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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배교의 배경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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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대로믿는사람들 <1996년 04월호>
“아무도 어떤 모양으로든지 너희를 미혹하지 못하게 하라.이는 먼저 배교하는 일이 이르지 않고서는 그날이 오지 아니함이라.
그리고 나서 죄의 사람 곧 멸망의 아들이 나타나리라. (데살로니가후서 2:3)
성경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믿는 교회사가는 역사에 나타난 여러 가지 영적 움직임들을 판단할 수 있는 기준을 갖고 있는 셈이다. 이 기준은 계시록 2장과 3장에서 발견할 수 있는 일곱 “교회시대”이다.
이 내용을 잘 읽어 본 독자라면 여섯 번째와 일곱 번째 교회시대 사이에는 다른 시대들 간의 차이와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커다란 영적 침체가 시작되고 있음을 간파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일곱 교회들이 총 2000년 기간(A.D. 70-1990)에 걸쳐 전개된 것을 감안한다면, “대배교”의 시대가 교회 시대 전체의 20분의 1에 해당하는 마지막 100년 간에 발생한다는 사실은 주목할 만하다. 이 엄청난 “배교의 물결”은 성경 여러 곳에서 예언되어 있다(딤후 3장, 딤전 4장, 유, 창 49장, 신 32장, 살후 2장 등). 이런 예언들에 따르면 마르크스와 다윈의 철학과 그 추종자들은 성경과 정반대 편에 서 있는 자들이다. 이 철학들은 20세기 말이 인류역사의 절정이 될 것이라는 긍정적 입장을 보이고 있는 반면, 성경은 철저히 부정적인 입장을 견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D.L. 무디와 빌리 선데이의 사역이 절정기에 달해 있었고 성경대로 믿는 지역 교회들이 미국 전역에 우후죽순처럼 생겨나고 있던 바로 그 기간 중에도 오늘날의 대붕괴를 예견하는 먹구름이 수평선을 뒤덮기 시작했다. 이 먹구름들은 하룻밤 사이에 생긴 것이 아니다. 이러한 현상은 교회사에 있어 여러 번에 걸쳐 일어났던 것으로(A.D. 325, A.D. 580, A.D. 1000, A.D. 1580 등) 충분히 예견되던 일이었다.
역사를 통해 반복되어 온 “교회사의 악순환”(복음전파-교육-문화-배교)에 따라 대각성(부흥) 운동 기간 혹은 그 직후부터 설립된 모든 교육기관에는 한결같이 문화가 침투했다. 문화는 미술, 음악, 과학, 철학, “사회학” 등을 기독교 안으로 유입시켰다. 거의 모든 문화운동이 항상 후천년주의적 성격을 띠어 왔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모든 문화운동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땅을 직접 통치함 없이 인간의 노력에 의해 일종의 유토피아를 가져오려는 인간의 희망에서 비롯된다(이런 자들을 우리는 왕국건설자, Kingdom builders라고 부른다).
이 착각은 거듭나지 못한 사람들의 생각에 확고히 자리잡고 있는 것으로 이 지상에 살았던 거의 모든 대통령, 교황, 정신과 의사들은 인류의 미래에 대해 긍정적인 발언을 해왔다. 이러한 예는 수도 없이 많다(모든 정치 연설은 이러한 기조하에 작성된다).
세계의 정치, 종교 지도자들이 그와 같은 거짓말을 되풀이했던 이유는 간단하다. 그들의 추종세력을 확보하기 위해 긍정적인 미래를 제시해야만 하기 때문이다. 이 땅에서 지도자가 되기 위해서는 “인간에게 희망”을 심어 주는 수밖에는 없는 것이다. 이 세상의 통치자 역시(눅 4:6), 긍정적 사고방식의 소유자였다(창 3:1). 사람들은 장미빛 미래에 속고 싶어하는 것이다.
