승용 / 성경침례교회 담임목사거듭난 그리스도인은 “크리스마스”를 지키지 않는다! 그날을 기념하여 지켜야 할 이유가 없다. 심지어 “예수 그리스도께서 탄생하신 날”을 기념해서 지키라는 명령은 성경 어디에도 나오지 않는다. 따라서 “크리스마스 성탄 예배”를 준비하기 위해 밤새도록 “크리스마스트리”를 만들거나 “성탄 연극” 및 “성탄 칸타타”를 준비하지도 않는다. 크리스마스를 축하하기 위해 예배 때 “캐럴”(성탄 축하곡)을 부른다든지, 선물이나 카드를 교환한다든지, 새벽녘에 집집마다 다니면서 “새벽 송”을 불러 주고 “축복 기도” 해 주고 “먹을 것”을 함께 나눠 먹는 등 그런 쓸데없는 짓들도 하지 않는다.
“크리스마스”(Christmas)는 “그리스도”(Christ)의 “미사”(Mass)를 의미한다. “미사”는 “속죄를 위해 드리는 제사”를 가리킨다. 다시 말해 “인류의 속죄를 위해 예수 그리스도를 제물로 바치는 제사”가 “그리스도의 미사,” 곧 “크리스마스”인 것이다. 사실 이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단번 속죄”를 부인하는 아주 가증스러운 “이단 교리”이다. 『제사장마다 매일 서서 섬기며, 똑같은 제사를 자주 드리지만 이것으로써는 결코 죄들을 제거할 수 없으나 이분은 한 번의 속죄제를 영원히 드린 후 하나님의 오른편에 앉으셔서 그후로는 그의 원수들을 자기 발판으로 삼으실 때까지 기다리시느니라. 이는 그가 한 번의 제사로써 거룩하게 된 자들을 영원히 온전케 하셨기 때문이라』(히 10:11-14). 이러한 진리를 정면으로 부정하는 의식이 “그리스도의 미사”(크리스마스)인 것인데, 이 의식을 자주 행하는 로마카톨릭은 매년 전 세계적으로 168,000번의 미사를 드린다고 한다. 그 말은 곧 예수 그리스도를 매년 168,000번씩 죽이고 또 죽인다는 의미가 된다. 이는 가증한 신성 모독이요,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계속해서 십자가에 못 박아 공개적으로 조롱하는 일이다(히 6:6). 종교 개혁자 “존 칼빈”도 주장하기를 “로마카톨릭의 ‘미사’는 주의 만찬을 더럽힐 뿐 아니라 주의 만찬을 말살하는 모독적인 행위로서 그런 행위는 ‘미신’이자 ‘우상 숭배’이다.”라고 말했다. 그러므로 거룩해야 할 “그리스도의 몸” 된 교회가 그런 “신성 모독적인 크리스마스 우상 숭배 의식”을 지켜야 할 하등의 이유가 없는 것이다.
1.
예수 그리스도께서 탄생하신 날은 “크리스마스”가 아니고 “장막절”이다. 『그때 그 고을에 목자들이 있었는데 들에서 묵으면서 밤에 양떼를 지키더라. 그런데, 보라, 주의 천사가 그들 위에 임하시고 주의 영광이 그들을 두루 비추니, 그들이 몹시 두려워하더라. 그 천사가 그들에게 말하기를 “두려워 말라. 보라, 이는 내가 너희에게 큰 기쁨의 좋은 소식을 알림이니 이것은 모든 백성을 위한 것이라. 이는 오늘 다윗의 성읍에서 너희에게 구주가 나셨음이니, 그분은 주이신 그리스도시니라. 이것이 너희에게 표적이니 너희는 포대기에 싸여 구유에 누워 있는 아기를 보리라.”고 하더라』(눅 2:8-12). 예수님께서 탄생하셨을 당시 “목자들”은 베들레헴 근처 어느 들판에 머물고 있었는데, 그것도 “낮”이 아닌 “밤”에, “실내”가 아닌 “바깥”에서 묵으며 양떼를 지키고 있었다. 이 시기는 “추운 겨울”이 아닌 “선선한 초가을”로, 9월 15일에서 22일 사이의 “장막절 기간”에 해당한다. “팔레스타인 땅”의 겨울은 춥기 때문에, 12월 25일 바깥 들판에서, 그것도 기온이 많이 떨어지는 “밤”에 묵으며 양떼를 돌본다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이처럼 예수님께서 12월 25일 추운 겨울날에 탄생하셨다고 주장하는 것은 로마카톨릭의 “거짓 망상”에 불과하다.
