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가 진리의 말씀을 올바로 나누어 자신이 하나님 앞에 부끄럽지 않은 일꾼으로 인정받도록 공부하라(딤후 2:15).
신약교회사 분류

대배교의 배경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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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대로믿는사람들 <1996년 06월호>

“또 이것을 알라. 마지막 날들에 아주 어려운 때가 오리라. 사람들이 자기를 사랑하고 돈을 사랑하며, 자긍하고 교만하며, 하나님을 모독하고 부모에게 불순종하며, 감사하지 아니하고 거룩하지 아니하며 무정하고, 화해하지 아니하며, 모함하고 절제하지 못하며, 사납고, 선한 것을 좋아하지 아니하며 배반하고 분별이 없으며, 자만하고 쾌락을 사랑하는 것이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보다 더하며 경건의 모양은 있으나 경건의 능력은 부인하리니, 이런 자들에게서 돌아서라” (디모데후서 3:1-5)


배교는 항상 문화와 더불어 시작된다(복음전파-교육-문화-배교의 악순환을 기억하라).
막스, 다윈과 그의 동료들은 알렉산드리아 이단(A.D.200-300)의 이중적인 권위들을 구축했고 성경을 없애 버릴 의도를 가지고 성경을 대했다. 성경은 사유재산을 인정하며(마 20:15, 행 5:4), 고용주의 권리도 인정한다(마 20:15). 또 성경은 막스의 “생활 양식”(life style)을 비난하고 있으며(살후 3:10), 그의 종교적 신념 역시 무효화시킨다(시 19:2; 119:89,160). 성경은 다윈의 학문도 어리

석은 것으로 간주하며(롬 1:22), “기원”에 관한 그의 이론 역시 예수 그리스도에 의해 반박되어 있다(막 10:6, 마 24:37, 요 5:46,47).
이로써 우리는 막스의 이론과 다읜의 이론은 성경적 가르침을 싫어하는 어리석은 자들의 말장난에 불과하다는 결론을 내릴 수밖에 없다. 이 두 사람은 노동자가 아니었고 농부도 아니었으며 “억압받는 대중”도 아니었다. 이들 두 사람은 인류가 갖고 있는 문제들에 대한 객관적 분석에 있어 아무런 판단력도 갖추지 못한 자들이었다. 그런데 바로 이 두 가지 이론이 19세기 영국과 그 식민지를 휩쓸었던 것이다.
다윈과 아브라함 링컨과 홀트, 이들은 공통점을 갖고 있다. 그들은 “완전한 사회를 건설”하는 데 있어 원숭이로부터 진화된 인간이 “매일매일 모든 면에서 발전”하고 있기 때문에 적자생존에 입각한 약간의 투쟁만 더해진다면 예수 그리스도가 없어도 완전한 사회를 건설할 수 있다는 긍정적 사고방식을 갖고 있는 것이다.
링컨이 말한 “국민의, 국민에 의한, 국민을 위한”이란 표어는 프랑스 혁명의 모토를 미국식으로 표현한 것에 불과하다. 이 표어가 의미하는 궁극적인 의미는 폭력을 사용해서라도 목표를 달성한다는 것이요, 결국은 공산당처럼 “원하는 것을 훔치라”는 표어로 결론이 내려진다. 이들이 절도와 살인(물론 “국민” 혹은 “민중”의 이름으로)을 위해 사용하는 상투 용어는 “자유”와 “해방”이다.
자유와 해방을 위해 살인과 절도를 정당화시키는 것은 그것이 링컨, 처칠, 루즈벨트, 교황의 입에서 나온 것이든 레닌, 막스, 히틀러 혹은 카스트로의 입에서 나온 것이든 동일한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 없이 완전한 사회를 건설하려는 이들 “왕국 건설자” (kingdom builders)들은 한결같이 동일한 용어를 쓰고 있으며 이제껏 큰 효과를 얻었다(“자유”와 “해방”).
바로 이것이 교회사의 대배교가 전개될 역사적 배경인 것이다. 뒤이어 역사의 무대에 등장하는 이들은 “근본주의자”들로, 이들은 동정녀 탄생, 육체적 부활, 피의 속죄, 그리스도의 신성을 믿는다고 고백하는 자들이다. 그들은 정통 영국 국교회(성공회) 회원이며 “선하고, 경건하며, 헌신된 학자들”이다. 이들 근본주의자들은 1881-1885년에 다음과 같은 자들의 지지를 업고 역사의 무대에 등장했다.