미혹을 원하면 미혹받는 수밖에 없다(살후 2:11, 겔 14:9). 구원받지 못한 사람들, “선행을 하며 살면 그만이다”(do- gooders)라고 생각하는 거듭나지 못한 사람들은 자신이 스스로를 구원할 수 있을 만큼 선하다는 말을 듣기 원한다. 스스로의 노력에 의해(사 64:6, 시 39:5) 자신은 물론 자기 조국, 자기 교회, 자기 학교도 구원할 수 있다고 착각하고 있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오늘날의 교회협의회가 갖고 있는 입장이다. 그들은 모든 사람은 자동적으로 구원받을 것이며 그 누구도 지옥에 가지 않는다고 가르치는 것은 물론 스스로의 노력에 의해 이 땅에 유토피아를 세울 수 있다고 가르친다. 이들은 이 유토피아는 정치적인 법률제정과 혁명적 선동을 통해 이루어질 것이라고 믿고 있다. 이들 위선자 집단은 지난 100년 동안 말로는 “교회와 국가의 분리”를 주장해 왔지만 실제로는 온갖 정치, 사회적 이슈에 입장을 표명하거나 자신들의 주장을 공개적으로 또는 사적으로 강조해 왔다. 예를 들면 최저임금제, 빈곤 퇴치 계획, 아프리카의 공산 게릴라 지원, 시민권법 제정, 거리 시위, 멕시코 노동자 수입, 인종차별 없는 주택정책, 국방의 의무에 있어 충성서약폐지, 연방정부의 주택정책 통제 등.
그러나 이들 위선자들은 1980년 제리 팔웰이 “도덕적 다수”(Moral Majority)에 대한 정치적 호소를 시도하자(즉 도덕적으로 건전한 사람들이 정치적, 사회적 이슈에 적극 개입하자는 운동) 설교자와 목사들은 정치에 “개입”해서는 안된다며 거세게 항의하고 나섰다. 이런 위선적인 행동은 교회협의회 소속 감독이나 목사들이 지난 50년 동안 칼 마르크스의 주장을 공개적으로 옹호했으며 미국의 거의 모든 주요 언론기관에 자신들의 정치적 압력을 행사해 온 이후에 취해진 것이었다.
이제껏 언론에 발표된 그들의 선언들과 교회협의회 지도자들이 쓴 십여 권의 책들에는 교회협의회(NCC)의 정치적 입장이 분명히 나와 있다. 그들은 독재실시를 위한 무기 압수에 찬성하고 있으며 성도착자들이 공립학교에서 가르치는 것을 지지하고, 전세계를 하나의 경찰력으로 통제하는 하나의 정부가 세워져 사유재산제도를 없애고 계급없는 사회를 만드는 것을 그 목표로 하고 있다. 이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그 어떤 수단도 정당화된다(시위, 혁명, 소요, 연방통제, 무정부상태 혹은 “성없는 성서”(하나님을 아버지가 아닌 중성의 존재로 표현한 “성서”), 그 밖의 모든 수단들). 교회협의회는 마르크스와 레닌과 동일한 방식으로 “민중이 원하는 것”을 민중에게 제공하고 있는 것이다. 사탄은 이 목적을 위해 정치 지도자와 종교 지도자들을 부지런히 양성해 왔다. 드물게 예외적인 인물이라면 빅토리아 여왕, 토마스 제퍼슨, 올리버 크롬웰, 비스마르크 및 오렌지 공 윌리암 정도일 것이나 이들 역시 배교의 물결은 막지 못했다(눅 4:6).
영국이 찰스 다윈에게로 돌이킨 것은 다름 아닌 빅토리아 여왕의 통치기간이었다(1837-1901). 당시 20,000여 명의 부정적 설교자들이 『가장 좋은 상태에 있는 모든 사람도 다 헛될 뿐이니이다』(시 39:5)라고 외쳐대자 사람들은 이 화살을 피해 “구원”과 “도움”을 받으러 다윈에게로 가버렸던 것이다. 다윈과 마르크스는 장미빛 세상을 꿈꾸는 “교육받은 계층”에게는 구세주가 아닐 수 없다. 대중은 그들이 제공하는 마약을 원하고 있는 것이다. 대중의 환심을 살 수 있는 방법은 미래에 대해 거짓말을 하는 것이다. “그들이 원하는 그것을 주라.” 이것이 계략의 핵심이다.
