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원히 보존하신 말씀 분류
“몸 ․ 혼 ․ 영”도 구분 못하는 “개역개정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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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대로믿는사람들 <2024년 02월호>
박승용 / 킹제임스성경신학교 학장인간의 구성에 대해 “이분법(‘육’과 ‘영혼’)이니, 삼분법(‘몸’과 ‘혼’과 ‘영’)이니 하는 문제”는 “쓸데없는 논쟁”에 불과하다. 이는 성경이 “몸 ․ 혼 ․ 영”을 분명하게 구분하고 있기 때문이다. 『화평의 하나님 바로 그분께서 너희를 온전히 거룩하게 하시고 너희의 온 영과 혼과 몸[whole spirit and soul and body]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실 때까지 책망할 것이 없게 보존되기를 하나님께 기도하노라』(살전 5:23). 진리의 성경은 “인간”을 가리켜 “세 부분으로 구성된 존재”라고 정확하게 규정하고 있다.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 있고 능력이 있어 양날이 있는 어떤 칼보다도 예리하여 혼과 영, 그리고 관절과 골수[soul and spirit, and of the joints and marrow]를 찔러 가르고 마음의 생각들과 의도들을 판별하느니라』(히 4:12).
한편 17세기 프랑스의 사상가 “파스칼”은 “인간은 생각하는 갈대”라고 했으며, 그리스의 철학자 “프로타고라스”는 “인간은 만물의 척도”라고 말했다. 서양의 “합리주의”에서는 “인간은 만물의 영장”이라 말하고, “진화론자들”은 “원숭이가 변하여 사람이 되었다.”라고 주장하며, “유물론자들”은 “인간은 오직 물질로만 구성된 존재”라고 가르친다. “인본주의자들”은 “인간의 지성이야말로 최종권위이고, 인간은 자신 스스로 구원해야 한다.”라고 주장한다. 또한 “인류의 최종 목적은 모든 인간 안에 내재된 무한한 잠재력을 발휘하게 하여 그것을 완성시키는 것”이라고 말한다. “긍정적인 사고방식의 소유자들”은 “인간은 ‘인간이 언제나 그렇게 되려고 생각할 때,’ 그렇게 생각한 사람이 될 수 있다.”라고 말하는데, 그야말로 이러한 주장들은 인간 자신의 의를 드러내기 위해 과대 포장해 놓은 죄인들의 “쓰레기”에 불과하다.
이에 반해 성경은 인간에 대해 이렇게 말씀한다. 『너희가 내일 일어날 일을 알지 못하나니 너희 생명이 무엇이냐? 잠깐 보이다가 사라지는 안개니라』(약 4:14). 『사람은 헛것과 같고 그의 날들은 지나가는 그림자 같나이다』(시 144:4). “욥”은 『나의 날들이 베틀의 북보다도 빠르니 소망 없이 지나가는도다.』(욥 7:6)라고 고백했고, “다윗”은 『이는 그가[곧 하나님께서] 우리의 체질을 아시며 우리가 진토임을 기억하심이라.』(시 103:14)라고 말했다. 또한 성경은 인간이 『티끌』(욥 10:9)이나 『벌레』(욥 25:6)와 같다고 말씀한다. 심지어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민족들은 통 속의 한 방울 물 같고, 또 저울의 작은 티끌같이』(사 40:15) 여겨진다. 물질을 구성하는 “기본 단위”는 “원자”인데, “원자의 구조”를 보면 그 중심에 “핵”이 있고, 핵 주위를 “전자”가 돌고 있으며, 핵과 전자 사이의 “공간”은 텅 비어 있다. 또한 원자 중심에 있는 “핵”의 구조를 들여다보면 “중성자”와 “양성자”로 뭉쳐져 있음을 알 수 있는데, 그러한 “소립자들”을 모두 제외하면 핵 역시 공간 대부분이 비어 있다고 한다. 그래서 인간의 몸을 구성하는 원자들의 모든 빈 공간을 압축하여 “중성자,” “양성자,” “전자” 등과 같은 “소립자들”만 뭉쳐 놓으면, 인간은 성경 말씀대로 “티끌”보다 훨씬 더 작아진다!
인간은 처음 창조될 때부터 “몸 ․ 혼 ․ 영”으로 구성된 “삼중적인 존재”로 만들어졌다. 『주 하나님께서 땅의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그의 콧구멍에다 생명의 호흡을 불어넣으시니, 사람이 살아 있는 혼이 되었더라』(창 2:7). 이 구절에서 『땅의 흙』은 인간의 “몸”이고, 『살아 있는 혼』은 인간의 “혼”이며, 『생명의 호흡』은 인간의 “영”이다. 특히 『사람이 살아 있는 혼이 되었더라.』라는 말씀에서 인간의 “본질”이자 “주체”는 “몸”이나 “영”이 아닌 “혼”임을 알 수 있다. 또한 인간의 “혼”은 『땅의 흙』과 『생명의 호흡』의 결합으로 형성되었고, 이로 인해 “혼”은 “몸”과 “영”의 중간 매개체로서의 역할을 하게 되었다. 하지만 “변개된 한글 성서들”은 『살아 있는 혼』을 「생령」(개역개정판, 개역한글판성경)이나 「생명체」(표준새번역, 쉬운성경), 「산 존재」(현대인의성경) 등으로 변개시켜 “몸 ․ 혼 ․ 영”의 올바른 구분을 깨달을 수 없게 만들었다.
