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해구절 해설 분류
히브리서 6:4-6의 “구원을 잃어버린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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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대로믿는사람들 <2025년 03월호>
성경을 읽다 보면 깨닫기 어려운 구절들을 만나게 된다. 이러한 경험이 없다면, 성경을 진지하게 읽어 본 적이 없는 것이다. 특히 일반적으로 알려진 신약의 구원 교리와 모순되는 것처럼 보이는 구절들을 접하면, 내가 믿고 있는 것이 옳은지 의심이 들기까지 한다. 상식적으로 이해가 안 되는 존재들이 등장하면 “설마 이런 것이 있겠어?”라는 의문을 나타내기도 한다. 그렇기에 성경을 모순으로 가득한 책이나 신화를 담아 놓은 책으로 치부함으로써 “살아 계신 하나님의 말씀”으로부터 아무런 유익도 얻지 못하는 것이다.말하자면 성경에는 정말 어려운 구절들이 있지만, 읽는 이의 편견이나 선입견 때문에 난해하게 여겨지는 구절들도 있다. 창조주 하나님의 말씀을 한갓 흙으로 지음받은 피조물이 완전히 이해한다는 것 자체가 어불성설이 아닌가.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주님께서 떠나가신 후 진리의 영이신 성령님을 보내시어 우리를 “모든 진리”로 인도하시겠다고 약속하셨다(요 16:13). 그뿐 아니라 하나님께서는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고 “진리의 지식”에 이르기를 원하시기에(딤전 2:4), 거듭난 그리스도인이라면 당연히 성령님의 조명을 받아 성경의 난해한 구절들을 깨닫는 특혜를 누릴 수 있다. 이것은 하나님의 자녀가 오직 “믿음”을 통해서만 사용할 수 있는 지당한 권리이다. 『믿음으로 우리는 세상들이 하나님의 말씀으로 지어진 것을 깨닫나니 보이는 것들은 나타나는 것들로 된 것이 아니니라』(히 11:3).
자, 그럼 질문을 하나 하겠다. “지옥에 갈 죄인에게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인가?” 답은 그리 어렵지 않게도 “구원”이다. 성경을 읽다가 교회 시대의 “믿음으로 말미암는 구원”과 상반된 말씀을 만나면 어리둥절하다 못해 당혹스럽고 두렵기까지 하다. “나는 이제껏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써 구원받는 줄 알았는데 이 구절은 그렇지 않다고 말씀하네?”라면서 마음이 심히 불편하고 복잡해지는 것이다. 그 가운데 대표적인 것이 “히브리서 6:4-6”인데, 한번 세심하게 읽어 보도록 하라. 『한 번 깨우침을 받고 하늘의 선물을 맛보며, 성령의 동참자가 되고 하나님의 선한 말씀과 오는 세상의 능력을 맛본 자들이 만약 떨어져 나간다면 다시 새롭게 하여 회개시킬 수 없나니, 이는 그들이 스스로 하나님의 아들을 다시 십자가에 못박아 공개적으로 조롱함이라』(히 6:4-6).
자, 어떤가? “아니, 성령의 동참자가 된 구원받은 성도가 만일 떨어져 나간다면 다시 새롭게 하여 회개시킬 수 없다고? 그러면 구원을 잃어버릴 수 있다는 얘기 아닌가?”라는 생각이 절로 들지 않는가? 이어지는 히브리서 6:7,8은 더욱 적나라해서 본문의 “떨어져 나간 사람들”의 마지막이 “불사름”이 된다고까지 경고한다. 『이는 땅이 그 위에 자주 내리는 비를 흡수하여 밭 가는 자들에게 적합한 농작물을 내면 하나님께 복을 받으나, 만일 가시와 엉겅퀴를 내면 버림을 당하고 저주함에 가까워서 그 마지막은 불사름이 되기 때문이라.』
이처럼 한 번 구원받은 사람이 믿음에서 떨어져 나가면 불살라진다는 말씀은 많은 성도들을 구원 상실 가능성의 두려움으로 내몰았고, “믿음 없는” 학자들로 하여금 다음과 같은 “합리적인 해석”을 내놓게 했다.