1. 막스주의자와 페이비안 사회주의자들 : 이들은 부의 불평등한 분배가 모든 악의 뿌리라고 믿고 있으며 모두가 각자의 재산을 “공유”하는 “공정하고 평등한” 경제 제도만이 인간의 모든 문제를 해결할 것이라고 믿는 자들이다.
2. 진화론자들과 이신론자들 : 이들은 성경이 모순과 “비과학적 오류들”로 가득차 있고, “적자생존”의 법칙으로 인간은 환경을 극복할 수 있으며, 결국에는 인간의 본성마저 바꿀 수 있다고 생각한다(비인간성도 진화되면 진정한 인간성으로 바뀐다는 진화론적 허구 - 역자주).
3. 옥스포드 운동을 주도한 푸지주의자들 : 이들은 1611년의 권위역본이 1582년의 예수회 역본으로 대체되어야 한다고 주장함으로써 영국의 프로테스탄트들이 바티칸으로 되돌아가도록 길을 열어 놓은 셈이다.

이 세 요소는 한 마디로 사회주의-카톨릭-로마-공산주의-진화론 운동이라고 할 수 있다. “인류의 향상을 위한 전진하는 사회”를 내걸고 나선 이들이지만 실상은 “암흑시대의 퇴보를 위한 인간 중심 사회”를 건설하려는 것뿐이다. 이러한 구상은 언론 매체들의 작품이다. 인간이 이러한 생각을 하게 된 것은 성경이 말씀하시는 바를 믿는 대신 언론인들과 학자들이 말하고 쓴 바를 믿은 결과이다.
이들 언론과 학문은 “귀가 가려운 자들”(딤후 4:1-6)과 아테네 사람들(행 17:21)을 위해 인위적으로 이슈와 관심거리들을 만들어냈을 뿐 아니라, 이러한 이슈들이 20세기에도 계속해서 인간의 마음을 사로잡을 수 있게 하는 데 총력을 기울였다. 결국 비본질적이고, 좌익 성향을 띄며, 비실재적이고, 공산주의적이며, 인간의 근본 문제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 문제들이 오늘날에는 모든 사람들의 최우선 관심의 대상이 되어 버린 것이다.