토레이, 무디, 선데이, 집시 스미스의 사역 기간 중 배교의 구름이 서서히 덮이기 시작했고 1800년 이래 시작된 이 먹구름은 1880-1930년에는 짙은 먹구름으로 전 기독교계를 뒤덮을 정도가 되었다. 이 저기압을 불러온 원인을 세 가지로 요약해 볼 수 있다.
Ⅰ. 유럽, 영국, 그리고 미국의 일반 가정에서 성경을 매일 읽는 것을 대신해 신문과 잡지를 매일 읽는 습관이 정착되었다. 이 “언론”의 자유에 대해 교황이 반대했던 이유는 카톨릭 정치조직에 대한 위협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사실에 대한 정보를 갖게 되면 카톨릭으로 남아 있을 사람이 줄어들 것이기 때문이다. 카톨릭 교회가 강성한 조직력을 유지할 수 있었던 것은 카톨릭의 제국주의적 정치책략과 그 책략의 수행방법에 대해 교인들이 무지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언론은 로마 카톨릭 교회에 아무런 위협이 되지 못했다. 왜냐하면 마르크스주의에 편승한 언론은 로마와 동일한 원칙하에 세워진 세속적인 기관이었기 때문이다. 즉 언론 역시 재정적 정치적 편의주의를 목표로 삼고 있는 것이다.
사실 로마 카톨릭 교회에 가장 위험한 것은 성경이다. 따라서 신문에 매주 성경이 게재되지 않는 한 로마 카톨릭 교회는 언론과 “조화”를 이룰 수 있다. 미국의 주요 언론 기관(T.V., 라디오, 신문) 중 “반카톨릭”적인 기관은 단 하나도 없었다. 그들은 한결같이 친카톨릭적이다. 반면 성경, 표현의 자유, 지역 교회, 엄격한 법의 집행, 사형제도, 무기소유, 민족주의, 애국심, 도덕기준 등에는 반대하고 나선 언론매체들이 수두룩하게 등장했다. 한 마디로 이들 언론매체들은 공산주의적인 입장을 갖고 있고 대중을 노예화시켜 카톨릭 독재자가 지배할 수 있는 여건을 조성하는 임무를 맡고 있다.
오늘날 “현대인”들은 생명, 과학, 죽음, 종교, 도덕, 정치, 국제문제, 및 교육에 대해 주로 마르크스적 사고로 무장된 언론매체로부터 정보를 얻고 있다. 스탈린, 레닌, 엥겔스, 마르크스는 전부 노동자나 농부가 아닌 언론인이었다는 사실은 주목할 만하다. 그들은 “프롤레타리아”가 아닌 제 4계급으로 불리는 신종 귀족인 언론인들이었던 것이다. 러시아 혁명의 배경을 연구해 보면(프랑스 혁명의 배경과 마찬가지로) 혁명의 배후에는 노동자들이 없었다는 사실이 확연히 드러난다.
레닌은 권력에 아첨하는 사람으로 국제사회주의 운동을 통해 자신의 안전과 지위를 보장받으려고 했던 언론인이었다.
레닌은 공산 러시아를 창조해 내지 않았다. 그는 군사적 제국주의를 실시하기 위한 기구를 만들어 자신이 그 독재자가 되었던 것이다. 그러나 그는 너무 일찍 죽었고 스탈린이 대신 그 자리를 차지했다. 러시아는 오늘날 프롤레타리아 혹은 “짓밟힌 노동계급”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다. 러시아는 제국주의적 군사 독재 국가로 중산층(브르조와)에 해당되는 경찰들(NKVD)에 의해 통제되는 사회이다(소련의 붕괴 이전의 상황임 - 역자주).