“여기 타락은 일시적 범죄 정도가 아니라 배교하는 것을 가리킨다. 즉 강력한 성령의 외적 역사를 체험하고도 겉으로만 신앙고백을 하다가 끝내 내적으로 중생하지 않고 아예 고의로 진리를 거슬러 사탄의 무리에 속한 자들을 가리킨다”(톰슨Ⅱ 주석성경). “타락한 자들은 4,5절과 같은 은혜를 맛보고도 그리스도의 신적 사역을 믿지 않았다. 그들은 그리스도의 신성을 거부한 것이다”(오픈성경). “4,5절로 보아 이들은 분명히 하나님의 언약의 축복도 맛보고 어두움에서 빛으로 돌아서겠다고 고백도 하였다. 그러나 그들에게는 공공연하게 그리스도를 최종적으로 거부할 위험이 있었고, 만약 그럴 경우 그것은 그들이 거듭나지 못했음을 나타내는 것이다”(NIV 주석성경). “히브리서 6:4,5은 구원받은 사람들이다. 그러나 구원받은 사람들 중에는 승리하지 못하고 패배하는 삶을 사는 사람들이 많이 있다(예를 들면 롯). 승리하는 삶을 사는 사람들은 7년 대환란의 후 3년 반을 적그리스도가 예루살렘에서 하나님으로 가장하여 통치하기 직전에 휴거될 것이나 패배하는 사람들은 3년 반의 환란을 통해 정금같이 성화되어 나올 것이다. 다시 회개시킬 수 없다는 말은 그들은 이미 구원받은 자들이므로 회개하고 믿은 이상 다시 회개시키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뜻이다. 따라서 이 구절은 구원받은 사람 중 거룩한 삶을 살지 못하는 사람에게 해당되는 구절이며, 8절의 불사름은 지옥 불에서 형벌받는 것이 아니라 그들의 일한 것이 불타 버린다(고전 3:12-15)는 뜻이다”(윗트니리스리의 회복역성경).
보다시피 성경 해석이 모두 다 “자기 합리화” 수준이다. 히브리서 6:4-6은 단순한 “배교”에 관한 말씀이라든지, “그리스도의 신성을 거부한 타락한 사람들”의 이야기라든지, “원래 거듭나지 않은 사람들”에 관한 말씀이라든지, “이미 회개하고 믿었기에 구원과 관련된 회개가 불가능한, 지옥에는 절대 가지 않으나 그들의 일한 것이 불타 버릴 구원받은 사람들”에 관한 구절이라고 해석하는 것이다.
하지만 그뿐이 아니다. 어떤 이들은 한걸음 더 나아가 본문의 “떨어져 나간 사람들”이 구원받은 그리스도인들이지만 말씀을 지키며 끝까지 견디지 못했기에 하나님의 은혜로부터 떨어져 나가 구원을 잃어버리게 된 것이라며 단도직입적으로 “행위 구원”을 가르친다. 다른 부류는 히브리서 본문은 “가상의 상황”일 뿐이고, “‘만일’ 구원받은 사람이 구원을 잃어버릴 수 있다면 그가 ‘다시’ 구원받을 수 없다는 것이 본문의 뜻인데, 그런 가상의 상황은 실제로는 절대로 일어나지 않는다.”라고 가르친다. 이외에도 “그들은 ‘거의’ 구원받았을 뿐 ‘완전히’ 구원받은 것은 아니다,” “성령님과 어느 정도 협력은 했지만 실제로 구원받은 것은 아니다,” “겉으로만 신앙고백을 하면서 성령의 역사를 체험한 사람들로, 구원받은 사람들이 아니다” 등등 참으로 “사공이 많으니 배가 산으로 가고” 있는 것이다. 이 정도면 히브리서 본문에 관한 해석은 혼란의 도가니 그 자체이다. 무지한 그리스도인들에게서 구원의 영원한 보장에 관한 확신을 앗아가기에 충분한 것이다. 그렇다면 그들은 왜 그토록 얼토당토않은 해석들로 배교한 기독교계를 구원 상실 가능성의 어둠으로 뒤덮어 버렸을까? 이유는 단 한 가지. 그들 자신이 읽고 있던 말씀들을 믿지 않았던 것이다! 『내가 그들에게 영생을 주노니 그들은 영원히 멸망하지 않을 것이며, 또 아무도 나의 손에서 그들을 빼앗지 못할 것이니라. 그들을 나에게 주신 나의 아버지는 만유보다 더 위대하시니, 아무도 나의 아버지 손에서 그들을 빼앗아 갈 수 없느니라』(요 10:28,29). 『내가 확신하노니 사망이나 생명이나, 천사들이나 정사들이나 권세들이나 현재의 일들이나 다가올 일들이나, 높음이나 깊음이나, 어떤 다른 피조물이라도 우리를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떼어 놓을 수 없으리라』(롬 8:38,39).