이제껏 살펴본 내용들은 신약 교회사를 많이 벗어난 것들이긴 하지만,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것은 1933-1980년 사이 연방정부가 교회들에 대해 취한 부정적 조치들은 모두 언론이 주도했다는 사실이다. 언론인, 상원의원, 하원의원, 대통령, 관료 및 학자들을 배출해 낸 자들은 다름 아닌 다윈(과학자들과 생물학자들), 막스(철학자, 언론인 및 사회주의자) 그리고 프랑스 림즈의 예수회 신부들(성경 개정자 및 번역자들)이었던 것이다. 돈 문제는 경제적 “전문가”들이 장악하고 있었던 반면(모간, 록펠러, 포드 등), 그들은 대학 교육을 받은 사람들의 사고방식을 통제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는 왜 오늘날 미국의 가장 강력한 공산주의 지지기반이 대학 캠퍼스인가를 잘 설명해 준다. 이는 러시아, 중국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전 세계 어느 곳에서든지 공산주의자가 발흥하는 곳에는 그 배후에 학생 운동이 있다(이란, 필리핀, 엘살바도르, 잠비아, 로데시아 등). 레닌, 막스, 트로츠키는 (엥겔스와 마찬가지로) 첫째, 학생들이었고 둘째, 언론인이었다. 그들은 결코 노동을 해 본 적이 없다.
다윈을 100년 전에 추종했든지 오늘날 추종하고 있든지 간에, 그 사람은 종교적 이단인 셈이다. 이 이단은 인간은 동물에게서 왔고 동물의 뿌리는 식물이요, 식물의 근원은 광물이라고 믿고 있다. 그 어떤 궤변으로도 자연발생설과 “획득된 형질”이라는 원칙을 위장할 수는 없으며, 다윈의 기본 입장에 대한 그 어떤 개정작업도 이 기본 원칙을 바꿀 수는 없다.
다윈은 모든 진화론자 및 휴머니스트들이 가르치는 바를 그대로 가르쳤다. 즉 발전은 항상 진행되어 왔기에 불가피한 것이라는 것이다. “만약 발전이 추진된다면 발전은 불가피하다.”(막스) 혹은 “환경을 통제할 수 있다면 발전은 분명히 가능하다.”(아인슈타인, 하이젠베르크, 플랑크 등) 혹은 “발전은 상대적으로 볼 때 불가피하다”(실증주의, 실존주의 등)와 같이 그 어떤 식으로 표현하든 한결같이 인간의 타락한 본성을 정당화시키려는 기본 의도에는 변함이 없다. 만약 당신이 어디로부터 와서 어디로 가고 있는지를 모른다면 현재 어디에 있는지를 모르는 것은 당연하다. 결국 이들이 말하는 “발전”이란 말은 “진화” 혹은 “변증법”과 마찬가지로 상대적인 용어인 셈이다. 따라서 인간이 얼마나 퇴보했으며 인류의 역사가 쇠퇴의 반복이었다는 명백한 사실도 보기에 따라서는 “발전”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이처럼 아인슈타인의 상대주의는 기원도 목표도 모두 제거해 버렸던 것이다.
데카르트는 그의 혼을 잃어버린 채 그의 이성을 발견했고, 칸트는 이성을 잃어 버린 채 그의 의식만을 발견했고, 버트런드 럿셀은 그의 의식(혹은 양심)은 잃어버린 채 그의 동물적 반응을 발견했고, 아인슈타인은 그의 동물적 반응은 잃어버린 채 블랙홀에서 진공만을 발견하고 만 것이다.
단순화시켜 쉽게 표현하자면 다윈은 그 누구도 거듭날 필요가 없으며, 이는 최초의 출생 때부터 인간은 올바르게 태어났기 때문이라고 한다. 이 문제에 관한 한 다윈과 주 예수 그리스도는 결코 합의에 이를 수가 없다(요 3장).
요한복음 3:3은 창세기 1-3장에 근거하며 그리스도께서는 모세가 창세기 2장에 기록한 것은(막 10:6) “학문”이 아니고 사실이라고 주장하셨다. 따라서 찰스 다윈이 틀렸든지 예수 그리스도가 틀렸든지 둘 중 하나이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인간은 고귀한 존재로 위로부터 출발했지만 타락하여 현재는 밑바닥 인생이 된 것, 따라서 창조주의 개입 없이는 자기가 밑바닥에 처해 있다는 사실도 모르는 처지이며 더 나아가 그의 창조주의 기적 없이는 원상태로 회복할 수 없음을 주장하셨다. 반면 다윈의 주장은 인간이 밑바닥에서부터 출발하여 스스로의 노력을 통해 한 단계 한 단계 발전을 거듭해 왔다는 것이다. 이것은 사실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 가상 이론에 불과하다. 다윈의 입장을 이해하는 데는 그 어떤 전문 지식도 기술도 필요가 없다. 그 어떤 실험도 다윈을 인정하거나 부인하는 데는 필요가 없다. 진화론을 완전히 이해하는 데는 고등학교 교육도 필요가 없다.
진화론은 자신은 성경이 말씀하시는 바 타락한 상태에(엡 2,4장, 롬 3장, 사 65장, 시 14편, 마 23장, 렘 23장 등) 있지 않다고 생각하여 스스로를 속이려고 애쓰는 구원받지 못한 죄인의 자기 정당화에 불과하다.
자기 노력으로 쟁취한 발전이기에 자기 의를 내세우겠다는 의도 외에는 아무것도 아닌 것이다.
다윈의 “과학적” 연구라고 해야 하나님의 말씀 앞에 불편한 심기와 공포심을 없애 보려고 발버둥친 것에 불과하며, 그의 추종자들 역시 동일한 입장에 처해 있는 자들로 다윈이 옳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달에서 화산재를 가져오는 데 250억 달러를 쓰는 사람들이다.