레닌, 트로츠키, 마르크스는 언론인이 되기 전에 “학생”이었다. 바로 이 사실은 오늘날 20세기의 공산주의 운동이 어째서 학생과 교수로부터 시작해서 언론을 통해 번져나가는가를 여실히 보여 준다. 미국의 유수의 대학들(1970년대의 켄트주립대학, 1960년대의 버클리, 1930년대의 콜럼비아 대학교)과 전국 교육자연합회는 민주주의나 공화제를 추진한 세력들이 아니다. 오히려 이들은 레닌, 트로츠키, 마르크스와 마찬가지로 자본주의 혹은 민주적 제도들을 무너뜨리기 위해 조직된 학생운동 세력이었다. 언론이 사용하는 용어는 대다수가 대학 수업 시간에 사용하는 용어이며 반대로 언론에서 사용하는 용어는 대학에서 통용된다(예를 들면 의미있는, 관련된, 의미있는 가치, 사회참여, 깊이 있는, “신뢰”, 인종차별, 실재에 대한 초점, 결정적인 내용, 제도화된 구조, 억압받는 소수, 최종적 확증, 현실유지에 도움이 되는 사실과 확인 가능한 사실, 피드백, 단순한 사고방식, 적절한 관점, 다원주의 사회, 가치규명, 정상회담, 대화, 데탕트, 유예기간, 사면... 등).
신문 기자들은 대학 졸업자들이거나 대학 졸업자로 자처하면서 대학에서 사용하는 용어들을 신문에 그대로 사용한다. 그러나 이들이 사용하는 용어들은 역사적 사실이나, 민중, 노동 계급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는 것이며, 신약 지역교회와는 더더욱 아무런 상관이 없는 것들이다. 그들의 용어들은 환상의 왕국에나 속한다고 할 수 있다. “단순한 사고방식의 확장은 현시대에 있어 종교의 붕괴와 관계가 있을 가능성이 있다.” 그러나 이런 식으로 이야기한다고 늑대가 양이 되는 것은 결코 아니다.
가정에서의 성경 읽기는 신문과 잡지의 구독으로 대체되었고 여기에 라디오(1920)와 T.V.(1950)까지 도입되었다. 따라
서 미국의 시민들은(1920- 1990) 실재 대신 마르크스적 환상을 보면서 살아 왔으며 진리 대신 거짓말을 들어왔고, 성경적 도덕 대신 비도덕적 이교도에 노출되어 왔으며, 건전한 문학 대신 외설문학에 젖어 왔고 문화적 차이를 인정하는 대신 인종통합을 당연시해 왔으며 사이비 학문, 사이비 종교, 사이비 과학에 물들어 왔다. 무엇보다도 미국인들은 “뉴스” 거리가 될 만한 “새로운 무엇”에 대해 중독되고 말았다. 이제 전세계적 공산주의 카톨릭 교회는 언제 등장하더라도 충분한 회원을 준비시켜 놓은 셈이다.
Ⅱ. 성경대로 믿는 그리스도인들과 복음 전파자들이 일단 기독교 대학들을 버리고 서부로 옮겨가게 되자(무디는 일리노이 출신인 반면 빌리 선데이는 아이오와 출신이었음을 염두에 둘 것) 기독교 대학, 대학교, 신학교 등이 (할레, 튜빙겐, 시카고, 하바드, 예일, 콜게이트, 옥스퍼드, 캠브리지 등) 기독교에 해로운 영향을 끼치게 되었다. 기독교 교육이든 세속적 교육이든 모든 고등교육의 최종목표는 하나의 최종적이고 절대적인 권위에 대한 믿음을 파괴시키는 것이다. 유명 기독대학, 신학교, 및 대학교들은 알든 모르든 이 임무를 착실히 수행하고 있다. 이들 교육기관에서 공부를 시작한 대부분의 학생들은 얼마 후 성경 대신 교수들의 (구원받은 죄인이든 구원받지 못한 죄인이든 간에) 의견과 철학을 최종권위로 받아들이게 된다(세월이 지나면 이들 학교의 교수진은 모두 구원받지 못한 사람들로 대체될 것이며 성경은 경시될 뿐 아니라 공격을 받고 부인당하게 될 것이다).