히브리서는 “교회 시대”에서 “대환란”으로 넘어가는 과도기적인 책이다. 그 기록 대상은 재림 직전의 “히브리인들”로서, 그들은 『내가 또 한 번 땅뿐만 아니라 하늘까지도 뒤흔들리라.』(히 12:26)라는 “재림”의 말씀처럼 땅과 하늘을 뒤흔들고 민족들을 진동시키면서 오실 주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학 2:6,7)과, 바로 그 주님께서 가져오실 『흔들릴 수 없는 왕국』(히 12:28), 곧 (초림 때 거부당하여 2천 년 뒤로 연기된) 『천국』(마 3:2)을 기다리고 있는 상황인데, 문제의 히브리서 6:4-6은 그 “대환란 때의 히브리인들”이 “믿음과 행위”의 체계로 구원받게 됨을 말씀하고 있다. 즉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나서 율법의 “행위”로 끝까지 견뎌야 구원받는 대환란 시대의 교리를 다루고 있는 것이며, 요한계시록의 “대환란 구절들”이 그 점을 단단하게 지지해 주고 있다. 『그러자 그 용이 여인에게 분노하여 여인의 씨 가운데 남은 자들, 즉 하나님의 계명들을 지키며[행위] 예수 그리스도의 증거를 가진[믿음] 자들과 싸우려고 나가더라』(계 12:17). 『여기에 성도들의 인내가 있으며 여기에 하나님의 계명들[행위]과 예수의 믿음[믿음]을 지키는 자들이 있느니라』(계 14:12). 『그들이 하나님의 종 모세의 노래[행위]와 어린양의 노래[믿음]를 부르며 말하기를 “전능하신 주 하나님, 주의 행하신 일이 위대하고 놀라우니, 성도들의 왕이여, 주의 길은 의롭고도 진실하나이다』(계 15:3).
말하자면 현 교회 시대는 교회가 휴거될 때까지 예수 그리스도의 피의 속죄를 근거로 행위가 아닌 믿음으로만 구원을 받지만(엡 1:7; 2:8,9), 마태복음 24장의 『대환란』(마 24:21) 때는 끝까지 견뎌야만 구원을 받는다. 『그러나 끝까지 견디는 자는 구원을 받으리라... 이는 그때에 대환란이 있으리니』(마 24:13,21). 대환란 때의 히브리인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을 뿐만 아니라, 율법을 지키며 끝까지 견뎌야만(행위!) 구원을 유지할 수 있는 것이다. 즉 대환란 때는 “한 번 깨우침을 받고 하늘의 선물을 맛보며, 성령의 동참자가 되고 하나님의 선한 말씀과 오는 세상의 능력을 맛보았다 할지라도” 짐승의 표를 받고 짐승에게 경배하면 구원을 상실하고 지옥에서 영원토록 불살라지는 것이다. 그 두려운 『불사름』(히 6:8)을 요한계시록 14:11은 『그 고통의 연기가 영원무궁토록 올라가리라.』라고 표현한다. BB