창세기 2:7과 “짝”이 되는 구절인 “고린도전서 15:45”도 변개시켰는데, 오직 <한글킹제임스성경>에서만 『따라서 이와 같이 기록되었으니 “첫 사람 아담은 살아 있는 혼이 되었느니라.” 함과 같이 마지막 아담은 살려 주는 영이 되었느니라.』라고 올바르게 보존해 놓았다. 그러나 변개된 성서들은 『살아 있는 혼』을 「생령」(개역개정판)이나 「산 영」(개역한글판성경, 표준새번역), 「살아 있는 존재」(쉬운성경), 「산 존재」(현대인의성경) 등으로 어떤 원문이나 성경적 근거도 없이 제멋대로 변개시켰다. 『마지막 아담』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살려 주는 영』이 되신 이유는, 모든 죄인들의 “영”이 허물과 죄들 가운데 죽어 있기 때문인데(엡 2:1-3), 초림 당시 인간의 육체를 입고 이 땅에 오신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인류의 죄를 제거하기 위한 “대속적인 죽음”으로 죽으시고 부활하심으로써 “새로운 생명의 표본”이 되셨고, “성령”을 통해 죄인들에게 “새로운 생명”을 주심으로 “죽은 영을 살리시는 영적 존재”가 되신 것이다. 『이는 아담 안에서 모든 사람이 죽은 것같이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사람을 살게 하려 함이라』(고전 15:22).
한편 인간의 “몸”은 “다섯 가지 감각,” 곧 시각, 청각, 후각, 촉각, 미각의 기능을 수행하고, 모든 감정이나 역량은 육체 안에서 혹은 육체를 통해 표현된다. 또한 인간의 “몸”은 “흙”으로 만들어진(창 3:19) 하나님의 위대한 작품이다. 『내가 주를 찬양하리니 이는 내가 놀랍고도 경이롭게 지어졌음이니이다. 주의 지으심이 기이함을 내 혼이 잘 아나이다』(시 139:14). 변개된 “개역한글판성경”에서는 이 구절이 「내가 주께 감사하옴은 나를 지으심이 신묘막측하심이라 주의 행사가 기이함을 내 영혼이 잘 아나이다」라고 되어 있다. “신묘막측”이란, “사전적인 의미”로 볼 때 “신통하고 묘하여 미리 추측할 수 없음”이라는 뜻인데, 전혀 엉뚱하게 오역해 놓은 것이다. 인간의 “몸”은 “신묘막측”하게 지어진 것이 아니라 『놀랍고도 경이롭게』 지어졌다.
“인간의 몸”은 “놀라운 기적”이며, 어떤 과학자도 그런 인간의 몸을 만들지 못했고, 앞으로도 그러할 것인데, 그들은 그저 흉내만 낼 뿐이다. “피”가 온몸을 완전히 한 바퀴 도는 데 걸리는 시간은 46초이다. “혀”에 침이 묻어 있지 않으면 절대로 맛을 알 수 없고, “코”에 물기가 없으면 결코 냄새를 맡을 수 없다. 사람의 “허파”는 오른쪽보다 왼쪽이 더 무겁다. “눈”의 근육은 하루 24시간 동안 약 10만 번 움직이는데, 우리의 “다리”가 이 정도의 운동을 하려면 80km는 걸어야 한다고 한다. 인간의 “뼈”는 화강암보다 강해서 성냥갑만한 크기로 10톤을 지탱할 수 있는데, 이것은 “콘크리트”보다 네 배 더 강한 강도다. “심장”의 경우, 한 인간이 살아 있는 동안 평균 2억 8천만 번 “심장 박동”을 하고, 약 227만 리터의 “피”를 뿜어낸다. 인간의 “혈관”을 한 줄로 이으면 12만km로 지구를 “세 바퀴” 감을 수 있는 길이이다. 인간의 “뇌”는 고통을 느끼지 못하는데, 가끔씩 머리가 아프다고 느끼는 것은 뇌를 감싸고 있는 “근육”에서 오는 고통이다. 인간의 “눈”은 이상적인 조건에서 10만 가지의 색을 구분할 수 있지만, 일반적인 상황에서는 150가지의 색을 구별해 낸다. 사람의 “지문”이 서로 같을 수 있는 가능성은 640억 분의 1이다. 하나의 단어를 말할 때 650개의 근육 중에서 72개의 근육이 움직여야 한다. 인간의 “폐”는 “폐포”라고 하는 공기주머니를 갖고 있는데, 그 수는 무려 3백만 개 정도 되며, 이 폐포들을 납작하게 펴면 그 넓이는 93m2 정도가 되는데, 평수로 보면 약 28평의 넓이이다.