합리주의, 자유주의, 사회주의 및 근대주의의 뿌리는 언제나 교육받은 그리스도인들에게 있어왔다. 이들 교육받은 그리스도인들의 뿌리와 배경은 정통신학교들과 대학교들과 연관되어 있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이로써 학생들과 교수들은 공산주의와 자유주의를 발흥시키게 되었다. 이 두 가지 운동은 학교에서 시작되었다. 신약교회사의 관점에서 보자면 이 두 가지 운동은 일고의 가치도 없다. 이 지구상에서 주요 일간지를 펴낸 사람치고 신약 지역교회의 회원인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자유주의 대학의 교수치고 신약 지역교회의 회원인 사람도 하나도 없었다. 마르크스주의를 신봉하는 학생치고 신약 지역교회의 회원이었던 사람은 결코 없었으며 앞으로도 없을 것이다.
참된 신약 지역교회는 죄에 대해 설교하고 하나님께서 진리에 반대하는 자들(고전 5,6장)의 계략을 분쇄해 주시도록 기도하는 것 외에 당대의 사회적, 정치적 이슈에 “개입”해 본 적이 결코 없다. 노예들의 해방(고전 7:17-21, 딤전 6:1-4), “공정한 부의 분배”, “소외당하는 계층과의 부의 공유”는 신약교회와 아무런 관련이 없다.
Ⅲ. 기독교의 배교에는 음녀의 어미 로마 카톨릭이 그 배경에 놓여 있다. 비록 로마가 영국, 스코틀랜드, 그리고 미국을 상실하기는 했어도 결코 그들의 목표를 포기한 적이 없다. 이들은 과거 자기들이 비난했던 구원받지 못한 철학자들을 도구로 사용해서 개신교도들의 성경에 대한 믿음을 파괴시키고자 시도했다. 로마는 기독교 학교들 내에서 몰래 활동하여 교수진들을 암흑시대의 성서로 되돌려 놓았고, 카톨릭식 “기독교”의 성사 위주의 의식주의로 기독교 신앙을 대체해 버렸다.
서양 사람들이 일단 최종권위로서의 성경을 버리자 가야 할 곳이라고는 로마밖에 없게 되었다. 신문과 잡지가 최종권위가 될 수는 없기 때문이다. 결국 모든 길은 로마로 통하게 된 셈이다. 이로써 로마 교황은 성경을 제쳐놓은 채 스스로가 무오하다고 하는 지상의 최종권위가 된 셈이다. 필리핀의 공산혁명자들을 격려하기 위해 마닐라에 모습을 드러낸 교황 앞에(1981년 2월) 필리핀 대통령 마르코스가 자신의 죄를 용서해 달라고 간청하며 그를 “거룩한 아버지”(요 17:11을 볼 것)라고 부른 사실은 결코 놀랄 일이 못된다.
지금까지 제시한 이 세 가지 요소들이 필라델피아 시대(계 3:6-10)의 막을 내리고 기독교를 배교의 늪으로 이끌어 간 것이다. 로마에서 시작된 배교의 물결이(A.D. 300-400) 발칸 반도에 침투했고(A.D. 400-800) 곧이어 영국으로 번져갔으며(A.D. 500-800) 뒤이어 독일과(A.D. 800-1000) 프랑스(A.D. 1000-1400)를 완전히 뒤엎었고 영국의 기독교(1900-1990)를 완전히 와해시켜 버렸다면(1960년 경에 스펄젼의 성막교회는 이미 박물관이 되어 버린 상태였다) 미국 또한 이 배교의 물결에서 피할 도리는 전혀 없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