한편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일보다 6개월 전에 “침례인 요한”이 태어났는데(눅 1:36), 그의 아버지 “사카랴”는 제사장으로서 “아비야의 계열”에 속한 사람이었다(눅 1:5). “다윗왕”은 하나님께서 아론에게 명령하신 대로(대상 24:19) 하나님의 성전에서 섬기는 제사장들의 서열을 “여호야립의 계열”부터 “마아샤의 계열”까지 “스물네 개의 서열”로 구분했는데(대상 24:7-18), 그중 “여덟 번째 계열”이 “아비야의 계열”이었다(대상 24:10). 일반적으로 “한 계열”이 “한 주”(7일) 동안 섬기기 때문에, “스물네 개의 계열”이 모두 한 번씩 돌아가면서 섬기는 데 소요되는 일수는 “24주”이다. 두 번씩 섬기려면 “48주”가 걸린다. 1년이 52주임을 감안하면 각 계열은 적어도 1년에 “두 번”은 섬기게 된다. 이러한 순번에 따라 사카랴도 제사장 직분을 수행한 것인데(눅 1:8,9), 제사장들이 각기 서열에 따라 성전에서 섬긴 “봉사의 시기”를 당대 “역사적인 배경”(눅 2:1,2; 3:1,2)을 고려하여 정밀하게 계산했던 사람들의 주장에 따르면, 초림 당시 “아비야의 계열”이 하나님의 성전에서 직무를 수행한 기간은 “6월 12일부터 18일까지”였다고 한다. 그렇다면 사카랴의 아내 “엘리사벳”이 침례인 요한을 임신한 것은 “6월 18일 이후”(6월 하순, 눅 1:23,24)가 되고, 그로부터 9개월 만인 “3월 18일 이후”(3월 하순), 곧 “유월절 즈음”에 침례인 요한이 태어나게 된다. 따라서 “침례인 요한의 출생 시기”와의 간격이 “6개월 차이”(눅 1:26,27,36)가 나는 “예수님의 탄생 시기”는 “9월 18일 이후”(9월 하순), 즉 “장막절 기간”이 된다. 그렇다면 “마리아”가 예수님을 임신한(눅 1:31) 시기는 그로부터 9개월 전인 “12월 하순경”이 되므로, 12월 25일은 예수님께서 탄생하신 날이라기보다 오히려 마리아가 예수님을 “임신한 시기”라고 보는 것이 적합하다.
무엇보다도 “예표적으로” 볼 때 이 땅에 예수님께서 “오시는 시기”(초림이든, 재림이든)와 가장 잘 어울리는 “이스라엘의 절기”는 “장막절”이다. 이는 예수님께서 육신의 몸을 입고 지상에 거하시는 것이, 이 땅에 “육신의 장막”을 치고 그 “장막 몸”(고후 5:1,4, 벧후 1:13,14) 안에 거하시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인데, 특히 『그 말씀[예수 그리스도]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므로』(요 1:14)에서 “거하다”에 해당하는 헬라어가 “장막을 치다”는 뜻의 “에스케노센”(εσκήνωσεν)이다. 또한 이제 곧 이 땅에 다시 오실 예수님께서는 『의의 태양』(말 4:2)으로 묘사되는데, 다윗은 창조주 하나님께서 바로 그 『태양을 위하여』 저 우주에 『장막을 세우셨도다.』(시 19:4)라고 시를 썼다. “베드로”는 “변형산”에서 “예수 그리스도께서 재림하실 때의 영광스러운 모습”을 보고서, 주님을 위해 “장막”을 짓겠다는 말을 하기도 했다(마 17:4).
이렇듯 장막절에 탄생하신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약 삼십 세가 되어 사역을』(눅 3:23) 시작하셨으며, 이때 역시 “장막절 즈음”이었다. 왜냐하면 예수님의 “공생애 사역 기간”이 모두 “3년 6개월”이기 때문인데, 곧 “장막절”에서 시작하여 그다음 해 “유월절”(요 2:13)까지 “6개월”의 시간이 흘러가고, 또 그로부터 “세 번의 유월절”(요 5:1; 6:4; 11:55), 즉 “3년”의 시간이 지나가는 가운데, 그중 “마지막 유월절”에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심으로써 『세상 죄를 제거하는 하나님의 어린양』(요 1:29)이자, 『유월절 양』(고전 5:7)이 되셨다. 다시 말해 초림 당시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이 땅에 “장막절”에 탄생하셔서 “유월절”에 지상 생애를 마감하신 것이다. 이렇듯 “장막절”은 예수 그리스도의 오심(초림과 재림)을, “유월절”은 초림 당시 십자가에서 피 흘려 죽으신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 사역을 보여 준다.
2.