인간의 “혼”은 “인간의 몸”과 똑같이 생겼고, 다만 불에 타지도 않고 썩어 없어지지도 않는 “비물질적인 불멸의 존재”다. 인간의 “몸”이 죽을 때 흙으로 돌아가는 것이 “첫째 사망”이라면, 인간의 “혼”이 영원한 불못으로 들어가는 것을 가리켜 『둘째 사망』(계 21:8)이라고 말씀한다. “혼”은 일종의 “자아의식”으로, 각 개인의 “생명” 또는 그 사람의 “인격 그 자체”를 나타내며, “지정의”(知情意), 곧 “지성”과 “감정”과 “의지”의 기능을 수행한다. 인간의 “혼”은 “몸”과 “영”의 중간에 있고, 그 두 가지의 결합과 합성은 아니지만, 때때로 인간의 “몸”이나 인간의 “영”의 특성을 취한다. 다시 말해 인간의 “혼”은 두 가지 세계, 곧 육체적인 세계와 영적인 세계, 양쪽으로 모두 편승해서 작용하는 것이다. 때로는 몸과 영, 두 편의 활동을 조정하는 역할을 하기도 하는데, 가장 이상적인 모습은 “혼”이 가장 천한 “몸”을 가장 존귀한 “영”에게 복종하도록 만드는 것이다. 그래서 영이 거듭난 그리스도인은 성령 하나님을 통해 “영”을 통제하고, 그 “영”으로 “몸”을 통제하도록 해야 한다. “A.T. 피어슨”은 “하나님께서 인간을 지으셨을 때 인간 안에 영을 내재하게 하셨고, 성령으로 다스리게 하셨으며, 그 영으로 하여금 인간과 하나님과의 지속적인 관계를 유지하게 하셨고, 매사에 혼과 몸을 지배하게 하셨다.”라고 말했다.
인간의 “영”은 하나님께서 최초의 인류를 창조하셨을 때 콧구멍에 넣어 주신 “생명의 호흡”이다. 인간의 “영”은 인간에게 하나님과 영적으로 교제할 수 있는 능력, 곧 “하나님을 의식하도록” 해 준다. “영”은 “몸”이나 “혼”보다 한층 더 깊은 영역에 속하며, 그 자체의 고차원적인 감각과 역량이 인간으로 하여금 하나님과 직관과 양심으로 영적인 관계를 맺는 것을 가능케 한다. 그래서 “영”의 주된 기능은 “직관”과 “영교”와 “양심”이다. 한편 하나님은 “한 영”이시다(요 4:24). 따라서 인간의 영은 하나님과 가장 많이 닮아 있는 부분이다. 성경은 우리가 죽을 때 육체는 흙으로 돌아가고 영은 하나님께로 돌아간다고 가르쳐 준다(전 12:7).
이렇듯 인간의 “몸 ․ 혼 ․ 영”은 매우 명확하게 구분된다. 하지만 “몸 ․ 혼 ․ 영”도 구분 못하는 “개역개정판”은 계속해서 성경을 엉망진창으로 만들어 혼란에 혼란을 가중시킨다. 전도서 3:21에서는 『사람의 영은 위로 올라가고 짐승의 영은 땅 아래로 내려가는 것을 누가 알리요?』를 「인생들의 혼은 위로 올라가고 짐승의 혼은 아래 곧 땅으로 내려가는 줄을 누가 알랴」로 변개시켜, 마치 구원의 유무와 관계없이 모든 인간의 혼이 셋째 하늘로 올라가는 것처럼 만들었다. 또한 베드로전서 1:9에서는 『이는 너희 믿음의 결과, 곧 너희 혼들의 구원을 받음이니라.』를 「믿음의 결국 곧 영혼의 구원을 받음이라」로 변개시켰고, 요한삼서 1:2에서는 『사랑하는 자여, 무엇보다도 네 혼이 잘됨같이 네가 번성하고 강건하기를 바라노라.』를 「사랑하는 자여 네 영혼이 잘됨 같이 네가 범사에 잘되고 강건하기를 내가 간구하노라」로 부패시켰다. “영”과 “혼”은 분명하게 구분되는데, 특히 어떤 죄인이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믿고 영접할 때, “생명의 성령”께서 그 사람의 죽은 “영”을 살리셔서 “영”이 거듭나고, “혼”은 구원받게 된다. “영혼”이 거듭난다거나 구원받는다는 것은 성경적으로 틀린 말이다! 변개된 성서들로는 교리를 올바로 정립할 수 없다. “성경 변개”는 “마귀가 하는 짓”으로, “틀린 교리”와 “교단 교리”와 “이단 교리”를 양산해 낸다는 사실을 항상 잊지 말아야 한다! BB