칼 막스에게도 역시 동일한 평가를 내릴 수밖에 없다. 이 두 사람은 자신들이 지옥에 갈 수밖에 없는 죄인이라는 사실에 심한 정서 불안을 느꼈고 그들의 철학체계는 결국 이러한 히스테리에 근거한 것이다.
막스는 자기 스스로 지성인으로 분류되고 싶어했으나 그는 결코 지성인이 아니었다. 그는 출생 때부터 유대인이었지만 어떻게 해서든지 유대인이라는 신분에서 벗어나고 싶어했다. 그는 결코 일을 하려고 하지 않았고 그 결과 그의 두 아들은 굶어 죽게 되었다. 그는 광란의 순간을 맞이했고 모든 가족은 해체되어야 한다고 외쳤으며, 그 누구도 자신의 것을 소유할 수 없고, 사람들이 성경을 믿고 설교하는 이유는 경제적인 강압이나 야망 때문이라고 설파했다(예수 그리스도와 바울의 인생을 아는 사람이라면 막스의 이런 주장이 터무니 없음을 인정할 것이다).
막스는 자신이 인간에게 “천년왕국”을 가져올 수 있는 방법을 제시해 주는 메시야라는 사실을 조심스럽게 알렸다. 그는 자기가 진리에 대해서 모세나 베드로, 야고보, 요한, 바울, 그리스도보다도 더 월등한 계시들을 갖고 있다고 말했고, 이 계시들을 심오한 종교적 확신들로 선포했다. 그는 자신의 종교적 신념을 위해 죽으려 했던 종교적 광신자였던 것이다.
막스는 성경에 계시된 하나님 대신 자기 머리를 신뢰했고 그 결과 이 우주에서 가장 높은 권위는 자기 자신의 의견이라는 결론을 내리고 말았다. 그는 자신의 “근본주의”에 대해 얼마나 확고한 종교적 신념을 가지고 있었는지 그 어떤 민족이나, 정부나, 국민이라 할지라도 그가 만든 종교의 제단에 제물로 바쳐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레닌은 막스가 가르친 것을 단순히 적용했을 뿐이다. 즉 레닌은 러시아 민족과 정부와 국가를 막스의 철학이라는 제단에 제물로 바쳐 버린 것이다. 막스가 지니고 있었던 문제들은 모두 다 아담의 타락한 성품에서 나온 것뿐이었다. 그는 남을 비난했고(창 3:12,13), 하나님의 섭리와 다루심에 불만을 품었으며(창 4:13), 예수 그리스도를 거짓말쟁이로 만들었고(요 8:43-47), 성경이 인간의 본성에 대해 말씀하시는 바를(엡 2:1-4) 거부했으며, 불가지론자였고(살후 1:8), 무신론을 주장했다(시 14:1). 그는 자기가 “위에 있는 권세”(롬 13장)를 무너뜨릴 수 있을 만큼 똑똑하다고 생각했으며(바울은 행 19:11에서 위에 있는 권세에 순복했었다) 무엇보다도 그는 트로츠키와 같이 “인류”에 대한 완전한 믿음을 갖고 있었다. 다시 말해 그는 하나님께서 인간에 대해 하신 말씀들을(사 65:8; 40:15,17, 요 2:25, 눅 11:13, 갈 1:4) 정면으로 거부한 것이다.
한 마디로 막스는 성경을 거부한 어리석은 자였던 것이다. 제리 멕콜레이(구조 선교단 사역자), 호라티우스 보우너(성경대로 믿는 스코틀랜드인), 케일과 리츨(히브리어 어원학자 및 현대주의자), 헨리워드 버쳐, 드빗 탈메이지, D.L.무디, 샘 존스, 윌리엄 부스 장군, 스펄젼, 제임스 길모어(티벳 선교사), 조셉 네에지마(일본 선교사), 필립 브룩스, 헨리 조벳, 테니슨, 롱펠로우, 제임스 찰머, 라일 주교 및 지니커이 신부 등이 열심히 일하고 있었고 거리 설교자들이 영국과 웨일즈의 거리에서 복음을 외치는 동안(이 모든 사람은 막스와 동시대 사람들이다) 막스는 대낮의 박쥐처럼 완전히 눈을 가린 채 제 갈 길로 가 버리고 말았다. 당신이 성경을 믿는 사람이라면 다윈과 막스는 불치의 병에 걸린 사람들임을 인정할 것이다. 이 두 사람은 근거없는 “낙관주의자”였던 것이다.

열역학 제 1법칙은 다윈의 기원론을 무너뜨렸고, 열역학 제 2법칙은 그의 종의 진화에 대한 이론을 무너뜨렸다. 이 두 법칙은 이 세상 어디에서든지 그 누구에 의해서든지 실험으로 “입증”할 수 있는 “증명된” 법칙이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엥겔스, 막스, 레닌 및 트로츠키 등은 이 맹독성 이론을 재빨리 삼켜 버리고 말았다. 이들이 모든 진보와 발전 혹은 “진화”를 추진하도록 하기 위해 “조치”를 취하자 그 결과는 비밀 경찰이 통제하는 무서운 정글사회가 되어버린 것이다. 러시아의 그 어떤 국왕들도(짜르) 공산당이 죽인 것만큼 많은 러시아인을 죽이거나 고문하거나 투옥한 적이 없었다. 링컨이 “해방”시킨 아프리카 노예들을(A.D. 1700-1853) 지난 1세기 동안 “해방”되지 못한 러시아 노예들과 비교한다면 러시아 노예들이 20배나 더 많을 것이다.

현대의 진화론자들과 현대주의자들의 철학에 근거해서 통계적 자료를 판단해야만 한다면 노예가 많을수록 인간사회는 더 진보한다는 결론이 나온다. 결국 “진보는 불가피하다”는 것이 진화론자들의 결론인 셈이다. 오늘날(1980)에는 1944년보다 더 많은 강제수용소들이 있으며, 1863년보다 더 많은 노예가 있고, 러시아 혁명이 일어나기 전 100년 동안 일어났던 전쟁보다 1945년 이래 현재까지 일어났던 전쟁이 훨씬 많다.
당신이 진화론자라면 이 모든 것은 진보 혹은 발전인 셈이다. 왜냐하면 헤겔의 변증법과 막스의 변증법에 따르면 이것은 필연코 진보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B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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