크리스마스는 “바빌론 태양신의 생일”이다. “지구”에 미치는 “태양”의 영향력은 12월 22일 “동짓날”에 가장 약해지다가 12월 25일 “크리스마스 날”부터 다시 커지기 시작하는데, “태양신을 숭배하는 이교도들”은 태양의 영향력이 다시 커지는 “이날,” 곧 “25일”을 생명이 다시 돌아오는 날로 생각하여 그 날짜에 상당한 의미를 부여했다. 이런 이교도적인 미신 속에서 12월 25일이 “태양신 바알의 생일”이 되었다. 사람들은 “태양”을 그와 연관된 여러 가지 다른 명칭을 사용해 가면서 숭배했는데, “탐무스,” “호루스,” “이시스,” “솔” 등의 명칭을 사용한 것이다. 태양을 숭배하는 우상 숭배자들은 소위 “바알의 생일날” 먹고 마시고 술 취하면서 그날의 축제를 즐겼는데, 심지어 “아기들”을 바알에게 희생제물로 바치기도 했다.
사실 “교회 시대 초기”부터 A.D. 200-300년까지만 해도 “크리스마스를 지키는 교회”가 단 한 군데도 없었다. 하지만 로마의 “콘스탄틴 황제”가 기독교를 공인한(A.D. 313) 이래로, “온갖 이단 교리와 범죄의 온상”인 로마카톨릭이 이교도들을 회유하고 교회에 출석하는 교인들 수를 늘릴 목적으로 “바빌론 태양신의 생일”을 “예수 그리스도께서 탄생하신 날”로 둔갑시켜 “크리스마스”를 만들어 냈다. 당시에는 이런 식의 일들이 비일비재했는데, 일례로 기독교로 개종한 이교도들에게 “금화 20개”와 “흰옷 한 벌”을 선물로 주었던 것이다.
A.D. 230년경 “터툴리안”이 쓴 글에는 다음과 같은 기록이 남아 있다. “한때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는 생소했던 ‘이교도의 축제일들’이 이제는 교회들 안에서 공공연하게 지켜지고 있다. 선물들이 오가고, 새해 첫날이면 요란스럽게 선물을 만들며, 운동 경기와 연회들이 소란스럽게 열리고 있다. 이교도들은 우리보다 훨씬 더 자기들의 종교에 신실하기에 좀처럼 ‘그리스도인의 경건’을 받아들이지 않는다.” 다시 말해 당시의 “이교도들”은 기독교에 물들지 않기 위해 그들 나름대로 소위 성별을 지키고 타협하지 않은 반면, 오히려 “교회들”은 앞다투어 성별의 위치를 저버리고 이교도들의 관습을 무분별하게 수용한 것이다. 예를 들어 고대 바빌론 이교도들이 사시사철 잎이 푸르른 나무 “상록수”를 숭배하던 관습이 교회들 안으로 들어오더니 “크리스마스트리”로 둔갑했다. 성경에 등장하는 “님롯”은 자기 어머니 “세미라미스”와 음행하여 “탐무스”를 낳았는데, 바빌론 우상 숭배자들은 “죽은 님롯”이 부활한 존재가 “탐무스”라 여겼고, “상록수”를 이런 사실을 상징하는 나무로 간주하여 숭배했다. 또한 크리스마스 때 선물을 서로 교환하는 관습 역시 이교도들의 관습에서 비롯되었는데, “베일리”의 저서 <로마의 유산>에는 “크리스마스 시즌에 선물을 교환하고 서로 온정을 주고받는 행위들이 이교도 축제에서 비롯되었다.”라고 씌어 있다.
이외에도 “로마카톨릭”은 이교도 바빌론 종교의 온갖 잡동사니 쓰레기들을 가지고 들어와 교회들을 파멸시켰는데, “마리아 숭배”라든지, “죽은 성인들의 유품 숭배,” “형상 숭배,” 구원받기 위해 행하는 “신부들과 수녀들의 독신주의,” “성체성사”를 비롯한 일곱 가지 성사들, “유아 세례” 및 “세례(침례)를 통한 중생,” “묵주 기도,” “부활절 토끼와 달걀,” “촛불,” “향,” “죽은 자들을 위한 기도” 등 온갖 거짓 교리들을 갖고 들어온 것이다. 또한 각종 “이교도 축제들”을 만들어 냈는데, 이를테면 하늘나라에 있는 모든 성인들을 기념한다고 만든 축제일인 “만성절”(All Saints’ Day)이 있다. 이날은 11월 1일이며, 작년 “이태원 참사”의 화근이 된 “핼러윈 축제”가 바로 이 만성절에서 유래했다. 곧 만성절 전날 밤인 “10월의 마지막 밤”을 소위 귀신이나 악령 또는 주술 등의 신비주의와 연관시킨 것이다. 간교한 사탄이 『온갖 더러운 영의 소굴이요, 모든 더럽고 가증한 새의 소굴』(계 18:2)인 로마카톨릭의 “핼러윈”을 이용하여 수많은 죄인들을 죽음과 지옥으로 내몬 것이다. 또한 “만령절”(All Souls’ Day)이라 해서 11월 2일도 축제일로 삼았는데, 이것은 “세상을 떠난 모든 이들의 혼”을 기리는 축제일로 소위 “연옥”에서 여전히 빠져나오지 못한 죽은 성도들을 위해 애도하도록 일깨울 목적으로 제정되었다.
한편 1620년대 미국의 신실한 청교도들은 크리스마스에 선물을 주고받거나 좋은 옷을 입고 맛있는 음식을 차려 먹는 행위를 “사탄의 관습”으로 간주하여 그런 행위들을 금지했고 그것을 위반할 경우 5실링의 벌금을 물도록 했다. 이는 그날이 “바빌론의 태양신을 기념하는 축제일”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또한 당시 미국으로 건너온 “청교도 이민자에 관한 기록들”을 보면, “매사추세츠주” 법원에서 “크리스마스를 지키는 사람들”을 “형사법”으로 처벌하는 규정까지 공포했음을 알 수 있다. 이렇듯 성경 어디에도 신실한 사도들과 그리스도인들이 크리스마스를 지키고 기념했다는 내용을 찾아볼 수 없다. 우리의 구주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그분의 몸인 “교회”에게 지키라고 명령하신 의식은 “주의 만찬식”과 “침례식”뿐이다! “주의 만찬식”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다시 오실(재림) 때까지 “그분의 죽으심”을 기억하고 선포하는 의식이고(고전 11:23-26), “침례식”은 거듭난 그리스도인들을 『구원하는 모형』으로 『육체의 더러움을 제거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향한 선한 양심의 응답』이자(벧전 3:21), 주님의 명령이다(마 28:18-20).
엄밀히 말해 “예수 그리스도께서 탄생하신 초림”은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날”이 아니었다. 왜냐하면 그날은 “죽으시기 위해 태어나신 날”이었기 때문이다. 순전히 하나님의 관점에서만 보면 그날은 오히려 “재앙의 날”이었다. 『제구시경에 예수께서 큰 음성으로 소리질러 말씀하시기를 “엘리, 엘리, 라마 사박타니?” 하시니, 이는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라는 말이라』(마 27:46). 생각해 보라! 자기 아들이 버림받는 모습을 보며 환호하고 기뻐할 아버지가 어디 있겠는가? 물론 『그를 상하게 하는 것이 주를 기쁘시게 하였기에 주께서 그를 고난에 두셨도다.』(사 53:10 a)라는 말씀은 진리다. 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그러한 “구속 사역”을 통해 장차 태어날 그분의 “씨,” 곧 영적인 백성인 “교회”로 인해 기쁘셨던 것이지(『주께서 그의 혼을 속죄제물로 만드실 때 그가 자신의 씨를 보리니 그가 자신의 날들을 늘릴 것이요, 주의 기쁨이 그의 손에서 번창하리라.』 - 사 53:10 b), 십자가 위에 제물로 바쳐지는 “아들의 죽음 자체”가 기쁘셨던 것은 아니다.
한편 “하나님께서 무척 기뻐하시는 날”이 있으니, 그분의 “아들”께서 장차 이 땅에 세워질 “다윗의 보좌”에 앉으시어 “만왕의 왕”이요, “만주의 주”로서 온 세상을 유업으로 받으시고 심판하시고 통치하시는 “재림의 날”이다. 그날에 하나님의 아들께서는 마땅히 받으셔야 할 영광과 존귀를 받으실 것이다. 이렇듯 재림이 성경에서 가장 중요한 주제이기에, 성경은 초림 때의 “갈보리 십자가 사건”보다 재림 때 이 땅에서 이루어질 “왕국의 통치”를 설명하는 데 “열 배” 이상 더 많은 구절을 할애한다. 따라서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을 기념한답시고 “바빌론 태양신의 생일”까지 끌고 들어와서 쓸데없이 크리스마스를 지키려고 애를 쓰지 말고,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다시 오실 “재림의 날”을 간절히 기다리라! 그날에 주님께서는 “유월절 어린양”이 아니라 『유다 지파의 사자』(계 5:5)로 오실 것이며, 그분을 위한 성대한 “대관식”이 거행될 것이다. 『오 너희 문들아, 너희 머리를 들라. 너희 영원한 문들아, 그것들을 들라. 그리하면 영광의 왕께서 들어오시리라. 이 영광의 왕이 누구신가? 만군의 주시니 그는 영광의 왕이시로다. 셀라』(시 24:9,10). 『그러므로 이제 어찌하여 너희는 왕을 다시 모셔오는 일에 대해 한마디도 말하지 아니하느냐?』(삼하 19:10) 『그러하옵니다.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계 22:20). BB